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63
제 263화
84장. 목표는 이카젤라 – 1화
“크윽…….”
“고통스럽겠군.”
“그냥, 죽여 줘. 살아 있는 것만큼 치욕스러운 것도 없는 듯해…….”
“자신의 체면까지 던져 가면서 널 지키려 했던 헤레시스를 생각해서라도 그 생각은 접는 게 좋을 듯하군.”
“어떻게 내 신의 이름을?”
“뭔들 모를까.”
“하아…….”
나탈리는 짙은 한숨을 토해 내고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몸 전체에 생긴 상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 상처를 온전하게 치료하려면 헤이즈가 하루 종일은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나탈리는 적이었고, 그녀를 여기서 쌩쌩하게 회복시켜 준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적들에게 확실한 경고의 수단으로 쓸 수 있다면 모를까.
나탈리의 상태를 심안으로 살펴보니, 과연 헤레시스의 말대로 모든 능력이 초기화되어 있었다.
[나탈리 – Lv. 1] [근력 : 22][체력 : 23] [마력 : 7][지혜 : 14] [민첩 : 15][매력 : 14] [물방 : 10][마방 : 10] [특수 성향 : 없음] [일반 성향 : 절망]이 정도면 사실상 일반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일반인 여성 중에서 운동을 살짝 챙겨서 한 정도의 수준이랄까?
당연한 얘기지만, 미아의 매직 미사일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약한 수준이었다.
스르르륵.
나탈리의 ‘지정’으로 격리되었던 전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탈리가 쓰러졌으니, 구심점이 사라진 셈이다.
물론 나탈리가 없다고 해서 데스먼드 제국군이 바로 꼬리를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청소’의 과정은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이윽고 주변 환경이 바뀌었다.
나는 공중에 떠 있었고, 축 늘어진 – 어찌 보면 죽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 나탈리의 몸을 안고 있었다.
“아아……?”
“공주마마?”
이윽고 내게로 시선이 향한 자들이 저마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와 함께 전장이 격리될 때만 해도, 그들은 필승을 자신했을 것이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라는 것은 그리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목격하게 되자, 다들 아연실색한 모습이었다.
“공주마마의 복수를 하자!”
“황도만 뒤집어 놓으면, 승기는 우리의 것이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데스먼드 제국의 정예군으로 한가락 하는 병사들을 모은 탓인지 쉽게 사기가 꺾이지 않았다.
아울러 마법사단과 기사단은 나름 최정예들로 저마다 프라이드가 강한 자들이기도 했다.
오히려 쉽게 무릎을 꿇었다면, 그것을 더 이상하게 여겨야 했을지도 모른다.
잘됐지 싶었다.
잡초는 뿌리째 뽑아야 후환이 남지 않는다. 어설프게 뽑은 줄기에서 또다시 잡초가 자라난다.
“모든 적군을 몰살시켜라.”
나는 차분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나탈리를 텔레포트를 이용해 별도의 장소에 데려다 놓고는 다시 전장으로 복귀했다.
이제 가장 큰 산이 사라졌으니.
전력으로 적을 무너뜨릴 때다.
* * *
상황은 빠르게 정리됐다.
오래전부터 외침(外侵)에 대비해 착실하게 준비해 온 대피소 설계와 비상 대피 시스템 구축.
여기에 미리 재앙을 예견하고 백성을 대피시켜 놓은 덕분에 민간인 희생자는 전혀 없었다.
모두가 희생자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을 정도로…… 민간인 피해는 0이었다.
일부 민가가 불타고 파괴되기는 했지만, 이는 국가의 재정적 지원 아래 합심하여 힘을 보태면 극복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그렇게 사라진 민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애초에 전투 자체가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칠흑 같았던 밤에 시작된 섬멸전은 새벽녘에 이르러 사실상 끝이 났다.
크리비아 제국군의 희생자가 다소 발생하기는 했으나, 그 수는 적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총 9만 5천의 데스먼드 제국군 중에서 절반 이상이 자레드가 이끄는 군대의 공격에 전멸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조리 항복했다. 이미 대비를 마치고 포위 공격을 하는 적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레드는 그들을 모두 무장해제 시킨 뒤, 별도의 공간에 격리했다.
수만의 포로를 수용할 감옥이 부족했기에, 포로수용소를 건축하는 작업에 긴급히 들어갔다.
아울러 5천의 교단 단원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숫자가 핏빛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
신념의 차이가 있었다.
일반 제국군은 승기가 기울자, 자신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삼는 선택을 했지만.
교단의 단원들은 라디우스를 섬기는 자들과 공존할 수 없다며, 자결하거나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
몇몇이 도주하여 황도를 벗어나기는 했으나, 조만간 곧 잡히게 될 터였다.
제국의 모든 영지와 경비 초소에는 마기 감지 아티팩트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단의 단원이라는 것은 나름의 제단 의식을 통해 힘을 조금이라도 부여받은 자들이라는 뜻.
그렇기에 죽지 않는 이상, 고유의 마기를 숨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레드는 우선 전후 수습을 부하들에게 일임했다.
동시에 나탈리에 대한 치료는 헤이즈에게 맡겼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헤이즈도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고 그녀에 대한 치료에 전념했다.
한편 자레드는 현재 진공 중일 칸트라 제국군과 클로이가 이끄는 그레이 엘프군에 대한 소식을 바로 들었다.
통신석이 유용하게 쓰였다.
“흠……. 이렇게 된 이상 전력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어. 하루라도 늦어지면 내가 손해다.”
이카젤라의 검은 계략을 알게 됐으니, 이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전후 수습이야 내정을 담당하는 신하들에게 맡겨 진행하도록 하면 그만이고.
51층부터 다시 시작할 미궁의 공략도 지금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목표는 이카젤라였다.
놈이 한시라도 목숨을 더 붙이고 있으면, 또 무슨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노파심에 추측하는 ‘망상’이긴 하지만, 황도에 지진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용마 대전 당시 마왕군이 남긴 ‘유산’에 대해서는 자레드도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대한 지식은 의 고인물인 자레드라고 한들,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모든 고민, 걱정, 계획은 이카젤라를 죽인 뒤에 생각하자. 지금의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이카젤라뿐이야.”
좀 더 속도를 내기로 했다.
정상적인 과정이라면, 먼저 상황 수습부터 진행하는 게 옳지만.
그랬다가 이카젤라가 더한 수를 꺼내 들게 되면, 소탐대실하는 형국이 만들어진다.
이 모든 악연의 고리는 이카젤라가 죽어야 끝이 난다.
그가 모든 일의 원흉이자, 암흑 교단의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뽑히지 않은 잡초는 시간을 주면 빈틈을 파고들며 다시 자라는 법이다.
자레드는 그런 실수를 단 한 번이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자레드는 남벌(南伐)을 위한 원정군을 꾸리기 위한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 * *
“자레드, 이 X발 새끼……!”
콰아아앙!
마탑의 꼭대기.
이카젤라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서 때아닌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하루?
아니, 하루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10만의 군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물론 전멸이 아니라 대다수가 항복을 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어도, 데스먼드 제국 내에서는 늘 승승장구했던 이카젤라였다.
그간 있었던 제후들의 크고 작은 반란 및 모략 획책을 사전에 간파했던 것도 이카젤라였다.
즉, 그는 데스먼드 제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두뇌’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레퍼토리를 자레드에게 간파당하고 말았다.
이번 사건은 두 눈으로 직접 보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대패나 다름없었다.
이카젤라는 혹여 자레드가 사태를 잘 수습을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1개월 이상 소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황도의 한가운데로 텔레포트를 시켰던 것이니까.
하지만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완벽하게 함정을 파 놓고, 사전 설계를 해 두었다고 했다.
민간인은 코빼기도 볼 수 없게 모두 대피한 상태였고, 황도 밖으로 향하는 길은 모두 봉쇄됐다고 했다.
아주 정교하게, 빈틈조차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봉쇄였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 방을 먹은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데스먼드 제국이라는 테두리가 이카젤라에게 딱히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제국이야 사라져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용 가치의 1할, 아니 1푼도 하지 못한 이번 사건은 스스로도 용납하기 힘들었다.
“망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벌써 칸트라 제국군이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온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그레이 엘프까지 전군을 이끌고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크리비아 제국군까지 무리해서라도 합세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최소한으로 생각했던 데스먼드 제국의 버티기도 안 되는 것이다.
서둘러야 했다.
“최후의 계획을 발동할 수밖에 없겠군.”
이카젤라가 혀끝으로 입술을 핥으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즐거워서라기보다는 사실 광기가 짙게 묻어나오는, 정신 나간 웃음이었다.
이젠 미룰 이유가 사라졌다.
그동안 모아 온 모든 암흑 원석을 포함한 제단 활성화에 필요한 재료들.
아울러 시공간의 흐름을 가속화시킬 가장 효과적 수단인 ‘인신 공양’까지.
“클클, 네놈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다가올 그 날을 막을 수는 없다. 그저 오늘 죽느냐, 내일 죽느냐의 차이일 뿐…….”
이카젤라는 여유만만이었다.
* * *
사흘 후.
크리비아 제국군이 남진을 시작했다.
이미 데스먼드 제국의 주요 군 전력이 한 차례 크리비아 제국의 황도에서 궤멸된 마당이라.
자레드도 모든 군사를 싹쓸이로 동원하진 않았다.
최정예만 추려 군세를 꾸리니, 도합 5만의 전력이 만들어졌다.
칸트라 제국에서 진공 중인 병력이 10만이 넘었고, 그레이 엘프의 수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데스먼드 제국 각지에서 호송되어 온 수많은 사람이 마탑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습니다.유심히 정탐해 본 결과, 들어간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카젤라를 위시한 마탑의 모든 흑마법사들도 외부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정말 갈 때까지 가 보자 이건가…….’
자레드는 보고서를 확인하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탑에서 뭔가 추가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십중팔구 제단과 관련된 일이고, 자레드는 그중에서도 마왕과 관련된 일이라 믿었다.
그래서일까?
불현듯 솟구친 불안감에 두루마리를 펼쳐 보자.
[1419년 5월 31일]그사이에, 예전에 확인했던 것보다 7개월 가까이 심판의 날이 앞당겨져 있었다.
그리고 잠깐 사이.
[1419년 5월 30일]하루가 또 줄었다.
마왕 레크나트의 현신을 앞당길 만한 일이 지금 암흑 제단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작업은…… 설마 인신 공양이란 말이야? 미친 XX가 정말?’
패악을 감지한 자레드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