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43
제 342화
106장. 한계에 도전하는 자 – 3화
절망. 참혹. 좌절.
자레드를 상대한 테딜라가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하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항상 오만하고 거만하게 세상을 오시하며 살아온 테딜라에게 이런 감정은 어색하기만 했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힘인가?
“뭐가 어떤 힘이야? 널 때려잡을 힘이지.”
-날 이토록 극한까지 몰아붙인 인간은 없었다. 너는 누구인가? 신의 대리자인가?
“신의 대리자는 무슨. 차원마다 분탕질과 깽판을 치는 신에게 도전할 미친놈이지!”
콰쾅! 콰콰쾅! 콰쾅!
자레드의 맹공이 계속됐다.
마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테딜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정령의 힘을 최대치로 활용하여 화력을 높였다.
테딜라는 마법에 대한 방어력은 제법 탑재하고 있었지만 정령술에는 매우 취약했다.
언뜻 보기에는 마법과 정령술이 ‘마나’라는 공통분모를 갖기에 유사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방어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은 전혀 다른 경우가 많았다.
즉, 항마력이 높다고 해서 정령술에도 높은 저항값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내가 가진 힘의 무게, 깊이, 의미……. 그 모든 것이 가볍지 않아. 그래서 더욱 집중해 더 확실하게, 더 힘 있게 해내야 해.’
자레드는 테딜라에게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더욱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맹렬하게 테딜라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자신을 객관화한 것처럼 관조할 수 있게 됐다.
‘싸우는 건 나 혼자만이 아냐.’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에게 새로운 퀘스트를 만들어 준 것 역시 또 다른 신이 아니었던가?
“…….”
무념무상의 경지.
더 내려놓을 것이 무엇이 있겠냐마는 자레드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전투에 길들여진 몸은 알아서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전투를 수행해 냈다.
‘한계. 까짓것 뛰어넘어 주지!’
그러자.
자신감이 한껏 묻어난 자레드의 움직임에 다시금 활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또 한 번의 성장.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얼마 후.
콰콰쾅! 콰쾅! 콰쾅!
화르르륵! 화르르륵!
“신은 아니나 신에 준하는, 혹은 반신의 존재라고 폄하한들 테딜라를 이렇게 몰아붙일 수 있을까.”
진선평은 격렬한 난투 끝에 기어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테딜라를 보며 감탄했다.
자레드의 공격에는 아주 작은 군더더기 하나 없었고, 모든 공격이 완벽한 유효타였다.
가볍게 날리는 매직 미사일마저도 테딜라의 깊은 상처를 후벼 파는 고통의 요소로 작용할 정도.
-크어어어어어! 괴롭구나!
평생 그리고 절대 들어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테딜라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쿠우우우! 콰아아아!
테딜라를 구성하고 있던 수많은 신체의 부위들이 촛농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테딜라가 본연의 힘을 잃고 점점 ‘죽어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불멸불사의 존재로 불리기도 했던 테딜라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쿠콰콰콰! 콰콰! 콰콰콰콰!
“…….”
테딜라의 반격에 제법 깊은 상처를 입은 자레드였지만, 그럴수록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졸지에 자레드의 마법과 정령술 공격의 과녁이 되어 버린 테딜라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점점 무너져 가는 무게중심을 잡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자레드의 손끝을 떠난 데큐플 트랜센던스 헬 파이어와 함께.
최상위 화염 정령의 폭주가 시작되는 순간!
콰우우우!
테딜라의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간 화염의 정령이 기어이 테딜라의 코어를 낚아채 버렸다.
크흐흐흐흐. 크흐흐.
테딜라를 관통하고 지나간 최상위 화염 정령, 피닉스는 으스대는 눈빛과 함께 코어를 들고 있었다.
-내가, 이 테딜라가…….
까뒤집은 두 눈과 함께 뒤로 나자빠지고 있는 테딜라에게서 전투 개시 때의 위용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칼바람에 온몸이 재가 되어 흩날리는 죽음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크윽.
그제야 꾹꾹 참으며 미뤄 두었던 육신의 고통이 자레드에게 엄습하기 시작했다.
전투에 집중하느라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아픔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몰려든 것이다.
“후아.”
지면에 힘겹게 안착한 자레드가 때마침 가까이 보이는 바위에 몸을 눕혔다.
방금까지 전력을 다해서 멋지게 싸웠던 것이 무색하게 온몸에 잦아드는 무기력함 때문이었다.
‘정말 하얗게 불태웠구나.’
살면서 불태운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느낀 것 같았다.
테딜라와의 전투를 끝낸 자레드의 몸에는 정말 쌀알 한 톨 만큼의 마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면에 안착하는 순간부터 회복되기 시작한 마력을 제외하면, 잔여량은 0이었다.
“자레드 님!”
그새 진선평이 달려왔다.
혹시나 자레드가 지쳐 쓰러지거나 혹은 쇼크로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대신.
자레드는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테딜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드롭 된 것들이 있으면 좀 챙겨 주시겠습니까? 몸이 천근만근이 된 듯 무겁네요. 하하.”
마음은 뿌듯하고 날아갈 것처럼 가볍지만, 역설적으로 몸은 축 늘어진 상태.
자레드의 부탁에 진선평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테딜라의 시체를 향해 달렸다.
‘어디 보자…….’
자레드가 상태창을 열었다.
[대상이 ‘한계에 도전하는 자’를 완벽하게 달성했습니다!] [달성의 첫 번째 특전으로 레벨 1000을 달성합니다. 마법사 계열의 대상의 주 스탯인 마력이 현재 총량의 2배로 증가합니다!]“만렙 특전이…… 이거였구먼?”
자레드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누구도 알지 못했었던 의 만렙 특전!
그것은 사용자의 주 스탯을 두 배로 올려 주는 파격적인 특전이었던 것이다.
만약 자레드가 마법사가 아닌 근딜러 계열의 검사였다면, 압도적인 체력을 갖게 됐을 터다.
‘내게 마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특전이지. 사용할 정령술과 초월 마법은 넘치니까.’
마력은 다다익선이다.
하물며 앞으로 더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할 자신이기에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 준 셈이다.
바로 그때.
[‘한계에 도전하는 자’를 완수하여 특수 퀘스트 ‘원점으로의 회귀’가 즉시 활성화됩니다!]‘여기서 연계가 된다고?’
특수 퀘스트의 활성화에 퀘스트창을 지켜보고 있던 자레드의 눈빛이 다시금 반짝였다.
한동안 퀘스트에 인연이 없다시피 했던 자레드였다.
동료들과 연계된 퀘스트는 일종의 ‘인연’을 아우르고 다루기 위한 퀘스트에 가까웠고.
하지만 이것은 동방 대륙에서 활성화된 것으로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의 시야를 열어 주는 퀘스트였다.
‘뭐야, 도대체. ! 이 세계가 아직도 나에게 전달하지 못한 메시지가 뭔데?’
자레드가 퀘스트창에 새 내용이 출력되기를 기다리자, 곧 특수 퀘스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첨탑의 꼭대기에는 그릇된 마음을 품은 악신 로케발이 인간에게 남긴 잘못된 유산이 있습니다.로케발의 원석.
이 원석은 차원의 불균형을 야기하였고, 이를 손에 넣은 ‘첨탑의 주인’으로 하여금 악의 화신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울러 로케발은 첨탑의 주인을 자신에게 예속시켜, 영원히 복종할 꼭두각시로 만들었습니다.]
‘결국은 인류 통합 연맹의 리더인 증강우가 악신 로케발의 대리자가 되었다는 뜻이잖아?’
악신들의 가호를 한 몸에 받았던 이카젤라와 그 원흉이던 마왕 레크나트가 떠올랐다.
세상은 넓고 선과 악의 균형은 항상 맞춰져 있다더니, 차원 베디세트를 악신이 잠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레드가 계속 내용을 읽었다.
[로케발의 원석을 파괴하지 않으면 차원의 불균형은 더욱 극심해질 것입니다.첨탑을 보호해 주는 근원이기도 한 로케발의 원석을 파괴하고,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신격을 몰아내십시오.
로케발의 원석을 깨부수는 자는 일시적으로 ‘임시 신격’을 획득합니다.
아울러 파괴된 원석이 신호탄이 되어, 다른 차원의 ‘조력자’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연결점이 될 것이며, 이후의 운명을 뒤바꿀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임시 신격에 조력자?’
평범하지 않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이것은 자레드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분야의 이야기였다.
임시 신격이라는 명칭을 붙일 만큼의 힘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심지어 다른 차원의 조력자까지 불러 낼 만큼의 상대라는 건.
‘증강우의 뒤를 후원하고 있는 로케발까지 상대하라는 소리인가. 정말…… 신을 상대하라는 거구나.’
이제야 본질이 보이는 듯했다.
일이 갈수록 커지는 느낌.
하지만 자레드는 그럴수록 생각을 더욱 단순하게 하기로 했다.
훗날 임시 신격이니 뭐니 하는 이유로 악신과 싸우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중요한 것은 증강우다.
그가 사라져야 동방 대륙과 나스 대륙의 필연적인 충돌을 막을 수 있다.
‘하나하나씩 순차적으로 처리해 나가는 거다. 나를 위해, 이 세계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나스 대륙과 동료들을 위해.’
자레드는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두 눈을 감았다.
큰 산을 넘었으니.
잠깐의 휴식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숨을 돌릴 시간은 있다고 생각했다.
* * *
“단장! 단장……!”
“정서! 무슨 일이냐?”
“……흑살대가, 흑살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테딜라를 처치하고 던전을 나선 나와 진선평에게 달려온 것은 피투성이가 된 한 남자였다.
한눈에도 온몸이 창칼로 난도질당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그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나는 즉시 그에게 힐 마법을 초월 마법의 형태로 퍼부었다.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을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흑살대.
던전을 공략하면서 진선평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야기를 들은 증강우의 친위대였다.
‘기어이 칼을 빼든 건가.’
증강우, 혹은 증강우의 군대와 마주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버젓이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반응이 미적지근해서 그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최전방에 있는 13기지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포로로 잡힌 아군들 전원이 실험실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개XX들…….”
까득, 진선평이 이를 갈았다.
흑살대가 얼마나 악명이 높은 조직인지는 그에게 얘기를 들은 바가 있었다.
역사 속에서 비유를 찾자면, 일본의 731부대 같은 느낌이랄까.
희대의 악행만 골라서 벌인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죽어 마땅한 놈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물론 신념에 과몰입한 또 다른 ‘희생양’이겠지만, 그런 이유가 그들의 악행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
“단장, 갑시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레드 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한배를 탄 사이 아닙니까. 증강우는 우리 나스 대륙의 적입니다.”
나는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증강우가 죽지 않으면 나와 우리 대륙의 모두가 죽는다.
물러설 곳도, 그럴 이유도 전혀 없었다. 죽지 않으면, 죽일 뿐이다.
마치 숙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