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6
제 6화
3장. 우리 영주님이 달라졌어요! – 1화
‘역시 영주님이 달라지셨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다가 주무셨고, 아침에도 저렇게 연병장에서 서류를 확인하고 계시잖아?’
헤이즈는 창을 통해 연병장에서 조용히 혼자 걷고 있는 자레드를 보고 있었다.
자레드가 연병장을 걷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시간째였다.
헤이즈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자레드는 침실에서 집무실까지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했던 게으름뱅이였다.
그런데 어딘가를 나가 10분 이상을 걷고 움직인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생활 속에서 가장 많이 걷는다고 치면, 영지 시찰(視察)을 나갈 때가 최대였다.
마차를 타기 위해서 저택의 정문까지는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많이 잡아야 몇 분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정말 내 기도가 통한 걸까? 하녀장님도, 집사님도 나랑 똑같이 말씀하셨어! 영주님이 바뀌셨다고.’
헤이즈가 기억하는 자레드는 늘 잠에 취한 눈으로 매일매일 이어지는 귀찮은 일상에 진저리를 치던 사람이었다.
그나마 얼굴에 생기가 도는 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전부.
하지만 이제는 예전의 흐리멍덩한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사에 총기 가득한 눈빛만 보일 뿐이다! 그것은 매우 큰 변화였다.
‘정말 내 기도가 통한 걸까?’
헤이즈는 떠올렸다.
어렸을 적의 총명하고 생기 넘쳤던 자레드를 생각하며, 그때의 잘생기고 멋졌던 영주님으로 돌아왔으면 하고 기도했던 것을.
모두가 고개를 저으며 포기했지만, 헤이즈는 언젠가 꼭 영주님이 정신을 차리실 것이라고 믿었다!
한데 그 믿음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어제 이후로 거짓말처럼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너무 좋아해서는 안 돼. 호들갑 떨면 안 되는 거야, 진정하자!’
헤이즈가 스스로를 다독였다.
기분이 너무 좋았지만, 그래서 더 조심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자레드는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 * *
“망할 몸! 엄청 천천히 걸었는데도 숨이 차네. 와, 이 추운 날에 걷기만 했는데도 땀이 난다고? 체력이 개판이네.”
어느덧 연병장을 걸은 지도 1시간이 넘었다.
사실 산책보다도 못한 수준이라 절대 지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하악.”
내 의지와 무관하게 몸은 자꾸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무엇보다 단것이 엄청 당겼다.
전생의 나는 초콜릿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나마 좋아했다면 사탕을 좋아하던 쪽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몸은 몇 초에 한 번씩 달콤한 초콜릿을 제멋대로 떠올리고 있었다.
어제 식단 조절을 하면서 늘 먹던 고기와 단것을 멀리했더니, 금단 현상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츄릅.”
단맛을 떠올리니 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그런데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손이 부르르 떨린다.
“안 돼, 안 먹어. 안 먹는다고.”
나는 불쑥불쑥 치솟는 식욕을 억제하며, 계속 서류를 살폈다.
영지에 관련된 서류로, 영지의 내정 상태에 관한 장문의 문서들이었다.
어제저녁에 헤이즈를 시켜 가져오게 한 서류였는데, 그 양이 워낙 많았던 탓에 다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이제 막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참이었다.
바로 그때.
[크리비아 영지에 대한 정보 열람에 성공했습니다.] [‘자레드’ 님에게 크리비아 영지의 현재 정보가 갱신됩니다.]기다렸다는 듯이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됐다.
살펴보니 예전에 에서 영지를 관리할 때, 영지창을 통해 많이 봤던 정보였다.
‘게임 시스템이 현생으로 오면서 그대로 따라왔구나. 당연히 이건 나밖에 없는 능력이겠지!’
전, 현생의 자각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였기에 이 정보창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는 건 쉬웠다.
게임 시스템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 이것만큼은 엑스트라인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리라.
“어디 보자…….”
[영지 정보 – 크리비아 영지] [등급 / 소속 국가 : F / 없음] [내정 – 농업 : 015 / 050] [내정 – 상업 : 016 / 050] [내정 – 치안 : 075 / 100] [내정 – 과학 : 017 / 100] [내정 – 충성 : 018 / 100] [군사 – 총원 : 현재 228명] [특수 상황 1 : 크리비아 영지는 악몽의 숲과 인접해 있습니다.매년 7월 1일, 주성(主星) 데우스와 객성(客星) 벤델라가 천공에서 일직선상에 놓이는 날.
크리비아 영지를 향한 마수들의 대규모 침공이 일어납니다.] [특수 상황 2 : 인접한 마요르카 영지의 영주 호르구스는 크리비아 영지의 자레드 영주를 절대 믿을 수 없는 작자라고 공개 비난했습니다!] [특수 상황 3 : 산적왕 볼카스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옥수수와 크리비아 영지의 마정석을 순순히 일대일로 교환해 준다면, 유혈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이게 영지야, 아니면 그냥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땅이야? 얼마나 영주가 호구처럼 보였으면, 산적왕이 이런 같잖은 내용으로 서신까지 보내?’
갱신된 영지 정보를 본 나는 경악했다.
내정 수치 중에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치안은 높아 보인다고?
모르고 하는 말이다.
F등급밖에 되지 않는 구멍가게만 한 영지라서 요구되는 치안의 수준이 매우 낮기에 그런 것이다.
대영지로 가면 영지창의 스탯 오른쪽에 표시되는 최대 치안량이 100이 아니라 1000, 아니 10000으로 표시되는 경우도 심심찮다!
즉, 바꿔 말하자면 내가 각성하기 전까지의 자레드의 영지 경영은 엉망이었다.
냉정하게 요약하자면 방치.
방치형 게임도 아니고, 현실에서 영지 내정을 이렇게 하면 다 같이 죽자는 거야, 뭐야?
‘충성도 18……. 진짜로 영지민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을 때 나오는 수치인데.’
재수 없게 느껴지는 수치의 어감만큼이나 영지민의 충성도는 개판이었다.
이 정도면 밥 먹을 때나, 술 마실 때나 입에 반찬과 안주처럼 오르내리는 것이 나에 대한 욕이자 악담일 것이다. 불만이 가득하단 얘기다.
‘그래, 새삼스럽게 당황하지 말자. 애초에 척박한 땅에 있는 데다가 영지 운영도 엉망이었던 것은 알고 있었잖아.’
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몰랐다가 알게 된 것도 아니고, 깨어나서 내 몸을 본 시점부터 갈 길이 멀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것도 다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짐이다. 겨우 이 정도로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나는 에서 이것보다 더 개판이었던 영지를 S급의 영지로 탈바꿈시킨 경험이 있다!
물론 고레벨이었을 때의 얘기지만, 어쨌든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말씀.
‘일단 영지 내에 쓸 만한 인물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
나는 가신 정보 서류들도 이어서 훑기 시작했다.
영지 상태가 그동안 엉망이었다는 것은 십중팔구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예 임무를 맡기지 않았다면 영지 운영 자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업무 마비까지는 되지 않은 것을 보니, 구색만 겨우 갖춰 놓은 수준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서류를 읽고, 얼마 후.
“와, 상재(商材)를 가진 이 사람을 농지 개발 파트에 보내 놓은 거야?”
“아니, 평생을 무장으로 살아온 장수에게 상업 파트 일임은 도대체 왜……?”
“영지에서 악명이 이렇게 높은 사람에게 치안을 맡겨?”
“영지 직속 상단의 상단주도 낙하산 인사네. 상계 쪽에서 일해 본 경력이 너무 짧잖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인물이 하나도 없었다.
전부 미스 매치였다.
과거의 활동 내역을 정리한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어느 분야에 관심이 많고, 능력이 있는지를 훤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전혀 그것이 고려되지 않았다.
에서 영지를 운영할 때, 각자의 성향과 스탯 그리고 적합도에 맞춰 인재를 배치하는 것은 상식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 일할수록 시너지효과가 증폭된다.
이건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에서는 인재 배치를 엉망으로 해서 영지 경영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유저는 수시로 그들과 회견을 하여 불만을 파악하고, 원하는 업무 분야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귀찮은 나머지, 많은 유저가 대충 머릿수만 채워 놓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런 유저의 결말은 뻔했다. 영지를 잃고, 빈털터리 떠돌이 유저가 되는 것뿐.
영지 경영이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해도 되는 간단한 문제였다면, 나도 에서 최상위 랭커가 됐을 것이라 자신한다.
그만큼 사람을 부리는 것은 어렵다.
‘일단 가신들부터 소집하자. 심안 스킬이 있으니까 성향 파악을 하는 것은 이제 쉬워.’
-심안 내놔!”
“이자벨라, 아직 안 갔어? 싫어. 심안은 영지 운영에 꼭 필요하거든. 절대 안 돌려줄 거야.”
-언제까지 안 돌려주나 보자!
“내가 죽으면 가져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 눈 내놔!
갑자기 튀어나와 내 집중을 방해하는 이자벨라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집무실로 향했다.
1차 인사 개편을 단행한다.
지금 영지 운영은 막장을 넘어서 몰락으로 가기 일보 직전이다.
우선은 그것부터 막아야 했다.
* * *
“어디 보자…….”
가신들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집무실에서 마법사로서의 내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아직까지는 마력 스탯이 높지 않아 마법을 마음껏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4클래스 마법까지의 이해도는 충분히 차고 넘쳤다.
파팟. 팟. 팟.
손 위에서 마법 구체가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캐스팅 단계에서 취소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체내의 마나 흐름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가문의 비전으로 내려온 유칼레스 가문의 마나 심법을 수련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칼레스 마나 심법’을 수련했고, 열 살 이후로는 숨만 쉬어도 마나 순환이 이루어질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 때문에 열다섯 살 이후, 아버지의 죽음이 준 충격으로 내가 연공법 수련을 포기하기는 했어도 몸은 알아서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똑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모두 들어오시오.”
내 목소리가 들리자, 회의에 소집된 가신들이 하나둘 차례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영주가 가신들을 소집한 이 진지한 자리에서.
어찌 된 영문인지 술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진짜 개판이네. 영주의 권위부터 확실하게 다시 세울 필요가 있겠어.’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실제로 영주의 권위는 가신들의 충성도와도 연결된다.
좋은 게 좋다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영지를 운영하다가는 무조건 망하고 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가신들을 향해 외쳤다.
“누구인가? 누가 대낮에 술을 잔뜩 마시고 회의에 나왔는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