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96
제 296화
93장. 황도의 대혈투 – 3화
“…….”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렸다.
크워어어어!
마왕군의 선봉에 선 마수들이 붉게 물든 두 눈으로 맹렬한 돌진을 시작했다.
나는 마법을 아꼈다.
내 시선은 처음부터 줄곧 마족 무라스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녀석을 놓치면, 그 순간 황도에 재앙이 시작된다.
냉정하게 말해서 무라스카를 마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쏴라!”
우리의 침묵과 무관하게 용맹스러운 크리비아 제국군의 반격이 시작됐다.
핑! 피핑! 핑! 핑!
성벽 여기저기에서 궁수들이 힘껏 당긴 독화살들이 마수들을 향해 날아갔다.
단순 독화살이 아니었다.
과거에 격살한 어보미네이션에게서 채취한 장액으로 마족과 마수에게 디버프 효과가 있는 액체였다.
장액에 노출될 경우, 야기되는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
첫째, 외피가 약해진다. 즉, 마방과 물방이 대폭 감소한다.
둘째, 순간적인 실명 상태에 빠지게 된다.
셋째, 환각이 계속 유발된다.
이런 강점이 있는 어보미네이션의 장액이기에 적극적으로 화살에 섞어 쓰도록 했다.
고농도일 필요도 없었기에 적당히 물에 섞어, 희석을 해서 사용해도 마수에게는 충분했다.
물론 마족을 상대한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푸욱! 푸욱! 푸욱!
“우웨엑! 키에에엑!”
과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수답게 화살 몇 개가 몸에 꽂혀도, 녀석들은 더욱 성을 냈다.
하지만.
쿠웅! 쿠우웅! 쿵!
여기저기서 실명이 유발되며 시야를 잃은 마수들이 벽이나 바위, 나무에 몸을 박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동족을 적으로 착각하고 공격을 펼치기도 했다.
장액의 효과가 즉각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발사!”
이어서 전방 지휘관들의 명령을 따라, 기름과 불을 가득 머금은 돌들이 투석기를 통해 날아갔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수많은 돌이 불의 꼬리를 만들어 내며 날아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파악! 퍼석! 우드드득!
투석 공격에 당한 마수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현장에서 으깨어져 죽어 갔다.
특히 장액 독화살 공격에 노출된 마수는 형편없어진 방어력 때문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했다.
“폐하.”
“모두 대기하시오. 희생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마족만을 쫓아야 하오.”
어느덧 성벽 앞까지 도달한 마수들의 모습을 본 라키스의 표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 전투가 시작되면, 아끼는 병사들이 죽어 나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더 멀리, 더 크게 그림을 봤다.
하나의 마수에게 희생당하는 병사의 수는 많아야 동수(同數)겠지만, 마족은 다르다.
마족 하나가 살아 있으면, 그로 인해 일반 병사 수천, 수만 명이 죽는 건 예삿일이었다.
등가교환이라는 공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언덕 위에서 무라스카를 비롯한 마족들이 그저 상황을 관망하고만 있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했다.
핵심 전력인 우리의 힘을 쫙 빼 두면, 이어질 전투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마수 군단의 숫자는 황도를 지키는 병사들의 다섯 배 이상.
그렇기에 소모전을 펼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 분명했다.
“크와아아아!”
마수들이 병사의 요격으로 쌓이는 사체의 언덕과 탑을 넘어, 기어이 성벽까지 올라갔다.
황도의 성곽은 다른 전선의 요새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두껍고 높았지만, 그래도 마천루는 아니었다.
동족의 사체를 디딤대 삼아 꼭대기에 오른 마수들은 바로 병사들에게로 몸을 날렸다.
“크리비아를 위하여!”
“크아아!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내가 너희를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않겠다!”
“황도를 넘겨줄 수는 없다!”
그간 혹독한 훈련을 견뎌 온 병사들은 용감무쌍하게 분투하기 시작했다.
켈디아로 구성된 무기, 방어구, 방패를 모두 착용한 병사들의 수준은 대륙 제일이었다.
확실히 일반 철제 무기를 갖고 싸우는 것보다 더 위력적인 효과를 보였다.
병사들의 검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마수의 몸은 마치 두부 썰리듯 쉽게 잘려져 나갔다.
“크엑……?”
죽어 나가는 녀석들도 꽤 당황하는 눈치였다.
아마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마족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무기 원재료는 ‘철’일 테니까.
켈디아의 생산이 생각보다 원활치 않아 대륙 전역의 병사들이 모두 켈디아 무기로 무장하진 못했지만.
황도는 달랐다.
켈디아 무장 보급률 100%.
대륙 전역에서 가장 최고급 전력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다.
“크하하! 볏짚 수준이잖아!”
“마수 놈들! 너희들 꼴랑 이것밖에 안 되냐?”
수많은 동족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겨우 성벽에 오른 마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사방에서 피를 토하며, 성곽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은 단연 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키에엑! 키엑!”
“크아악!”
하지만 성벽을 오르는 적의 수가 늘어나면서, 아군의 피해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머릿속에 ‘살인’밖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 않은 마수에게 두려움이란 없었으니까.
열이 죽어도 하나를 죽이면 된다는 생각인지 놈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고 물어뜯었다.
전형적인 인해전술이었다.
그렇게 황도 외성에 구축된 1차 방어선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려고 할 즈음.
“마나 캐논 발사!”
지휘관들이 시기적절하게 두 번째 방어 체계를 가동시켰다.
모이즐, 아세로는 물론이고 나까지 달려들어 밤을 새워서 고안한 방어 장치였다.
마정석을 이용해 마력을 고밀도로 응축하고 발사하는 장치로 타넥스가 쓰는 마력탄과 원리가 같았다.
단, 타넥스의 마력탄은 대인 살상에 특화된 ‘총탄’이라면.
마나 캐논에서 발생하는 마력탄은 광범위한 살상에 특화된 ‘산탄’의 형태와 비슷했다.
순식간에 수백 조각의 마력탄이 쪼개지기 때문에 살상력은 탁월했다.
200m 남짓의 단거리여야 유효 공격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기에 지금껏 사용을 아껴 온 것이다.
퍼펑! 퍼펑! 펑! 펑!
끄에엑! 우웩! 캬햐아아악!
외성 밖 이곳저곳에서 피의 향연이 펼쳐졌다.
마나 캐논의 공격에 당한 마수들은 전신에서 피 분수를 뿜어내며, 픽픽 쓰러졌다.
마치 물을 가득 채운 고무장갑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 놓은 것처럼, 콸콸 피를 쏟아 냈다.
거리가 가까울 경우에는 마력탄이 몸을 관통하고 지나가기에, 지혈도 매우 까다로웠다.
“병사들이 분전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준비가…… 헛되지 않았어요. 정말 놀랍네요.”
라키스와 엘라가 병사들의 분전과 더불어, 속절없이 쓰러지는 마수들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 역시 가슴속 투지의 일렁임을 느꼈을진대, 천생 군인인 그들이 아무런 반응도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하지만 그래서 나는 더더욱, 마족들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폈다.
아직 그들은 물론이고, 15만에 가까운 군세도 출전하지 않은 상태.
그들에게 있어 지금은 한 차례의 ‘탐색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언덕 위에서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무라스카가 걸치고 있던 망토를 집어던졌다.
“모두 준비.”
나는 바로 손을 들었다.
마족을 막지 못하면, 지금 눈앞에서 쓰러져 간 병사들의 희생도 모두 덧없는 것이 된다.
결전이 임박했다.
* * *
같은 시각.
“쓸어버려라.”
무라스카가 짙게 깔린 목소리로 차분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언덕 위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15만에 달하는 마왕군이 일제히 진군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
이윽고 무라스카는 아카로프트, 제터를 비롯한 마족들에게도 공격 경로를 설정해 줬다.
마족이 강한 것은 맞다.
하지만 불로불사나 무적의 존재는 아니기에 적당히 마수들을 방패로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쨌든 무라스카는 그렇게 전력을 세 방향으로 분산시켰다.
외성 북쪽을 노리되.
북동쪽, 북쪽, 북서쪽을 한번에 모두 노려, 어디든 한 군데만 뚫겠다는 계산이었다.
바로 그때.
파아앗!
거친 파공음과 함께 바로 눈앞에서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재밌겠군.”
무라스카가 양손을 하늘을 향해 높게 펼쳤다.
시잉! 시잉! 시이잉!
그러자 그의 등에 매어져 있던 10자루의 검이 일제히 그의 손끝을 따라 상공에 자리를 잡았다.
마검 스키아.
1번부터 10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는 무기로 그에게 ‘학살자’라는 악명을 가져다준 마검이었다.
“무라스카, 네놈은 내가 막지!”
“후후, 드디어 왔군.”
무라스카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레드였다.
이미 레크나트를 통해 많은 얘기를 들었고, 무라스카도 꼭 상대하고 싶었던 적이었다.
자레드를 죽인다는 것은 곧 레크나트의 가장 큰 근심거리를 없앤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레드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무라스카였다.
다수의 마왕군이 여러 전선에서 고전했던 이유도 전부 자레드의 철저한 대비 때문이라고 들었다.
착실하게 성마 대전을 준비해 온 자레드 때문에 마왕군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콰앙! 퍼엉! 콰아앙!
그사이.
저 멀리서 다른 마족들과 격돌하고 있는 자레드의 동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무라스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전황을 살피고는 자레드에게 말을 걸었다.
“제법 실력 있는 인간들이군.”
“여유가 많네, 무라스카.”
“하찮은 인간이 정녕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승리의 주인은 정해져 있다. 단지 과정의 문제일 뿐이다. 돌아가느냐, 빨리 가느냐의 차이밖에는 없지.”
“뭐가 급해서 그렇게 샴페인을 일찍 따? 아직 내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그렇게 따고 싶어?”
“네놈은 내가 죽일 것이니 걱정 없다.”
“자신감이 넘치네.”
“벌레가 귀찮은 존재이긴 하지만, 그 벌레 때문에 죽지는 않지.”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멸시와 무시였기에 자레드는 오히려 웃음이 났다.
뭐랄까.
예전에 별 볼 일 없던 영주 시절이 생각난다고 할까? 그때도 이런 무시와 멸시는 예삿일이었다.
“잘 모르나 본데, 벌레에게 물린 상처가 덧나서 죽는 경우도 많아.”
“나는 영원한 존재다.”
“그래, 그럼 영원히 레크나트의 뒤나 열심히 빨도록 해.”
“이 망할 인간!”
단순 무식한 자레드의 도발이 바로 통했다.
우웅! 우웅!
무라스카는 열 개의 마검을 조종하며, 자레드를 향해 일제히 검격을 퍼부었다.
터엉! 터엉! 터어엉!
즉각적으로 펼친 자레드의 ‘바람의 장벽’이 마검의 공격을 전방위적으로 막아 냈다.
무라스카의 검격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각각이 오러 블레이드에 준하는 검기를 담고 있었다.
다만 무라스카의 본체 자체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는데, 그것이 무라스카의 특징이었다.
다른 마족들과 다르게 육신이 강화되지 않고, 능력이 극단적으로 강화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능력이 서열 2위의 자리를 ‘압도적’인 무력으로 차지할 수 있게 할 만큼 강하다는 점이다.
“크윽! 윽!”
하나도 아닌 열 개의 검이 바람의 장벽을 후려치는 위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자레드는 장벽을 계속해서 새롭게 갱신하며, 뒤로 쭉쭉 밀려났다.
왜 무라스카가 마족 서열 2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열 개의 오러 블레이드.
이것이 동시에 현란하게 시야를 교란시키며 휘젓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했다.
어지간한 마족은 애꿎은 경로만 열심히 예측하거나, 혹은 도망 다니다가 비명횡사할 듯했다.
‘지능적인 전투를 즐기는 놈에게는 그에 걸맞은 버그가 제격이겠지.’
자레드는 아껴 뒀던 몇 가지 ‘버그’ 선택지 중에 하나를 떠올렸다.
필살의 비기.
그중에 마왕 레크나트를 만나기에 앞서, 승부수가 필요하면 쓰려고 남겨 뒀던 회심의 전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