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71
제 71화
28장. 발데스 한츠페터 – 1화
“꾸웩!”
“올해는 영 싱겁네. 작년엔 입구에서부터 덴 터라 이번에는 2배 이상 인원을 끌고 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절반으로 줄였어? 간도 크네.”
7월 1일.
나는 작년과 똑같이 악몽의 숲에서 벌어진 몬스터 아웃브레이크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1인 방어.
사용한 꼼수는 작년에 이용한 차원문 버그로 완전히 똑같았다.
영원히 픽스 되지 않을 버그는 꾸준히 꿀을 빨아야 제맛이니까!
놈들에게 학습 효과가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오산이었다.
지난 아웃브레이크에서 살아 돌아간 몬스터가 단 한 마리도 없었기에 이쪽 정보가 전혀 전달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만 차원 너머에 있을 이놈들의 리더는 그 때문에 께름칙한 느낌을 받았는지, 이번에는 규모를 반 토막 내서 보냈다.
그런 이유로 레벨은 적당하게 오른 70의 숫자로 딱 맞춰졌다.
한편 레벨 60까지 레벨이 10단위로 오를 때마다 주어지던 한계 돌파 보너스는 사라졌다.
꽤 짭짤한 지혜 스탯 확보원이었는데, 아쉽게 됐다.
한편.
레벨업으로 확보한 추가 스탯은 모두 마력에 투자했다.
올해 영지 운영과 정복 전쟁으로 워낙에 바빴던 터라, 스탯창의 내용을 상세히 보는 것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그간 버그 수련과 유망주 성장 보상으로 오른 마력, 이자벨과의 수련으로 오른 마법 방어력까지.
정산되어 있어야 할 요소가 많아 무척 기대가 됐다.
[자레드 – Lv. 70] [근력 : 110][체력 : 100] [마력 : 5729][지혜 : 360] [민첩 : 90][매력 : 305] [물방 : 180][마방 : 787] [잔여 스탯 : 0]‘마방 수치, 이거 실화냐?’
절로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마법 방어력이 어느덧 800에 육박하고 있었다.
마법 방어력을 의 시스템에 맞춰 지표를 놓고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마방 200, 1클래스 마법 면역.
마방 400, 2클래스 마법 면역.
마방 800, 3클래스 마법 면역.
이런 식이다.
100%의 완전 면역은 아니고, 정확한 수치로 말하자면 98% 면역 정도 된다.
하지만 2%를 실드나 기타 방어 자세로 메우기 때문에 사실상 면역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내가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마법을 피격당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러므로 이제 내 몸은 3클래스 마법까지 무시해도 될 정도의 항마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부분에서 보자면 부족한 물리 방어력이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만족을 느낄 수는 없는 법.
이 부분은 아티팩트 등을 통해서 채우기로 생각을 매듭지었다.
“끄륵, 끄르륵…….”
그때,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던 오우거 한 마리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며, 제법 유창한 나스 대륙어로 중얼거렸다.
“아그라트 님께서 반드시 내 복수를……. 크헉.”
오우거가 혀를 빼문 채 숨을 거뒀다. 아그라트. 이름이 생소하지는 않다.
다만 지금의 상황과 이 이름과의 연관 관계가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그라트는 암흑 교단의 종파 중 하나인 카코(Kako) 교단과 관련된 인물일 텐데?’
암흑 교단은 하나가 아니다.
암흑 교단의 종파(宗派)에는 움브라 교단도 있고, 카코 교단도 있다.
움브라 교단이 나스 대륙 북부에 거점을 둔 교단이라면, 카코 교단은 남서쪽이 거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암흑 교단임과 동시에 성마 대전이 발발하기까지 마왕군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한다는 것이다.
즉, 마왕군이 이 세계에 강림하기 전에 터 닦기 작업을 해 두는 역할이다.
‘왜 오우거의 입에서 카코 교단과 연관된 인물의 이름이 나오는 거지?’
물음표 시즌인가 보다.
카이클과 레드 퀸부터 오늘의 일까지! 간만에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가 줄줄이 등장했다.
오우거가 의도한 건지, 아니면 죽기 전의 발악으로 토해 낸 진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아웃브레이크와 카코 교단 사이에 연관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일단 추리의 첫 번째 실마리는 얻은 셈이다.
움브라 교단만큼이나, 카코 교단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조사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자동 생산공정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겸, 영주 대저택 지하에 넓게 만들어진 공정실로 향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혼자 갔을 텐데, 오늘은 동행이 있었다. 이자벨이었다.
어차피 공정실이 기밀 시설은 아니었기 때문에 같이 가자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내 꾸준한 손길이 없으면 여기 있는 생산공정들은 단 하나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른 일이 생길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됐다.
내부를 꼼꼼히 둘러보기를 한 시간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자벨에게 물었다.
“이게 그렇게 보고 싶었어?”
“응, 항상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만들어 내는 너잖아? 그 꿈이 담긴 공간이 여기니까, 한 번은 꼭 보고 싶었어.”
“이제 소원 성취는 했네?”
“뭐, 작은 소원쯤은?”
“요즘 주술 수련은 어때?”
“3성 주술까지는 마스터했어. 하지만 마의 구간이라 불리는 4성 주술은 하나도 제대로 익히기가 쉽지 않네. 너무 버거워.”
이자벨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가파른 주술 성취는 정말 반길 일이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바로 주술 그 자체가 가진 어둡고 음험한 특성이었다.
처음 내가 이자벨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녀는 말수도 많고 전반적으로 기분이 업 되어 있는 그런 여자였다.
하지만 새 몸을 얻고, 주술을 본격적으로 연성하기 시작하면서 말수가 줄었다.
대신 눈빛과 시선에는 이따금씩 살기가 돌 때가 있었다.
정말 살의를 지녀서 그런 것은 아니고, 주술 특유의 성질 때문에 생긴 무의식적인 변화인 듯했다.
그나마 그녀가 조금이라도 웃고,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나와 헤이즈가 유일했다.
저택의 하녀들도 그녀만큼은 무서워했다. 오죽했으면 그녀의 방에 들어가는 일조차도 눈물을 흘리면서 제발 빼 달라고 했을까?
“너무 서두르려고 하지 마. 3성 주술로도 충분해. 이걸로도 평생은 먹고살 수 있어.”
“밥벌이로 목숨 연명이나 하려고 주술을 수련하는 게 아냐. 내게는 전생부터 이어지는 숙명 같은 것이 있어.”
“그 전생, 내게는 왜 말해 주지 않는 거야?”
“단언컨대 너는 모르면 모를수록 좋아. 진심이야. 관심을 끌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자벨은 늘 전생에 대한 말을 아꼈다.
그녀가 드러내 설명해 준 적은 없지만, 나는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나스 대륙의 남단으로 쭉 시선을 내리면, 신데르스 왕국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라디우스 교단을 적극 추종하는 국가가 있다.
바로 트란실리아 신성제국.
이 제국은 어둠의 성질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금지한다.
학문은 물론이고, 어둠과 암흑을 조금이라도 상징하는 이름조차 지을 수 없게 한다.
상호, 지명, 사람, 도시 이름 등등 모든 것에서 어둠을 배격한다.
다만 신성을 추구하는 그들에게는 사실 씻을 수 없는 과오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술사 대학살’ 사건이다.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이자벨이 악령이 된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트란실리아 제국의 황제는 흔들리는 황권을 되찾기 위해 희생양을 찾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국의 주술사들은 학문과 연구를 견고히 지탱하던 핵심 세력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주술 특유의 암(暗)적인 특성을 문제 삼았고, 이를 빌미로 대학살을 일으켰다.
그것이 ‘트란실리아 대학살’의 시작이었다.
이때 죄 없는 주술사가 모조리 죽임을 당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 연루되어 처형됐다.
나는 이자벨이 이 시점에서 희생된 주술사 혹은 주술사의 자녀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녀는 감추고 있지만, 속에서는 깊은 원한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심증만 있고, 물증은 전혀 없다.
“좋아, 그럼 그 얘기는 됐고. 마력 운용에는 문제없어?”
“펑펑 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신경 써서 안배를 하면 장기전도 무리는 없어. 괜찮아.”
나는 그녀의 말을 직접 확인해 볼 겸, 심안으로 이자벨의 상태를 스캔했다.
[이자벨 – Lv. 75] [근력 : 29][체력 : 41] [마력 : 401][지혜 : 108] [민첩 : 19][매력 : 54] [물리 방어력 : 10] [마법 방어력 : 33] [특수 성향 : 절망의 낙인 S / 고통스러운 치유 S / 광폭화 C] [일반 성향 : 분노, 사랑, 질투]‘고통스러운 치유는 A에서 S로 한 단계 올랐고, 대미지가 누적되면 정신 붕괴를 유도하는 광폭화도 벌써 C등급?’
생각보다 이자벨의 성장이 가팔랐다.
고통스러운 치유는 주술 대미지가 누적될수록 상대의 회복 능력을 현저하게 깎는 디버프다.
처음에는 티가 확 나지 않지만, 디버프가 누적되면 뼈가 시릴 정도의 회복 능력 저하로 실감하게 된다.
새로운 특수 성향을 개화(開化)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것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도 힘들다.
한데 이자벨은 몇 개월 사이에 S 등급의 성향을 두 개나 가지고, 거기에 한 가지를 추가해서 C까지 달성했다.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본 내 눈이 결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조만간 던전 공략을 하러 갈 거야. 지난번 마하트 3세의 무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집중이 필요한 곳이야.”
“정말? 어딘데?”
되묻는 이자벨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잔뜩 어렸다. 지금만큼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보는 것처럼 밝은 생기가 감돌았다.
“마군의 피난처.”
“거기! 얘기 들어 본 적 있어. 예전에 악령들의 모임에서.”
“설마?”
죽은 사람들 얘기인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자벨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죽은 사람! 거기서 줄줄이 죽어서 동시에 원혼이 된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거든.”
“반가운 소식은 아니네. 물론 우린 그렇게 되진 않을 테지만.”
“어쨌든! 공부 열심히 해 둘게. 어떤 곳인지는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거든. 이번에는 확실하게 밥값 할 거야.”
“좋아.”
“먼저 올라가 볼게. 기분이 울적했는데, 좋은 구경을 하게 해 줘서 고마워.”
“그래, 난 잠시 살펴볼 게 있어서.”
나는 문 앞까지 나가 이자벨을 배웅한 뒤, 다시 지하실의 문을 잠갔다.
로넬라 병 약초 생산 장치.
상급 마력 포션 생산 장치.
자레드 지뢰 생산 장치.
마정석 조명등 최종 세공 공정.
영상 장치 최종 세공 공정.
이렇게 다섯 개의 생산품이 부지런히 제조되고 있다.
이런 자동 생산공정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전이기도 하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구축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마정석과 금화를 소모하긴 했지만 말이다.
자동 생산 덕분에 제작 레벨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마력 포션도 ‘최상급’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아울러 로넬라 병의 약초 생산 속도도 3배 이상 빨라질 전망이다.
곧 약초 제작 최고 레벨인 100레벨을 찍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바쁘게 돌아가던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영상 장치 쪽이었다.
이번에 움브라 스캔들을 터뜨리고, 프탈린과 제스를 제압하는 데 영상 장치가 참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
이미 영상 장치는 군에서 정찰의 용도로 널리 쓰이고 있었다.
역시 나만이 생산할 수 있는 물품이라 외부 기술 유출 염려도 없었다.
‘군사 용도뿐만이 아니라 문화 용도로도 사용하면 어떨까?’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영상 장치는 카메라의 녹화 기능과 빔 프로젝터의 역할을 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 적절하게 스크린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물체만 있으면 영상을 보여 주는 것도 가능하다.
일전에 신데르스 왕국의 왕성에서 프탈린의 영상을 공개 상영했듯이 말이다.
“그래, 키워드는 영화! 바로 문화생활이야!”
딱!
나는 손가락을 힘껏 튕겼다.
내 영지에 2% 부족한 것 같았던 문화 콘텐츠. 이를 채울 수 있는 수단이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