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31
제 331화
103장. 동쪽으로 떠날 준비 – 1화
얼마 후.
“와…….”
자신에게 내린 정령왕들의 가호를 체감한 자레드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파팟. 파팟.
아주 작은 불씨를 만들기만 해도, 수많은 불의 정령이 불씨에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것은 기존에 자레드가 구사할 수 있는 마법의 속성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리는 것과 같았다.
“정령도 대자연의 마나와 함께하는 존재지. 여기에 마나의 힘을 좀 더 부여한다면, 더 많은 정령을 부릴 수 있다.”
이그니스의 코치대로 마력을 좀 더 소모해 보니, 과연 정령의 수가 늘어났다.
그래서 내친김에 최대치의 화력을 내 보기로 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파이어볼.
이렇게 되면, 총 3만의 마력을 소모한다. 자레드는 여기서 마력 1만을 더 소모했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힘껏 파이어볼의 구체를 날리는 순간.
“……!”
자레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크오오오!
수많은 화염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향연 속에서 거대한 화룡(火龍)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레드 드래곤의 모습을 쏙 빼닮은 것이었는데, 환상 같은 건 절대 아니었다.
불의 형태로 둔갑한 최상급 정령의 모습으로,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었다.
“이게 정령술의 힘…….”
“정확히는 네게 내린 가호의 위력이지. 우리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면, 언제고 네게 유용한 힘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레드가 연신 정령왕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또 한 번의 크나큰 업그레이드를 마쳤다.
9클래스를 달성한 이후 더 이상의 극의를 꿈꿀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한계는 존재하지 않았고, 또 한 번 그 틀을 깨고 위를 넘볼 수 있었다.
“가라, 이제. 모처럼 오붓하게 모인 우리들의 시간을 네가 너무 오랫동안 방해했다.”
이그니스가 장난스럽게 양미간을 찌푸리며, 자레드를 살짝 뒤로 밀어냈다.
이그니스 특유의 툴툴거리는 반응이었다.
“반드시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죽지나 마라.”
이그니스가 손을 흔들었다.
다른 세 정령왕은 자레드와의 접점이 많지 않았기에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비에나가 자레드의 옆으로 다가서서는 조심스럽게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어 건넸다.
“이것을 받으세요.”
“이게 무엇입니까?”
비에나가 건넨 것은 영롱한 푸른빛을 뽐내는 원석이었다.
상태창을 통해서 원석의 정보를 살필 수도 있었지만, 자레드는 비에나의 이어질 설명을 기다렸다.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 나누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묘한 마력 같은 것이 있었기에.
“정령왕 소환의 돌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예요. 이것을 이용하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 저를 소환할 수 있어요.”
“여왕님을…… 말입니까?”
“호호,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와 저를 지키는 든든한 수호단이 모두 움직이겠지만요.”
“이런 엄청난 돌을 제게 주셔도 되는 겁니까?”
“호호, 정령과 인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존재죠. 무너진 인간의 세계에서 정령은 안전할 수 없어요.”
웃으며 말하고는 있었지만, 비에나의 말에는 힘이 강하게 실려 있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이 사람, 그러니까 자레드를 확실하게 도와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정말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한 번의 기회가 헛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쓰겠습니다.”
“그리고 말이에요. 이것은 우리만의 비밀 선물이에요. 큭큭.”
비에나가 이번에는 품속에서 다른 돌을 건넸다. 딱 봐도 붉은 기운이 이글거리는 돌이었다.
“설마…….”
“맞아요. 이 돌을 이용하면 이그니스를 소환할 수 있을 거예요. 이그니스 몰래 만들었어요. 큭큭.”
소녀처럼 해맑게 웃는 비에나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그것은 즉, 몰래 사고를 쳤지만 이그니스는 자신을 사랑하기에 용서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이유 있는 일탈이었다.
물론 이그니스도 내색을 안 했을 뿐, 자레드에 대한 신뢰는 비에나 못지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레드 황제, 우리 모두가 황제를 응원할 겁니다. 부디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꼭 승리해 주세요.”
“네, 여왕님.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황제를 배웅할 수 있도록 해 주시겠어요?”
“영광입니다.”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에나가 양손으로 만들어 낸 바람의 파도로 그를 감쌌다.
그러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바람에 휘말린 그의 몸이 빠르게 순풍을 타고 멀어지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자레드가 비에나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며 소리쳤고, 비에나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또 한 번의 이별.
다음번에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부디 나스 대륙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 이후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 * *
[정령의 대축복 원석] [‘정령의 대축복’은 정령왕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원석입니다.이것이 있으면 반경 50km의 공간에 무적의 결계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정말 신중하게 잘 써야 해.’
나는 몇 번이고 영롱한 오색 빛을 발하는 원석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곳은 베르하드를 만나기로 한 황궁 외곽의 작은 별장이었다.
말이 좋아 별장이지, 가끔 내가 혼자 사색에 잠기고 싶을 때면 오는 작은 통나무집이었다.
주변은 온통 숲이었고, 흔한 소로(小路)도 없는 만큼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기도 했다.
바로 그때.
위이이잉.
텔레포트 특유의 소환음과 함께 내 앞에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베르하드였다.
“오셨습니까?”
“황궁에서 값비싼 차라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 했더니만……. 이래서야 껍질 차나 마시겠군.”
“하하, 죄송합니다.”
“아니다. 조금이라도 엿들을 수 있는 귀는 적을수록 좋지.”
“트랜센던스 뮤트.”
나는 바로 트랜센던스 뮤트 마법을 이용해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반원의 구를 만들었다.
안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고 폭탄이 터져도, 밖에서는 작은 소리 하나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뮤트 마법의 힘이다.
“그간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베르하드 님께서 제게 해 주셔야 할 얘기도 많죠.”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참 난감하군.”
“시간은 깁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너도 나와 성격이 비슷해서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본론을 원하는 편이지 않았더냐?”
“맞습니다.”
“그래. 본론부터 얘기하지. 지금 이대로 추세가 유지된다면, 결계는 1년 후에 무너진다. 완벽하게.”
“그렇군요.”
나는 놀라지 않았다.
성마 대전이라는 큰일을 한 번 치르고 나니, 어지간한 충격에는 면역이 된 느낌이었다.
“놀라지 않는군.”
“놀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놀란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요.”
괜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동방 대륙 콘텐츠를 기획했던 개발진이 원망스러웠다.
그들이 에 동방 대륙의 떡밥만 뿌리지 않았어도, 이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어쩌랴.
의 무대 한가운데로 환생한 내게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했다.
“그간의 이야기를 해 주랴?”
“예. 간단명료하고도 확실한 결론을 들었으니, 이제 과정을 알아야겠습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알고 싶습니다.”
“그것은…….”
긴 밤을 지새울 정도로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베르하드의 이야기가 그때부터 시작됐다.
* * *
시간은 훌쩍 흘러갔다.
베르하드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용마 대전이 벌어지기 전의 시점부터 차원의 힘을 가져다 쓰기 시작한 드래곤들의 안배.
그로 인해 발생한 균열과 새로운 차원인 ‘베디세트’ 차원을 연결하는 접점의 태동.
이후 천 년간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비공식 루트로 끊임없이 발생한 ‘결계를 넘는 자’들의 등장.
그것은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의 지식 범위를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동방 대륙에 관련된 정보를 얻으신 것은 언제입니까?”
“10년 전. 네가 영지에서 망나니 영주 노릇을 톡톡하게 하던 시절이지.”
“……그렇군요. 정확히 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 하하하.”
갑자기 툭 튀어나온 팩트 폭격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10년 전이면 지금의 내가 존재하지는 않던 시점이다.
예전 자레드 놈이 아버지를 잃고, 실의에 빠져 무의미한 삶을 살던 시절이니 외부 정보에 관심도 없었을 때다.
“그때, 죽을 각오로 결계를 넘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미 결계를 넘으면서 몸에 심한 상처를 입은 위독한 상태였지.”
“자의로 넘은 게 아닌 겁니까?”
“아니. 완벽한 자의였다. 결계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에서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지.”
“가능한 방법이 있었나 보군요.”
“자신들의 기술력으로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상태로 넘어오는 것은 가능했다더군.”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얘기였으니까.
“경고의 메시지라고 하면, 지금 말씀하신 남은 1년……. 그것이겠군요.”
“맞아. 그가 말하길 동방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우리를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문제는 결계였겠군요.”
“맞아. 그 기술력이 완성되기까지의 예상 시간이 11년이라고 했다. 이후 10년이 지났으니, 이제 1년이 남았지.”
“패권을 장악한 세력의 공격이라……. 그럼 그분은?”
“평화를 위한 저항군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더군. 우리에게는 정말 중요한 존재인 셈이지.”
“음.”
“최종 계획이 완료되면 결계 전체가 흔적도 없이 완전히 무너진다고 했다. 그 말인즉, 우리와 저들의 차원을 구분 짓는 경계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대규모 침공이 되겠군요.”
“이번에 네가 본 거대한 지네는 최종적인 계획에 앞서 미리 교란을 획책할 선발대를 침투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었을 터다.”
“나스 대륙이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의가 상당하군요.”
양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차라리 마왕과의 악연이라면 용마 대전의 패배도 있으니, 복수의 개념이라고 이해라도 하겠다.
하지만 동방 대륙은 과거의 드래곤에 의해 차원의 교집합이 일부 생긴 것을 제외하면, 서로 영향을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천 년 동안 서로 아무 일도 없이 잘 지내 왔던 것이 아니겠는가?
“지네의 머리를 얻었다고 했지? 마귀로 보이는 것들이 입 안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왔고.”
“그렇습니다.”
“그럼 그쪽 연구도 예상보다 빨리 진척이 되고 있군……. 어쩌면 다음 달 이맘때쯤에는 더 큰 파도가 밀려올 수 있겠어.”
시종일관 어둡던 베르하드의 표정에서 심각함이 느껴졌다.
바로 그때.
“이렇게 된 이상 우리 셋의 자리를 최대한 빨리 만드는 게 좋을 듯하다. 나도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늘 역겹게 느껴지는 존재이긴 하다만…….”
“셋이라고 하시면?”
“카스트로.”
“블랙 드래곤 카스트로 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망할 까만 도마뱀 새끼.”
고귀한 드래곤을 거침없이 ‘새끼’라고 부르는 베르하드에게서 불편한 심기가 짙게 드러났다.
새 만남이 임박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