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24
제 324화
101장. 수많은 인연들 – 1화
얼마 후.
악령왕 모르지나의 금제를 풀고 무사히 구속에서 벗어난 이자벨은 나와 헤이즈에게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나야 힐 마법으로 진짜 먼지 한 톨만큼 보조하는 수준이었고, 치유는 온전히 헤이즈의 몫이었다.
“하여간 고집은…….”
“죄송합니다, 폐하.”
“폐하고 뭐고 됐어. 멍청한 이자벨. 위험한 주술을 연성하고 있으면 나한테 얘기를 하든가. 어째서 그렇게 숨기고 혼자 생고생을 하냐, 생고생을.”
“폐하, 아무리 화가 나셔도 주술단의 단장님에게 멍청한 이자벨은 좀…….”
내가 이자벨을 맹렬히 쏘아붙이자, 옆에 있던 헤이즈가 난색을 표하며 나를 말렸다.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없이 우리 셋만 있는 자리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죄송해요. 좀 더 강력한 주술을 손에 넣고 싶었어요. 악령에 대한 연구도 필요했고…….”
이자벨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나름 자기가 공들여 준비했던 것이 큰 실수가 된 탓에 민망해진 모양이었다.
“연성은 어떻게 됐어?”
“성공했습니다. 폐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요. 잿빛 재앙의 술. 이것이 있으면 다수의 적들을 서로 적으로 오인하여 싸우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를 해 줘. 혼자 고생하지 말고. 여기서 잘못됐으면, 너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어.”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폐하, 이제 그만…….”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이자벨. 아니 미안하오, 이자벨 단장. 순간 욱해서 옛날 버릇이 다 나와 버렸군.”
예전처럼 격의 없이 부르기에는 이제 이자벨도 제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드레자 주술단은 아그레시오 기사단, 디미오스 마법사단과 더불어 제국의 정예 세력이다.
특히 주술은 마법과 달리, 다수의 인원이 모이면 다수에 걸맞은 화력의 광역 주술이 행해진다.
일전에 성마 대전에서 수도 중심부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도 주술단 덕분이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대피한 대피소와 고서 보관소를 중심으로 드레자 주술단이 대활약을 했기에.
비록 황도 여기저기가 불바다가 되긴 했어도 인명 피해는 대폭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샤아아아. 샤아아아.
“그나저나 직접도 아니고 간접으로 옆에서 기운을 느끼는 건데, 치유가 되네.”
이자벨의 몸을 한껏 감싼 뒤에 연기처럼 흘러나오는 헤이즈의 치유술 잔재들.
그것은 분명 잔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치유의 ‘찌꺼기’ 같은 것이었지만, 이 역시도 치유력이 엄청났다.
전투 중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손목의 상처들이 순식간에 아물었던 것이다.
“폐하. 저도, 이자벨 단장님도 모두 마지막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잖아요.”
“하긴.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초창기 주술사, 치유사였던 시절의 귀여운 모습만 떠오르는 걸까?”
“나이가 드셨…….”
헤이즈가 말끝을 흐렸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덧 현생에서 눈을 뜬 지 6년이 흘렀으니까.
12살이었던 미아는 다 큰 18살이 됐고, 15살이었던 레나는 성년을 훌쩍 넘긴 21살이 됐다.
슬픈 얘기지만 나도 30줄에 들어섰다. 물론 여기 누워 계신 이자벨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헤이즈와 클로이도 내년이면 서른이니,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른다.
어쨌든 나는 헤이즈의 정성 어린 치유를 옆에서 지켜보며, 나름의 준비를 이어 갔다.
이자벨을 무사히 구해 냈으니, 이제 그녀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차례다.
사실 진즉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인데, 답을 찾지 못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 감이 없지 않았다.
리치 델루크의 부활 술법서.
툴팁의 내용대로면 나와 이자벨 사이에 엮인 예속을 풀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격리되어 있었던 차원에서 다양한 연구를 하면서, 강제로 끊어 낼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이미 사전 실험을 해 봤다.
이자벨이 없는 자리에서 예속을 풀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제를 시도해 본 것이다.
물론 순탄치는 않았다.
이 연구에만 꼬박 1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난이도가 꽤 높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답을 찾았다.
내가 가용 가능한 신성력, 마력을 전부 동원해서 단숨에 끊어 내면 가능했던 것이다.
일반적인 마법사 혹은 사람이라면 불가능했을 일.
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양의 마력과 넉넉한 신성력을 가진 내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이자벨 단장.”
“예?”
“이제 그대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고 싶소. 연결되어 있던 고리를 끊읍시다. 이게 이자벨 단장을 주술 연성에 있어 수동적이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고.”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짐이라면.”
나는 바로 준비 과정을 활성화시켰다. 이자벨에게는 아무런 무리가 가지 않는다.
시도하는 나만 조심하면 되고,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이미 사전 점검을 끝냈다.
[부활 술법서에 의해 엮인 금제를 해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스탯 소모를 필요로 합니다.] [짧은 순간에 폭발적으로 금제를 끊어야 하므로, 지속적인 스탯 소모는 불가능합니다.] [소모 마력 : 500,000] [소모 신성력 : 1,500]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많은 양의 마력이 필요하지만, 내게는 가능한 양이다.
현재 내가 보유하고 있는 마력이 30만 정도 된다.
격리된 차원에서 1년간 아무것도 안 하고 논 것이 아니라, 마력 수련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지금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숨 한 번 쉬면, 마력이 1만 가까이 회복될 정도로 회복력이 좋았다.
아울러 전신의 마나 로드를 최대치로 활성화해서, 끊임없이 마나 하트를 자극하고 있는 상태.
이 상태를 꾸준히 ‘유지’만 해도 매일 1천에 가까운 마력 최대치가 경신될 것이다.
어쨌든 30만을 넘는 마력 바탕에 무디두스의 기도까지 더해 주면 50만을 채우는 것은 금방이다.
다음 순간.
나는 이자벨이 달리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 역시도 망설일 필요도 없이.
즉각 금제를 해제했다.
순식간에 대량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소모됐지만, 작은 미풍 하나 불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레드’와 ‘이자벨’ 사이의 금제가 풀렸습니다.] [이제 ‘이자벨’은 리치 델루크의 부활 술법서에 의한 예속 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아……!”
그 순간, 이자벨이 탄성을 터뜨렸다. 나처럼 툴팁을 볼 수는 없겠지만, 예속의 고리가 끊겼음을 본인도 느꼈을 테니까.
“이자벨은 이제 자유예요.”
문득, 전생에 어떤 영화에서 봤던 말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멘트를 던져 봤다.
저 말만큼, 지금의 상황을 축약해서 표현해 줄 수 있는 말도 없을 테니까.
“진정한 자유…….”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그리고 미래를 살 수 있길 바라오.”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무 늦게 그녀에게 진정한 자유를 준 것 같아서, 오히려 그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 * *
얼마 후.
자레드는 헤이즈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이자벨과 함께 단청 주변을 따라 길을 걸었다.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헤이즈가 흔쾌히 둘만의 자리를 허락해 주었다.
애초에 자레드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었기에 보일 수 있는 쿨한 반응이기도 했다.
그렇게 적막이 짙게 깔린 산책을 몇 분쯤 이어 가고 있었을 무렵, 이자벨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폐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얼마든지.”
“아시다시피 제겐 참혹한 어둠으로 점철된 과거가 있습니다. 그것을 폐하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면,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때도 있었고요.”
“음.”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6년간, 곁에서 보아 온 이자벨의 모습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분명 가슴속에 똘똘 뭉친 차가운 한이 있었음에도,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진심인지 혹은 장난인지 헷갈리는 마음을 표현하며 자레드와 티격태격했을 뿐이었다.
“사실 저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어요.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하겠죠.”
“많이 힘들었을 텐데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군.”
“아니에요. 제가 얘기하지 않았는데, 어찌 폐하가 속을 들여다보실 수 있었겠어요. 제 불찰이죠.”
“자책은 하지 마시오.”
“어쨌든 폐하, 쉽고 빠르게 되지는 않겠지만 이제 과거는 하나의 기억으로 남겨 두고 폐하의 말씀대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신경을 써 볼까 합니다.”
“그게 내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오.”
“폐하의 든든한 주술 단장으로서 폐하를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힘을 합치겠습니다.”
“듣던 중 가장 반갑고, 또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말이로군.”
“이번 일을 계기로 악령에 대한 연구를 더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문제가 커질 것 같습니다.”
“필요한 도움은?”
“이제 저 혼자서는 진행하지 않을 겁니다. 단원들의 힘을 빌려야죠. 물량에는 장사 없으니까요.”
“안전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해야 할 것이오. 다시 또 이런 위험에 처하면, 그때는 잔소리로는 안 끝날 테니.”
“호호, 맡겨 주세요.”
오랜만에 보는 이자벨의 웃음에 자레드도 기분이 좋아졌다.
헤이즈만큼이나 웃는 미소가 예쁜 이자벨인데, 잘 웃지 않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렇게 이자벨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험 상황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자레드도, 헤이즈도, 이자벨도 이번 일로 확실하게 느꼈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이미 동방 대륙의 ‘마수’가 뻗쳐 있음을.
특히 악령왕 모르지나가 던진 메시지는 자레드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 *
다음 날 새벽.
나는 한동안 사용할 일 없이 조용했던 마스터 스톤을 통해 연락을 받았다.
바로 베르하드의 연락이었다.
-모레 새벽. 그때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하다.
“황궁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손님이 한 명 더 갈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분입니까?”
베르하드가 손님에 대한 언급을 했지만, 누군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베르하드는 철저하게 홀로 다니는 마법사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동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 홀로 갈 수도 있지만, 동행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이런 말을 함부로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미리 처리할 일이 있으면 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래야죠.”
굳이 드러내어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일 이 시간에 결계 쪽으로 탐사를 나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그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베르하드니까 단지 말만 하려고 날 찾아올 리는 없었다.
-그럼, 모레 새벽에.
“그렇게 하시죠.”
이윽고 베르하드와의 연락을 끊었다. 하루 정도의 말미가 주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퀘스트로 눈을 돌렸다.
[퀘스트 대상 : 이자벨, 발데스, 율리안, ……(중략)…… 이그니스, 비에나)] [보상 : 대상의 잠재의식 해방. 또는 진행 상황에 맞게 특수 보상 활성화]바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 퀘스트였다. 이제 이자벨과 관련된 퀘스트는 끝났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마침 그녀의 금제를 풀어 주는 것이 퀘스트의 주된 내용이었다.
보상은 이자벨의 ‘저항력 획득’이었다.
내가 그라시아의 반지로 정신계 마법에 면역을 획득했듯, 이제 이자벨은 악령에게 잠식당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퀘스트 대상 목록에 빼곡하게 이름을 채운 많은 가신과 동료의 이름을 보며 생각했다.
수많은 인연들.
여전히 내 곁을 항상 지키고 있는, 하지만 종종 그 소중함을 잊고 마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인연들에 대한 생각들이었다.
그리고 이자벨 이름의 옆자리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한 이름을 보았다.
발데스.
지금의 내 모습을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소중한 사람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