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20
제 220화
75장. 신궁 아슈르 – 2화
‘아버지, 저도 이렇게 아버지의 곁으로 가는 겁니까?’
아슈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아버지, 루갈 바티아스.
그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정확히는 죽음을 당했다.
아슈르는 왜 자신의 아버지가 죽음을 당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어린 나이의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었기에.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트라우마가 생길 만큼, 두렵고 슬펐던 기억이었다.
루갈은 암흑 교단, 특히 카코 교단의 실체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는 라디우스 교단에서 대외 첩보(諜報) 업무를 담당했던 비밀 요원이었기 때문이다.
암흑 교단의 내부 정보를 캐기 위해 그는 자진해서 카코 교단의 단원이 되었고, 교단 내부에서 상당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경계가 철저한 카코 교단답게 하루에도 몇 번씩 사상 검증을 하거나 단속을 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카코 교단의 모든 것을 캐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는 버텨 냈고, 교단의 앞잡이가 됐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카코 교단의 활성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 루갈은 내부 승진을 거듭했다.
오히려 기존에 있던 단원들보다 더 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렇게 내부로 더 깊숙하게 들어간 루갈은 충격적인 정보를 알아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바로 카코 교단의 최종 목적이 마왕을 현신하는 일이었고, 이를 위한 지하 제단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루갈이 알게 된 진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했다.
마왕의 현신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미래였으니까.
어쨌든 루갈은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카코 교단의 주 제단에 있는 다섯 개의 암흑 원석 중 하나를 탈취하여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하나라도 없으면 훗날 마왕이 현신할 때 불안정성이 커지기에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다.
물론 일이 순탄하게 풀리지는 않았다.
루갈의 배신을 확인한 카코 교단에서는 집요하게 그의 뒤를 쫓았고.
루갈은 자신의 아들이었던 아슈르를 안전한 장소에 피신시킨 다음, 그에게 암흑 원석을 건넸다.
루갈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카코 교단은 루갈을 찾는 데 성공하고, 그를 죽였지만.
끝내 아슈르와 암흑 원석을 찾아내는 일에는 실패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일.
이후, 아슈르는 아버지에게서 건네받은 원석을 안전한 곳에 숨겨 놓은 뒤.
외부의 눈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나스 대미궁으로 와서 생활하고 있었다.
대륙 전역은 그 어디도 암흑 교단의 눈이 닿을 수 있기에 안전지대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인지……. 카코 교단에서는 기어이 아슈르의 존재를 찾아냈다.
아울러 아슈르가 루갈이 혼외로 낳은 자식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대로 잡혔다가는 모든 정신을 금제 마법에 당하고, 비밀을 술술 불게 될 판이었다.
‘자결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아슈르는 단원들의 집요한 추격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공격할 수단도 없고, 방어할 방법 또한 여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버지의 복수도 하지 못했거늘…….’
카코 교단에 대한 적개심은 아버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들을 잊고 살아간다면, 그건 정상이 아닐 테니까.
바로 그때.
“크윽!”
너무 무리해서 한계까지 체력을 쓰며 달렸기 때문일까?
옆구리와 가슴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더니 더 이상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
체념한 아슈르가 멈춰 섰다.
더 이상 뛸 힘도 없었고, 싸울 무기라고는 맨주먹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맨주먹으로는 온갖 암기와 독수로 무장한 저들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나스 대미궁에서 성장해 온 한 명의 무인으로서 충분히 계산 가능한 결과였다.
“X발…….”
아슈르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원통하고 분하지만 여기까지인 듯했다.
암흑 교단이라면 정말 치가 떨린다.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제 자신까지 죽이려 들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더 이상 복수할 방법은 없는 듯했다. 하늘이 허락한 삶은 여기까지인 듯하다.
“아버지…….”
아슈르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완벽한 포기였다.
그때.
후웅! 화아아악! 쿠아아아!
일순간 굉음이 크게 들렸다.
아슈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죽이면 될 것을 저마다 이런저런 수단으로 자신의 목숨을 끝장내려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예 무릎을 꿇고, 목을 길게 뺐다.
너희들 뜻대로 해라, 하고.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크아아악!”
“끄아아아! 몸! 내 몸이!”
“웬, 웬 놈이냐?”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떠 보니, 눈앞에서 단원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척! 처척!
갑자기 날아온 이상한 물체가 자신의 몸을 감싸더니, 이내 일체화를 마쳤다.
-올라. 지금부터 당사자를 완벽하게 보호합니다.
“……올라?”
-공중 회피 기동. 자레드 님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합니다.
“자레드……?”
올라는 누구고, 자레드는 또 누구란 말인가?
나스 대미궁에서만 10년을 지내 온 아슈르였기에 자레드가 누구인지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헌터를 이곳에서 동료로 만난 적도 없었고.
다음 순간.
“사람도 봐 가면서 쫓아야지! 무턱대고 달리기만 하면 쓰나!”
화르르륵! 화륵! 화르륵!
거대한 불길이 사방에서 치솟기 시작했다.
“와…….”
펼쳐지는 화려한 광경.
아슈르는 마치 넋을 잃은 것처럼, 그 현장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실로 장관이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면서 마그마가 분출하듯이, 지면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심지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의 큰 폭발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마법이…… 존재하나?’
생전 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지금까지 아슈르가 호흡을 맞춰 본 최대 실력의 마법사는 6클래스였다.
마법의 위력이 분명 강력하기는 했으나, 지금 보는 광경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초라했다.
그리고 아슈르도 마법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궁마법을 쓰기도 하기에 마법에 대한 지식은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저 정체불명의 마법사가 펼치는 공격은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도대체 왜 나를 돕는 거지?”
가장 큰 의문은 그것이었다.
홀연히 나타나 단원들을 싹쓸이하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왜 자신을 돕는지가 더 궁금했다.
-안전거리를 유지합니다.
뭔가 감지했는지, 올라가 조금 더 멀리 자레드에게서 떨어졌다.
그 순간.
아슈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그것은 바로.
빠지지직! 빠직! 빠지지지직!
“끄아아!”
“커헉!”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번개의 향연에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단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아티팩트나 방어 기술 따위로 마법을 받아 내려 했지만, 소용없는 몸부림이었다.
지상의 적을 강타한 자레드의 마법은 해머로 사과를 으깨듯이 여기저기서 단원을 터뜨려 나갔다.
개죽음이었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아슈르의 뒤를 쫓던 20명의 적들은 어느새 황천길로 떠나고 없었다.
단 한 명의 마법사가!
잘 훈련된 20명의 단원들을 일거에 저승으로 보내 버린 것이다.
그 과정은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았고, 흔한 교전 한 번 없었다.
자레드의 압도적인, 그야말로 일방적인 몰살이었다.
* * *
“끄극, 끄극.”
“카코 교단에서 보냈나?”
“자, 자레드…….”
“내 이름을 알아주니 고맙군. 다시 한번 말하지. 카코 교단에서 보냈냐고 물었다.”
“ㅈ…… 까.”
“그 멘트는 암흑 교단의 전용 멘트라도 되는 건지…… 매번 레퍼토리가 같군.”
푸슉!
“끅.”
나는 겨우 목숨만 붙어 있었던 마지막 단원의 숨통까지 매직 미사일로 거둬 버렸다.
어차피 이들은 잘 훈련된 단원들로 내부 기밀을 누설하느니 혀를 깨물고 자살하는 놈들이다.
그래서 어설픈 회유가 소용없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에서의 경험에 따르면, 정신 금제도 통하지 않았다.
금제를 시도하는 순간, 내부에 주입된 방어기제가 발동하여 목숨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살인멸구(殺人滅口).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암흑 교단의 오래된 악습이기도 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는 올라가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아슈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직감이 맞았다.
아슈르에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던 상황이었으니까.
내가 출발을 5분, 아니 1분만 망설였어도 지금쯤 아슈르는 죽었을 것이다.
나스 대미궁으로 오자마자, 나는 유독 발자국이 집중되어 있는 외곽의 한 길부터 쫓았다.
사람이 왕래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흔적처럼 남은 마기에 반응한 아티팩트도 한몫했고.
[감지의 돌 – 모이즐의 숨결]‘역시 모이즐은 항상 옳다니까.’
그가 만든 아티팩트는 항상 유용하게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이즐은 구슬땀을 흘리며 공방에서 열심히 아티팩트를 제작 중일 터였다.
이제 신성력 아티팩트도 대량생산 공정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정말 기대된다.
슈아아아.
한편 안전을 확인한 올라가 타넥스를 강하시키며, 이내 내 앞에 아슈르를 착륙시켰다.
“…….”
에서 만난 아슈르는 NPC로서 동료라기보다는 영웅이나 구원자에 가까웠던 존재였다.
와, 하는 탄식과 함께 도와주는 그를 우러러보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위치의 존재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선 에 등장할 당시의 30대 후반의 외모가 아니었다.
앳된 20대 중반의 모습으로, 얼굴에 가득했던 수많은 흉터도 없었다.
‘이게 어리고 젊었던 시절의 아슈르, 네 모습이었구나.’
반가웠다.
레나를 만났을 때처럼, 영웅의 젊은 시절을 마주하는 설렘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기도 했다.
“저기…… 감사합니다.”
아슈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게 감사를 전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아슈르의 얼굴을 더 지켜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나만의 감정에 취해 있을 수는 없었기에 이내 나도 그에게 말을 붙였다.
“괜찮습니까? 다친 곳은?”
“……괜찮습니다. 지금까진.”
애매한 대답에 시선을 내려 보니, 추격자의 암수에 당한 흔적이 여럿 보였다.
나는 아공간에서 꺼낸 회복 포션부터 먼저 건넸다.
체력을 100% 회복시키는 마스터 포션으로 초고가의 포션이다.
부르는 게 값이지만, 그에게 쓰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하물며 필요하면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는 물품이기도 했고.
“드세요.”
“마스터 포션……?”
“괜찮으니까 드세요. 일단 회복부터 합시다.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아무 도움도 드린 것이 없는데……. 그저 구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대답 대신 얼른 포션을 들이켜라는 손짓을 연신 반복했다.
‘겸손은 이래서 피곤하다니까.’
확실히 그랬다.
선의를 납득시키는 과정에도 설득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군말 없이 바로 먹기나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훗날의 아슈르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와줄 것은 잘 도와주지만 – 자뻑남으로 변하게 되니 말이다.
달라질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의 겸손함은 차라리 감당 가능한 답답함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