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54
제 353화
110장. 파죽지세 – 2화
은은한 새벽녘의 달빛이 세상을 비추고 있는,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도통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온 헤이즈는 해안가를 따라서 걷고 있었다.
동쪽 해안을 바라보고 있는 해안가는 온통 높게 세워진 방벽으로 가득했다.
“폐하는 어떻게 됐을까요……?”
“많이 걱정하고 계시는 것은 알지만……. 황후마마, 다른 분도 아니고 폐하이시지 않습니까. 별일 없을 겁니다.”
헤이즈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라키스였다.
이제는 황후와 대장군으로서 지위가 달라졌기에 나누는 대화도, 분위기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성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헤이즈는 늘 서글서글했고, 라키스는 항상 투지와 열의로 가득했다.
“믿어요. 폐하는 언제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분이셨죠. 믿으면 그 이상을 보여 주는 분이셨어요.”
“맞습니다. 제게 폐하는 단순한 일국의 황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초월한 신이십니다.”
“하지만 동방 대륙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세계이기에 혹시나 하는 걱정이 자꾸 드네요.”
“폐하는 나스 대미궁에서도 항상 지혜롭게 답을 찾아내시던 분이었습니다. 동방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이실 겁니다.”
“그렇겠죠……?”
헤이즈는 아련한 눈빛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해안 방벽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후웅! 후웅!
그 와중에 하늘을 잔뜩 수놓으며 날아가는 한 무리의 ‘드래곤’들이 있었다.
블랙 드래곤 카스트로를 필두로 움직이는 드래곤들이었다.
그들은 이번 방벽 건설에 참여하여 도움을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갑작스런 드래곤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비록 시간이 흘러서 약화되기는 했어도 드래곤에게서 느끼는 위압감은 거의 신에 맞먹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 중에서는 드래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절한 자도 있었다.
“스승님! 이쪽으로! 이 방벽에 드래곤 본(Dragon Bone)이 필요합니다!”
“망할 녀석, 살다 살다 동족의 뼈를 갖다가 쓰게 될 줄이야!”
“어차피 스승님의 레어를 구성하고 있던 건축 자재 아닙니까?”
“그래도 느낌이 이상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한편 블랙 드래곤 카스트로와 그의 수제자인 모이즐이 티격태격하며 보강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밤을 새워 가며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방벽을 건설하는 전체 공정의 양대 책임을 맡고 있는 모이즐과 아세로가 그러했다.
그들은 쪽잠을 자는 틈틈이, 어떻게든 해안 전선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떠나기 전.
자레드가 수많은 함포 공격에는 물론, 적의 대규모 상륙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해서였다.
예산은 충분해서 금전적인 부분에서의 문제는 없었지만, 핵심은 공정 속도였다.
언제 갑자기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분일초도 낭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
“아?”
바로 그때.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율리안이었다.
“이 꼭두새벽에 황후마마와 대장군께서는 어쩐 일로?”
“현장도 점검할 겸해서 나와 있었어요. 잠이 쉬이 들지 않더군요. 그런데 율리안 경은 왜?”
“하하, 전시 행정이라는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이쪽 지역이 급조된 방어 구역이기에 관할과 통제를 원활하게 조정하는 중입니다.”
“수고가 많아요, 율리안 경.”
“별말씀을요. 응당 해야 할 일이자 제 존재의 가치 아니겠습니까. 제국을 위해 희생할 준비는 항상 되어 있습니다.”
예를 갖추는 율리안의 모습에서는 늘 그랬듯이 그만의 품격이 확실히 묻어났다.
헤이즈가 환하게 웃었다.
자신뿐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가신들이 하나가 된 마음으로 방어선 건설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대놓고 내색은 안 했지만, 진심으로 자레드와 베르하드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빌고 있었다.
또한 그동안 자레드가 만들어 온 업적을 기리고 되새기며.
그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함께 걸을까요, 율리안 경?”
“두 분께서 불편해하지 않으신다면…….”
“같이 걸어요. 방벽 상태도 점검할 겸, 길을 따라 걷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예, 황후마마. 그럼 신이 옆을 지키겠나이다.”
“병사들의 사기는 어떤가요, 라키스 경?”
헤이즈가 자연스럽게 라키스에게 다른 질문을 건넸다.
건설 작업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해안가에 배치된 병사들의 사기였다.
자레드는 이 자리에 없지만.
그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헤이즈는 많은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다.
어제는 직접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을 독려하며, 지친 인부들에게 치유술을 시전하곤 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디바인 나인 치유사의 힐은 ‘살아 있는 축복’이라고 불릴 만큼 대단했다.
“모두 의연하게 결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 크리비아 영지 시절부터 단련된 정예들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크리비아 영지. 그것도 어느덧 지난 추억이 되었네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될 겁니다. 그때의 소영지가 지금의 이런 대제국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죠.”
헤이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다.
지방의 작은 소영지를 대제국으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자레드의 공이었다.
헤이즈는 부부로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자레드에게 깊은 존경을 품었다.
아마 나스 대륙의 역사를 통틀어도 다시 나오지 않을 최고의 황제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자레드가 동방 대륙에서 무사히 돌아와 주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그저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폐하께서 돌아오시면 꼭…….’
예쁜 아이도 갖고 싶었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수려한 외모를 가진, 자레드를 쏙 닮은 아이라면.
아들이건 딸이건 정말 외모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 같았다. 엄마만 닮지 않으면 말이다.
“황후 마마,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균형을 거스르고 역행하는 침략자는 절대 나스 대륙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라키스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미지의 세계, 동방 대륙.
라키스는 자신의 온몸을 불살라서라도 그들과 일전을 벌일 마음의 준비가 이미 끝나 있었다.
그것은 크리비아 소영지 시절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베테랑인 부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군, 앞으로도 크리비아 제국을 잘 부탁해요. 그리고 황제 폐하의 무사 귀환을 빌어 주세요.”
“예, 황후마마. 그리고 폐하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는 절대 죽지 않으실 겁니다. 불사신 아니십니까. 하하하.”
환하게 웃는 라키스의 모습에서 헤이즈도 나름의 위안을 얻었다.
그랬다.
자레드는 어떤 위기에 처했어도 항상 살아남았고, 상상 이상의 기적을 손쉽게 이루어 냈다.
아마 이번에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계속.
* * *
“과연 나는…… 신격이라는 이름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한편 나는 시련의 층계를 오르는 내내, 점점 더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끝에 이르러, 로케발의 원석을 부수면 얻게 된다는 ‘임시 신격’이 점점 실감이 나서였다.
분명 시련에 도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인간 마법사로서 닿을 수 있는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성장할 여지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믿었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최고 레벨인 ‘만렙’을 찍어서, 올릴 레벨도 경험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내가, 이제는 신격이니 뭐니 하고 있다니. 정말 세상일은 모른다니까.”
헛웃음이 났다.
분명 이 세계에서 환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한 회사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황제? 영주?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삶이었다.
그저 매일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서 월급을 챙기고, 남는 시간은 게임 에 올인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히! 정말 ‘감히’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신의 경지를 넘보고 있다.
“꼭 승리하고 싶다.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한들…… 다 끝내고 싶어.”
완벽한 승리가 간절했다.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고.
또한 헤이즈와 함께 지구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반드시 생존해야만 하는 가장 절실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있을까?
“이제 8층이군.”
차원문 앞에 섰다.
방금까지 치열하게 해 왔던 공략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이제 시련의 7층계까지 공략을 마쳤다.
[조력자의 보상 – 신의 숨결 : 신에게 직접적인 위력을 가할 수 있는 특수한 힘을 얻게 됩니다.] [조력자의 보상 – 강제 소환 : 지정한 ‘신’을 정해진 공간으로 강제 소환할 수 있습니다.]“확실히 미친 능력이야.”
6층, 7층에서 얻은 조력자의 보상을 보며 생각했다.
여기서는 노골적으로 신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부여받는 느낌이었다.
아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확실한 판이 짜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을 상대할 위력을 갖고, 심지어 그 신을 전장으로 소환한다?
이것은 신에게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어질 필요가 없는 특전들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네게 8층의 시련은 없다.”
“재주를 꽤 부린 듯하다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우리가 너를 직접 처단하겠다.”
“멍청한 마영후보다 우리 둘의 손으로 해결하는 것이 나을지도.”
뒤에서 검은빛 차원문이 열리더니, 두 남자가 나타나서는 확실한 기척을 냈다.
“왜 안 오나 했다.”
다음 층계로 이동하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방향을 바꿔 두 사람을 향해 섰다.
단지 마주 보고만 있어도 짙은 살기와 위압감이 느껴지는 것이 마영후와는 또 달랐다.
앞서 경험했던 증강우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의 위력이 공기를 통해 감지되었다.
게다가 상대해야 할 적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된 상황. 무척 까다로운 녀석들이 될 듯했다.
“난 장공화라고 한다.”
“난 황윤생. 지금 이 순간부터 서방 대륙에서 넘어온 이방인, 자레드를 엄히 단죄하겠다.”
“둘 다 왜 말투가 무슨 로봇처럼 딱딱하고 감정이 없냐?”
“놈을 해체한다.”
“우리는 승리한다.”
“진짜…… 로봇이야?”
무표정한 얼굴부터 시작해서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는 말투까지.
앞서 풍부한 감정을 느꼈던 증강우나 마영후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각성자였다.
달리 검을 들고 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검을 활용하는 각성자는 아닌 듯했다.
“불청객을 죽이면.”
“주신 로케발 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신다.”
“아하, 그래서 왔구먼?”
왜 이런 수고를 마다않는가 싶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즉, 이 시련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조력자의 보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전장이고.
저들에게는 로케발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전장인 셈이다.
“좋아. 너희들도 마영후의 곁으로 보내 주지. 두 번째로 죽을 놈은 누구냐?”
나는 호기롭게 맞섰다.
EX랭크의 각성자로 보이는 둘.
결코 쉬운 전투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