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55
제 354화
110장. 파죽지세 – 3화
‘하나가 둘을 이길 순 없다.’
이는 전투에 돌입하면서 장공화와 황윤생이 처음 했던 생각이고.
‘역시 예상대로 무난하게 압살하겠군.’
이는 전투에 돌입한 지 2분 정도가 지났을 때, 둘이 자평했던 전황이었다.
하지만.
‘벽이…… 느껴진다.’
약 10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둘의 평가는 처음과 완전히 뒤집혔다.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장공화와 황윤생에 대한 적응을 마친 자레드가 대반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둘은 전형적인 근접 격투가 타입의 각성자였다.
특히 권법에 능했는데.
주먹을 이용한 공격 하나하나가 태산을 부수고 지축을 뒤흔들 만한 일격이었다.
문제는 자레드가 권격이 정확하게 닿을 거리를 절대로 내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황윤생이 몰이사냥을 하듯이 자레드의 동선을 억제하며 몰아붙여도, 그는 마법을 이용해 빠져나왔다.
애초에 블링크와 텔레포트를 현란하게 쓰는 자레드 앞에서는 포위 형태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게다가 어찌어찌 가깝게 접근하여 공격을 퍼부을라치면, 매우 두꺼운 역장으로 그 공격을 받아 냈다.
그것은 바로 데큐플 트랜센던스 퍼펙트 실드.
가까이서 시연을 지켜보았던 베르하드가 ‘통곡의 벽’이라고 부를 정도로 두껍고 단단한 방벽이었다.
장공화와 황윤생.
그들은 분명 EX랭크의 각성자로, 동방 대륙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실력자였다.
자신들보다 서열이 위에 존재하는 사람은 증강우 하나밖에 없을 만큼,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그들.
그래서 오만 방자했고, 자레드 ‘따위’는 문제도 안 된다고 얕보았는데…….
처한 현실은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공고한 벽을 만난 듯한 느낌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하악, 하악.”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는 둘의 몸 여기저기에는 이미 많은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특히 황윤생보다 자레드를 더욱 깔보았던 장공화의 부상 정도가 몇 배는 더 심했다.
자레드 역시 좀 더 빠르고 위압적인 공격을 펼친 장공화에게 조력자에게서 얻은 능력을 썼다.
빙염탄으로 재미를 많이 봤다.
앞뒤 재지 않고, 저돌적으로 접근하는 장공화에게 계속 빙결 상태를 유발시켰던 것이다.
한번 얼어붙은 신체 부위는 금세 녹아내리긴 했지만, 문제는 그 이후의 후유증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마비나 저림 정도에서 끝났던 빙결 현상이 어느 순간부터는.
조직의 괴사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피가 통하지 않고 그 위로 마법 대미지가 누적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투욱.
덜렁거리던 왼쪽 팔꿈치 아래가 마치 오래된 인형의 팔처럼 지면에 툭 떨어져 나가자.
“크아아아!”
장공화는 비명을 질렀다.
지금까지 각성자로 살면서 피 한 방울 제대로 흘려 본 적 없었던 그에게는 실로 대사건이었다.
“크하…….”
풀썩!
이어 힘이 쭉 빠진 장공화는 더 이상 서 있을 기력조차 없어졌는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자레드를 노린 전투만 집중했던 터라 황윤생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장공화는 이미 ‘열화의 힘’에도 두 번이나 당한 터라, 무릎 아래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입고 있던 슈트째 활활 불탄 무릎 아래는 오븐에 오랫동안 구운 고기를 보는 것 같을 정도였다.
“웨에에엑!”
탈진 상태에서 밀려오는 육체적 대미지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한 장공화가 토악질을 해 댔다.
몸이 꿀렁일 때마다, 검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장공화의 입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심각한 내상이었다.
‘세상의 모든 힘을 컨트롤하는 느낌이야. 어떻게 저런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거지?’
황윤생은 의아하기만 했다.
장공화가 마지막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던 것은 자레드에게서 바람 마법을 맞았을 때였다.
전투 내내 자레드가 몇 번이고 시전한 마법이라 눈에 익었고, 당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즉, 경로나 속도 예측이 가능한 마법이었다. 그 정도는 실력자인 그들에게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레드는 ‘바람길’ 능력을 이용해 마법의 후방에서 강력한 순풍을 유발시켰다.
그러는 바람에 가뜩이나 위력적인 초월 마법 위력이 데큐플,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해졌다.
문제는 방어자의 입장에서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던 장공화 쪽에서 역풍도 같이 유발한 것이다.
갑자기 누군가 등 뒤에서 거칠게 떠미는 듯한 느낌에 장공화는 중심을 잃고 앞으로 몸이 쏠렸다.
최악이었다.
역풍에 의해 무게중심이 무너진 몸. 그리고 거센 순풍에 의해 위력이 더욱 극대화된 마법까지.
원래의 대미지보다 2배, 3배가 될 수밖에 없는 형태의 공격에 장공화가 그만 당해 버렸다.
근방에 있던 황윤생이 장공화의 몸 안에서 뼈가 여럿 부러지는 소리를 들은 것은 결코 환청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두 번째로 죽을 사람이 정해진 것 같네.”
자레드가 여유롭게 웃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난 여유였다.
사실 전투에 돌입할 때만 해도 자레드도 상당히 긴장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이 세계에서 넷밖에 없다는 EX랭크의 각성자가 둘씩이나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색전을 치르며 한두 차례의 공격을 허용하면서 그들의 힘을 테스트해 보니.
자레드의 생각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은 분명 근접 공격에 완벽하게 특화된 각성자는 맞았다.
아마 어지간한 맷집이 아니면, 정말 눈먼 ‘한 방’에도 죽을 정도로 강력했다.
문제는 압도적인 한 방으로 너무 많은 적들을 손쉽게 압살해 왔다는 점이었다.
장공화와 황윤성의 전투 이력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자레드는 두 각성자의 시작점이 애초에 F랭크가 아니라 한참 위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즉, 밑바닥부터 착실하게 기본기를 다지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성장해 온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엄청난 힘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휘둘러 왔음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집요하게 거리두기를 했고, 공격할 기회를 잡지 못하더라도 근접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끄윽…….”
쿠웅!
결국 버텨낼 힘조차 사라진 장공화는 무릎을 꿇고서 차가운 지면에 얼굴을 박았다.
“생각보다 쉽네. 이쪽 세계에서 넷밖에 없는 EX랭크의 귀한 각성자라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자레드는 흘러내리는 구슬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
손쉽게 장공화를 처리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계속 마법을 쉴 새 없이 퍼부으며 회피 기동을 한 탓인지, 자레드의 몸도 금세라도 쓰러질 것처럼 무거웠다.
과도한 공간 이동 마법의 사용으로 인해, 신체에 누적된 피로감이 큰 탓이었다.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이제야 좀 사람처럼 말하는 것 같네? 처음에는 무슨 기계인 양 차갑고 쌀쌀맞게 말하더니만.”
“…….”
황윤생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을 얻은 건가?”
“뭘 어디서 그런 힘을 얻어? 착실하게 도전하고 시련을 겪으면서 키워 온 힘이지.”
“네가 가진 힘은 매우 깊고, 정교하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실력이 아니다.”
“아이쿠, 이제는 칭찬까지 해 주시는 거야? 몸 둘 바를 모르겠네. 근데 맞는 말이라서 인정.”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윤생은 정확하게 자신의 히스토리를 짚어 주었다.
그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힘을 기연처럼 얻은 것이 절대 아니었다.
의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던전과 시련에 도전해 착실하게 힘을 키워 왔다.
때로는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성장하기도 했고, 동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모든 지식과 경험들을 압축해서 바쁘게 보내 온 6년의 시간이었다. 단 하루도 편히 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 있었다.
그간 쌓아 올린 자신의 실력은 모래성 같은 ‘부실함’이 아니라 공든 탑 같은 ‘견고함’이기에.
“왜 우리를 적으로 두지?”
“얼빠진 소리를 하고 있네. 심판의 창을 만들어서 나스 대륙을 침공할 계획을 세운 건 너희야.”
“…….”
황윤생도 말해 놓고는 자신의 말이 앞뒤가 안 맞음을 느꼈는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자레드의 실력에 감탄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나온 헛소리였다.
“됐다. 시간 끌지 말고 덤벼라. 널 살려 두고 위로 올라갈 생각은 없어.”
“반드시 네놈을 죽이겠다.”
“전투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말이 참 소름 끼쳤는데. 이젠 간지러운 모기 소리 같아. 좋아. 덤벼 봐. 네 투지를 한번 보자.”
자레드가 여유로이 응했다.
허풍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었다.
증강우가 이들보다 얼마나 더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황윤생만큼은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그것은 오랜 전투로 다져진 직감이자 본능이었다. 승리의 냄새를 맡는 동물적인 감각이랄까?
“X 까, 이 새끼야……!”
“그래, 그래야 인간미가 물씬 느껴지지. 좋아. 간다!”
그렇게 자레드와 황윤생은 재격돌했다. 싸늘하게 식어 버린 장공화의 시체를 가운데에 둔 채로.
* * *
‘생각보다 내가 정말 많이 강하구나. 새삼스럽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느낌이네.’
황윤생과 전투를 치르면서 생각했다.
사실 처음 동방 대륙에 왔을 때만 해도 나스 대륙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현대화된 모습과.
‘각성자’라고 불리는 능력자들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보면서 긴장했었다.
물론 승리에 대한 투지와 자신감은 항상 있었지만, 적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어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전투를 치러 가면서 많은 것이 명확해졌다.
비록 문명의 수준은 동방 대륙이 훨씬 높을지언정, 실력자들의 ‘힘’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특히 내가 보유한 다양한 마법은 이 세계의 각성자들로 하여금 고전을 면치 못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었다.
그것은 앞서 목숨을 잃은 마영후와 장공화는 물론이고, 황윤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허억, 허억, 하악…….”
“집요한 공격에는 장사가 없지.”
“움직임이…… 너무 빠르군.”
적의 입으로 실력을 확실하게 인정받는다는 것. 그만큼 내가 잘 싸웠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나는 역가속 능력을 이용해서 황윤생보다 상대적인 시간의 우위를 점했다.
내게는 황윤생이 느려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눈에는 내가 전보다 훨씬 빨라진 것처럼 보일 터.
작정하고 헤이스트로 가속하면 더 빨라지는 나이기에 제대로 추적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일단 조력자의 보상으로 얻은 능력의 활용법은 확실하게 익힌 듯하네.’
예행연습은 충분히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황윤생과의 전투를 마무리하고, 남아 있는 시련의 세 층계를 격파하는 것뿐이다.
물론 쉽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시련이라는 이름이 붙지도 않았겠지.
“하아. 하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황윤생의 두 다리는 처음과는 달리 심하게 절고 있었다.
기동성이 생명인 근접 각성자가 다리의 힘을 잃었으니, 심각한 약점이 된 것은 자명한 사실.
“끝내자.”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헬파이어.
거기에다 최상급 화염의 정령을 불러내어 만들어 내는 극강의 하모니였다.
도망치기에는 늦었고.
그냥 죽기에는 자신의 최후가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 개XX야……!”
황윤생은 악에 받친 괴성을 내지르더니, 두 다리를 어떻게든 끌며 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