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23
제 223화
76장. 의외의 전쟁 – 1화
“신데르스 왕국이 풍년이라고?”
“예, 전례 없는 풍년인 모양입니다. 역대급 소출(所出)을 갱신했다고 하더군요.”
“크리비아 제국의 농업상이 평생을 농업에 전념해 온 전문가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노하우를 신데르스 왕국에도 전수한 건가?”
“오브렌 말씀이십니까?”
“맞아. 오브렌. 유명하더군, 그 늙은이.”
“모르긴 몰라도 많이 전수 받았을 겁니다. 신데르스 왕국이 좀 크리비아 왕국의 딸랑이 노릇을 했어야지요.”
“흠…….”
심복 투카의 말을 들은 갈라딘이 깊은 침음성을 냈다.
최근 그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소식들은 전부 신데르스 왕국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웃한 렌투스 제국의 사람으로서 당연한 관심이기도 했다.
특히 신데르스 왕국이 크리비아 제국과 렌투스 제국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어 더욱 신경이 쓰였다.
문제는 신데르스 왕국이 완벽한 친(親)크리비아 국가라는 점이었다.
항간에서는 국왕 이즈엘이 자레드에게 영원한 충성 맹세를 하고, 발바닥을 핥았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양국의 깊은 유대감과 협력 관계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진 바가 많았다.
“망할 X의 자식들…….”
까득.
갈라딘이 이를 갈았다.
신데르스 왕국은 전부터 눈엣가시였다. 동시에 군침을 흘리게 되는 국가이기도 했다.
신데르스 왕국의 남부에 위치한 곡창지대가 나스 대륙 전체에서 가장 쌀 생산량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신데르스 왕국은 ‘왕자의 난’이라는 내홍을 겪은 이후에도 빠르게 국력을 회복했다.
어쨌든 신데르스 왕국이라는 좋은 먹잇감이 있음에도, 렌투스 제국은 여전히 군침만 흘리는 중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뒤에 크리비아 제국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공작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말해라.”
“아무래도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습니다.”
“대기근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수확을 앞두고 모든 농작물이 말라죽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조기에 수확을 하다 보니, 곡식들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듯합니다.”
“산 넘어 산이군.”
이웃한 신데르스 왕국은 남아도는 쌀이 문제인데, 렌투스 제국은 정반대였다.
대기근은 비단 렌투스 제국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나스 대륙을 기준으로 중부와 남부에 위치한 국가들이 전부 대기근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기근이었다.
메뚜기 떼가 날뛰는 것도 아니고, 역병이 창궐한 것도 아니었다.
한데 작물들이 말라죽어 가고 있었다. 좋은 비료를 퍼붓고, 물을 계속 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공작님, 보고 드립니다.”
“무슨 일이냐, 세난?”
“데스먼드 제국에서 은밀히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사전에 통보도 없이, 야음을 틈타서 온 것을 보면 중대한 사안인 듯합니다.”
“뭐?”
갈라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데스먼드 제국은 드러내어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암흑 교단을 비호하는 국가였다.
그래서 모두가 ‘확정’하지만 않았을 뿐, 데스먼드 제국을 마도국으로 특정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마도국 아르테니아 왕국을 병합(倂合)한 것도 그런 결정에 영향을 미쳤고 말이다.
“폐하께서 은밀히 입궐하라고 하십니다.”
“알았다.”
신데르스 왕국에 대한 고민으로 골치가 아파지는 시점에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갈라딘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 * *
아슈르를 영입한 이후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슈르와 시간이 날 때마다 크고 작은 던전들을 공략하며 계속 호흡을 맞춰 갔다.
오랜 시간 교감해 온 다른 동료나 신하들과 달리, 아슈르와는 이제 막 친해졌다는 이유도 있었다.
아슈르는 신궁의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진 궁술과 궁마법을 보유한 실력자였다.
그래서 레클리스의 활도 대여가 아닌 ‘선물’로 그에게 확실하게 인계해 주었다.
동기부여를 위해서였다.
아슈르에게 ‘수련의 방’에 대한 얘기는 일찌감치 해 둔 상태였다.
녀석은 나만큼이나 강해지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쉬이 말해 주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카코 교단의 손에 목숨을 잃은 아버지, 루갈에 대한 이야기였다.
루갈은 나도 누군지 몰랐다.
내게 유일한 빈틈이 있다면 에서 다뤄지지 않은 존재에 대해서는 정보가 아예 없다는 점이라고 할까?
루갈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존재하지 않는 정보의 ‘공백’이었다.
그래서 아슈르에게 정말 많은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채근하지 않고, 그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려 들은 이야기였다.
어쨌든 아슈르와 깊어진 관계만큼, 녀석과 나의 공감대는 더욱 많아졌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내 사람이라고 말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충성도도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한편.
나는 오늘로 10주 차를 맞이하는 교황의 안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수가 이뤄지는 라디우스 시국의 대신전 안에는 예복을 차려입은 기사와 마법사로 가득했다.
모두 우리 크리비아 제국의 기사단, 마법사단 소속의 일원들이었다.
[‘교황 아르모니아 17세의 안수’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기사 ‘알론소’가 신성력 50을 즉각 획득하며, 이를 공격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좋군.”
심안을 통해 기사의 변화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내 입가에는 흡족함의 미소가 걸렸다.
교황의 안수가 이뤄질 때마다 방금 전과 같은 변화가 꾸준히 일어나고 있었다.
“대신관과 교황께서 정말 많은 고생을 해 주고 계시군요.”
내 옆에 있던 나오미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엘라의 생각도 같은지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헤이즈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엘라와 나오미는 사석에서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로 막역하게 지낸다고 한다.
둘 다 연애나 결혼에 별 흥미를 못 느껴 비혼주의가 된 탓에 심리적인 공감대도 확실하다나?
어쨌든 마법사단과 기사단의 수장이 서로 가깝게 지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아는 프로페셔널한 군인이기도 했다.
나는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공감대는 충분하오. 앞으로 마도국과의 전쟁에서도 신성력은 반드시 필요하고, 성마 대전에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교황께서 노구(老軀)이신 터라 괜찮으실지…….”
“걱정 안 해도 되오. 아직까지는 건강하다고 확신할 수 있으니.”
나는 심안의 생체 신호 감지로 교황의 몸 상태를 면밀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직관화 된 구가 교황의 건강 상태를 알려 주는데, 색깔이 투명했다.
즉,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완전무결한 상태라는 얘기. 늙기는 했으나, 그것이 전부인 것이다.
늙었다고 해서 무조건 아픈 것은 아니니까.
그때, 옆에서 엘라가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 말씀하신 전군의 신성력 무장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다들 성마 대전이라는 공통의 큰 목표가 생겼기 때문인지, 이에 대한 대비에 관심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아키였다.
그녀는 대륙 전역에서 신성력 아티팩트 제작에 도움이 될 만한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모이즐의 공방으로 보내고 있었다.
내가 직접 요청하기 전에, 그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실행한 ‘멋진’ 안배였다.
엘라 역시 기사단 1순위로 교황의 안수를 받았고, 이후 신성력 수련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최근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헤이즈로부터 혹독한 신성력 수련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지금의 속도라면…… 일반 병사들까지 모두 신성력 무장을 완료하기까지는 1년 정도?”
“신성력 아티팩트도 보급형으로 제작하실 계획이라 들었습니다.”
“그렇소. 모든 준비는 철저해야지. 싸움은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병사들에게도 만반의 준비를 시킬 생각이오.”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착실하게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 왔다.
이에 앞서 가장 먼저 중점을 둔 것은 제국의 내치, 그중에서도 농업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대기근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에서 나스 대기근은 1419년에 찾아온다. ‘나스 대전쟁’이 발발하는 시점도 그때다.
하지만 내가 이 세계에 환생한 이후 역사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표적인 것이 대기근의 발생 시점이었다.
라디우스 시국을 옮길 당시 기근으로 고생하던 트란실리아 제국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곡물 값이 폭등하는 이유가 트란실리아 제국에서 닥치는 대로 곡물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우리 제국과 신데르스 왕국은 대기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작황이 다소 줄기는 했으나, 소트리나스의 대량생산으로 구황작물의 소출이 크게 늘어서였다.
심지어 정식 연구 협력 계약을 체결하고 오브렌에게서 농업 기술을 전수 받은 신데르스 왕국은 풍년까지 기록 중이었고.
‘분명 렌투스 제국도 대기근의 영향을 받고 있을 텐데…….’
나는 이상하리만치 아무 소식도 전해지지 않고 있는 렌투스 제국의 동태가 궁금했다.
대기근이 위험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굶주림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보통 국가에서 선택하는 방법이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적국이 자국의 논밭이나 우물 따위에 독을 뿌려, 의도적으로 흉년을 야기했다는 선전 선동도 제법 잘 먹혀든다.
에서 선전과 대중 선동의 달인이었던 발데스의 주특기였던 분야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을 리 없어.’
나는 확신했다.
폭풍 전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이 딱 그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 * *
그 시각.
렌투스 제국 황궁 외곽의 별궁에서는 보안 속에 세 사람의 은밀한 회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루틀러 4세, 갈라딘 공작, 그리고…… 데스먼드 제국에서 찾아온 마탑주 이카젤라였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개 사신의 얼굴로 위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리가 마련되자, 위장을 해제하고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어 보였다.
“이 자리가 얼마나 불편한 자리가 될지 모를 리 없을 텐데. 대담하게 찾아올 줄은 몰랐군.”
“하하하. 적의 적은, 아군이죠.”
루틀러 4세의 지적에 이카젤라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적의 적.
즉, 신데르스 왕국의 적인 데스먼드 제국은 언제든 렌투스 제국과 손잡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어설픈 말을 폐하의 앞에서 뇌까렸다가는 목이 달아날 수도 있소이다, 마탑주.”
갈라딘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물론 100% 진심은 아니었다.
어설픈 간 보기는 원치 않으니, 어서 속내를 드러내라는 일종의 압박이었다.
그런 갈라딘의 속내를 읽었는지, 이카젤라는 웃으며 바로 본론으로 말을 이어 갔다.
“좋습니다. 핵심만 말씀드리지요. 구미가 당기실 만한 제안을 가지고 왔습니다.”
“무엇인가?”
루틀러 4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이카젤라가 낮은 목소리로, 은근하게 속삭이듯 답했다.
“신데르스 왕국 남부의 지뢰 지대를 무력화시킬 방법이 있다면…… 왕국의 침공을 도모하실 수 있겠습니까?”
“……!”
그의 말은 과연 뒤가 궁금하게 만드는 솔깃한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