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75
제 374화
117장. 필멸자 바르가스 – 3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촬영하고 있는 방송국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의식하고 이런 퍼포먼스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마법에 약하다.’
내가 느낀 것은 이놈들이 생각 이상으로 마법에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현대식 무기에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대응 능력을 보여 줬지만.
마법에는 생각한 것 이상의 추가 대미지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강남대로 쪽 정리는 금세 끝났다.
상공으로 훌쩍 날아올라 주변을 살펴보니 다행히 동족으로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괴수는 한두 군데 나타난 것이 아닐 테니 나름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하나고, 적은 여럿이니까. 이럴 때는 모두 다 구하려고 하면 되레 모두 다 잃는다.
가장 위험한 곳부터 가는 것이 정답이다. 예전 성마 대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바로 기자와 카메라맨을 향해 날아갔다. 지금 가장 소식이 빠른 것은 방송 관계자일 테니까.
휘이이이!
“어엇!”
순식간에 일진광풍을 일으키며 접근하자, 기자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뭘 놀라고 그래요?”
“으아? 한국어도 유창하게 하시는 겁니까? 미국…… 인?”
“그게 중요한가요?”
특종을 잡으러 목숨을 걸고 나온 신입 기자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두서없는 질문을 던질 리가 없을 테니.
어쨌든 덕분에 방송은 확실하게 탈 듯했다. 굳이 내 존재를 숨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단, 나를 이용하려고 하거나 필요 이상의 간섭을 하는 것은 절대 사절하고 싶다.
아마도 오늘 이후로 내 존재와 능력이 알려지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텐데.
그중에는 분명 ‘높으신 분’이라고 불리는 존재들도 제법 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저기 잠시라도 인터뷰를…….”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말해 주세요. 지금 이 녀석보다 더한 괴수가 나타난 곳이 있습니까?”
“예?”
“제보나 신고가 들어온 곳 중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알려 달라는 얘기입니다!”
채근하듯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이 계획에 없던 재앙, 재난을 맞이한 일반인들의 흔한 반응이다.
너무 사태가 심각한 나머지 머리를 어떻게 굴리고 판단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아, 네! 네!”
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기자는 데스크와 연결된 마이크를 이용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전부 방송을 타고 있을 것이다.
“폐…….”
“폐하 말고.”
“아, 오빠. 괜찮아요?”
그사이, 내 옆에 도착한 헤이즈가 습관적으로 나를 부르려다가 급히 바꿔 불렀다.
이 세계의 뉴스, 촬영 시스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헤이즈는 자연스럽게 나와 팔짱을 꼈다.
그리고 생채기가 난 팔꿈치 쪽에 치유술을 부여하며, 치료를 했다.
아마 지금 이 순간부터 SNS에서는 나와 헤이즈의 모습이 열심히 도배되기 시작할 것이다.
강남대로의 영웅이니 어쩌니 하는 수식어들로 가득 채워지겠지.
현대 문명이란 그렇다.
정보의 전달에 시간이 걸리는 나스 대륙과 달리 지구는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이뤄진다.
“찾았습니다!”
“어디에요?”
“부산역 인근입니다! 무려 35m에 달하는 거대 괴수가 나타났다고 합…….”
정보원으로서 기자의 역할은 여기까지면 됐다.
나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헤이즈의 손을 꼭 붙잡고, 바로 텔레포트를 전개했다.
목적지는 부산역.
더 큰 문제와 마주할 시간이다.
* * *
[특수 퀘스트 : 필멸자 바르가스를 처단하라.] [퀘스트 내용 : 아칼루스 종족의 필멸자라고 불리는 투장 바르가스를 제거하고 ‘차원 침공’에 대한 단서를 얻으십시오.]부산역에 도착한 나를 반긴 것은 그 즉시 활성화된 별도의 퀘스트창이었다.
퀘스트라는 이름으로 발동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사안과 마주했음을 뜻한다.
‘결국 이 상황도 신과 신이 얽힌 갈등의 장이라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의 세계관이 아니다. 그저 내가 살던 지구일 뿐.
하지만 게임의 시스템과 유사한 ‘퀘스트’가 적용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조력을 받는다는 뜻이다.
일단 깊게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뭐가 어떻게 엮였는지는 차차 알아 가면 될 문제니까.
“아아…….”
“최악이네, 진짜.”
나는 이미 완전히 박살이 나 버린 부산역 역사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부, 산, 역이라는 세 글자로 쪼개어져 떨어진 글자의 흔적이 없었다면 사실 역인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
폐허가 된 역사 주변에는 온통 핏물들이 가득했다.
이미 바르가스에게 희생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 수가 얼마인지, 어떻게 죽었는지를 곱씹는 것은 무의미했다. 이미 상황은 벌어진 후이니까.
“헤이즈, 이번에도 똑같이 역할 분담을 하자. 일단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전력으로 구해 줘.”
“알겠어요.”
“타트라 넥스로 보조할까?”
“아니에요. 출력을 잘못 관리하면 사람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아요. 열풍이라든가.”
“하긴. 내가 계속 시야에 두고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인명 구출에만 힘써 줘.”
“네, 알겠어요.”
파앗!
순식간에 헤이즈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동에 특화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치유사로서 성장을 거듭하면서 신체적인 스펙도 몇 차례나 성장한 그녀였다.
그래서 단거리 육상 선수의 수준 정도는 아득히 뛰어넘는 기동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구 사람들이 보면, 그 즉시 초인이라고 오해할 만한 능력이다.
물론 나스 대륙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조금 특별한’ 정도의 능력이지만 말이다.
[필멸자 바르가스]앞서 상대했던 ‘이름 없는’ 괴수들과 달리, 놈에게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죽이기 녹록지 않은 어려운 놈이라는 뜻도 된다.
장담컨대 이런 녀석은 절대 군경으로는 못 막는다. 한 트럭? 아니, 열 트럭이 와도 못 막는다.
“…….”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마음 같아서는 대단위 광역 마법을 마구 쏟아붓고 싶었지만.
무너진 부산역 건물 아래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었다. 가능성은 존재한다.
‘차라리 부두 쪽으로 유인하는 게 낫겠어. 공터도 제법 있고.’
빠르게 장소를 찾았다.
괜히 녀석이 여기서 날뛰다가 건물의 잔여물이라도 밟게 되면, 생존자도 죽는 참사가 벌어진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들의 목숨을 하찮게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바로 놈을 향해 외쳤다.
“바르가스, 여기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놈이 나타났군. 어떻게 우리 비카르나 행성의 언어를 할 줄 알지?”
“통역 마법이다, 이 XX야.”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긴 했어도, 바르가스가 주는 위압감은 실로 엄청났다.
35m.
내 키의 19배에 달하는 바르가스는 나스 대륙에서도 상대해 본 적 없는 초대형 몬스터였다.
파샤샤샤샤!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바로 데큐플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로 전투의 포문을 열었다.
목적은 단 하나.
놈을 계속 귀찮게 해 주의와 시선을 완전히 내게로만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녀석을 요리하는 건 그다음이다.
* * *
그 시각.
“이건 말도 안 돼…….”
젊은 청년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TV 속보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지하.
눅눅한 습기로 가득한 방이었지만, 그래도 꿈 하나만큼은 가득 차 있는 방.
막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와 점주가 선심 쓰듯 건넨 폐기 삼각김밥을 뜯고 있던 참이었다.
“해운대역 현장입니다! 이족 보행을 하는 정체불명의 괴수가 나타나 시민들을 마구 학살하고…….”
모든 채널이 온통 괴수의 등장을 알리는 속보로 가득했다.
문제는 이 괴수의 모습이 청년에게는 전혀 생소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청년은 다급하게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공책을 꺼내 들었다.
매번 생각나는 이미지들을 그려 넣은 공책에는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 해운대역 일대를 마구 활보하고 다니는 괴수의 모습이 자신이 그린 그림과 똑같았다.
[비카르나 행성] [서부 자유 지역 거주] [아칼루스 종족, 호전적] [보급형 몬스터 모델 01]나타난 괴수의 모습과 쏙 빼닮은 그림과 함께 이와 같은 설명이 아래에 적혀 있었다.
그가 소설 속에서 구상했던 이미지를 그린 다음, 적어 놓은 내용이었다.
소설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TV 속 화면은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된 현장이었고, 하필이면 비극이었다.
“아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청년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한데 바로 그때.
“강남대로에 나타났던 정체불명의 영웅들이 방금 부산역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입니다!
여성은 전장을 누비고 다니면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고, 남성은 끊임없이 교전 중입니다!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현대식 중화기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 괴수에게 남성이 가하는 공격은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강남대로의 대형 괴수가 그렇게 퇴치되었으며, 지금 막 부산역 일대에서 교전이 시작됐습니다.
과연…… 그는 누구이고, 어떤 능력을 가진 존재이며, 지금과 같은 참담한 상황에 과연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을까요?”
“저건 마법이잖아.”
화면 속 남자가 펼치고 있는 것은 화려하면서도 강력한 마법이었다.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마법이었다.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 속에서만 존재하는 마법을 현실에서 보니 신기했다.
그 순간.
청년은 지금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설명했을 때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남자가 유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의 이끌림.
청년은 무언가에 홀린 듯, 자신이 쓴 소설이 담긴 USB와 연습장을 챙겼다.
그리고 애지중지하며 아껴서 먹어야 할 삼각김밥을 내동댕이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부산역 인근까지 갈 수 있는 택시를 잡기 위해 대로로 내달렸다.
그간 아껴 모은 돈을 단번에 택시비로 날릴 판이었지만 지금 그런 건 머릿속에 없었다.
그때, 뉴스 속보를 뒤늦게 접하고 편의점 문을 황급히 닫으려던 점주가 청년을 발견했다.
“어? 도혁아, 어디 가? 퇴근하고 집에 간 녀석이 갑자기 뭘 이리 부산하게 뛰어?”
“나중에! 나중에 말할게요!”
“도혁아! 지금은 밖으로 나다니면 안 돼! 괴수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단 말이다!”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야! 도혁아! 박도혁!”
점주가 애타게 불렀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황급히 택시 승강장으로 달려가는 청년.
그의 이름은 박도혁이었다.
* * *
‘빌어먹을, 아이언 골렘의 상위 호환 버전인가. X 같군.’
탐색전 차원에서 바르가스의 공격을 두 번 받아 낸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죽을 뻔했던 것이다.
전신을 강철로 무장한 바르가스는 단단한 외형과 더불어 특징이 하나 더 있었다.
위이이잉.
그것은 황금색 빛으로 몸 전체를 두른 ‘무적’의 역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