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22
제 222화
75장. 신궁 아슈르 – 4화
“자레드 씨.”
“네, 말씀하세요.”
아직 우리는 말을 놓지 않은 상태였다. 나이가 동갑인 것은 알았지만, 서로 예를 갖춘 탓이었다.
미궁 공략 내내, 나는 아슈르에게서 암흑 교단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분명 암흑 교단에 쫓길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내게 그것을 말해 주지 않았다.
당연한 방어기제일 것이다.
내가 누군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마당에 속마음을 드러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확실한 것은 아슈르가 카코 교단으로부터 쫓길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슈르와 함께하게 된다면, 그 이유를 들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소속되어 있으신 곳은 이곳보다 안전할까요?”
아슈르는 자신의 거취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그럴 것이다. 카코 교단으로부터 직접적인 추격을 받았으니, 안전은 최우선 문제가 될 수밖에.
“단언컨대 여기보다는 낫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스 대미궁이 있는 이 섬은 생각보다 그리 넓지 않다.
아무것도 안 하고 동굴 속으로 숨어든다면 몰라도, 기본적인 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섬은 갇힌 세계다.
때문에 몸을 숨기기에는 좋지만, 일단 발각되면 도망치기 어려운 곳이기도 했다.
장담할 수 있었다.
아슈르는 이제 이 섬을 떠나야 한다.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위험에 처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이번에 보낸 정예 단원들이 전멸했으니, 다음에는 당연히 더 높은 수준의 암살자들을 보낼 테고.
“가겠습니다. 자레드 님과 함께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즐거울 것 같군요. 아, 물론…… 실력 없이 업혀 갈 생각은 없습니다만.”
아슈르는 선뜻 나를 따르겠다는 말이 부끄럽게 느껴졌는지, 끝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아슈르는 대미궁 공략 내내,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전투 능력을 내게 보여 줬다.
낯간지러운 얘기이긴 하지만 아슈르가 못난 것이 아니라, 내가 잘난 것이다.
그래서 아슈르가 상대적으로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졌을 수는 있겠지 싶었다.
“암흑 교단을 뿌리 뽑는 일은 저의 오랜 숙원이기도 합니다. 함께 던전도 공략하고, 암흑 교단의 마수에 대응하면서…… 그렇게 미래를 준비해 나갑시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처억!
나와 아슈르는 악수를 나눴다.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한 사전 준비가 충분했던 덕분에 아슈르 영입 작업은 일사천리로 끝났다.
새삼 전생의 기억이 고마워졌다.
‘이제…… 인재 영입은 끝이다.’
현생에 눈을 뜬 시점부터 열심히 달려 왔던 인재 영입 작업은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내가 아는 의 지식 내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인재는 다 얻었다.
나머지 인재들은 이미 다른 국가 혹은 적국의 구성원이 되어 있었다.
그들을 얻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전생의 경험에 의존할 수 없다.
완벽한 자력으로 해내야 한다.
‘아슈르와도 어느 정도 신뢰 관계가 구축되면, 바로 수련의 방으로 보내자.’
나는 아직 본인은 꿈도 꾸지 못할 미래의 계획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는 알까?
나와 함께한 순간부터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미래에 생사고락을 같이할 동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마 모르겠지.
어쨌든 이제 아슈르와 함께 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황궁의 한복판에 있게 되면 많이 놀라겠지만! 적어도 왜 내가 자신 있게 안전하다고 말했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비아 제국으로 돌아왔다.
* * *
“아니, 여긴…….”
자레드와 함께 멀티 텔레포트로 이동한 아슈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보고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은 황궁이었다.
황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절대 갖출 수 없는 스케일과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제국을 상징하는 깃발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크리비아 제국의 깃발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슈르에게 자레드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줬다.
그 순간, 아슈르는 얼마 전에 함께 사냥하던 헌터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방의 소영주가 기세를 크게 떨쳐, 주변 국가를 통합하고 제국을 건설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 자레드였던 것이다.
“황제…… 였다고요?”
“처음부터 말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괜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아니, 그것보다 이렇게 제게 존댓말을 하시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아슈르는 황송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귀족도 아니고 황제라니. 황제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슈르 역시 귀족 출신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그런 사실조차 잊고 지낸 지 오래였다.
나스 대미궁에서 헌터들과 뒤섞여 살았으니, 신분에 대한 생각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황제’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미궁에서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아슈르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렇다면 크리비아 제국의 황제가 자신을 직접 구해 주고, 암살자들을 처단하고, 함께 미궁 공략을 해 주었다는 말인가?
좀처럼 떨리지 않는 아슈르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동료로서 데려온 겁니다. 군신의 관계가 아니라. 질서와 법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자레드는 자신의 생각 그대로, 아슈르에게 가감 없이 말했다.
그저께 클로이를 따라 그레이 엘프의 땅으로 떠난 어쌔신 포르미도처럼, 가신이 아닌 손님으로 데려온 것이 아슈르였다.
“와, 이건…….”
아슈르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앞으로 전심전력을 다해 암흑 교단의 마수로부터 아슈르, 당신을 지킬 겁니다.”
“정말 믿기지가 않는군요.”
“원래 산다는 건 놀라움의 연속이니까요.”
자레드가 웃었다.
* * *
아슈르는 자레드로부터 자신이 머물 별장을 직접 안내받았고, 헤이즈가 아슈르의 옆에 붙었다.
괜찮다고 자레드가 말려도, 자신이 직접 새 손님을 모시겠다는 헤이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아슈르는 자레드가 데려온 귀한 손님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헤이즈는 직접 그의 시중을 들고 싶었던 것이다.
항상 그래 왔듯이 자레드에 대한 생각 하나만으로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헤이즈였다.
“헤이즈…… 님?”
“편하게 헤이즈라고 부르세요. 저는 폐하의 하녀랍니다.”
“하, 하녀…… 요?”
“네. 맞아요!”
방긋방긋 웃는 헤이즈의 모습에서는 발랄함이 잔뜩 묻어났다.
그녀는 디바인 세븐이라는 엄청난 경지에 오른 치유사가 되었지만, 절대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외부에 그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지도 않았다. 겸손과 희생은 늘 헤이즈에게 붙는 패시브 스킬과도 같았다.
아슈르가 물었다.
“헤이즈,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아 참, 이 별장은 전부 아슈르 님께서 쓰시면 됩니다. 하녀와 하인들은 곧 하녀장님께서 보내실 거예요.”
“팔자에도 없는 고급 별장 생활이라니…….”
아슈르가 혀를 내둘렀다.
별장은 대귀족이 머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울러 창밖으로 보이는 곳은 온통 수련을 위한 훈련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궁술 수련을 위한 마법 장치로 보이는 과녁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을 보니, 자신을 위한 맞춤형 훈련장 같기도 했다.
“어떤 점이 궁금하신 거죠?”
계속 놀라고 또 놀라느라, 잠시 넋이 나가 있던 아슈르에게 헤이즈가 재차 물었다.
“자레드. 아니, 폐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제게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암흑 교단과의 싸움에 앞장서 왔다고 하셨는데…….”
“네, 맞아요! 나스 대륙에서 폐하만큼 암흑 교단을 성공적으로 처단해 오신 분은 없을 거예요!”
헤이즈가 힘주어 말했다.
자레드에 대한 자부심이라면 자레드 본인보다도 더 크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 바로 헤이즈였기에.
“시간이 얼마든지 걸려도 좋으니, 지금까지의 폐하의 행보에 대해서 말해 주었으면 합니다.”
아슈르가 진지하게 말했다.
암흑 교단은 아슈르가 아버지를 잃었던 그 시점부터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된 자들이었다.
특히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결심이자 결의였다.
다만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와신상담하며 몸을 피해 있었을 뿐이다.
한데 기회가 찾아왔다.
세상 그 누구보다 암흑 교단을 증오하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동료가 된 것이다.
그것도 제국의 황제라는 엄청난 위치에 있는 사람, 바로 자레드가.
“그럼 폐하의 모든 행보를 거짓 없이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준비되셨지요?”
“부탁합니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기나긴, 자레드에 대한 헤이즈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분명 긴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슈르는 내내 헤이즈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간 자레드가 걸어온 행보에 연신 감탄했다.
그는 마치 암흑 교단을 뿌리 뽑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아울러 라디우스 교단의 5대 성유물을 직접 찾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교황이 인정했고, 신뢰하며, 시국을 옮길 결정적 결심을 하게 만든 황제.
이미 그것으로 자레드의 가치는 입증된 것이었다.
아슈르는 확신했다.
자레드의 곁에서 능히 아버지의 복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울러 자레드의 행보를 듣고 나니, 그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더욱 높아졌다.
그간 헌터들이 자레드에 대해서 했던 얘기들을 우스갯소리나 가십거리 정도로 치부하고 넘겼는데.
아니었다.
암흑 교단이면 치를 떤다는 자레드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움브라 교단을 완벽하게 궤멸시켰다는 것도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레드는 질서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더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질서에 대한 순응이 필요해.’
아슈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자레드와 함께하기로 마음을 정한 마당에 더 이상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인정할 만한 사람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그의 신하가 되어, 황제로서 섬기게 된다고 한들…… 불만 따위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우러러볼 수 있는 상대가 생겨 행복할 따름이었다.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고.
아버지를 암흑 교단의 손에 잃은 것이 행복했던 자신의 삶을 희극에서 비극으로 바꾼 변곡점이라면.
자레드를 만난 것은 다시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 수 있는 변곡점이라고 생각했다.
결심은 빨랐고,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아슈르는 그날부로 자레드를 찾아가, 그의 충실한 신하가 되기를 맹세했다.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서나 강요 혹은 압박에 의해서도 아닌, 진심 어린 맹세였다.
‘준비는 끝났다.’
아슈르를 신하로 받아들이며.
자레드는 확실히 앞만 보고,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갈 추진력이 확보됐음을 느꼈다.
이제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
성마 대전의 대비를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생각이었다.
남은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