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99
제 398화
125장. 에필로그 – 1화
“지구에 예고되었던 심판의 시간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극심한 불안에 떨었던 많은 시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알레이트 차원계는 당초 지구에 적용하기로 했던 훈련 보조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전히 자체적인 방어력이 부족한 지구인들의 무력을 증진시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단, 알레이트 차원계는 지구를 침공할 예정이었던 차원 연합이 어째서 무너졌는지 알 수 없다는 공식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구의 누군가에 의해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새롭게 시작된 각성자들의 시대! 이제 인류 문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시끌시끌하네.”
집의 소파에 누워 세상 편하게 뉴스를 보던 나는 TV를 끄고 일어섰다.
이미 각성자 시대는 시작됐다.
임의로 지정된 일반인들이 하루아침에 새로운 능력을 얻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다.
아울러 지구 전역에 생겨난 던전은 각성자들의 성장을 위한 완벽한 밑거름이 됐다.
단, 몬스터들이 예고 없이 출몰하는 현상이라고 불리는 ‘아웃브레이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알레이트 차원계에서 인간을 그만큼 혹독하게 괴롭힐 필요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지구는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새 시대를 맞이했다.
그에 따라 우리 가족 역시 각성자의 시대에 맞춰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내 아버지와 여동생 유희의 각성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이슈였다.
아버지와 유희가 각성한 분야는 전혀 달랐는데, 먼저 아버지는 농업 쪽 능력을 각성하셨다.
무슨 말인가 하면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고, 수분을 끌어다가 공급하며, 병충해에게 시달리지 않게 하는 능력을 각성한 것이다.
이런 경우를 사람들은 ‘비전투계 각성자’라고 불렀다. 또는 ‘생산계 각성자’라고도 했다.
아버지는 좋아하셨다.
원래 소일거리 삼아 작은 농장에서 과일, 채소를 키우셨는데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아버지께 박자를 맞춰 드렸다.
아공간에서 꺼내어 추가로 제법 많이 판매한 금을 바탕으로 밑천을 마련해 땅을 사 드렸던 것.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해서 주인에게 땅값을 넉넉하게 주고 땅을 사들였다.
졸지에 농부로 전직(?)하게 된 아버지는 매우 흡족해하셨다.
무엇보다 자신이 각성한 후, 마력을 활용해 스킬로 식물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게 된 것을 신기해하셨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식물에는 해충이 모조리 사라졌고, 초고속 성장을 하였으며, 토양에 양분이 자연스럽게 주입됐다.
이 신비한 모습을 보고 어찌 감흥이 없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가 오브렌 경을 만날 수만 있다면 정말 최고의 조합이 될될 텐데…….”
나는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농업에 평생을 바친 오브렌의 지식과 아버지의 능력이 결합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가 정말 엄청날 텐데.
아쉽게도 지구와 나스 대륙이라는 차원의 단절이 컸다.
유일하게 양방향 이동이 가능한 자리는 이미 10명이 모두 채워져 있어 빈틈이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아버지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하셨다.
사실 대형 사건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바로 여동생 유희가 ‘마법사’로 각성한 것이다!
친오빠가 나스 대륙에서 극의를 이룬 대마법사인데, 본인이 마법을 각성하게 됐으니…….
최고의 스승을 두게 된 셈.
유희와 함께 스킬 발현 메커니즘과 과정을 살폈는데, 완벽하게 나스 대륙의 마법과 같았다.
즉, 내가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가능했고, 또한 그것이 각성자 시스템에서 적용이 됐다!
“앞으로 열심히 나스 대륙과 지구를 들락날락해야겠구먼.”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집에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와 유희는 각성자 ‘기초 안전 교육’을 받기 위해 긴급 설립된 각성자 교육 센터로 갔고.
헤이즈는 지구의 풍경을 더 눈에 담고 싶다며 가까운 곳으로 외출을 나간 상태였다.
“일단 도혁이 녀석부터 부산으로 돌려보낼 때가 됐네. 앞으로 나보다 훨씬 더 바빠지겠지.”
나는 이제 막 집 근처에 도착했다는 박도혁을 만나기 위해 나갈 준비를 마쳤다.
녀석은 내가 조언한 대로 SNS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차원 연합이 무너지면서 다가올 재앙은 사라졌지만.
녀석이 떠올리고 구상했던 수많은 몬스터와 던전에 대한 콘셉트는 여전히 남아 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지구의 각성자들이 마주하게 될 세계는 사실 박도혁의 세계관과 같았다.
그렇다면 박도혁은 신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신과 같은 존재에게 ‘창조’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니 녀석이 쓴 소설이 현실이 되고, 배경이 되어 나타나려고 하고 있는 것이겠지.
알레이트 차원계도 어쩌면 박도혁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구원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 * *
“형, 이제 돌아가시는 거예요?”
“야, 말 잘해라. 돌아가시긴 뭘 돌아가신다는 거야.”
“아아, 죄송해요. 원래 계셨던 나스 대륙으로 돌아가시는 건지를 여쭤봤는데…….”
“그래야지. 나에게는 이곳만큼이나 그곳의 삶도 중요하니까. 뭐, 자주 지구에 올 거니까 걱정 마.”
“오시면 꼭 연락 남겨 주세요. 입이 근질근질하네요. 형이 세상을 구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데.”
“됐다.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영웅은 어디선가 또 보란 듯이 나타날 거다.”
자레드는 박도혁을 향해서 환한 미소와 함께 힘주어 말했다. 진심이었다. 영웅은 어디서든 나온다.
“입조심할게요.”
“하하, 그래. 우리의 인연은 우리만의 비밀로 하자.”
“꼭 그렇게 할게요!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죽음으로 맹세하겠습니다! 침묵을 지키리라!”
“괜히 사망 플래그 세우지 말고 인마…….”
“크악!”
자레드가 박도혁의 머리에 장난스럽게 꿀밤을 먹여 주었다.
보이지 않는 영웅.
그리고 보이지 않는 창조주.
겉으로는 아무리 봐도 그런 위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현실은 그랬다.
“수시로 연락하자. 본분에 충실해 줘. 이야기꾼으로서 필요한 이야기만 전달하는 거다, 알았지?”
“알겠습니다! 형, 그러면 저 갈게요! 부산에서 봬요!”
“잘 가! 네 원작 덕분에 최고의 공략을 할 수 있었어!”
“형과 동료분들을 만난 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갈게요!”
그렇게 박도혁과 작별 인사도 마쳤다.
* * *
그날 밤.
나는 헤이즈와 함께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아, 그동안 미루어 왔던 일 하나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즐겼던 게임 에 오랜만에 접속해 보는 것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계정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휴면 처리만 돼 있었다.
“패치가 많이 됐네…….”
“패치요?”
“음, 가상으로 즐기는 이 세계관에 새로운 이야기들이 추가되는 것을 패치라고 하거든.”
“아! 이를테면 예전에 폐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스 대륙의 세계관에 동방 대륙이 추가되는?”
“맞아! 바로 그거지.”
똑똑한 내 부인은 역시 이해도 빠르다.
애초에 현대의 게임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그녀지만…….
그녀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헤이즈, 가까이 와서 봐 봐. 여기에 우리가 사는 세계가 똑같이 구현이 되어 있어.”
“와아…….”
이미 헤이즈는 모니터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나스 대륙의 모습에 매료되고 있었다.
로딩 화면이 하늘 높은 곳에서 점점 나스 대륙으로 가까워지는 그런 형태이기 때문이다.
화면만 보고 있으면 마치 우주선을 타고 착륙을 하는 느낌이라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 세계관이라 그런지 여기서는 여전히 성마 대전이 진행 중이네.”
접속하자마자 습관적으로 ‘지도’를 켠 나는 양분되어 있는 대륙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스 대륙의 북부는 신성 제국 연합을 위시한 선(善)의 플레이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토의 표시도 백색 섬광이 반짝거리는 성스러운 빛깔이었다.
반면 나스 대륙 남부는 마왕 레크나트의 실루엣을 쏙 빼닮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상징 색은 검은색에 가깝고, 그 가운데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식이었다.
“마왕 레크나트가 여기는 살아 있는 거군요…….”
“괜찮아. 게임이잖아. 현실이 아니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순간 의 암울한 배경에 몰입을 했는지, 헤이즈가 풀죽은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좋지 않긴 하네. 성마 대전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동방 대륙까지 연결됐으니.”
나는 지도 우측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거대한 대륙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나스 대륙 저리 가라고 할 정도의 크기를 지닌 땅덩어리에는 보란 듯이 ‘동방 대륙’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푸른빛으로 상징 색이 칠해져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그런 이미지는 아닌데?
비열하고 더러웠던 증강우와 그 일파의 모습을 생각하면 똥색이 적합해 보이는데 말이다.
“실제랑 많이 다르네요, 폐하.”
“아마 내가 나스 대륙에서 환생한 시점부터 게임 속 이야기와 실제가 달라졌을 거야.”
“이 세계의 사람, 그러니까 가상세계 속 사람들은 끊임없이 싸워야 되는 거겠죠?”
“응.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니까 헤이즈가 그것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하기가 싫으면 게임을 끄면 그만이니까.”
“그렇겠네요. 하지만 폐하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이었으니까…… 정말 힘드셨을 거예요.”
“괜찮아. 열심히 싸운 덕에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마음씨 착한 여자를 부인으로 두고 있잖아?”
“맞아요……. 아앗!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맞는 말이지, 뭐가 문제야?”
헤이즈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헤이즈는 매번 내 말에 동의하거나 긍정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모양.
“어쨌든, 음음, 폐하께 다시 한번 고생하셨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요.”
“환생한 삶에 후회는 하나도 없어. 오히려 즐거움이 가득할 뿐이지. 이제 잃어버린 가족도 되찾았으니, 더 바랄 것도 없지.”
나는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지도에서 스크롤을 북쪽으로 쭉 올렸다.
왠지 궁금했다.
예전에 를 할 때는 나스 대륙 북부에 크리비아 영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북부의 지도를 클로즈업해서 살피다 보니 예전에 없던 영지 이름이 추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비아 소영지]“얼씨구? 크리비아 소영지를 만들었어?”
공식 명칭이 부여된 모양이다.
크리비아 소영지라고 적힌 글자 위에 마우스를 올려 보니, 최근 업데이트된 패치 목록이 있었다.
[특별 이벤트] [크리비아 소영지의 영주 자레드 폰 유칼레스의 폭정을 꾸짖고, 그에게 플레이어 여러분 자신만의 ‘참교육’을 실천해 주세요!흠씬 두들겨 맞고 혼나도 부족하지 않을 악덕 영주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 줍시다!] [이벤트 기간 : 현재 6일 남았습니다.] [이벤트 상품 : 타이틀 ‘정의의 사도’ 획득. 영구적으로 매력 10을 부여해 주는 타이틀입니다!]
“큭! 뭐야, 이거……?”
어이없는 이벤트에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그 순간, 떠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뚱뚱했던 시절!
자레드 폰 유칼레스의 흑역사가 그대로 구현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