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73
제 73화
28장. 발데스 한츠페터 – 3화
특수 성향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방면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발데스의 특수 성향 중에서 대중적 문화학은, 그가 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을 끊임없이 고민해 왔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문화생활도 포함이 될 것이고, 지금은 아마 대중 연극 같은 것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광신적 추종과 집단 최면은 예전에 발데스의 장기였던 특성이었다.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에 완벽히 동조시키고, 그 외의 판단을 일체 배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다음, 동일한 목표를 힘 있게 추구하기 위해 집단적 광기를 부여한다.
이것이 바로 ‘연설형 버프’였다.
청중이 두려움을 잊거나 둔감해지도록 만들고, 그 자리를 신념과 추진력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렇게 사상까지 완벽하게 무장되면, 개개인은 정말 무서운 개체로 바뀌게 된다.
자레드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발데스는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인가? 그렇다.
그의 미래에 걱정될 만한 요소가 있는가? 그렇다.
내가 그 미래를 확실하게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다.
부정적 요소보다 긍정적 요소가 많았다.
‘영지의 모든 운영을 내가 도맡아서 할 수는 없어. 그리고 발데스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자레드는 결심했다.
전생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긴 하지만, 레나처럼 그 역시 자신이 그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다른 잡생각을 모두 털어 낸 자레드는 힘주어 발데스에게 말했다.
“발데스.”
“예, 영주님.”
“혹시 내 밑에서 크리비아 대영지의 선전 장관으로 일해 볼 생각은 없소? 그대에게 나의 대변인 역할은 물론이거니와, 문화 산업의 육성과 진흥을 맡기고 싶소.”
“선전 장관…… 말씀이십니까?”
발데스는 적잖이 놀랐다.
영지에 거점을 두고 있는 다른 유명한 연사들이야 정치적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발데스는 그런 욕심이 없었다.
그저 맛 좋고, 질 좋은 맥주를 파는 크리비아 펍에서 제법 품격 있는 청중들을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
그 자체를 낙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였다.
물론 처음부터 아무 꿈도 없이 연설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제법 출세를 꿈꾸며, 다른 영주의 밑에 들어가 선전관과 비슷한 업무를 맡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발데스는 실망하고 또 실망했다.
자신이 섬기는 영주들이 하나같이 알맹이 하나 없고, 그저 개인의 사리사욕만 탐하는 악마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 자체에 환멸이라는 감정이 생길 정도로 함께했던 영주들은 모두 수준 미달이었다.
그들은 행하지 않은 선행을 꾸며 내서라도 말하라며 공공연히 발데스를 압박했고, 영지의 재난 소식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등!
추악한 짓거리를 한 줌의 죄책감도 없이 서슴지 않고 벌였다.
그런 일들을 겪은 후 발데스는 재야의 삶으로 돌아왔다. 이후로도 몇 차례 제안이 왔지만, 그놈이 그놈이라 생각하며 모조리 거절해 왔다.
‘하지만 영주님은 달랐지.’
근래 그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자신에게 선전관의 자리를 권하고 있는 자레드였다.
그는 영지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영주였고, 아울러 다양한 마도 공학의 혜택을 영지에 접목시켰다.
마정석 조명등은 그야말로 대혁명이었다!
이 녀석 덕분에 범죄율이 크게 줄어들고, 밤에도 안심하고 길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구황작물인 레트리아의 생산이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면서, 대륙 북부의 고질병과 같았던 식량난도 상당히 해결된 상태였다.
‘이 사람이면 충분히…… 내 이상을 펼칠 만해. 예단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모습만 놓고 본다면.’
자레드를 지켜보는 발데스의 두 눈에 잔뜩 힘이 실렸다.
자레드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며, 묵묵히 답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발데스가 하나 생각난 것이 있는 듯,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저는 악마가 될 지도자의 선전을 담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선전관의 길이란, 자신이 섬기는 대상과의 완벽한 일체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악마가 된다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악마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군. 좋은 말이오.”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데스는 선전관으로서의 자신을 영지, 영주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프로페셔널한 모습이었다. 자레드가 원했던 모습이기도 했고.
“제 입으로 거짓이 아닌 진실을, 그리고 지도자의 축복과 덕망을 감동하여 노래할 수 있도록! 부디 그런 인덕(人德)을 갖춘 지도자가 되어 주신다고 제게 약속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제 모든 것을 영주님께 바치겠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오? 원하는 보수를 말해 보시오.”
“하하하, 저는 돈 욕심은 없습니다. 그저 제가 모시는 분을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리고자 하는 열망, 그 야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건 돈 몇 푼과는 바꿀 수 없는 대단한 가치죠.”
차분하고도 듣기 좋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속내를 밝히는 발데스의 이야기에 자레드의 감정이 한층 끓어올랐다.
‘야심가였던 건가. 킹(King)보다는 킹메이커(King Maker)를 꿈꾸는 그런 사람.’
에서는 들어 볼 수 없었던 발데스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랬다.
그는 그저 자신을 거둔 주인이 어떤 세파(世波)에도 굴하지 않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길 바랐던 것이다.
그가 에서 피를 토해 가며, 연단에서 청중들에게 끊임없이 연설을 퍼부었던 것도.
자신이 주인으로 모시던 마왕의 실패 없는 성공을 바랐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하겠소. 반드시 그대가 원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하지. 내가 초심을 잃는다면 언제든 내 곁을 떠나도 좋소. 미련 없이 말이오.”
“감사합니다, 영주님. 모자란 능력이지만, 감히 영주님과 함께 다시 한번 큰 꿈을 꿔 보겠습니다.”
“그대가 원하는 큰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내 영혼을 바쳐서라도 모든 것을 이뤄 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영주님, 칼라카스 꽃잎 차를 내왔……. 응?”
그때, 차를 준비해 VIP룸 안으로 들어선 아르케네스가 방의 묘한 분위기에 놀라 자리에서 멈춰 섰다.
자레드와 발데스가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결연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주님의 곁에 또 한 분의 인재가 자리를 채우는구나. 잘됐다. 참으로 잘됐어.’
오랫동안 발데스를 지켜봐 온 아르케네스였기에 기뻤다.
언제 그의 진가를 자레드가 알아봐 줄까 싶었는데, 오늘이 마침 그날이었던 것이다.
기분 좋은 날이었다.
* * *
나는 VIP룸에서 밤을 새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발데스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처음 만난 발데스였지만, 마치 수십 년 지기를 만난 것처럼 모든 대화가 잘 통했다.
기본적으로 발데스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내 입장에서, 내 감정을 대입시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한결 대화가 편했다. 영혼을 나눈 친우와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발데스와 영화 산업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세계에 아직 영화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를 두고 많은 얘기를 나눠야 했다.
단,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는 발데스의 태도 덕분에 대화는 빠르게 급물살을 탔다.
“일단 영화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허나 영화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영지 운영의 묘수가 될 것입니다.”
“내 생각도 같소.”
“거리의 영향을 받는 연극과 달리, 멀리서도 큰 화면을 두고 움직이는 인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큼 즐거운 것도 없지요.”
“장치는 계속해서 연구하고 개발하는 중이오.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보다 더 나은 장치가 나올 것을 확신하오.”
나는 힘주어 말했다.
제작 레벨이 오를수록 상위 단계의 물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안배를 해 주기 때문이다.
지금의 영상 장치는 소규모 영화관 정도의 스크린을 채울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여기서 한 단계 혹은 두 단계 정도 더 업그레이드되면, 대형 영화관 뺨칠 정도의 상영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우선 우리 크리비아 영지군의 즐거운 군 생활, 그리고 다른 영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군 복지, 최근 이뤄 낸 성과들에 대해 다루는 선전 영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선전 영화라…….”
“영화를 선전의 목적으로만 활용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접근성이 좋은 선전 영화를 시작으로 영화 촬영 기술 및 기법을 확보하여, 다양한 활용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염두에 둔 인물은 있소?”
“마침 영주님께서 신데르스 왕국에서 영상 상영을 하신 이후,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등장을 놓고 발전적인 논의를 하던 말벗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연극 감독도 있고, 관계자들도 꽤 있지요.”
“펍에서 맺어진 인맥이군?”
“맞습니다. 저희는 이 인맥을 통틀어 크리비아 패밀리라고 부르지요. 꽤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름입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오. 감개무량하기까지 하군. 내 영지의 이름을 붙이다니?”
“하하하, 그런 반응을 보이실 것 같았습니다!”
“추천할 만한 인재가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시오. 내 귀는 아주 크게 열려 있으니까 말이오.”
“예, 제가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장단점을 리스트업해서 올리겠습니다.”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
내가 놀라 되묻자, 발데스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저는 영주님의 가신이잖습니까? 당연히 진실만을 말씀드려야지요. 하물며 제 가족이라 하더라도 허물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고맙소. 리스트를 넘겨주면 내가 그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어 볼 것이오.”
“면접,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아, 그리고 영주님.”
발데스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그와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여전히 할 말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 가지 꼭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머릿속으로 구상을 했던 것이지만 추진한 분이 없었던 터라…….”
“말해 보시오. 아까도 말했듯, 내 귀는 활짝 열려 있소.”
“영주님, 영주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일대기, 그리고 영지 운영에 대한 신념과 생각을 담은 자서전(自敍傳)을 한 권 쓰시는 것은 어떨지요?”
“자서전이라……. 아직 스물여섯의 나이면, 자서전을 쓰기에는 좀 이른 나이 아니오?”
“그럴 리가요. 이티마 제국의 전설적인 영웅인 기사 게니츠도 스물한 살에 자신의 자서전을 썼잖습니까? 영주님께서 그 이상의 영웅이 되시지 않으란 법이 없지요.”
발데스가 나를 띄워 주기 위해서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말이 무척 기분 좋게 들렸다.
“좋소. 그럼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겠소?”
이미 한밤을 지나 새벽, 새벽을 지나 동이 틀 무렵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나와 발데스의 대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몇 날 며칠을 VIP룸에서 함께했다.
그리고 남들과는 평생을 함께해도 나누지 못할 만큼의 이야기보따리를 교환했다.
유능한 가신이자 나를 아주 즐겁게 해 주는 좋은 말벗이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