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29
제 329화
102장. 특이점, 나스(Nars) – 2화
나는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얘기를 진지하게 꺼냈고, 정령왕들의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이그니스와 비에나는 내게 잔뜩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정령왕들과의 대화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의외로 이그니스는 내 편을 많이 들어 주었다.
비에나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판단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확실한 것은 그들도 예측 가능했던 ‘마왕군’보다 예측할 수 없는 동방 대륙의 ‘그들’을 더 걱정하는 눈치였다.
“좋다. 그럼 네 진가를 증명해 봐라. 감히 우리들에게 가호를 요구할 수 있을 정도의 품격을 네가 갖고 있는지 말이다.”
물의 정령왕 나스리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였다.
“예, 시험을 내주신다면 얼마든지 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대들 생각은?”
나스리가의 시선이 카슈타와 렌디로스에게로 향했다.
이그니스와 비에나는 일찌감치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찬성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나스(Nars)를 이길 정도라면, 충분한 자격 조건은 될 수 있다고 본다.”
대지의 정령왕 렌디로스가 나스리가의 말에 호응을 했고.
“증명 없이는 믿음도 없다.”
뇌전의 정령왕 카슈타도 동의에 가까운 반응을 내놓았다.
그러자 비에나가 웃으며, 말을 이어 붙였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보험 하나를 든다고 생각하면 어떻겠어요?”
“어차피 가호는 대상자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회수된다. 우리의 도움을 일부 나눠 준다고 해서 그것이 미지의 적에 대한 선전포고가 되는 것도 아니지.”
비에나의 말에 이그니스가 내용을 보강하듯 덧붙였다.
“나스를 능히 제압할 수 있다면, 적어도 인간 마법사로서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지.”
나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에 대해서 나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대륙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특이한 존재일 것 같기는 했다.
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고, 작은 실마리조차 없었던 존재였기에.
어지간해서는 긴장하지 않는 나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그때.
파샤아아아!
각 정령왕의 손끝을 중심으로 뻗어 나온 형형색색의 기운이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각자의 속성에 어울리는 정령의 모습을 닮은 것이었는데, 서로 뒤섞이면서 오색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갔다.
“…….”
나는 체내의 마력 순환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스, 여기에 있습니다.
시험의 존재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스라는 이름이 붙은 상대.
그것은 속성을 뭉쳐서 만들어 낸 ‘특이점’처럼 보였다. 즉,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계와 같은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능적인 개체로 보였다.
비에나가 내게 설명을 했다.
“나스라고 해요. 이름에서 알겠지만, 나스 대륙을 수호하기 위해서 만든 우리 정령의 집성체죠.”
“그렇군요.”
“나스는 우리의 정신과 능력 일부를 공유해요. 즉, 정해진 명령과 제한적인 판단만을 수행하는 존재보다 훨씬 높은 존재죠.”
그 말인즉, 올라와 같은 인공지능보다도 한 단계 상위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사실상 정령왕의 대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직접 전투에 참전하지 않을 뿐 의식은 참여한 것이나 진배없는 그런.
“영광으로 생각하고 상대하겠습니다.”
“나스를 쓰러뜨릴 수 없다면, 자레드 황제의 한계는 거기까지인 거예요. 건투를 빌어요.”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비에나의 차분하고도 명확한 경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방 대륙’의 존재와 맞서기에 앞서 내 전투력을 측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그들도 정령처럼 다양한 힘을 부릴 것이고, 이런 개체가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으니까.
[특수 퀘스트 ‘정령의 축복’이 활성화됩니다.] [내용 : 특이점의 존재, 나스를 제거하여 정령왕들의 시험에 통과하십시오.] [보상 : 정령의 대축복 원석] [‘정령의 대축복’은 정령왕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원석입니다.이것이 있으면 반경 50km의 공간에 무적의 결계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음……. 안전지대 구축인가.’
맥락상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절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을 만드는 것. 그것은 분명 ‘전쟁’에서 취할 수 있는 강력한 이점이다.
“좋아.”
나는 양손을 힘껏 풀었다.
-목표물을 분쇄하겠습니다.
이윽고 나스가 오른손의 검지 끝으로 나를 가리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사람을 쏙 빼닮은 나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마에 박혀 있는 오색의 원석 정도라고 할까.
인간과 흡사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협적으로 보이는 점도 있었다.
‘정령의 대축복이 있으면, 황도 정도 되는 규모의 대도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어.’
동기부여가 됐다.
정령왕들의 신뢰도 얻고, 그들의 가호를 취하며, 더 나아가 보상까지 얻는다.
일석삼조의 찬스를 절대 놓칠 순 없었다.
다음 순간.
파아앗!
나를 묵묵히 지켜만 보던 나스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스팟!
동시에 바로 코앞에서 나스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블링크 마법을 사용한 것인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대지 정령의 힘을 이용해서 흙이 있는 곳에서 다른 흙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그들 특유의 정령술을 응용한 것이다.
후욱!
나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주먹질로 보였지만.
위잉!
내가 퍼펙트 실드를 펼치며, 나스의 주먹에 대응하자.
빠지지직! 빠직!
나스의 주먹이 닿는 순간에 하늘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번개가 빗발치듯 쏟아져 내렸다.
‘이것이 정령왕의 힘인가?’
나스의 공격에는 캐스팅 과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딜레이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저것과 유사한 썬더스트로크 마법을 쓰려면 아주 짧은 시간이어도 캐스팅 시간이 존재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시간 개념으로, 시간을 줄이면 줄였지 없앨 수는 없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나스는 아니었다.
주먹이 닿는 시점에 이미 상공에서 한 줄기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크윽!”
치이이익!
어찌나 그 위력이 센지 나는 퍼펙트 실드를 펼친 채로 지면에서 뒤로 쭉 밀려났다.
-대지의 분노는 세상을 요동치게 만듭니다.
나스의 공격은 매서웠다.
뒤로 쭉 밀려난 나를 향해 손가락 끝을 까딱이자, 이번에는 지면에서 나무뿌리 같은 것이 올라왔다.
콰드드득!
“흣차!”
플라이 마법의 순간 가속을 이용해, 힘껏 상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센 바람의 상승 기류를 타고 올라온 나스가 바로 내 앞에 나타났다.
이어 녀석이 양손을 앞으로 뻗는 순간, 거대한 화염 불길이 활성화됐다.
‘산 넘어 산이구먼.’
탐색전이라고 하더라도 대응 전략을 바꿔야 할 듯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려서는 탐색전이 아니라 ‘실험’을 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나스의 수준을 나는 이카젤라와 같은 9클래스 마법사의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스의 실력은 그 이상이었다. ‘노 딜레이’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차별성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대응 방식을 초기화하고 원점에서부터 명확하게 녀석을 진단해야 한다.
‘한 박자 더 빠르게. 또한 예측하는 연계로. 나스가 내게 보여 주는 수많은 연계를 교재로 삼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섯 정령왕의 힘과 의식, 무의식이 개입해 있는 나스는 사실상 완전체나 다름없는 존재다.
극단적인 효율성과 완벽에 가까운 연계를 추구하고 있는 나스의 모습으로 볼 때.
내가 배울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 전투가 갖는 가치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금 심호흡을 하며, 나는 전투에 집중할 준비를 마쳤다.
어설픈 체력 안배나 탐색은 이제 무의미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젠 내가 위험해진다.
* * *
그 이후.
화려하게 펼쳐지는 자레드와 나스의 공방전에 정령왕들의 시선은 전장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다섯 속성의 힘으로 극한에 다다라 있는 나스는 비에나가 말했던 대로 수호자였다.
명확한 수치 비교까지는 할 수 없지만, 전성기 시절의 드래곤 이상이라고 생각될 만큼 강하고 빠른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나스를 등장시킬 때만 해도, 비에나를 비롯한 모든 정령왕이 나스의 압승을 예상했다.
시작부터 상대가 안 될 것이라고 봤다. 그만큼 자신할 수 있는 완전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자레드는 더 강력하고 빨랐다.
‘인간’이라는 틀에 맞춰 본다면, 자레드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자레드가 나스의 공격 패턴을 학습하고 있군. 마법으로 응용 가능한 패턴을 익혔어.”
가장 먼저 자레드의 변화를 꿰뚫어 본 것은 이그니스였다.
예전에 자레드를 만났을 때부터 이그니스는 그의 한계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것은 정령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투쟁과 전투의 연속이었던 이그니스의 경험이 담긴 직감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전투가 지속될수록.
자레드의 대응이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스의 공격을 막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던 자레드의 모습에 제법 여유가 생겼다.
정령왕들의 생각대로면, 이 전투는 시작부터 불균형이 심한 전투였다.
자레드 한 사람이 사실상 다섯 정령왕을 상대하는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자레드가 적당히 버티다가 무너지더라도, 이그니스는 자레드를 인정할 생각이었다.
어린아이가 청년과의 주먹다짐에서 졌다고 해서, 어린아이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잖은가?
하지만 그것은 자레드를 얕봐도 한참을 얕본 처사였던 듯싶었다.
그때, 옆에서 묵묵히 전투를 지켜보던 비에나가 말했다.
“이그니스, 자레드 황제가 나스의 약점을 발견한 것 같죠?”
“그러게. 나스의 공간 대응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을 잡아낸 것 같군.”
비에나의 말대로 자레드는 블링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나스를 교란하고 있었다.
정령술은 공간을 왜곡하거나 넘나드는 능력이 없는 만큼, 나스의 대응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령술을 극한으로 활용한다고 한들, 순간적으로 위치를 전환하는 공간 이동 마법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콰과과과!
이윽고 자레드의 위치를 완벽하게 놓친 나스가 등 뒤에서 날아든 트랜센던스 헬파이어 마법에 의해 지면을 나뒹굴었다.
고화력의 화염구가 지면에 부딪히면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른 것은 덤이었다.
-…….
나스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신음을 토하거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다리를 쩔뚝이는 모습을 보였다. 몸 전체를 구성하는 정령력의 순환에 문제가 생겼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레드가 입술 끝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 내며, 정령왕들을 향해 말했다.
“그동안 더 이상의 배움은 없을 거라고 여겼던 제 생각은 오산이었습니다. 여기에 제가 찾던 스승이 있었네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힘주어 말하는 자레드의 모습에는 희열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섯 속성의 정점을 찍은 존재.
특이점이라고 불리는 나스는 자레드 자신에게도 또 한 번의 성장을 자극하는 ‘특이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