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76
제 375화
118장. 또다시, 박도혁 – 1화
‘영원한 건 없어.’
이것은 내 지론이다.
무적, 불멸.
이런 수식어를 많이들 사용하지만, 정말 그 단어의 뜻대로 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
분명 바르가스의 전신을 둘러싼 역장은 내가 퍼붓는 마법 대미지를 완벽하게 무력화시켰다.
감소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대미지가 들어가질 않았다.
그나마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마법 자체가 가진 대미지를 제외한 ‘상태 이상’이었다.
이를테면 마법에 타격을 당할 때, 몸이 경직되거나 뒤로 밀려나거나 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았다.
대미지 ‘제로’의 공격을 계속 퍼부으면서 바르가스의 시선을 유도했고, 놈은 잘 따라왔다.
파리 목숨처럼 죽어 나가던 힘없는 인간들보다는 나를 상대하는 데 재미가 들린 눈치였다.
“너는 이 문명의 인간인가?”
“알아서 뭐하게?”
“좋은 전사 같아 보이는군. 우리 비카르나 행성으로 간다면 쓸 만한 용사가 될 수 있겠다.”
“누가 간대?”
“맞아. 너는 간다고 하지 않았지. 하지만 나는 생각을 굳혔다. 너는 좋은 실험체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바르가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편으로는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와 헤이즈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버지와 유희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정말 많은 인명이 희생됐을 것이다.
‘선발대’ 개념으로 지구에 강하한 이놈들을 전부 막아 낼 수 있기는 할까 싶기도 했다.
쿠웅! 콰아앙! 콰쾅!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 바르가스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마법이 채 닿기도 전에 역장에 막혀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광경은 씁쓸했다.
내 표정은 분명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담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예리하게 모든 것을 훑고 있었다.
위장이었다.
무적의 역장만 믿고 자만에 빠진 바르가스에게 필요 이상의 자신감을 심어 주며 그가 보일 빈틈을 노렸다.
바로 그때.
‘역시.’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약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공법 형태의 원거리 마법 공격은 바르가스에게 통할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
확률 0%라는 얘기다.
하지만 몇 번의 교전에서 우연을 가장해 시도한 하나의 작은 노림수가 통했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발견한 바르가스의 빈틈이었다.
‘역시 영원한 건 없다니까.’
확신을 얻으니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강해졌다.
하지만 갑자기 공세로 전환하면 바르가스도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게 될 수도 있는 만큼.
나는 계속 부두 쪽으로 바르가스를 유인하며, 놈이 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길 기다렸다.
“하여간 꼭 입만 살아 있는 놈들이 있어요. 지금 나 하나도 못 죽이는 놈이 무슨 실험체 운운이야? 포로로 잡고나 말해, XX야.”
욕설도 아끼지 않았다.
통역 마법을 통해 녀석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욕설로 알아서 전달될 테니 걱정은 없었다.
“벌레 같은 놈!”
“벌레도 못 잡는 주제에 벌레 타령은 무슨.”
“흐아아앗!”
겁이나 두려움은 진즉에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을 녀석의 자신감이 폭발했다.
아니, 바꿔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리가 모기를 귀찮아하고 어떻게 잡을까 고민은 할지언정, 모기에게 죽을까 봐 걱정하지는 않지 않는가?
바르가스도 마찬가지였다.
내 손에 ‘죽는다’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는 아예 없는 미래였고,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하필이면 시도하는 공격 자세도 마치 모기를 잡듯 양쪽 손뼉을 쳐서 잡을 기세였다.
별것 아닌 동작처럼 보이지만, 걸려들게 되면 나라고 해도 압사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파아앗!
나는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면서 움직이던 패턴에 급반전을 주면서 바르가스에게 빠르게 쇄도했다.
그리고 정확히 바르가스의 왼쪽 가슴에 밀착했고, 내 몸을 퍼펙트 실드로 둘러쌌다.
스르륵.
그러자 바르가스의 몸을 두르고 있던 무적의 역장 안으로 몸이 살짝 들어갔다.
그랬다.
바르가스의 역장은 애초에 강철 형태의 외관을 무적으로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외관에서부터 2㎜ 정도 간극을 두고, 그 지점을 ‘막’으로 둘러싼 형태였던 것이다.
‘제발.’
나는 바르가스가 딱 1초만.
현재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자신의 약점이 간파되었다는 것을 알면 즉각 회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귀찮은 놈!”
다행히 바르가스의 대응은 단순했다. 놈은 물러서지 않았고 달라붙은 나를 벌레 잡듯 눌러 죽이려고 했다.
스르륵.
2㎜의 틈새를 파고들어 간 내 손바닥이 보인다.
그것은 분명 외부 역장이 아닌 바르가스의 몸체와 완벽하게 닿아 있었다. 직접적인 접촉이다.
후우우웅!
등 뒤에서 호선을 그리면서 날아들 바르가스의 손바닥이 느껴진다. 정확히는 손바닥이 만들어 낸 바람이 먼저 불어오고 있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어스 퀘이크(Earth Quake).’
내가 선택한 것은 지면에 지진을 유발시키는 마법인 어스 퀘이크였다.
말 그대로 지진 마법이다.
보통은 지면에다가 이 마법을 사용하지만, 대상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인체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 마법이나 바르가스처럼 금속과 결합된 형태일 때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파앙!
쩌어어억!
마법 시전과 결과 확인은 동시에 이뤄졌다.
어스 퀘이크 마법을 심장에 대고 시전하는 순간!
눕힌 손바닥도 충분히 들어갈 만큼의 굵은 균열의 가지가 바르가스의 전신으로 뻗어 나간 것이다.
특히 가장 맹렬한 속도로 수직 상승한 균열은 바르가스의 얼굴을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 버렸다.
마치 잘 쪼개진 수박을 보는 것처럼 눈과 코, 귀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커컥, 컥, 꺼걱…….”
“좋은 실험체 같아 보이네. 우리 나스 대륙으로 가져가면 사비오가 아주 좋아하겠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바르가스와 달리, 나는 녀석이 했던 말을 여유로이 돌려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조각과 같은 단편이지만 걱정도 살짝 들었다.
훗날 이런 녀석이 하나가 아닌 여럿, 아니 셀 수도 없이 많은 수가 나타난다면…….
지금처럼 노림수를 가지고 녀석의 핵심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망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이, 이렇게 내, 내가…….”
“죽기 전 악당들이 남기는 전용 멘트 같은 거 지껄이지 말고 빨리 저승으로나 가라.”
파앙!
더 얘기를 나눌 것도 없이 바르가스의 머리 한가운데를 향해 윈드 스피어를 날렸다.
이미 쪼개져 있던 터라 그런지 바람의 창이 스쳐 지나가자, 머리가 깔끔하게 분리됐다.
“하여간 유세는.”
방금까지 붉게 빛나던 바르가스의 눈이 검게 물든 것으로만 봐도 그의 죽음은 확실해 보였다.
[특수 퀘스트 ‘필멸자 바르가스를 처단하라’를 완수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즉시 ‘초월의 돌’이 주어집니다.초월의 돌에 적힌 툴팁과 내용을 통해서 알려지지 않은 적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초월의 돌이라…….”
지면에 떨어진 오색영롱한 빛깔의 돌을 주워 들었다.
돌만 놓고 보면 세상의 진귀한 보석처럼 느껴질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초월의 돌] [해당 돌을 매개체로 삼아 공간을 워프, ‘비카르나 행성’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비카르나 행성은 ‘강철의 존재’라고 불리는 비카샤 종족이 서부에 거주하고 있고.
동부에는 아칼루스 종족이라고 불리는 매우 호전적인 거인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비카샤 종족과 아칼루스 종족은 생김새가 전혀 다르지만, 하나의 깃발 아래 똘똘 뭉쳐 있습니다.
또한 비카르나 행성의 왕인 ‘크메르주’는 지구의 풍부한 광석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차원계의 군단보다 앞서서 선발을 자처하며 우선적으로 군단을 보낸 이유입니다.]
다음 순간.
피핏. 핏.
무의식적으로 올려다본 하늘에서 붉은 점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비카르나 행성] [차원계에 대한 인지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해당 행성은 초월의 돌을 이용해 이동 가능합니다.]“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욕설이 터져 나왔다.
성마 대전과 차원 대전을 넘어서 이제는 뭐…… 우주 전쟁이라도 하라는 건가?
“텄네, 텄어.”
가족과의 행복한 상봉은 둘째 치고 나는 고생길이 열렸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 고생길이기도 하고, 앞으로 지구의 문명이 마주해야 할 고생길이기도 했다.
오늘의 일은 그저 예고편에 불과했다.
그것도 아주 충격적이면서 잔혹한 예고.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
“저기요! 저기요!”
등 뒤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헤이즈는 아니었다.
그녀는 부산역 일대에서 여전히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었으니까.
아직 누가 날 부르는 건지 보이지 않은데, 왠지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왜일까?
“……아?”
나를 부르던 사람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탄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예상에 없었던, 아니 언젠가 만나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지금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도혁……?”
“에? 제 이름을 아세요?”
“아, 그게……. 어쩌다 보니?”
둘러댈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대충 얼버무렸다.
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영락없는 박도혁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동방 대륙에서 조력자로서 만났던 박도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즉, 평행 세계의 다른 지구에서 삶을 살고 있는 박도혁인 것이다.
박도혁이 살았던 지구에 재무 설계사로서 곁에 있었다는, 또 다른 ‘신태풍’처럼 말이다.
우연한 만남일 것이다.
박도혁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봤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내가 사는 지구의 박도혁은 ‘조력자’가 아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내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미안해요.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서.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요.”
적당하게 말을 끊고, 헤이즈가 있는 동쪽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그때.
“잠깐만요! 저기요!”
“……?”
“제 소설! 제 소설이 현실이 됐어요! 당신은 뭔가 알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요?”
“뭐라고요?”
“소설이 현실이 됐다고요!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이에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의 세상에 환생했던 것처럼.
이제는 박도혁의 ‘소설’이 현실의 한 모퉁이에서 연결점을 만들려는 것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어요?”
“여기 제 소설이 담긴 USB 파일과 혼자서 그린 삽화! 다 챙겨 왔어요! 전부 다!”
“만약 소설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 맞는다면, 공략집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겠죠?”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소설을 읽지 않아도 그 안에 차원계의 이야기가 담겼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터닝 포인트.
지구가 유례없는 불행을 맞이한 가운데, 그나마 반격의 시작점을 만들 기회가 생긴 듯하다.
다만.
이번 일은 동방 대륙 때와 달리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