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32
제 332화
103장. 동쪽으로 떠날 준비 – 2화
“…….”
어색한 침묵이 꽤 오랜 시간 동안 흘렀다.
확실히 생소한 현장이었다.
작은 통나무집.
그 안에는 대륙 전체를 호령하는 황제와 대마법사로 불리는 노인, 그리고 블랙 드래곤이 앉아 있었다.
좀처럼 모이기 힘든 조합.
세 존재의 중앙에 자리 잡은 자레드의 표정은 그나마 나았지만.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베르하드와 카스트로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구면이군, 우리는.”
“반갑습니다, 카스트로 님.”
“성마 대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자레드가 너스레를 떨었다.
카스트로를 보는 베르하드의 표정이 어두운 것은 어쨌든 이 차원 문제의 원죄(原罪)가 드래곤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스트로도 할 말은 있었다. 정작 블랙 드래곤은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다른 드래곤 일족에게서 발생한 문제를 자기 혼자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억울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임 회피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면 인간 마법사인 베르하드의 구박을 받아 가면서 그를 돕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도마……. 후우, 카스트로 님에게 직접 듣는 것이 좋을 듯하군. 나는 담배를 좀 태우고 오지.”
“담배는 항상 몸에 해롭습니다, 베르하드 님.”
“남이사. 어차피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괜한 걱정 마라.”
베르하드가 주섬주섬 품속에서 꺼낸 곰방대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이며 통나무집 밖으로 나섰다.
그도 카스트로가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눈치껏 자리를 피한 것이다.
그간 티격태격해 온 시간이 있는데, 이제 와서 살갑게 굴기 애매한 구석도 있었고.
이윽고 안에 단둘이 남게 되자, 카스트로가 차분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네 부하? 동료? 그들에게는 쓸 만한 아티팩트를 제법 제작해 주었다. 미래를 위한 안배였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확인했고요. 정말 엄청난 아티팩트를 만들어 주셨더군요.”
“대단할 것까진 없고. 그들의 재능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한 것이니 효과는 좋을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다. 냉정하게 말해서 앞으로 그들의 희생이 더 절실해질 시점이 아니더냐. 그러면 아쉬움 없이 지원을 해 줘야지.”
내용대로 카스트로의 말은 꽤 냉정하게 들렸다.
사지로 보내는 장수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주는 꼴이랄까. 딱 그런 느낌이었다.
“제게 동방 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어떻게 이 문제가 시작됐는지는 베르하드에게 들었겠지?”
“그렇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왜곡된 그들의 역사다.”
자레드가 숨을 죽이고, 카스트로의 입가에 집중했다.
그의 말이라면 단 한 마디,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동안 동방 대륙에서는 제법 많은 이들이 이쪽으로 넘어왔었다. 용마 대전 이후 1000년 동안 아무 일도 없지는 않았지.”
“그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해안가를 넘기도 전에 대부분 참살되었다. 생김새부터 시작해서 너무나도 많은 점이 나스 대륙의 사람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방인 취급을 받았군요?”
“그렇지. 말도 통하지 않았고, 나스 대륙인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존재도 아니었다. 그래서 모두가 그들을 불길하게 여겼지.”
‘여기서도 인종차별이라니.’
자레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딱 황인을 무시하는 백인의 행태를 보는 듯했다. 백인우월주의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우연히 나는 그들 중 한 명을 구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꽤 많은 대화를 나눴지. 이야기의 포문은 우리에 대한 그들의 오래된 증오에서부터 시작됐다.”
“계속 말씀해 주십시오.”
“15년 전에 들은 말을 기준으로 한다만. 현재 동방 대륙은 대륙 전체의 8할이 사막화된 상태라고 한다. 최근 들어 더 급격히 악화가 되고 있다더군.”
“사막화는 보통 문제가 아닌데요. 인간의 거주 환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재앙입니다.”
자레드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막화에 대한 문제는 전생의 ‘지구’에서도 늘 화두가 되었던 자연 재해였기 때문이다.
“맞아. 실생활 반경이 줄어들게 되고,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각종 문제를 야기하지.”
“오래된 문제입니까?”
“진행은 장기간 서서히 계속됐지만, 그 문제의 심화는 최근 30년 사이의 일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사막화를 위시한 모든 문제의 근원을 나스 대륙에 돌리고 있다는 뜻입니까?”
“맞다. 단순한 여론이나 암시 정도가 아니야. 태어날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으며 주입, 아니 세뇌된 지식이다.”
“주류, 혹은 지도층으로 불리는 세력이 의도적으로 원망의 희생양을 찾은 것이군요.”
“그렇지. 비유하자면 성마 대전 발발에 대한 원인을 우리가 동방 대륙에서 찾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한 마디로 개소리지.”
“체계적인 왜곡을 계속해 왔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모두가 그 말을 믿지는 않는다. 그 세계에도 정의로운 자들은 존재하고, 그 존재가 날 만난 인간이었지.”
“하아…….”
자레드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꼬인 매듭은 쉽게 풀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동방 대륙에도 우리처럼 던전이 존재하고, 특수한 아티팩트와 문물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차원의 힘과 어울리는 방법 대신, 최대한 악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지금의 동방 대륙이 만들어진 셈이지.”
“자업자득이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불만을 외부로 돌려 자신들의 실책을 만회한다. 무능하고 비겁한 지도자의 전형적인 모습이군요. 위기 극복 방식도 그렇고요.”
“문제는 대다수의 주류 세력이 모두 급진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안식처’를 개척할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고, 그 타깃은 바로 나스 대륙이다.”
“결계 해제 장치를 위시한 모든 시도들이 다 그놈들의 짓이군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라.”
“왜 그동안 나스 대륙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하지 않으신 겁니까?”
“내가 아무 노력도 안 했을 것 같으냐?”
자레드의 말에 카스트로가 양미간을 찌푸리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자레드가 달리 답을 하지 않자, 카스트로가 말을 덧붙였다.
“애초에 이빨 빠진 사자 신세보다도 못한 드래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인간도 없을뿐더러, 너도 알다시피, 지난 수백 년간 나스 대륙의 역사는 전쟁과 갈등의 역사였다.”
“하긴…… 이해는 갑니다.”
“영토 싸움과 헤게모니 쟁탈전에 정신이 팔린 군주들에게 미래 얘기는 아무 의미가 없었지.”
“여유가 많지 않네요.”
“우리 드래곤 일족의 최대 실수이자 불찰이라는 것은 항상 깨닫고 있다. 면목 없을 따름이다.”
“아닙니다. 바꿔 생각하면, 차원의 힘을 끌어다 쓰지 않았다면 용마 대전에서 드래곤이 패했을지도 모르지요.”
자레드는 달리 드래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의 말대로 차원의 힘이 없었다면 용마 대전에서 마왕군이 승리했을 테고, 지금의 인간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차피 모든 것은 결과론이다.
차원의 문제가 야기되지 않았다면, 용마 대전에서 드래곤의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을 것이다.
바로 그때.
담배를 태운 베르하드가 다시금 안으로 들어섰다.
문 밖에 있으면서도 모든 대화를 들었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 모습이었다.
“카스트로 님의 도움을 받아서 결계 너머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그곳도 마나가 존재한다. 적어도 거기서 우리의 마법을 쓰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것을 보여 드려야겠군요.”
베르하드가 말한 ‘결계’라는 단어에 생각이 난 자레드가 아공간에서 아스모칼라 코어를 꺼냈다.
그러자 동시에 베르하드와 카스트로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둘 다 결계를 즉각 무력화할 수 있는 이런 코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르하드가 다시 물었다.
“이게 네가 그때 말했던 아스모칼라 코어?”
“그렇습니다. 결계를 순간 약화시켜 반대로 넘어갈 수 있게 해 주는 코어죠. 심해 괴수 아스모칼라를 죽여 얻었습니다.”
“잠깐 만져 봐도?”
“예, 괜찮습니다.”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카스트로가 조심스럽게 아스모칼라 코어를 만졌다.
그러고는 한참을 내부의 기운을 탐색하듯 받아들이더니, 이내 판단이 끝난 듯 말을 이었다.
“최대 2명이겠군.”
“그것밖에 안 되는 겁니까? 내심 다수의 인원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만…….”
툴팁에는 나오지 않아서 여럿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러면 인원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너와 베르하드가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듯하다.”
“녀석……. 나도 제대로 상대할 엄두도 못 냈던 아스모칼라를 잡다니. 난 놈은 난 놈이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자레드, 베르하드. 어차피 놈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고, 나스 대륙은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한다.”
“알고 있습니다.”
자레드가 힘주어 대답했고, 베르하드는 카스트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확실한 경고를 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지. 예고된 전쟁보다야 아슬아슬한 평화가 나을 수도 있으니까.”
카스트로는 자레드와 베르하드가 결계를 넘어 동방 대륙으로 향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머지 두 사람의 생각도 같았다.
일단 차원 ‘베디세트’, 통칭 동방 대륙으로 불리는 곳에 대한 정보가 한정적이었다.
심지어 드래곤인 카스트로마저도 그곳에서 넘어온 이에게 들은 정보만 알고 있지 않는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마각을 드러낸 동방 대륙의 ‘적수’들이 누군지 파악하지 못하면, 미래는 더 어두워질 것이라고 봤다.
“베르하드 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는 아스모칼라 코어를 이용해서 넘어가 보고 싶은데요.”
“똥인지 된장인지는 분명 먹어 봐야 아는 법이지.”
“크큭.”
“웃음이 나오는 것이냐!”
“그럼 울까요?”
자레드와 베르하드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심각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어쨌든 결론은 내려진 듯했다.
동방 대륙 탐사.
그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나는 나스 대륙 동부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작업을 돕겠다. 여전히 반응이 미적지근한 동족이 있긴 하지만…… 그들을 잘 설득해서 불러내도록 해 보마.”
“감사합니다, 카스트로 님.”
“감사는 무슨. 우리 드래곤 전체가 책임져야 할 원죄이다. 이것으로 씻어 낼 순 없겠지만.”
카스트로가 깊이 고개를 숙여 자레드와 베르하드에게 다시 한번 사죄의 표시를 했다.
“거 앞으로 한 두 번만 더 고개를 숙이면, 한 천 번은 숙이는 고개가 되겠군. 그런다고 되나.”
베르하드가 툴툴대면서도, 괜스레 마음이 불편했는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어쨌든.
이제 확실한 결론이 난 듯했다.
동방 대륙!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에 발걸음을 내디딜 때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