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67
제 267화
85장. 혈투 – 3화
콰앙! 퍼엉! 콰앙!
난타전은 계속됐다.
디스인티그레이트에 왼발을 잃은 이후, 시종일관 여유 만만하던 이카젤라의 태도도 바뀌었다.
자레드의 경고대로,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다른 부위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이카젤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레드가 초월 마법이라는 것을 쓰는 줄 알고 있었고, 그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본 자레드의 마법이 가진 위력은 단순히 상상을 초월한다는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부하들에게서 들었던 자레드의 명성에는 어느 정도 두려움이 담긴 거품이 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특히 자레드가 데큐플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을 자신에게 날렸을 때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은가?
눈앞에서 매직 미사일 구체가 다섯 개도 아니고 5,120개가 날아드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이카젤라도 바보는 아니었다.
9클래스라는 위치에 걸맞은 위력과 대응 능력이 있었기에 그는 마기를 끌어올려 다크 실드를 최대치까지 펼쳤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디스펠이 듣지 않는다니…….’
디스펠 마법의 무력화였다.
보통의 디스펠 마법은 상대적으로 클래스 우위에 있는 마법사가 열위에 있는 마법사를 제압하기 위해 쓴다.
클래스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깨달음이나 지식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가진 지혜의 깊이와 정도가 상당하니 이를 이용해서 상대의 마법 발현을 찍어 누르는 것이다.
이것은 섭리였다.
7클래스가 8클래스를 넘어설 수 없고, 8클래스가 9클래스를 넘어설 수 없는 것.
이는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것과 같아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전제였다.
그런데 자레드에게는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이카젤라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은 올해로 쉰다섯을 넘긴, 나름대로 노회한 마법사였다.
아홉 살부터 흑마법을 수련해 왔고, 스물이 되기 전에 마왕 레크나트로부터 ‘지령’을 받았다.
거의 50년에 가까운 세월을 오로지 흑마법의 정도를 걸으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나스 대륙에서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베르하드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만큼.
이카젤라는 자신의 마법적 경지에 자신이 있었다.
그것이 줄줄이 사탕처럼 움브라 교단이 무너지고, 카코 교단이 위협을 받아도 결코 자신감을 잃지 않던 근원이었다.
하지만 자레드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대륙에서 두각을 드러낸 지 겨우 3년밖에 되지 않은 마법사에게 디스펠이 통하지 않는다?
그것도 올해로 겨우 스물일곱밖에 되지 않은 풋내기에게?
이카젤라는 이 사실을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많이 흔들리고 있군.’
자레드는 이카젤라와 마법을 난타전으로 주고받으며, 그의 심경 변화를 읽고 있었다.
자레드도, 이카젤라도 아직까지는 승부수를 던지지 않고 있었다.
순수 화력전이었다.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 화력의 마법을 서로에게 퍼부으면서, 상대의 대응력을 가늠하는 것이다.
다만 이카젤라가 공간 왜곡의 시계가 가진 효과를 알고 난 이후로 20m 안에서 전투를 치르면서.
호흡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다만 이따금씩 기습적으로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시전한 디스펠이 막힐 때마다.
이카젤라가 연계하는 마법의 끝이 무딘 호흡으로 들어오곤 했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전투 감각으로 위력의 경중(輕重)을 판단할 수 있는 자레드에게 느껴지는 변화였다.
‘나와 녀석의 지혜 스탯을 살펴볼 수 없으니까.’
[지혜 : 3,235] [지혜 : 2,194]근거는 명확했다.
자신과 이카젤라의 지혜 수치의 차이는 1,000하고도 한참을 더 넘는 수준이었다.
에서도 이 정도 차이라면 디스펠의 성공률은 거의 0%에 가까웠다.
반대의 경우라면야 백발백중 디스펠이 먹히겠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
그것도 모르고 이카젤라는 디스펠에 계속 미련이 남았는지, 수시로 디스펠을 전개하는 중이었다.
‘좀 더 공세를 높여야겠어.’
자레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확실하고도 완벽한 계산이 섰다.
이카젤라가 자신을 압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9클래스 마법’뿐이다.
하지만 9클래스 마법은 필연적으로 캐스팅 시간이 길다. 즉발 마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9클래스가 된다면, 모션 캔슬을 통해서 비약적으로 캐스팅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이카젤라를 죽이고 퀘스트를 완수했을 때의 얘기지만, 자레드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이카젤라에게는 당연히 없을 터였다.
‘화력 대 화력 싸움이면 해 볼 만해. 교단에서 더 대응 수위를 높이기 전에 어떻게든 끝낸다.’
이제는 피격과 고통이 없는 편한 전투가 아니라, 하나를 받으면 둘을 돌려주는 확실한 난타전으로 갈 생각이었다.
[옵션 8 : 흡혈 – 생체의 선혈을 흡수하여 체력을 회복합니다. 5회 이상 흡혈을 사용하면, 뱀파이어화가 진행됩니다.] [옵션 9 : 악마의 낙인 – 낙인의 대상자로 지정된 ‘1인’의 재생, 치유 능력이 99% 감소합니다. 지속 시간 30분. 쿨타임 7일]활용할 ‘악마 유희’ 아티팩트의 8번, 9번 옵션을 확인했다.
얼마 전, 십만인 베기를 달성하면서 새로이 얻게 된 9번 옵션은 효용성이 높았다.
사실상의 재생과 치유, 회복을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디버프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흡혈을 이용해 생명력을 빨아들였을 때, 꽤 골치 아픈 타격을 입힐 수 있다.
‘30분 안에 끝낸다.’
자레드는 9번 옵션을 활성화시킨 뒤, 손끝으로 낙인의 대상을 지정했다.
[이카젤라 – Lv. 904] [근력 : 302][체력 : 1,141] [마력 : 22,319] [지혜 : 2,194] [민첩 : 201][매력 : 599] [물방 : 723][마방 : 1,699] [특수 성향 : 광폭화 Ex / 마기 활용 Ex / 마나 감지 SSS / 마나 순환 SS / 극단적 마력 회복 SS] [일반 성향 : 충성, 광신, 맹종]‘소모전은 의미 없을 구성이군.’
마력 자체는 2만으로 낮지만, 그 정도면 초월 마법이 아닌 일반 마법의 시전은 문제없다.
아마도 악신의 영향으로 그들의 고유 능력 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을 터. 마력이 꽤 드는 능력도 있겠지만.
이를 대비해 줄 방책으로 ‘극단적 마력 회복’이 있었다.
그 특성이 존재하면, 초당 최소 200에 가까운 마력이 빠르게 회복된다.
여기서 200은 어디까지나 최소치이고, 악신의 가호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 얼추 300~400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카젤라를 상대로 한 장기전이나 마력 소모전의 설계는 무의미해 보였다.
‘대륙의 운명이 내 손에 달려 있다.’
무겁고도 진지한 결심과 함께.
파아앗!
자레드가 허공을 박차며, 이카젤라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낙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이카젤라 역시 반격에 나섰다.
목숨을 건 공방전.
대혈투의 시작이었다.
* * *
무아지경.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이 단어만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또 맴돌았던 것 같다.
보통의 전투는 시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성으로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거친다.
즉, 보고, 느끼고, 대응을 하는 순차적인 체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것이 일반적인 전투다.
하지만 이카젤라와의 전투에서는 이런 정보 수집 및 판단 절차를 거칠 겨를이 없었다.
모든 공격과 방어의 과정에 생각이 개입되면.
콰아앙!
“크으윽!”
바로 타격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피차 마찬가지라서, 조금이라도 머뭇거린 쪽은 여지없이 부상을 입었다.
나는 이카젤라가 레퍼토리 측면에서 유일하게 압도할 수 있는 9클래스 마법 캐스팅을 막았다.
정말 집요할 정도로 막았다.
9클래스의 흑마법 중에는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즉사에 이를 수 있는 살상 마법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건 바람의 장벽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안 되는 데다가 이 정도의 거리면 무조건 피격이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막았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쩌업! 쫘아아아악!
“크아아악! 이런 거머리 같은 XX! 으아악!”
그때마다 나는 이카젤라의 몸에 달라붙어 마치 모기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 그의 피를 빨았다.
벌써 흡혈을 세 차례 진행한 상태였다.
체력이 20% 미만 수준으로 떨어질 때마다 흡혈 옵션을 썼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체력은 바로 회복됐고, 신체의 기운 역시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충만해졌다.
다만 아티팩트 자체에서 경고했던 대로, 점점 피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뱀파이어화’ 현상이 느껴지기는 했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꾸준히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흡혈을 반등의 요소로 썼다.
단지 체력을 잃어서가 아니라, 역으로 이카젤라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한 전략적인 요소도 있었다.
악마의 낙인이 찍힌 이카젤라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99%의 치유 능력 감소.
평소의 1% 수준밖에 회복이 되지 않으니, 본인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
아니나 다를까.
체력을 계속 회복하는 나와 달리 피해가 누적되기 시작하자.
“젠장…….”
이카젤라의 입에서 평정심을 잃은 듯한 말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흘러나왔다.
전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카젤라도 결국,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뿐이었다.
교단의 단원들은 이카젤라를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처럼 숭배하고 충성하는 듯했지만.
직접 몸을 부대끼며 싸운 내가 본 이카젤라는 그저 나와 같은 인간 마법사일 뿐이었다.
그도 당황하고, 두려워했고, 흔들렸다.
“후우, 후우.”
“하악, 하악.”
약 10분간의 교전.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다시금 골랐다.
아직 나는 마력을 전부 소진하며 퍼붓는 100%의 총력전을 펼치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카젤라가 자신이 가진 특수 성향 중 하나인 ‘광폭화’의 능력을 온전히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세 배는 더 강해져야 해. 그만큼 더 빨라지고 악랄해져야 하지.’
이카젤라가 패를 까발리지 않는데, 내 패를 까발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법사와 마법사의 전투는 선수필승이 아니라, 후수필승이다.
누가 더 늦게 자신이 가진 비장의 무기를 꺼내느냐에 따라 승률이 요동친다.
그만큼 마법이 무척 빠르고 위력적이기 때문에, 갑자기 변수를 맞이했을 때의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자레드……. 제법이군.”
“제법, 이기만 할까?”
잠시의 소강상태.
이카젤라가 던진 말에 나는 웃으며 답을 되돌려 주었다.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서로가 갖는 마지막 휴식 시간이었다.
나는 점점 짙게 뿜어져 나오는 이카젤라의 마기를 느끼며, 드디어 그가 ‘최종 수단’을 꺼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버지, 지켜보고 계시죠?’
나는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는 아버지, 바렛 자작을 떠올렸다.
‘비록 한미한 곳의 영주일지라도, 모든 영지민을 포용하고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영주가 되거라.’
어렸을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해 주셨던 아버지의 말이 기억났다.
하지만 불효자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먹고 싸기만 하는 인간쓰레기가 됐었지.
‘꼭 이카젤라를 죽이고, 최소한 그날까지……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겠습니다. 아버지.’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점점 검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이카젤라가 보인다.
낙인의 지속에 남은 시간은 약 20분.
‘그 안에 끝낸다. 후방에서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20분.
둘 중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나는, 최종의 장을 위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