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59
제 59화
23장. 대마법사 베르하드 – 2화
은은하게 내리비추는 달빛 아래서, 나와 베르하드는 바위에 대충 걸터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근사한 식사 자리도 아니고, 학구열이 넘치는 서고에서의 만남도 아니었지만.
대마법사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리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베르하드는 베일에 싸여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마법사다.
분명 9클래스 경지에 오른 네임드 마법사이지만, 에서는 생각보다 등장 빈도수가 낮았다.
그저 메인 스토리 중간에 길 가는 나그네처럼 잠깐잠깐 등장하는 것이 전부였고, 마왕군과의 전쟁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저들은 그래서 베르하드가 설정상으로만 대마법사지, 사실은 겁쟁이 노인이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베르하드 한 사람만 잠시 동료로 합류해도 수월할 스토리 진행이 그가 없어서 헬 게이트가 열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나는 베르하드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자연스럽게 심안을 가동시켰다.
그러나.
[대상과의 레벨 격차가 10배 이상이므로, 그 어떤 정보도 심안으로 탐지할 수 없습니다.]‘최소 600레벨 이상! 하긴, 베르하드 정도 되는 마법사가 레벨이 낮으면 그것도 말이 안 되지.’
예전에는 심안으로 베르하드를 살필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를 스캔해 보게 됐다.
결과는 정보 수집 불가.
지금의 나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압도적인 격차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역시 대단한 경지의 마법사야. 내가 마법사로 나아갈 길, 그 롤 모델이기도 하고.’
나는 존경 어린 눈빛으로 베르하드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엄청 신이 났다!
에서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인 것 같았던 베르하드가 어쨌든 나를 찾아와 줬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의 무뚝뚝했던 모습과 달리, 그는 구수한 말투를 구사하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베르하드가 말문을 열었다.
“이놈아! 무슨 사랑하는 연인을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왜 말은 안 해?”
“아아, 베르하드 님. 죄송합니다. 진짜로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어요.”
자작이자 영주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내가 베르하드 앞에서는 철저하게 ‘어린아이’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랄까? 이 자리가 그저 신기하고 그가 고마울 뿐이었다.
“오라고 해서 왔다, 이 녀석아. 다만 냉큼 네게 바로 가기가 뭣해서, 그간 조용히 네 영지에서 네가 뭘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지.”
“저를 지켜보고 계셨다고요?”
“그래. 영지도 운영하고, 이웃 영지도 시원하게 박살 내서 접수하고. 아주 호쾌하더구나. 평화를 사랑하던 네 아비와는 좀 다른 것 같다만.”
“예? 제 아버지를 아십니까?”
“처음에는 네가 바렛의 아들인 줄 몰랐다. 왜냐면 내가 아는 크리비아 영지의 자레드는 개망나니 뚱보 미친X이었거든.”
“……뼈가 많이 아프네요.”
“동명이인인 줄 알았지. 그런데 와 보니까 웬걸, 바렛의 아들이더군. 그래서 좀 지켜봤다. 정신을 차린 건지, 아니면 더 미친 짓을 하려고 밑밥을 까는 건지 하고.”
“놀랍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알고 계실 줄은…….”
“그랬겠지. 바렛이 굳이 네게 말할 필요를 못 느꼈을지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조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꼭 베르하드 님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나는 다시금 그와 연계된 5클래스 퀘스트를 확인했다.
[특수 퀘스트 – 도약을 위한 가르침 1/3 – 첫 번째] [보상 : 5클래스 달성] [5클래스는 마법사에게 극적인 전환점이 되는 시점입니다.떠돌이 대마법사 베르하드를 찾아 그의 5클래스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청하십시오.
그가 가르침을 주고, 당신에게 두 번째 길을 밝혀 줄 것입니다.]
“내게 이 영지에 머물러 달라거나, 스승님이 되어 달라는 얘기를 할 생각은 꿈에도 말아라. 난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으며, 엮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무리한 부탁을 드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럴 위인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고, 무엇보다 눌러앉힐 돈도 없으니까.
9클래스 마법사를 영지에 들이려면, 이런 중규모 영지의 1년 예산을 들이부어도 어림없다.
한 20년 치를 모아서 갖다 부으면 모를까? 즉,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잘 들어라. 내가 5클래스에 돌입했던 그 시절에는 말이다…….”
이윽고 베르하드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올해로 일흔을 넘긴 베르하드에게는 정말 오래전의 이야기였지만,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흥미롭게 들었다.
퀘스트 수행을 위해 의무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즐겁게 그의 경험담을 들었던 것이다.
행복했다.
내가 우상으로, 롤 모델로 삼고 싶은 마법사가 자신의 어렸을 적 경험을 내게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만큼은 9클래스 네임드 마법사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내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야기에 집중하자, 처음에는 건조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던 베르하드도 점점 흥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그의 옛날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찰나.
퀘스트 창이 바뀌었다.
[특수 퀘스트 – 도약을 위한 가르침 2/3 – 두 번째] [보상 : 5클래스 달성] [그에게 마법 시전의 기본 메커니즘에 대한 조언을 청하십시오.]그의 이야기가 워낙에 재미있었던 터라 어떻게 화제를 바꾸면 좋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네가 쓰는 마법을 내게 보여 봐라. 유칼레스 가문의 마나 심법을 쓰고 있다면, 분명 그 특성을 잘 살리고 있겠지.”
오히려 베르하드가 먼저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베르하드는 우리 가문의 심법까지 뭔가 꿰뚫어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자, 베르하드가 말을 덧붙였다.
“네 아비가 참으로 많이 말을 아꼈구나! 지금의 유칼레스 마나 심법을 완성시키는 과정에는 나도 꽤 많은 지식을 보탰지.”
“그게 정말입니까?”
“잔말 말고 마법이나 써 봐라.”
거칠게 몰아붙이는 베르하드의 말투가 왠지 기분이 좋았(?)다.
지금껏 영주도, 가신도, 동료도 모두 리드해 왔던 나를 처음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물 흐르듯 퀘스트도, 베르하드와의 만남과 이야기도 원활히 진행됐다.
즐겁고, 재밌고, 행복했다.
신데르스 왕국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맞물려 복잡해졌던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베르하드에게 내 마법을 보이고, 그에게서 따끔한 지도를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내 마법 시전에는 꽤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았던 모양이다.
베르하드는 그 점을 중점적으로 교정을 해 줬고, 그의 가르침이 끝났을 때.
나의 마법 시전 속도는 전에 비해 1.5배 이상 향상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큰 성과가 있었는데, 그것은 한달음에 퀘스트 수행까지 끝냈다는 것이었다.
[특수 퀘스트 – 도약을 위한 가르침을 모두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5클래스 달성이 이뤄집니다! 지금부터 5클래스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파아아앗!
동시에 내 몸에서 한 줄기 푸른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나는 물론이거니와, 정면에 있던 베르하드까지 여실히 볼 수 있을 정도의 변화였다.
베르하드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무엇이냐?”
“그게 말입니다, 스승님.”
“스승은 무슨! 베르하드 님이라고 불러라!”
“베르하드 님, 그게…… 제가 5클래스가 되었습니다.”
“뭐라고? 몇 마디 말을 주워듣고, 교정을 좀 받았다고 해서 그렇게 손쉽게 5클래스에 진입한단 말이냐?”
“네, 그게 그렇습니다.”
“믿을 수 없다. 5클래스 마법을 뭐라도 시전해 봐라.”
베르하드의 말에 바로 떠오른 것은 5클래스의 마법 중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텔레포트였다.
이내 텔레포트를 시전하자,
위이잉. 위이잉.
소환음과 함께 내 모습이 자유자재로 사방을 오가며, 위치를 바꾸었다. 깔끔한 텔레포트 마법의 사용이었다.
“하, 이런 미친X을 봤나.”
내 모습을 지켜본 베르하드가 가감 없이 속내를 드러냈다.
* * *
같은 시각.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하며…… 몇 마디 지도를 받은 것만으로 5클래스의 깨달음을 얻다니! 한계가 명확했던 바렛과 달리 자식은 난 놈인 건가?’
베르하드는 놀라고 또 놀랐다.
사실 크리비아 영지에 온 지는 꽤 오래됐다. 자레드의 서신을 받자마자, 거의 바로 이곳으로 출발했었으니까.
그간 자레드가 영지를 운영하는 모습을 지켜본 결과, 베르하드가 느꼈던 것은 하나였다.
바로 지난 10년을 망나니처럼 보냈던 과거가 무색하게, 자레드의 영지 운영이 꽤 노련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영지에 설치한 마정석 조명등이라든가, 직접 개발했다는 치료제나 농약도 분명 보통 솜씨의 제작물이 아니었다.
시대를 앞서 나가고 있는 느낌.
베르하드는 그 느낌을 자레드에게서 강하게 받았다.
자레드는 영지 운영에 능했고, 마도 공학에도 소질을 보였으며, 주변 판세를 읽는 능력도 좋았다.
특히 카프리 백작의 공백을 틈타, 이웃의 로넬라 영지를 급습해서 점령한 것은 신속한 판단이 돋보이는 백미였다.
‘여기에 내 경험담 몇 마디에 덧붙여 마법 메커니즘 일부를 교정한 것만으로 5클래스의 깨달음을 얻을 줄이야? 놀라운 성장, 아니 나도 경험하지 못한 미친 성장이로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간 종종 후학 양성을 시도해 본 적은 있었지만, 다들 깨달음이 더뎌 답답해하던 차였다.
자레드 같은 제자가 있으면 가르칠 맛이 확실히 날 것 같았다. 스승으로서 욕심도 날 것 같고.
하지만 이내 베르하드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곁에 머무르는 것은 이제 사양하고 싶었기에.
‘어차피 될 놈이라면 어떻게든 성장하겠지. 좋은 눈요기를 한 것만으로도 충분해. 자레드, 더 성장해 봐라. 참으로 재밌겠구나.’
베르하드가 자레드를 보며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질 좋은 떡잎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 * *
“벌써 떠나시려고 하십니까?”
“내게 5클래스로 도약할 조언을 해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목적은 달성했고, 조언은 실컷 해 줬다. 그럼 떠나야지. 설마 먹은 금화라도 뱉어 내라고 할 참이냐?”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베르하드의 장난 섞인 날 선 반응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목적은 달성했고, 나는 그렇게 5클래스에 진입했다. 떠나겠다는 베르하드를 말릴 명분이 없었다.
“솔직히 기대 없이 그저 유랑이나 할 요량으로 찾아왔는데, 꽤 재밌는 눈요기를 한 듯하다.”
“헛걸음이 되지 않아 다행입니다.”
“내 흥미를 끄는 것이 목적에 있었다면,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해 주고 싶구나.”
“감사합니다.”
“또 보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인연이 닿는다면 또 만나겠지.”
“어디로 가십니까?”
“알아서 무엇 하게?”
“그저 가는 곳만이라도…….”
“동방 대륙에 대해서 알아보러 떠난다. 내게도 미지의 땅인 새로운 세상에 대한 단서를 찾으러 말이다.”
“동방 대륙 말씀이십…….”
파앗!
내 말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베르하드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졌다. 아마도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한 것일 터.
“아쉽네.”
베르하드와의 만남은 그렇게 짧고, 굵게 끝났다.
덕분에 5클래스까지 논스톱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분명 아쉬움이 남는 만남이었다.
“아차, 보상이 있었지.”
그때, 나는 현생에서의 첫 ‘클래스 상승’이다 보니 잊고 있었던 혜택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은 의 시스템에 따라, 클래스가 오를 때마다 주어지는 보상 선택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보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예전부터 5클래스가 되면 반드시 고르기로 마음먹었던 선택지를 미련 없이 바로 띄웠다.
그것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