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8
제 38화
15장. 방심은 금물 – 1화
[퀘스트 ‘첫 영지전 승리’를 활성화하였습니다. 공식적으로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영주를 제거할 경우,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보상으로 매력 50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상으로 영지의 내정 최대치가 별도의 요구 사항 없이 50% 상승합니다.]어둠 속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나는 퀘스트 하나를 활성화했다.
이번이 첫 영지전인 만큼, 그에 맞는 퀘스트를 미리 선택해 두었던 것이다.
보상이 꽤 괜찮은 퀘스트였다.
인재 등용과 외교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력의 상승은 물론이고, 영지의 내정 최대치를 올려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내정 최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100% 내정 수치를 달성하고 조정 기간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 퀘스트를 이용하면,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한계치를 높여 줄 수 있었다.
현재 우리 영지는 선순환의 과정에 접어들어 꾸준히 내정도가 상승하고 있었기에, 이런 식의 빠른 확장은 매우 중요했다.
“…….”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는 상태였다.
샛길에 함께 매복한 병사들은 미리 파 놓은 땅굴에 들어간 뒤, 낙엽과 나무 조각을 이용해 완벽하게 위장하고 있었다.
아직 새벽바람이 찬 탓에 온몸이 시렸지만, 불편하고 힘든 내색을 하는 병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한편 우리 영지로 들어오는 대로에는 라키스를 포함한 500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또한 영지 내에 있는 모든 군기를 수집하여, 그곳에 모두 꽂아 두었다.
총원은 500명에 불과하지만, 더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확실하게 우리가 고지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지리적 이점을 사전에 선점하고 있는 상황.
내가 적이라면 십중팔구 정면 승부를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방어 진지는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 영지는 전쟁이라는 두 글자를 머릿속에 완전히 지워 버린 듯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특히 라키스의 지시 아래, 이웃 영지의 접경지에 있는 병사들은 평소보다 더 허술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진탕 술을 퍼마시기까지 했고, 경계를 빼먹고 잠을 자기도 했다. 물론 내가 허락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리 파견해 놓았던 정찰대가 마요르카–로넬라 영지 연합군의 움직임을 포착하자마자!
모두가 질서정연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바로 다음 상황을 대비했다. 약속된 움직임이었다.
그것이 지금이었다.
이미 군사를 일으킨 마당이라 연합군 입장에서도 병력은 쉽게 물릴 수는 없을 터.
수적 우위가 확실한 만큼!
설령 들켰다고 하더라도 밀어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경험으로 말미암아 추측하건대 99.9% 확신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자리에 유망주들은 데려오지 않았다.
아직 전쟁을 치르기에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와도 같은 아이들이었으니까.
함께 참전하겠다며 바짓가랑이를 잡던 헤이즈도 떼어 놓고 왔다.
대신 후방에서 대기하며 부상병들을 후송할 경우, 집중 치유에 힘쓰라고 당부해 두었다.
헤어지기 전에 헤이즈가 남겼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영주님! 왜 중요한 전쟁에 저를 안 데려가시는 거죠?”
“네 능력은 분명 소중하고 귀한 능력이야. 그래서 널 잃고 싶지 않아. 전장은 딱 한 번의 실수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야.”
“절 잃고 싶지 않으시다고요? 영주님, 감동했어요! 저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 주실 줄은……. 부끄러워요, 영주님!”
확실히 헤이즈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남의 말을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굳이 고쳐 주지는 않았다.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이 죽는 걸 바라는 사람도 있어? 당연히 잃고 싶지 않지!”
“이해해요, 영주님 마음을! 눈물 흘리지 않을게요!”
“아무튼 군소리하지 말고 대기하고 있어! 부상병이 오면 네가 할 일이 많아질 거야. 그때 우는소리 내면서 힘들다고 하지 말고, 바로 준비해.”
“알겠어요, 영주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게요! 간이 병동이라도 차려 둘까요?”
“그 부분은 전부 위임할 테니, 꼼꼼히 준비하도록 해. 리스트 가지고 있지? 지난번에 비상시에 의료진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영지민들 파악해 둔 것.”
“네, 있어요. 맡겨 주세요!”
덕분에 그녀는 후방에서 부상병들의 치료를 대비한 준비를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당초 이자벨을 데려올 생각이었지만, 마지막에 생각을 바꾸었다.
이번 전쟁에 내가 노림수를 갖고 임하기는 했어도, 수적 열세인 것은 사실이었다.
혹시라도 일이 잘 안 풀렸을 경우에 이자벨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은 마법이 있으니 어렵지 않지만, 누구를 목숨 걸고 구하고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녀도 데려오지 않았다.
엘라와 클로이는 전적으로 레나의 수업을 위해 초빙한 손님이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한편.
아직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영지 밖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귀에 들릴 만큼 가까워져 오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각종 엄폐물과 땅굴 속에 은신하고 있던 병사들이 더 깊게 몸을 숨겼다.
겨우 숨만 쉴 수 있을 공간만 확보하고는 모든 것을 다 가렸다.
이미 달이 진 데다가 해도 뜨기 전이라 하루 중에 어둠이 가장 짙게 깔린 시간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땅속에 잘 묻어 둔 지뢰의 상태를 확인했다.
[자레드 지뢰 – 폭발형] [높이 10m의 거대한 불길을 수직 방향으로 뿜어내며, 동시에 내부에 탑재된 쇠구슬을 추진력을 이용해 사방으로 뿌려 냅니다.] [자레드 지뢰 – 연계 폭발형] [본 지뢰는 특수한 은사(銀絲)를 통해 다른 지뢰와 연결되어 있는 연계형 대폭발 지뢰입니다.마력이 흐르기 시작할 경우, 연계된 지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활성화됩니다.]
샛길에는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지뢰가 심어져 있었다.
단일 폭발형의 대인 지뢰도 있었고, 광역 폭발형의 연계 지뢰도 있었다.
한 달을 지뢰 제작에 몰두하면서, 리셋 버그를 이용해 제작 레벨을 미친 듯이 올려놓은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
적막 속에 병사들의 뜨거운 숨결만이 아주 조심스럽게 새어 나왔다.
지뢰는 아직까지는 비활성화된 상태였다. 내가 활성화를 위한 마력을 불어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력을 불어넣게 되면, 그 순간부터 지뢰는 숨겨 둔 발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따각! 따각! 따각!
‘방향을 틀었어!’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대로 방향으로 접근해 오던 연합군의 병사들이 일제히 기수를 돌려 샛길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을.
역시 놈들은 사전 조사를 꼼꼼하게 했다. 물론 그 덕분에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 되었지만.
‘카운트다운.’
나는 내 바로 앞에 마련되어 있는 굵은 은사 위로 손을 얹었다.
여기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하면, 샛길을 따라 매설되어 있는 모든 지뢰가 바로 활성화된다.
그리고 그다음은……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 * *
그 시각.
중군을 이끌고 전군(前軍)의 뒤를 따라오는 바트만과 호르구스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미 크리비아 영지의 경계를 제법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전투는커녕 제대로 된 방어전조차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영지 내의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대로를 막은 병사만 보았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여기가 무너지면 바로 크리비아 영지에 있는 마을들을 차례대로 정복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호르구스가 대로를 막고 선 크리비아 군을 가리키며 말했다.
“멍청한 놈들, 대로만 막고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던 모양이오?”
“하하하, 이렇게 순조로울 줄 알았다면, 진즉에 크리비아 영지를 공격할 걸 그랬소.”
“놈들이 열심히 과실을 키워 두었으니, 우리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지 않겠소?”
“크하하!”
“샛길만 넘으면 바로 마을로 진군할 수 있으니, 적들은 조직적 대응이 불가능할 것이오. 그 흔한 요새도 크리비아 영지에는 없으니까.”
“여부가 있겠소? 크리비아 영지를 정복하면, 우리가 사전에 논의한 대로 서쪽과 동쪽을 나눠서 갖도록 합시다.”
“후후, 당연한 말씀을.”
두 영주의 머릿속에는 정복과 합병 후의 다음 행보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이미 승리는 기정사실이었다.
“좀 더 따라붙어 볼까! 이랴!”
“갑시다!”
승리를 직감한 호르구스와 바트만이 타고 있던 말을 채찍질하며, 중군과 함께 샛길의 끝자락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전군은 빠르게 진격 중이었고, 최전방에 있는 선봉은 벌써 샛길의 끝에서 마을로 접어드는 부분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와아아아!
멀리서 함성이 들렸다.
돌아보니, 대로를 지키고 서 있던 크리비아 군이 크게 당황하여 산을 타고 오르는 것이 보였다.
‘자레드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략이란 건 하나도 없는 멍청한 놈이군.’
호르구스가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호르구스는 영지의 가용 가능한 고급 전력을 모두 데려왔다.
4클래스 마법사 아크론과 3클래스 마법사 둘이 그 증거였다.
전쟁이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겠다고 판단되면, 바로 옆에 있는 바트만까지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로넬라 영지도 집어삼킬 속셈이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하루아침에 두 영지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장밋빛 추측이었다.
호르구스는 말에 몸을 싣고, 기분 좋게 스며드는 새벽의 봄바람을 즐기며 달려 나갔다.
이참에 병사들을 독려하며, 오래간만에 멋진 영주 노릇도 한 번 해 볼 생각이었다.
“자아! 용맹스러운 마요르카의 병사들이여! 나 호르구스가 그대들에게 말하…….”
바로 그때!
호르구스는 짙은 흙빛만 가득했던 땅 위로 순식간에 푸른 빛줄기가 뻗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땅 위로 번개가 치는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푸른빛이 가지를 치듯 선을 그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영문을 알 리 없는 호르구스가 머뭇거리는 찰나.
쾅! 콰쾅! 쾅! 쾅! 쾅!
“끄아아악!”
“으아아아! 내 눈! 끄아아아!”
“컥!”
샛길 전체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맹렬하게 하늘로 솟구쳤고,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쇠구슬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윽!”
영향권 안에는 호르구스 자신도 있었다.
5m 떨어진 곳에서 폭발한 지뢰가 뱉어 낸 쇠구슬이 눈 깜짝할 사이에 호르구스의 왼쪽 어깨를 관통해 버린 것이다.
휘이이이! 툭. 투툭.
다음 순간.
호르구스는 멀리서 날아와 자신의 앞을 퉁퉁 굴러가는 머리를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둘이나.
“이자크, 오디움……?”
호르구스의 낯빛이 흙색으로 변했다.
몸과 분리된 채 날아온 머리의 주인은 자신의 휘하에 있던 3클래스의 마법사 둘이었던 것이다.
거금을 들여 영입해 온 실력 좋은 마법사 둘이 순식간에 비명횡사한 대형 사고였다!
하지만 재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크아아아악!”
누군가에게 멱살을 붙잡힌 아크론이 전장을 이탈하여, 고도를 높여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일출과 함께 찾아든 박명 속에 모습을 살펴보니, 아크론을 붙잡고 상승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영주 자레드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방금 전까지 승전을 상상하며 들이켰던 김칫국은 순식간에 쉬어 버렸다.
“으아아아! 제발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자레드 님, 제발!”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호르구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나마 믿었던 구석은 자신의 수석 마법사인 아크론이었다.
한데 상공에서 들려온 말은 아크론의 용맹한 외침이 아닌 목숨을 구걸하는 처절한 발악!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