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74
제 373화
117장. 필멸자 바르가스 – 2화
우리가 강남대로에 도착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신태풍의 경험으로만 가 본 적이 있는 강남대로에 한 번에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억과 경험들은 하나의 영혼을 두고 연동이 되는 건지 자연스럽게 승계가 됐다.
덕분에 나와 헤이즈는 어제까지만 해도 젊음의 거리였을 이곳 번화가에 곧바로 닿을 수 있었다.
“쿠아아아!”
“여기도 상황이 심각하네.”
“그런 것 같아요. 벌써 저쪽은 폐허가…….”
헤이즈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공교롭게도 도착한 시점에 일반인으로 보이는 세 남녀가 반 토막이 난 채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물로 따지면 한 5층 높이 정도 되는 괴수의 흉포한 몸놀림과 거친 공격 때문에.
주변 건물의 저층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괴수가 만들어 내는 강풍에 창문들은 와장창 깨졌고, 이에 휘말린 사람들이 속절없이 추락했다.
탕! 타탕! 타타탕!
여기도 다른 곳과 크게 다를 것 없이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권총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물론 효과는 없었다.
애초에 신장 2m의 괴수에게도 안 먹힌 총알이 이런 녀석에게 먹힐 리 만무했으니까.
서거걱!
“끄아!”
“크허!”
괜히 애꿎은 경찰 두 명만 호기롭게 달려들었다가 역시 몸이 반으로 갈라져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헤이즈, 일단 부상자들부터 구해 올게. 대부분 대피한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사람들이 보여.”
나는 전방 여기저기에 보이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중에는 어린아이도 있었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할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단지 전투에만 집중하기에는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인명들이 많았다.
“네, 저도 치유술이 닿는 범위까지 전력으로 치료하겠어요.”
헤이즈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사방으로 치유의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눈처럼 내리는 백색의 기운이 바로 헤이즈가 만들어 낸 치유의 힘이었다.
“아아아…….”
“이건 도대체 뭐지? 찢어진 상처가 아물고 있어.”
영문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신비한 치유술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사이.
“이제 괜찮아요. 두 분을 구하러 왔어요.”
나는 손자를 꼭 끌어안고 있던 할머니와 아이를 구출했다.
플라이의 가속과 감속을 적절하게 병행하면서 스트랭스를 이용해 두 사람을 가볍게 안았다.
“저,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꼼짝없이 저 괴물에게 죽는 줄 알았는데…….”
“형! 형은 누구예요?”
품에 안긴 할머니가 감사의 말을 전하자, 아이는 신기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범벅이 된 할머니와 달리, 이 아이는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조금 현실감이 없는 꿈으로 받아들이는 게 훨씬 낫다.
“형? 슈퍼 히어로?”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어 대충 둘러댔다.
“와, 아이언맨! 슈퍼맨! 그런 거예요?”
“응, 맞아.”
의식의 흐름대로 말했더니 헛소리가 나왔지만, 달리 고쳐 주지는 않았다.
“할머니, 저쪽에 내려 드릴 테니 뒤도 돌아보지 마시고 최대한 멀리 피하세요.”
“……괜찮을까요?”
“제가 할머니와 아이를 못 건드리게 저 괴물을 막을 겁니다.”
“아아…….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괜찮아요, 그건.”
쉬이이이!
나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 헤이즈의 옆에 두 사람을 내려 줬다.
그러자 헤이즈가 환한 얼굴로 두 사람을 껴안으며, 자연스럽게 치유술을 전개했다.
단순한 치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공포나 두려움도 함께 걷어 내는 고도의 치유술이었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두 사람은 빠르게 충격을 털어 내고, 현장을 벗어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헤이즈, 부탁해.”
“맡겨 주세요.”
든든하다.
이미 강남대로 전체는 헤이즈가 전개한 치유술의 기운으로 한가득했다.
어림짐작으로만 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 혜택을 톡톡히 보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전방의 괴수를 응시했다.
아까 괴수들을 상대할 때 이미 학습했지만, 놈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공격의 ‘높이’였다.
신체 구조상의 특이점 때문인지 양팔을 어깨 위로 올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물론 어깨와 수평을 긋는 선 아래로 펼치는 공격은 가히 파괴적이었지만.
그 위로는 공격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 허리를 뒤로 젖히거나 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 보였다.
나름대로 고안한 약점 보완법이겠지만.
늘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내서 노리는 것이 일상화된 내게는 노림수를 펼치기 좋은 상황이었다.
‘너무 강력한 대단위 마법은 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휘말릴 수 있어.’
냉정하게 계산했다.
이곳은 마법을 아무렇게나 난사해도 되는 던전이나 오픈형 필드가 아니다.
마법 하나라도 잘못해서 빗겨 나가는 순간, 죄 없는 사람들이 줄줄이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핀셋’처럼 타깃만 딱딱 집어내서 제거할 수 있는 마법을 시전할 필요가 있었다.
‘좋아, 그걸로 가자.’
결정은 났다.
수백, 수천 개의 마법 조합 중에서 가장 즉발성이 높으면서도 녀석에게 취약할 마법을 골랐다.
그리고.
우웅. 우웅. 우웅.
바로 집중에 들어갔다.
나를 수많은 일반인들 중 하나로 보고 있는 괴수 녀석은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제 놈들은 내 모습을 두 눈에 꼭 담아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내 고향, 지구.
아무도 그 모든 것을 함부로 파괴하고 해칠 수는 없다.
* * *
그 시각.
“안녕하십니까! 현장에 출동한 김세현 기자입니다!
강남대로 한복판에 나타난 괴수의 힘은 매우 위력적입니다! 벌써 인근 역사와 저층 빌딩이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입니다!
긴급하게 투입된 경찰들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철수하고 있으며, 민간인 대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군 병력의 도착은 아직입니다!”
TV에서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전국 이곳저곳에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곳부터 보도가 되는 식이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부산역’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현지 소식 보도가 지연되고 있었다.
어쨌든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속보를 예의 주시하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자레드가 만들어 놓고 간 퍼펙트 실드 마법진 안에 있던 신욱철과 신유희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정말 세상의 종말이라도 찾아오는 것인가.”
“……당장에 내일 출근부터가 걱정이에요. 강남역을 지나가야 하는데 저렇게 되면…….”
“인석아, 지금 출근이 문제더냐? 귀한 목숨 어디 내다 버릴 일 있어?”
“너무 충격을 받아서 현실감이 없어진 것 같아요.”
신유희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이 남긴 감정의 흔적이었다.
동시에 이 상황이 제발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간절함의 눈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속보로 보도되는 내용의 태반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군과 경찰의 소식들뿐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아아! 저게 무엇이죠?”
현장 속보를 전하던 기자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하더니, 한 블록 옆으로 가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기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높은 하늘 위에서 하얀 무언가가 번쩍이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현장과 달리 높고 청명한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잔뜩 끼는 중이었다.
“번개? 무엇일까요?
아아……! 설마 또 다른 재앙의 현신일까요?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도망쳐야 합니까?”
기자는 대답을 들을 길 없는 질문을 던지며,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현장 속보 전달에 적합한 태도는 아니었지만, 그런 모습이 역설적으로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속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화면 속 하늘의 먹구름을 유심히 살폈다.
제발 재앙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보란 듯이 괴수의 머리 위 상공에 뭉쳐지고 있는 먹구름은 절대 좋은 조짐으로는 안 보였다.
바로 그때.
“저, 저기! 유희야! 저거 우리 태풍이 아니냐?”
신욱철이 화면 속 7층 빌딩의 옥상에서 하늘을 향해 양손을 펼치고 있는 한 사람을 가리켰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작게 보이는 자레드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역시 가족은 달랐다.
“어? 진짜 오빠네?”
신유희도 바로 자레드를 알아봤다. 비록 외모와 이름이 모두 달라진 오빠였지만 그래도 알아봤다.
“클로즈업! 클로즈업! 저기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기자도 뒤늦게 자레드를 발견하고는 카메라맨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현장에 출동한 두 대의 카메라가 각각 괴수와 자레드의 모습을 단숨에 담았다.
모두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와중에도 의연하게 맞서고 있는 한 남자.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다음 순간.
빠지지직!
“우와아아앗!”
TV 속보를 지켜보던 수만, 아니 수십만 시청자를 경악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화면 속에 자레드의 모습이 잡힘과 동시에 그가 전력을 다해 하늘로 마력을 방출했던 것이다.
썬더 스트로크 마법의 전개였다.
꽈과과과광!
시전과 동시에 하늘에서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며 떨어진 고압 전류는 그대로 괴수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곧바로 우레와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누가 봐도 번개가 괴수를 강타한 형국이었다.
하지만.
“아아…….”
내심 뭔가가 일어나길 기대했던 기자는 허탈함이 잔뜩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괴수의 몸은 너무나 멀쩡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화면에 잡힌 괴수의 얼굴에는 이 상황을 비웃는 듯한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스윽. 스윽.
마치 카메라의 존재를 알기라도 하듯 녀석은 카메라가 있는 쪽을 향해 검지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 순간.
지켜보던 사람들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 본연의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재앙.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불가항력적인 그것에 대해 느끼는 무기력함이었다.
“으드드드…….”
기자는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이와 입술을 부딪쳐 가며 두려움에 떨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바로 그때.
“으욱?”
갑자기 괴수의 표정이 변했다.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전신에 경련이 일어난 듯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동시에 옥상에서 훌쩍 뛰어올라 공중을 유영하기 시작한 자레드의 인영이 괴수에게로 향했다.
인간 한 명이 자신을 향해 유유히 날아오고 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괴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카메라와 시청자의 시선이 오직 한 사람에게로 쏠렸다.
혼란과 아비규환의 장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괴수에게 다가가고 있는 사람.
그것도 상식의 범주를 아득하게 뛰어넘어 하늘을 ‘날고’ 있는 사람!
“으우욱, 우욱.”
괴수는 자레드를 보고서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어느새 자레드는 괴수의 얼굴 앞에 섰다.
그리고.
스윽. 스윽.
앞서 녀석이 그랬듯 검지를 좌우로 흔들더니 괴수의 양미간을 툭 건드렸다.
다음 순간.
쩌어억!
“아아!”
시청자들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과도 같았던 괴수가 반 토막이 나 무너지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