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53
제 352화
110장. 파죽지세 – 1화
‘검술 자체는 현란해 보이지만, 사실 주공은 하나였군.’
‘분명 하나의 점을 타격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노림수는 여러 곳에 있었어.’
‘오러 블레이드보다 검기의 확장성이나 가변성이 훨씬 더 좋다. 상위 호환 개념이야.’
나는 전투 내내, 마영후의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녀석은 모르겠지만……. 내게 마영후는 꼭 필요했던 ‘선생님’이었다.
동방 대륙의 각성자들이 사용한다는 ‘무공’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수준급의 무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진선평과 비교해도 최소 세 수 이상의 실력을 가진 이가 바로 마영후였다.
‘영광의 상처네.’
나는 복부 여기저기를 할퀸 검의 흔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팠다.
사실 많이 아팠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좋은 수업료를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한편으로 자신감도 생겼다.
‘EX랭크도 결국은 별것 아니구먼. 눈높이가 같아. 나를 상대로 우세를 점할 수는 없어.’
이제 마영후에게서 흡수할 것은 다 흡수했다. 그의 레퍼토리는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이제 끝내 볼까.’
당사자가 들었다면 노발대발하면서 자신을 무시하느냐고 소리쳤을 수도 있을 생각.
하지만 이미 견적은 나왔다.
증강우는 마영후보다 훨씬 강한 실력자일 테고, 마영후의 실력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나를 위협할 수는 있으나 우세를 점할 수는 없는 수준. 또한 약점이 확연히 보이는 각성자였다.
다음 순간.
파앗!
블링크와 함께 마영후의 코앞으로 파고들었다.
계속 거리를 둔 전투를 통해서 마영후를 괴롭혔지만, 전투의 국면을 급반전시킨 것이다.
“아앗……?”
계속 거리 두기를 하는 나를 견제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마영후가 몸을 흠칫했다.
당황했다는 증거다.
“열화를 느껴 봐.”
나는 시련 2층에서 얻은 조력자의 보상인 ‘열화의 힘’을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마력 25만이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듯, 몸에서 쑥 빠져나갔다.
‘마법 개념이 아냐.’
마력을 소진했지만, 마법은 분명히 아니었다. 마치 열화 그 자체가 고유 능력인 듯했다.
애초에 수인이나 마법진이 맺히지 않고, 즉각적으로 지면에 발현됐기 때문이다.
“크아아아!”
열화의 불길에 걸려든 마영후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열화의 힘을 시전하기 전까지 나는 이 능력이 그저 파이어 월의 상위 호환의 개념 정도일 줄 알았다.
즉, 거센 불길이기는 하나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크허어어!”
마영후는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1초?
아니, 그것보다 짧은 시간에 노출됐지만, 피부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심지어 두 눈을 감싸고 있는 각막과 눈꺼풀까지 녹아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마법을…… 초월한 힘인가?”
눈앞에서 구현된 현실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 나는 잠시 동안 불길을 살폈다.
마영후가 죽을 거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었다. 죽을 것이 너무 확실한 탓에 더 이상 손 댈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렇다면……. 데큐플 트랜센던스 아이스 스톰.”
나는 열화의 불길 위로 최대 초월 수치로 끌어올린 아이스 스톰을 전개했다.
헬파이어도 무시하면서 모든 것을 얼려 버릴 수 있는 초월 마법이었다.
하지만.
“이게 녹는다고?”
열화의 힘은 데큐플 트랜센던스 아이스 스톰까지 집어삼켜 버렸다. 마치 무시무시한 포식자처럼.
“미쳤어.”
단 한 마디.
지금의 놀라움을 표현하기에는 이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조력자가 내게 엄청난 힘을 쥐어 준 것이다!
“자레드! 이렇게 내가 허무하게 네 손에 죽다니……. 크아아아!”
그사이, 온몸이 절반 이상 녹아내린 마영후는 악에 받친 괴성과 함께 손을 내뻗으며 절규했다.
열화의 힘은 잠깐 노출된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죽음의 불씨가 되어 버렸다.
“허무하긴 뭐가 허무하단 거야. 어차피 너는 내 상대가 안 됐어. 연구를 위해서 잠시 목숨을 붙여 뒀을 뿐이다.”
“크아아아…….”
이내 뼈까지 빠르게 녹아내리며 풀썩 쓰러진 마영후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대륙에서 넷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EX랭크 각성자의 최후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비참할 정도였다.
“이제 세 놈 남았나?”
죽음의 카운트가 시작됐다.
그 이후.
나는 마영후의 죽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다음, 파죽지세의 기세로 시련 3층을 극복해 나갔다.
3층의 왕인 ‘광란’은 정말 빠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속은 크게 떨어지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날뛰고 기어 봤자 별 의미가 없는 놈을 대단위 마법 한 방으로 끝내 버렸다.
어차피 현실과 격리된 공간으로 보이는 만큼, 아낌없이 메테오 스톰을 활용했던 것이다.
그렇게 광란을 죽이고 얻은 조력자의 보상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짧은 시간 단위이기는 하지만, 일시적으로 느리게 흘러가도록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내 기준으로만 느리게 흘러가는 일종의 ‘시간 장난질’이 가능해진 것이다.
“조력자……. 정말 고맙습니다.”
충분히 한계를 뛰어넘은 나에게 더 큰 힘을 주고 있는 조력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추측으로는 ‘신’이 아닐까 싶었지만,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알 길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역시 내가 이 시련을 극복하고 어서 끝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어쩌면 일전에 만났던 주신 라디우스처럼.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차원의 불균형을 바로잡기를 바라는 신일지도 모른다.
“증강우, 보낼 놈이 있으면 또 보내라! 누구든지 전력으로 상대해 줄 테니까!”
포효와 함께 투지를 불태우며.
4층으로 향했다.
10층까지의 여정에서 이제 겨우 3할의 지점을 지났을 뿐이다. 갈 길은 아직 멀었다.
* * *
10시간.
시련 1층에 진입했던 자레드가 중간 지점인 5층을 극복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가는 자레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 번째 시련, 빙기(氷期)] [다섯 번째 시련, 광풍(狂風)]각각의 시련을 보란 듯이 격파했다.
네 번째 시련인 ‘빙기’의 경우에는 두 번째 시련 ‘겁화’를 상대했던 것과 정반대의 방법을 썼다.
식 꼼수에 의거한 공략법이었는데, 이번에도 또 통했다.
역시 동방 대륙도 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명확한 증거를 확인한 셈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시련인 ‘광풍’의 경우에는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광풍을 잠재우는 대단위 빙결 마법으로 해결했다.
바람이 머금고 있는 수분을 통째로 얼려서, 움직임을 봉인해 버리는 노림수를 쓴 것이다.
그렇게 하루의 절반도 지나지 않아, 무려 다섯 개의 시련이 완벽하게 극복됐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도달해 본 적 없는 여섯 번째 시련에 발을 내딛기 직전이었다.
[조력자의 보상 – 빙염탄 : 사용자의 주변을 수호하는 거대한 빙결 구체를 만듭니다.] [조력자의 보상 – 바람길 : 주변의 순풍과 역풍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갈수록 보상을 통해서 내 자신이 완성형이 되어 가는 느낌이야.”
자레드는 마치 가려운 곳만 긁어 주는 것처럼 나타나는 보상에 쾌재를 불렀다.
지금까지 얻은 다섯 개의 시련의 보상을 모두 나열해 보면.
어둠을 꿰뚫는 시야.
모든 것을 녹이는 열화의 힘.
시간의 의도적인 지연.
수호의 빙결 구체.
바람을 조종하는 힘.
이렇듯 속성의 힘이 강화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의 변수를 차단하고,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변수는 더욱 늘리는 선순환이었다.
“첨탑 밖은 괜찮을까?”
다만 승승장구하고 있는 자신과 달리, 베르하드가 있을 전장이 자레드는 신경 쓰였다.
증강우도 이번 일로 분노가 들끓은 만큼, 어떻게든 자유의 날개를 쓸어버리려고 하고 있을 테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주기를. 어떻게든 이 시련을 매듭짓고, 반드시 악연의 끝을 볼 테니!’
자레드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속되는 강행군 탓에 피로감이 극한까지 차올라 있었지만, 마음 편히 쉴 시간은 없었다.
여기서 그가 쉬는 만큼, 서쪽 전장에서는 시시각각 자유의 날개 단원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개죽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아껴 써야 했다.
“후우! 더 빠르게!”
자레드는 심호흡으로 숨을 고르며, 여섯 번째 시련으로 진입할 준비를 마쳤다.
애석하게도 시간만큼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
* * *
한편 같은 시각.
“물러서지 말고 싸워라! 우리가 버틸수록 자레드 님이 첨탑에서 반드시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모두 나를 믿고 방어선을 지키도록! 내가 책임지고 저놈들을 마법으로 막겠다!”
진선평과 베르하드는 전력을 다해 청위군과 백련대를 막아 내며,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번 방어선까지 잃게 되면 서쪽으로 한참 후퇴해야 하는 만큼, 모두가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동지들! 뒤를 부탁합니다!”
퍼펑! 퍼퍼펑! 펑!
“아아아…….”
필사적이었다.
투지와 혈기로 가득한 일부 젊은이들은 전신을 차원석 폭탄으로 감싼 채, 자폭 공격을 하기도 했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거센 반격에 청위군과 백련대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수적 우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지만, 목숨을 건 투지에서는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신념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자와 그저 상부의 명령만을 따르는 자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했다.
“자레드 님이 꼭 해내실 거야.”
“그래, 온통 암흑만이 가득했던 미래에 드디어 한 줄기 빛이 비추고 있잖아.”
“우리가 버티면, 반드시 투쟁은 승리한다!”
모두가 속으로 혹은 겉으로 자레드의 이름을 연호하며 의지를 불살랐다.
그들에게 자레드는 희망이고, 미래이며, 모든 것이었다.
“제길, 반격이 너무 거세군! 일단 후퇴한다! 전군 후퇴!”
“하하! 꼴좋다, 청위군 XX들!”
“백련대 놈들아! 흰색 수건이나 흔들어라! 크하하하!”
결국 엄청난 피해를 본 청위군과 백련대는 한 차례 전략적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첨탑 쪽에서 벌어진 소식을 듣고는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자신의 머리 위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알게 모르게 그들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공포와 두려움이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베르하드가 상공에서 마법을 쏟아 낼 때면, 많은 수의 적들이 하늘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나 구름을 뚫고 내려올 ‘재앙’의 운석구가 보이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베르하드가 초월 마법은 아니지만, 충분히 위력적인 9클래스 마법인 메테오를 전개하면.
무작정 사방으로 산개하는 바람에 대오가 크게 흐트러졌다.
효과적인 전방 공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질서 유지가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베르하드는 그렇게 적의 두려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들을 겁줄 마법을 연계하고 있었다.
그 전술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자레드, 우리 나스 대륙과 여기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든 젊은이의 명운이 네 손에 달렸다. 믿는다. 네가 올 때까지, 이 베르하드가 어떻게든 막아 내겠다.’
베르하드도 투지를 불태웠다.
부디 자레드가 부담감과 시련을 극복하고 희소식을 전해 주기를!
오직 자레드만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