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45
제 45화
17장. 영주님은 다르십니까? -3화
나스 대륙력, 1414년 5월 8일.
율리안을 총행정관으로 임명한 이후, 일주일이 흘렀다.
[자레드 – Lv. 8] [근력 : 35][체력 : 35] [마력 : 1313][지혜 : 160] [민첩 : 35][매력 : 205] [물리 방어력 : 35] [마법 방어력 : 138] [잔여 스탯 : 0]‘전반적으로 상승 폭이 만족스럽네. 특히 마력은 이쯤이면…… 에서 6클래스 마법사 스탯쯤은 됐던 것 같은데. 물론 지혜가 낮아서 대미지가 아주 강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마나 통이라도 넉넉한 게 어디야?’
나는 흡족하게 스탯을 살폈다.
어차피 근력이나 민첩 스탯은 각각 스트랭스와 헤이스트 마법으로 커버가 된다.
체력이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나는 방어보다 공격이라고 판단하는 입장이라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매력은 다다익선이다.
지금이야 일반적인 사람들을 상대하는 수준이라 내 매력 어필이 잘 먹히는 편이지만.
나중에 상위 귀족이나 그 이상의 존재들을 만날 때는 매력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
애초에 첫인상이 중요한데, 매력이 낮으면 첫인상에서 깎아 먹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소위 느낌(Feel)이라고 하는 것인데, 매력이 이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수련만 꾸준히 해도 대마법전은 걱정 없겠어. 마방을 매일 1씩 챙기고 있는 게 진짜 크다.’
나는 침이 한가득 꽂혀 있는 배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늘 그랬듯이 마력 수련을 했다.
자정이 되면, 또한 늘 그랬던 것처럼 이자벨과 마법 방어력 수련을 할 테고 말이다.
최근 이자벨은 3성 주술을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밥 먹는 시간, 나와 함께 수련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혼자 수련하는 중이었다.
정말 쉴 새 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기에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후아.”
나는 지친 몸으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총행정관으로 임명한 율리안이 분주하게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최종 결재자는 어쨌든 영주인 나이기 때문이다.
그저 서명하는 기계 역할만 한다면야 속은 편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일처리를 대충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전생에 회사원으로 살았을 때도 모든 것을 꼼꼼하게 기록했고, 사소한 지시 사항까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영지의 일은 내가 다스리는, 내 영지의 일인데 소홀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율리안이 노력하는 만큼 쌓여 갔고, 덕분에 일주일을 저택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외출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미치도록 일에 치여 산 시간이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영주님! 칼라카스 꽃잎 차를 준비해 왔어요! 영주님의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녀석이라 크리비아 영지에서 챙겨 왔답니다!”
헤이즈가 상큼 발랄한 목소리로 차를 내왔다.
사실 그녀를 힐러로 각성시키면서, 나는 더 이상 하녀로 일하지 말라고 말했었다.
이미 힐러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평민 – 하녀 – 보다는 높은 취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이즈는 한사코 거절했다. 힐러로서의 수련은 수련대로 하되, 하녀의 자리를 내려놓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하녀가 내 수발을 드는 일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없다나 뭐라나?
덕분에 헤이즈는 하녀의 일과 힐러의 수련을 함께 병행하는 투잡 아닌 투잡을 뛰는 중이었다.
본인이 내린 결정이고, 물리지 않겠다고 고집했으니 나도 더 이상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쪼르르르.
“한 잔, 마실래?”
“아니에요! 제가 어찌 영주님 앞에서 감히.”
“괜찮아. 내가 매번 얘기했잖아. 사석에서 신분이나 이런 것 따지지 말자고.”
현생을 완벽하게 받아들인 나이지만, 전생의 기억도 혼재하기에 나는 종종 지나친 높임말을 듣는 것이 영 불편했다.
하물며 모든 하녀, 하인들이 내게 높임말을 쓰니, 듣다 보면 귀가 간지러울 정도였다.
때로는 그저 현대식으로 편하게 오가는 말도 듣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오빠라든가, 형이라든가 하는 호칭도.
“그럼…… 조심히 받겠어요.”
“그래.”
헤이즈와 내 찻잔에 각각 차를 담고, 우리는 작은 건배와 함께 여유로이 차를 마셨다.
내가 아직 결재가 남은 서류들을 침대에 앉아 훑어보는 동안, 옆에 앉은 헤이즈가 말을 이어 갔다.
“영주님, 소식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
헤이즈는 매번 대화의 시작을 이렇게 열곤 한다.
그녀는 다양한 경로로 영지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그중에는 최근의 핫이슈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현재 마요르카 영지의 핫이슈는 아무래도 젊은 행정관, 율리안에 대한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로 서른 살에 총행정관이 된 율리안은 역시나 초창기에는 다른 가신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았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제 오브렌 경과 아빌라 경께서 혹시나 영지 운영에 차질이 있을까 봐 오셨었잖아요?”
“그랬었지.”
“어제, 오늘 내내 율리안 님을 따라다니면서 일처리를 직접 지켜보셨던 모양이에요.”
“호오, 그거 재밌는 소식인데?”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내정에 관해서라면 꼼꼼하다 못해 까탈스럽기까지 한 두 사람이었다.
내가 영주이고, 내게 충성을 바치고 있기에 순한 양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자신의 분야에서 부하 직원들을 다룰 때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들이었다.
“글쎄, 그 까다로운 분들이 율리안 님을 극찬하셨다니까요? 게다가 영지민들의 반응도 좋은 것 같아요! 같은 분야에 종사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들로 담당자를 대거 교체하니까, 농민이나 상인들의 불만도 대폭 감소했다고 들었어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두 분은 신기하셨나 봐요. 영주님은 어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쏙쏙 진주 같은 인재만 발굴하시냐고요. 엄청 놀라셨다고 해요!”
“기분 좋은 소식이네. 잘 풀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스스로 인정을 받으니 더 좋네.”
바로 그때.
또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헤이즈가 문을 열자, 라키스가 무장을 한 상태로 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본래대로면 군장을 모두 해제하고 나를 만나야 하지만, 나는 이런 불필요한 절차들을 모조리 간소화시킨 지 오래였다.
믿는 가신에게는 그만큼의 재량을 주었고, 오래된 묵은 관습은 과감하게 타파했다.
“라키스, 무슨 일이오?”
“영주님, 율리안 덕분에 영지 내에 기생충처럼 숨어 있던 밥버러지들을 모두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함부로 장부를 조작하고 위조하여, 몰래 곡식과 금화를 착복했던 놈들입니다. 지금 그들을 모두 하옥시키고 왔습니다.”
“설마 그사이에 장부 조사까지 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저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는데……. 율리안은 정말 쉬운 문제를 풀 듯 바로 오류를 잡아내고, 중간 과정에서 발생한 배달 사고까지 잡아내더군요.”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작업이 이뤄졌군. 이중장부나 위조 장부는 교차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했잖소?”
“예. 정말 대단합니다. 율리안의 실력에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가신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 인재를 단번에 알아보고 등용하신 영주님에 대한 존경은 두말할 것도 없겠지요!”
“잘됐구려. 율리안이 스스로의 실력으로 인정을 받았으니.”
“마요르카 영지의 행정은 이제 안심입니다. 오브렌 경과 아빌라 경도 걱정 없이 크리비아 영지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좋소. 다른 소식은?”
“일주일간 있었던 대대적인 범죄 조직 일소 작업도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마약 조직 데트라헤레는?”
“데트라헤레의 명맥을 잇겠다며, 잔당 일부가 로넬라 영지로 피신하여 그곳에 거점을 다시 마련한 모양입니다.”
“로넬라 영지? 그곳은 언젠가 다시 공격할 영지니, 그때 손보도록 잠시 미뤄 두는 걸로 하지.”
“옛.”
“수고했소. 나가 보시오.”
라키스를 돌려보냈다.
이렇게 해서 마요르카 영지를 점령한 뒤, 다사다난했던 전후 수습은 잘 끝났다.
범죄 조직 소탕에 덧붙여 활약한 율리안 덕분에 빠르게 안정을 찾은 셈이었다.
[율리안의 충성도가 상승합니다! 충성도 수치가 80에서 85로 올랐습니다.]동시에 충성도의 상승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율리안의 심경에 살짝 변화가 일어난 모양이다.
‘좋아. 역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도록 하면, 마음이 우러나기 마련이지. 충성도가 85면 완전한 충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정도는 아니니까.’
아직 가신이 된 지 얼마 안 된 탓에 율리안의 충성도가 가신들 중에서 가장 낮았다.
오브렌, 아빌라, 라키스는 최대치를 찍은 이후, 단 한 번도 하락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레나와 미아도 마찬가지고, 상단주로 맹활약 중인 아키도 마찬가지였다. 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인 헤이즈는 말할 것도 없고.
이자벨만 약간 낮았는데, 그것도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후아!”
밀린 일감과 걱정했던 일들이 일거에 해소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한숨과 함께 몸이 노곤해져 왔다.
피로감은 없지만, 왠지 자고 싶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영주님! 피곤하시죠? 제가 마사지라도 해 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헌신 본능을 발동시키려는 헤이즈를 말렸다.
쉬고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몸은 여전히 팔팔하다.
고르자스 목걸이 덕분에 식욕과 수면욕, 성욕……!을 잃었지만, 덕분에 나는 많은 시간을 얻었다.
“헤이즈.”
“네?”
“우리 잠깐 영지 외곽으로 구경 좀 다녀올까? 마요르카 영지에 오면 내가 꼭 가 보려고 했던 곳이 있는데.”
“오? 어디를요?”
“가면 알아. 헤이즈, 네가 나보다 길눈이 밝잖아? 그래서 함께 다녀오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지도로 좀 그려 줬으면 하는데.”
“영주님께서 시킨다면 무엇이든 해야죠! 저, 길눈 진짜 좋아요! 한 번 가 본 길은 무조건 기억하니까요! 그리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좋아, 그러면 가면서 짬짬이 치유술도 연습하도록 하자. 마침 몇 가지 코멘트 할 것도 있고.”
“네! 지금 바로 출발하실 건가요?”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출발하자.”
* * *
내가 가려는 곳은 거리 자체가 먼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신들에게 잠시 영지 시찰을 나간다고 둘러대고는 헤이즈와 함께 마요르카 영지 북동부에 위치한 산지로 향했다.
내가 다녀오려는 곳은 고대 무덤으로, 정식 명칭은 ‘마하트 3세의 지하 무덤’이다.
전생으로 따지면 진시황릉과 유사한 형태인데,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이곳이 천년이 지났음에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애초에 무덤을 만들 당시 주변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엉뚱한 장소에 입구를 만들었다.
둘째, 입구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진입 과정에서 다양한 시련과 마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탐사자가 죽거나 빠져나오지 못해, 다른 이에게 정보를 전해 줄 수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고대 무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극히 적었다. 그저 미루어 짐작하여 어딘가에 있겠거니 하는 정도였다.
에서 마하트 3세의 무덤은 유저 특별 이벤트로 출시된 지하 던전이었다.
이벤트의 내용은 가장 먼저 던전을 찾아내어 공략하는 팀에게 9성급 아티팩트를 즉시 지급하는 이벤트였다.
딱 하나 문제점이 있었다면, 이 던전이 어디에 있는지 작은 힌트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저들은 위대했다.
평소에 개발진이 신경을 덜 썼던 필드를 이 잡듯이 뒤졌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땅에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발진의 개인 SNS를 돌아다니면서, 개인 또는 단체 사진 등의 배경이나 거울에 비친 모니터의 영상을 미친 듯이 찾았다.
아주 작은 사진의 조각, 몇 개의 불빛을 추적한 끝에!
유저들은 기어이 고대 무덤의 입구를 알아냈다.
그곳이 바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곳이다.
전생의 수만, 아니 수십만 유저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지름길 노하우인 셈이다.
“느낌이 으스스해요, 영주님.”
“분위기는 신경 쓰지 말고 치유술에 집중해. 과하게 치유력을 불어넣는다고 해서 낫는 게 아냐. 놀란 속을 죽으로 달래듯, 치유력도 강약을 조절해야 해.”
“제가 너무 강했나요? 영주님을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에휴, 이 돌머리!”
헤이즈가 스스로를 자책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첫술에 절대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헤이즈는 지름길을 밟듯, 빠른 성취를 얻길 원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손가락에 낸 작은 상처잖아. 마음 쓰지 말고, 그저 고깃덩어리에 난 흠집을 메운다고 생각해.”
“하지만!”
“영주로서 명령하는 거야. 동료로서 조언하는 게 아니라.”
“……알겠어요.”
강한 어조로 다시금 강조하자, 헤이즈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진지하게 치유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데 바로 그때.
샤아아아…….
나는 바로 눈앞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모래 연기의 형상을 보았다.
이내 모래 연기는 사람의 형태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마하트 3세의 얼굴을 똑같이 닮아 있었다.
“헤이즈, 내 뒤로 다섯 걸음 이상 물러서.”
“네, 알겠어요.”
나는 우선 헤이즈를 뒤로 물렸다. 적이 누군지 파악되지 않았으니, 그녀를 앞에 두는 건 매우 위험하다.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될 저주받은 자가 짐의 앞에 나타났구나……. 썩 물러가라. 너와 나의 저주가 공명을 일으키는 순간, 세상은 타락할 것이다…….
“내가 그 말을 예전에도 많이 들었는데 말이야. 세상은 그렇게 쉽게 안 변하더라고?”
-짐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라.
“미안하지만 당신의 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서 말이야. 나중에 다시 만납시다?”
-죽음을 자초하는군…….
나는 매직 미사일 마법으로 모래 연기를 흩어 버렸다.
꽤 소름 끼치는 위협이었지만, 에서는 익숙하게 들은 멘트라 심드렁하게 잘 넘겼다.
‘오긴 왔구나.’
마하트 3세의 환영이 나타난 것을 보니, 무덤 자리는 잘 찾아온 듯하다.
“다시 가자, 헤이즈.”
“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는 만큼, 놓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