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47
제 346화
108장. 초토화 – 1화
“베르하드 님.”
“괜찮겠느냐?”
“괜찮고 안 괜찮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전화(戰火)가 나스 대륙까지 번지느냐 아니냐가 더 문제죠.”
“네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만, 혹시나 무리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걱정된다.”
진선평과 대화를 마친 나는 베르하드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의미 부여를 한 것은 오늘이 지나면 당분간은 독자 행동을 해야 해서다.
“분명 적들도 보통 강적이 아니지만, 그만큼 저도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성장…… 이라기보다는 이젠 완전체 그 자체지. 나도 네게는 마법으로 이길 자신이 없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무엇이든 말해 보거라. 이 늙은이가 어떻게 해야 네게 보탬이 되겠느냐?”
베르하드가 이렇게 던져 주는 말 한 마디가 나는 항상 고마웠다.
말투나 성격은 분명히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매번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그였다.
“어차피 자유의 날개는 열세의 입장에 있으니, 소규모 게릴라전을 하면서 지연작전을 전개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내 생각도 같다.”
“증강우에게 선전포고를 확실히 해 뒀으니, 녀석도 긴장을 하고 있긴 할 겁니다. 제 행보를 가장 예의 주시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위장술?”
“정답입니다!”
역시 척하면 착이라더니, 베르하드는 내 속셈을 바로 알아차렸다.
외형 복사 마법인 이미지 카피.
디스펠 혹은 마나 번 등으로 쉽게 파훼할 수 있는 위장용 마법이다. 물론 이것은 나스 대륙의 기준에서다.
동방 대륙에는 무공을 기반으로 한 각성자들이 많지만, 그런 반면에 마법에 관한 지식은 부족했다.
그렇기에 이미지 카피를 이용해 베르하드를 내 모습으로 위장시킬 생각이었다.
사용하는 능력도 같은 마법사로서 유사점이 많으니, 속이기도 한결 수월할 것이다.
“한 번의 일격에 확실한 타격을 주려는 속셈이로구나.”
“이미 말씀드렸잖습니까? 첨탑 주변의 모든 것을 전부 소멸시킬 겁니다.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생기지 않게.”
“좋다. 내가 놈들의 관심을 확실하게 끌어 볼 터이니, 적의 심장부에 비수를 꽂도록 해라.”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혹여 노파심에 말하지만, 절대 목숨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나스 대륙의 황제를 사랑하고 기다리는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물론입니다. 죽으려고 가는 게 아닙니다. ‘죽이려고’ 가는 거죠.”
“그러면 역할 분담은 끝난 듯하군. 전쟁의 불씨를 나스 대륙이 아닌 이곳에서 진압하도록 하자.”
“동감입니다, 베르하드 님.”
“잠시.”
베르하드는 내 어깨 위에 양손을 얹은 뒤에 고개를 숙이고 자신만의 기도를 올렸다.
내가 아는 베르하드는 무신론자지만, 지금만큼은 내 안전과 건강을 꼭 빌어 주고 싶은 듯했다.
“감사합니다.”
“무탈해야 한다.”
“그럼요.”
베르하드와 손을 맞잡았다.
짧지만 따뜻한 교감.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인류 통합 연맹의 깃발이 나부끼는 그들의 터전으로 다시금 향했다.
* * *
하루 뒤.
“자유의 날개 놈들! 아주 방어선 전체를 지뢰로 왕창 도배를 해 놨어. 미친놈들!”
전황 보고를 받은 증강우가 탁자를 내리치며, 잔뜩 기분이 상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수적 우위는 인류 통합 연맹에게 있는데, 자유의 날개의 집요한 견제 때문에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소규모 인원이 엄폐물과 지뢰를 적극 활용하면서 극렬하게 저항하다 보니.
이들을 과도하게 찍어 누르는 과정에서 정규군의 희생자가 속출했던 것이다.
청위군과 백련대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이동 경로를 확보해 주었기에 피해가 크진 않았다.
대신 본래였으면 그들이 당했어야 할 피해를 정규군이 고스란히 입고 있는 중이었다.
증강우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이들 모두가 심판의 창이 완성되고 나면, 서방 대륙으로 넘어가서 전면전에 임해야 할 중요한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까다로운 것은 자레드입니다. 신출귀몰하게 이곳저곳에 나타나 아군을 교란시키고 있습니다.”
증강우의 앞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고 자신 있게 보고를 올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마영후.
증강우와 같은 EX랭크의 각성자로, 그의 부하였다.
오래전부터 인류 통합 연맹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전우이기도 했다.
“자레드 놈, 그 망할 X의 마법이 참으로 엿 같군. 위치 이동을 이렇듯 자유롭게 하는 능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아닌가?”
“제가 나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굳이 전력을 아끼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닭을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없다. 우리 연맹에도 체면이라는 것이 있지 않으냐.”
“괜히 피해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돼서 그렇습니다.”
“판단은 내가 한다. 너는 지시대로만 따르면 될 일이다.”
“예, 마스터. 받들겠습니다.”
마영후가 고개를 숙였다.
* * *
“…….”
나는 밤의 어둠을 벗 삼아 첨탑을 지켜보고 있었다.
온종일 첨탑 주변의 모든 곳을 돌아다니면서 이곳의 감시 체계를 면밀히 파악했다.
그러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쓰러뜨린 인류 통합 연맹의 한 각성자의 모습을 카피해서 위장했으니까.
감쪽같은 위장에다 감시 시설 이동에 필요한 통행증까지 소지하고 있으니,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나는 그간 적대 세력이라고 할 만한 전력에 노출된 적이 없는 정규군의 빈틈을 쉽게 찾아냈다.
나름대로 체계는 잘 잡혀 있었지만, ‘적’을 감지한 적이 없다 보니 의외로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
그 결과.
채 반나절도 안 돼 인류 통합 연맹의 첨탑을 1km 앞에 둔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간 열 차례도 넘는 관문을 지나쳤지만, 통행증과 안면 인식 정도로 모든 검증이 끝났다.
한편, 자유의 날개는 베르하드와 함께 격렬하게 교전 중인 듯했다.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일부 전선에서는 퇴로가 차단된 단원들이 끝까지 싸우다 자결했다고 한다.
인류 통합 연맹에 포로로 잡혀 가면 갖은 고초를 겪고, 끝내는 인체 실험에 쓰이다가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최후를 맞이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더 나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절로 숙연해지는 최후.
나는 그들의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하리라고 다짐하며, 첨탑 주변을 체크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첨탑 주변에는 단 한 명의 민간인도 거주하지 않았다.
보통 왕궁이나 황궁이 있고, 그 주변에 백성들의 거주 구역이 있는 나스 대륙과 달리.
첨탑 주변은 온통 군사 시설이었다. 사람들이 사는 거주 구역은 별도로 분리된 곳에 있었다.
조사 도중에 입수한 지도와 내용을 보니, 최소 20km는 더 가야 거주 구역이 존재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내게는 잘됐지 싶었다.
첨탑 주변을 쓸어버릴 계획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는 민간인이 없다면 부담이 한결 덜 하니까.
‘정탐으로 확인한 일곱 개의 포인트만 확실하게 강타할 수 있다면…….’
머릿속에서 부지런히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상상의 그림이 빠르게 그려졌다.
다만.
위잉! 위잉! 위잉!
정찰용 드론이 쉴 새 없이 첨탑 주변을 선회하는 것을 보니, 아직까지 경계는 삼엄한 듯했다.
내가 사용하려는 마법은 데큐플 트랜센던스 메테오 스톰이다.
일전에 던전에서 진선평 앞에서 활용했던 마법이 하나의 운석을 소환하는 일반 ‘메테오’였다면.
이것은 수많은 운석을 소환해 내는 ‘메테오 스톰’ 마법이었다.
나는 여기에 모든 마력을 동원하고 대지의 정령을 연계, 지진까지 함께 일으킬 요량이다.
대재앙.
그것을 첨탑이 있는 이 땅에 강림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좀 더 경계가 느슨해져야만 했다.
‘일단은…….’
나는 위장 중인 각성자의 행세를 하며, 원래 그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내 행세를 하고 있는 베르하드를 보며 증강우가 여기에 내가 없다는 확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할 듯했다.
그래야 경계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질 테고, 대단위 마법을 쓸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결국 엉덩이가 무거운 쪽이 이긴다.’
나는 확신했다.
서두르지 않고.
시간이 반드시 내 편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적의 품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제는 누가 더 진득하게 기다리면서 상대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릴 기회를 잡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베르하드와 진선평, 그리고 그의 부하들을 믿었다.
기회는 단 한 번이겠지만,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으며.
* * *
연전연패.
계속되는 패퇴.
투지로 싸우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의 날개는 다수의 방어선을 잃고 말았다.
베르하드도 위장한 자레드의 모습으로 분전했지만.
워낙 전장이 여러 곳이다 보니 모든 곳을 다 커버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유의 날개는 서부에 마련된 총 15곳의 방어선 중에서 9곳을 잃고, 패주하게 됐다.
더욱 척박한 환경 속에 있는 방어선으로 빨리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물러서는 자유의 날개와 반대로 사기가 크게 오른 것은 역시나 인류 통합 연맹의 군대였다.
청위군과 백련대는 역시 증강우가 아끼는 정예 부대답게 차례대로 자유의 날개의 예봉을 꺾어 나갔다.
승리에 크게 고무된 증강우는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자레드라는 인물이 낯설어 고전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순리대로 됐다고 본 것이다.
증강우는 만족했다.
서방 대륙의 황제니 뭐니 하고 으스대던 자레드도 결국 운명을 바꿀 힘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청위군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자레드에게 상당한 부상을 입혔다고 했다.
용맹하게 자레드에게 달려든 청위군의 정예 5인이 자레드의 옆구리와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는 것이다.
죽을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지만, 순간 전장에서 이탈해야 했을 만큼 제법 큰 부상이라고 했다.
하나같이 유쾌한 소식들.
그래서 증강우는 이참에 병력을 추가로 파견해 자유의 날개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을 세웠다.
예전부터 눈엣가시였지만 귀찮아서 미뤄 두었던 반동분자들을 일망타진할 기회로 본 것이다.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각지에서, 그리고 첨탑 주변에서 추가로 편성된 지원군이 서쪽으로 출발했다.
확실하게 적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최후의 일격을 가할 부대의 출격이었다.
“후후, 어리석은 놈들.”
첨탑의 꼭대기.
창밖으로 길게 이어지는 지원군의 행렬을 바라보며, 증강우는 여유롭게 홍차를 들이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자유의 날개의 뿌리를 뽑았을 텐데.
그간 귀찮아서 미뤄 왔던 듯해서 스스로에게 괜히 민망함마저 드는 증강우였다.
“심판의 창만 완성되면 이제 서방 대륙은 끝이다. 그들의 황제까지 목숨을 잃으면, 더욱더 절망하게 되겠지.”
증강우의 머릿속에는 이미 서방 대륙을 누비고 있는 자신과 병사들의 모습으로 한가득했다.
중간에 예기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기는 했지만, 결국은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그림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구르르릉. 구르릉!
갑자기 첨탑의 상공에 위치해 있던 주변의 먹구름이 일순간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검붉은 색으로 변하면서 사방으로 전류를 뿜어내기 시작하는 기괴한 광경을 증강우는 목격했다.
천둥 번개?
갑작스런 뇌우?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급작스러운 기상 변화였다.
다음 순간.
“저게…… 뭐지?”
증강우의 시선은 높은 하늘 어딘가에서 하나의 점이 되어 나타난 물체에 집중됐다.
그것은 전혀 예상에도 없었던…….
거대한 운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