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13
제 313화
98장. 소중한 내 인연들에게 – 2화
방금 전.
아키테스가 차원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나스 대륙으로 가는 차원문이라고 했을 뿐, 정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황량한 대륙의 어딘가에 떨어지겠거니 했는데.
주변의 모든 공간이 재조합되는 순간, 나를 반긴 것은 다름 아닌 소중한 내 인연들이었다!
“폐하! 폐하이신가요?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게 정말 폐하가 맞는 건가요?”
가장 먼저 들린 목소리는 바로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헤이즈의 모습이었다.
예전과 달라지긴 했어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이곳이 내가 레크나트와 마지막까지 격전을 치르다가 격리를 시도한 장소라는 것을.
어찌 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헤이즈를 비롯한 내가 아끼는 모든 신하들이 와 있었다.
“헤이즈? 모두들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오?”
“폐하……!”
헤이즈가 한달음에 달려와 와락 내 품에 안겼다. 나도 무척 보고 싶었던 그녀였다.
그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은은한 장미향은 격리된 차원에서도 잊어 본 적 없는 향기였다.
“보고 싶었어, 헤이즈.”
나는 그녀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많은 신하가 보고 있어 낯간지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심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역시 신의…… 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군요. 폐하, 저는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뒤를 이어 내 앞에 부복하며 고개를 조아린 것은 시간이 흐른 새에 무척 수척해진 라키스였다.
마음고생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고되었을 듯한 라키스의 피로감이 물씬 느껴졌다.
그 역시 보고 싶었다.
아니,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모든 사람이 내가 너무나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었다.
“일어나시오, 라키스 경. 그대도 참 보고 싶었소. 다들 많이 힘들었을 텐데…… 미안하오.”
멋쩍은 마음이 들어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라키스를 부축하며 일으키자, 그 역시 어느덧 굵은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헤이즈와 라키스가 양옆에서 ‘합동’으로 눈물을 쏟아 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감정이 울컥해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레나, 잘 있었지?”
“폐하! 왜 이렇게 늦으신 거예요! 저도 폐하께서 꼭 돌아오시리라 믿었어요!”
“이자벨, 잘 지냈지?”
“저야 항상 늘 똑같지요. 보고 싶었습니다, 폐하.”
내게 다가와서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손등을 살짝 잡은 이자벨의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만 바로 고개를 돌리며 눈가를 훔치는 것이 그녀도 나름 내 걱정을 했던 모양이었다.
“술래잡기를 1년이나 하시면 어떻게 해요! 폐하, 나빠요! 나빠!”
이어서 발랄하게 통통 튀는 미아의 목소리도 들렸다. 보고 싶었다. 귀여운 녀석.
“폐하, 무탈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지금 이거 꿈 아니죠? 누가 제 뺨 좀 꼬집어 주시겠……. 아얏!”
“이 늙은이가 시원하게 꼬집어 주겠네, 아르케네스.”
아키도 나를 반겼다.
다만 믿기지 않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오브렌이 그녀의 볼살을 쭉 잡아당겼다.
제법 그럴듯하게 수염을 붙인 아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다들 오랜만에 인사를 나눠야 할 듯하군. 내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자면 매우 길어질 것이오. 일단 여기 있는 모두 얼굴부터 좀 봅시다.”
나는 헤이즈부터 차례대로 다시 얼굴을 보며, 반갑게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눴다.
그 누구 하나 많고 적음을 논할 수 없을 만큼, 내게 모두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누구는 더 보고 싶고, 누구는 덜 보고 싶은 마음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보여 주려고 했는데, 모두와 인사를 나눌 때마다 그런 마음이 무너졌다.
결국 마지막 줄에 서 있던 발데스와 인사를 나눌 때쯤에는 나도 펑펑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황제의 체통이고 뭐고 없이 콧물을 거하게 훌쩍이는 진심 어린 눈물이었다.
어쨌든, 이제 내가 돌아왔다.
정확히 나스 대륙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큐브의 툴팁을 확인했다.
[큐브 – 차원의 힘] [당신이 위치한 차원과 ‘지구’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아키테스의 약속은 거짓이 아니었고, 헛된 희망이나 꿈을 주입한 것도 아니었다.
이제 나는.
나스 대륙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신태풍의 세상이기도 한 ‘지구’를 다녀올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정말 마음 놓고 나스 대륙 전체와 우리 제국의 재건에 시간을 오롯이 투자할 수 있게 됐어.’
나는 그것이 기뻤다.
그간 격리된 차원에서 지내면서 마법과 마법진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백성들의 실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는 수많은 실용 마법과 마법진 역시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적용해 보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건기 때마다 찾아오는 가뭄에 고생하는 곳에는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방법도 찾았다.
마정석이 제법 필요하지만.
바꿔 말하면, 충분한 마정석만 있으면 확실한 관개(灌漑) 사업이 가능한 묘수가 생긴 것이다.
이런 형식으로 백성들의 윤택한 삶을 위한 농사, 상업, 의료 등에 접목할 지식이 차고 넘쳤다.
“다들 황도로 돌아갑시다. 나스 대륙 남부까지 오려면 보통 먼 길이 아니었을 텐데.”
“사비오 님이 고생해 주셨지요. 모두 타트라 넥스를 착용하고 이동하여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아! 그렇지! 그게 있었군.”
라키스의 대답에 나는 사비오의 ‘타넥스’를 간과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녀석이 없으면 섭섭하지.
“폐하, 이제야 다크 엘프 로드의 말씀을 전합니다. 폐하와 크리비아 제국의 승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영원한 번영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사비오가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며, 다크 엘프 로드의 말을 전했다. 그 말에도 왜 이리 울컥한지.
“좋소. 하지만 더 빨리 돌아갈 방법이 있으니, 내가 모두를 황도로 데리고 가도록 하지.”
“예, 폐하!”
“자, 모두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그간의 회포를 풀고, 우리 제국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 봅시다!”
나는 바로 멀티 텔레포트로 모두를 이동시킬 준비를 마쳤다.
긴 이야기를 나누려면 그만큼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편한 장소가 필요한 법.
비록 성마 대전으로 인해 폐허가 된 황도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서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그리워했을 백성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 * *
황도로 복귀한 자레드는 생각보다 많이 복구된 황도 전체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라키스의 말에 따르면, 성마 대전이 끝난 이후로 모든 백성이 합심해서 만들어 낸 성과라고 했다.
강요한 것도 아니고, 필요 이상의 재원을 투자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현장에 나와 작업을 돕고, 전후 복구에 앞장을 섰다는 것이다.
평생 흘릴 눈물을 하루 만에 다 쏟을 운명인 건지, 자레드는 그 말을 듣고 또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황도의 대로 중앙에 우뚝 선 자신의 대형 동상을 봤을 때는 전율을 느끼기까지 했다.
어쨌든 제법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황궁의 소연회장에서 자레드는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헤이즈와 개인적인 시간도 갖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그간의 국정에 대해 듣는 것이 먼저였다.
그는 황제니까.
나스 대륙 전역의 백성을 모두 아우르는 지도자로서 백성들의 삶을 굽어 살피는 일이 가장 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1년 동안 벌어진 전반적인 상황을 알게 됐다.
아울러 발렌시아 왕국과 칸트라 제국이 성마 대전에서 그야말로 초토화가 됐고.
슬픈 소식이지만 칸트라 제국의 황가와 발렌시아 왕국의 왕가가 몰살당했다는 소식도 듣게 됐다.
황제와 국왕은 아직도 행방불명이라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실종이지만, 사실상 죽었다고 보고 있었다.
어쨌든 그래서 칸트라 제국과 발렌시아 왕국의 영토도 크리비아 제국의 관할하에 있었다.
자레드가 없기에 공식적인 ‘합병’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크리비아 제국의 통치권 아래에 있었다.
‘그래도 내가 없는 동안, 모두 합심해서 멋지게 시간을 보내 왔구나.’
자레드는 뿌듯했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엉망진창이 되었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전과 같이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잘 돌아가고 있었고, 자신의 공백은 최소화됐다.
그렇게 무르익어 가는 대화 속에 자레드는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그간의 쌓인 ‘썰’을 풀었다.
격리된 차원계에서 홀로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아울러 레크나트와의 최종전은 어땠는지 말이다.
특히 레크나트와의 전면전을 직접 보지 못한 동료들은 그때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밤을 지새운 연회.
무르익어 가는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행복해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진심으로 하나 된 마음으로 크리비아 제국의 유일한 황제, 자레드 폰 유칼레스의 귀환을 반겼다.
크리비아 제국은 그렇게 구심점을 되찾고, 다시금 번영의 싹을 틔울 시간을 맞이했다.
* * *
새벽 3시.
아직 초봄의 날씨인 탓에 창밖에서는 연신 강풍이 불었고, 달조차 뜨지 않은 밤은 한없이 어두웠다.
“헤이즈.”
“폐하…….”
“이렇게 단둘이서 마주 보고 누워 있으니 정말 좋다.”
“저도요, 폐하. 너무 좋고, 행복해요.”
나는 침실에서 헤이즈와 함께 누워 있었다.
나는 옆으로 누워서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헤이즈를 바라봤고, 헤이즈는 그런 내 시선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보고 싶었어. 정말. 하루라도 네 생각을 안 했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저도요…….”
헤이즈는 내 품에 쏙 안겼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향기가 연신 내 코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
우리는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이 마주쳤고.
쪽-.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이렇게 입술을 맞추기까지 정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되돌아보기에도 시간은 길고 길었다.
내가 현생에 오기 전의 자레드로서 봐도 헤이즈는 늘 내 곁에 머물러 있었던 동반자였다.
그리고 신태풍이 환생한 자레드로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늘 한결같이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 주었다. 그 마음이 변치 않았고, 늘 나만 바라봐 주었다.
이제는 내가 그 보답을 꼭 해 주고 싶었다.
평생을 너만 바라보겠다고. 내가 꼭 네 곁을 지키는 남자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충동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홀로 지내면서 완벽하게 정리를 끝낸 나의 진심이었다.
“헤이즈, 정말 사랑해. 너무 보고 싶었어. 내 진심을 조금이라도 일찍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저는 폐하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살아서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인 걸요.”
“고마워.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줘서.”
“비록 신분도 미천하고, 모자란 것이 많은 저이지만…… 사랑해 주셔서 감사해요, 폐하. 저도 사랑해요. 감히 폐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순간, 헤이즈가 내게 적극적으로 파고들며 입술을 포갰다.
평소의 헤이즈답지 않은 도발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활활 불타오른 우리의 감정은 격정적인 사랑의 굴레에 빠지게 되었다.
새벽은 길었고, 우리 둘만의 시간은 뜨겁고 짜릿했으며, 세상 그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나와 헤이즈는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였고, 차갑기 그지없었던 침실의 공기를 한껏 데웠다.
한참 동안 이어졌던 우리의 거친 숨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잦아들기 시작했고.
다시 둘만의 알콩달콩 사랑의 대화에 집중하게 되었을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참고 또 참아 왔던 내 마음의 모든 것을 고백했다.
그것은 바로.
“헤이즈, 나와 결혼해 줄래?”
청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