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58
제 58화
23장. 대마법사 베르하드 – 1화
찌이익.
“벌써 9월이군.”
나스 대륙력 1414년 8월을 알리는 달력을 찢고 나니, 이내 9월을 알리는 낙엽 그림이 반겼다.
시기는 가을이지만, 대륙 북부에 있는 우리 영지답게 벌써 체감 온도는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집무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서신을 다시 읽었다.
현재 감옥에 갇혀 있는 바트만 영주가 보낸 서신이었다.
그가 감옥에 갇힌 지는 벌써 1개월 정도 흘렀다.
로넬라 영지를 점령한 것이 1개월 전쯤이었으니까.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헛소리를 하고 있네. 밖에 누구 있느냐?”
나는 친위병을 불렀다. 그러자 바로 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예, 영주님.”
“지금 당장 바트만을 가장 구석진 독방에 가두고, 식사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여라. 그리고 앞으로 놈이 쓰는 서신은 내게 가져올 필요 없다. 무조건 그 자리에서 불태워 없애도록.”
“예, 영주님.”
바로 병사가 밖으로 향했다.
아그레시오 친위대.
얼마 전에 창설한 영지 내 최정예 부대의 이름이다.
병사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출중하고, 충성도가 높은 100인을 선발해서 만든 조직이었다.
아직까지는 소규모 조직이었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훈련해 줄 수준 높은 교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키스는 친위대를 전담하기에는 실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실 엘라와 협의 중이었다. 그녀만큼 좋은 훈련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한 실력도 있고.
단, 아직 레나와 클로이의 교육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바로 그때.
“영주님! 영주님……!”
헤이즈의 다급한 목소리가 꽤 먼 곳에서부터 점차 집무실로 가까워져 왔다.
나는 친절하게 먼저 집무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헤이즈가 손에 든 종이를 펄럭거리며 뛰어오더니, 내 앞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을 이었다.
“영주님! 이거! 이거를 읽어 보세요!”
작은 서신이었다.
특수한 마감 처리가 된 것을 보니 내가 신데르스 왕국의 왕성에 심어 둔 첩자로부터 도착한 연락이었다.
‘움브라 교단 놈들, 기어이 마각을 드러냈군.’
국왕 데커드 9세에 대한 소식은 하루 단위로 계속 보고받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왕자들을 데리고 사냥을 다녀왔을 정도로 팔팔했던 국왕이 갑자기 죽었다? 십중팔구 암살 즉, 독살이 틀림없었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는 그 사람의 죽음으로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 누군지를 생각하면 범인이 명확해진다고 했다.
지금은 십중팔구 제2 왕자 프탈린이 배후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자기 손으로 직접 아버지를 어찌할 수는 없었을 테니, 소속된 교단의 힘을 빌린 것일 터.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절대 적의 주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며 때를 기다리는 거야.”
헤이즈의 물음에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국왕이 후계에 대한 유언을 일언반구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면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왕자 간의 갈등이 격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제1 왕자 이안 님은 날이 갈수록 몸 상태가 악화되고 계신 것 같고……. 최근에 일주일 동안 대신관님이 3번이나 왕궁을 방문한 모양이에요.”
“확실히 좋지 않네.”
의사가 아닌 대신관을 부른다는 것은 목적이 치료가 아니라, 고통의 경감에 있음을 뜻한다.
즉, 일종의 연명 치료 개념인 것이다.
원래 의 스토리대로면, 이안 왕자는 저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빠진 적이 없었다.
스토리 1년 차에 이안 왕자를 만났으니, 지금부터 10년은 거뜬히 살아 있던 셈.
하지만 벌써부터 오늘내일한다는 것은 이안 왕자에 관련된 미래가 바뀌고 있음을 뜻했다.
“이대로라면 전쟁이 나겠어요!”
“그렇겠지. 호랑이 두 마리가 하나의 울타리에 갇혀 있으니까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관심이 프탈린과 제스에게로 쏠려 있을 것이다. 분주하게 편 가르기가 시작될 테고, 곧 내전이 발발하겠지.
여전히 이즈엘 왕자의 후견 세력이 부족하기는 하다.
다만 스토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즈엘이 이안 측의 가신들과 꽤 접촉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스토리에서는 함께하지 못했던 나, 자레드가 은밀히 뒤에서 때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간 전해 들은 소식에 따르면, 이즈엘은 첫째 형인 이안 왕자를 가까이서 간호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미래를 대비한 연기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건 간에 좋은 선택이었다.
이안 왕자에게는 왕실의 평화와 안정을 원하는 가신들이 꽤 많이 붙어 있다.
비록 군사적인 부분에서 힘이 약할지는 몰라도, 제법 중요한 안건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충직한 가신들은 많았다.
‘아직 내전은 시작도 안 했어. 그 전까지는 무조건 근신, 또 근신이다.’
다시금 목표와 계획을 되새겼다. 지금은 모든 포커싱을 제2 왕자와 제3 왕자에게로만 집중시킬 때다.
* * *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나는 영주 성을 나와 영지 외곽의 숲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밤중에 가까운 곳에서의 산책도 아니고, 영지 외곽의 숲까지 나온 것은 은밀히 만날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외부에 전혀, 그리고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조금 늦네.”
약속한 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상대방의 지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막간의 틈을 이용해, 그간 내치(內治)에 공들여 왔던 영지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용에서 길게 표시되는 특수 상황에 대해서는 클릭을 해야만 상세 내용이 표시되도록 인터페이스를 살짝 바꾸었다.
[영지 정보 – 크리비아 영지] [등급 / 소속 국가 : E / 없음] [내정 – 농업 : 211 / 300] [내정 – 상업 : 257 / 300] [내정 – 치안 : 412 / 500] [내정 – 과학 : 211 / 300] [내정 – 충성 : 287 / 300] [군사 – 총원 : 현재 5048명] [특수 상황 1 : (생략)] [특수 상황 2 : (생략)]‘좋아, 순조롭네.’
만족스러웠다.
크리비아 영지는 이제 E등급의 판정을 받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의 마요르카 영지와 로넬라 영지를 크리비아 영지로 합치는 통합 작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세 영지를 가진 영주였지만, 지금은 하나의 통합 영지를 가진 영주가 되었다.
E등급 영지부터는 보통 중(中)영지라고 부른다.
즉, 카프리 백작이 보유하고 있는 미세리아 영지와 규모 면에서는 같은 셈이다.
물론 영지의 통합 작업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영지를 통합하게 되면, 내정 수치가 가장 낮은 영지를 기준으로 재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100%에 가까운 내정 수치였던 구(舊) 크리비아 영지의 스탯이 깎이고, 가장 낮았던 로넬라 영지에 맞춰 정렬이 이뤄졌다.
그런 이유로 최대치를 찍은 내정 수치는 없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70% 이상 진행도의 좋은 내정치를 유지 중이었다.
‘좀 더 인재가 필요해. 영지를 통합하면서 율리안과 아빌라, 오브렌의 역할 분담이 한결 수월해지긴 했지만…… 보좌할 사람이 하나는 더 필요해. 휘하의 수행원들로는 한계가 있어.’
인재는 많을수록 좋다.
아직까지는 율리안의 뛰어난 특수 성향 덕분에 영지 운영에 문제가 없기는 했지만, 만약을 대비할 필요는 있었다.
이를테면 율리안이 병에 걸린다거나, 과로로 휴식이 필요해진다거나 하는 경우 말이다.
에서도 질병, 과로 이벤트는 꽤 많았다.
나이가 들거나, 업무 분담이 과중해지면 이따금씩 가신들이 ‘퍼질’ 때가 있었던 것이다.
는 RPG뿐만 아니라, 전략적 운영의 부분에서도 사실도를 크게 높인 게임이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꽤 디테일했다.
바로 그때.
스스슥.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이즈엘의 여동생, 마이라 공주였다.
“오셨군요.”
“자레드 영주.”
“국왕 전하의 일은 유감입니다.”
“괜찮아요. 갑작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어요.”
손톱 끝으로 손가락을 꾹 누르는 마이라의 모습에서, 애써 슬픔을 참으려는 굳건함이 느껴졌다.
슬플 것이다.
어쨌든 자신을 낳고 키워 준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한 죽음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럴 테고.
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슬픔은 슬픔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돌아가는 왕국의 판세였으니까.
“제게 왕궁의 소식을 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안 오라버니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계세요. 대신관의 말에 따르면, 이번 달을 넘기지 못하실 듯해요.”
역사가 확실히 바뀌었다.
대신관 정도 되는 인물이 시한부 통보를 했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맞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보수적으로 접근해도 이안 왕자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내가 신데르스 왕국의 왕위 계승에 개입하면서 역사의 변곡점이 생긴 걸까?
지금으로서는 그 생각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계획을 취소하거나 변경할 생각은 없었다.
“공주님.”
“네, 말씀하세요.”
“지금부터 딱 세 가지를 말씀드릴 겁니다. 이것을 공주님의 마음에도 새기시고, 이즈엘 왕자님께도 확실하게 전달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첫째, 아마도 제게 사람이 올 겁니다. 제스 왕자님은 모르겠지만, 프탈린 왕자님은 확실히.”
“프탈린 오라버니의 관심은 익히 봐서 알고 있지요.”
“저는 애매하게 대응할 겁니다. 어딘가에 속해 있다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며, 속하겠다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때가 오기 전까지는 이즈엘 오라버니를 공개적으로 돕지 않겠다는 뜻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득 없이 손해만 보는 선택지니까요.”
“계속 말씀하세요.”
마이라는 냉정하게 내 말의 핵심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이즈엘이 따뜻한 성정을 지닌 부드러운 인물이라고 한다면, 마이라는 그에게 없는 냉정함과 과감성을 지닌 인물로 그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둘째, 이즈엘 왕자님은 절대 내전에 휘말려서는 안 됩니다. 두 왕자님의 갈등을 중재하는 한편, 이안 왕자님의 사람들과 접촉을 늘려 가라고 해 주십시오.”
“포섭인가요?”
“그것보다는 조금 약한, 가벼운 접촉 정도면 좋습니다. 이안 왕자님의 사람들은 내전을 원치 않을 겁니다.”
“맞아요. 회의의 분위기도 그렇게 흘러갔어요.”
“그리고 셋째,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움브라 교와 두 왕자님에 관련된 영상을 수집해 주십시오. 제가 장치를 좀 더 드리겠습니다.”
나는 미리 챙겨 나온 영상 장치를 넉넉하게 마이라에게 건네며, 말을 덧붙였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치명적인 일격에 필요한 공격은 단 한 번뿐입니다. 그때까지는 조용히 날을 벼리고 기다리는 것이지요.”
“알겠어요, 자레드 영주.”
“모든 것을 정상으로 바로잡을 기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저를 믿고, 맡겨 주십시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자레드 영주.”
“아직 시작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감사도, 사과도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그럼, 가 보겠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이라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둠은 빠르게 그녀를 감췄고,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녀의 기척을 없애 버렸다.
“후우.”
이내 한숨을 토해 내며, 다시 영지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이놈아, 내가 왔다!”
정면에 우뚝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는 한 남자, 노인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한데 자세히 살펴보니,
“베르하드 님?”
그였다.
내가 5클래스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만나야 했던 사람!
대마법사 베르하드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