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76
제 76화
29장. 마군의 피난처 – 3화
행운의 반지.
정말 고약한 반지다.
아마 소싯적에 행운의 편지를 받아 봤으면 알겠지만, 말이 행운이지 받고 나면 기분이 더러운 편지다.
이것을 복사해서 다른 이들에게 보내지 않으면, 행운이 아닌 불행의 편지가 되기 때문이다.
의 짓궂은 개발진들은 아티팩트에 이런 것을 만들어 놓았다.
게임에서야 죽으면 다시 부활하면 된다지만…… 여긴 현실이다. 죽은 목숨이 부활 버튼 클릭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사이에 시간은 30초 가까이 훌쩍 흘러갔다.
나는 별생각 없이 반지를 쥐고 있었는데, 이유는 그라시아의 반지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반지는 무조건 즉사가 아니라, 접촉자의 정신을 붕괴시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해 행동을 하게 만든다.
성인 그라시아의 반지는 모든 정신 계열의 디버프 마법과 효과에 면역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행운의 반지의 툴팁에 적혀 있는 ‘당신의 모든 정신을 잠식할 것’이라는 멘트에 덤덤할 수 있었다.
‘남들에게는 재앙이겠지만, 내게는 나름대로 꿀이 되겠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 지금까지 처음 이 반지를 주웠던 사람을 제외하면, 많은 이들이 이 반지에 희생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잖은가.
60초 내에 네 사람에게 번갈아 반지를 끼워야 하는데, 갑자기 다급하게 반지를 끼운다고 하면 누구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실제로 이 반지가 떨어져 있던 위치도 구석에 보이는 백골로부터 그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었다.
행운의 반지는 소기의 목적 – 4명에게 반지를 끼우는 – 을 달성하면, 유익한 옵션으로 툴팁이 바뀐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반지를 끼우지 않고도, 즉사의 저주를 받아 낼 수 있으니 문제없다.
그리고.
팀원들이 잠시 멈춰 있는 나를 기다리며, 던전 내부의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행운의 반지가 경고했던 1분이 끝났다.
“윽.”
그 순간, 레드 퀸을 만났을 때처럼 약한 두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잠시뿐이었고, 이내 두통은 누그러들었다.
‘오!’
동시에 행운의 반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반지의 저주가 발동되어 제물이 될 대상을 제거하였습니다.]‘저주 자체를 주입하기는 했으니, 당연히 죽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네?’
시스템의 오해인 듯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됐으니 기분 좋은 일! 나는 계속 메시지를 살폈다.
[행운의 반지 : 플레레의 축복] [분류 등급 : 5성] [옵션 1 : 반경 69m 내의 모든 아군의 경험치 획득 100% 증가] [옵션 2 : 반경 69m 내의 모든 아군, 초당 체력 0.5 회복] [옵션 3 : 반경 69m 내의 모든 아군, 초당 마력 0.5 회복] [옵션 4 : 운수 좋은 날 – 즉사에 이를 수 있는 치명상이 될 공격을 반지의 힘으로 회피합니다.1회 한정. ‘운수 좋은 날’의 발동 후 옵션 4는 사라집니다.]
‘럭키! 정말 행운의 반지가 됐네.’
저주를 받아 냈더니, 용도가 다양한 버프형 반지로 바뀌었다.
옵션 1부터 3까지는 나뿐만이 아니라, 팀원 모두에게 이득을 줄 버프로 채워져 있었다.
아울러 옵션 4는 내게 비상시에 활용할 수 있는 목숨 하나를 준 것이나 진배없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오랜 시간 던전 속에서 싸늘한 백골이 되어 버린 과거의 헌터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시작부터 조짐이 좋다.
뜻하지 않은 득템을 했으니, 더욱 힘주어 던전을 공략할 차례다.
* * *
자레드 일행은 지하 1층의 다섯 번째 석실까지 예정대로 빠르게 전진했다.
수월하게 전진하게 된 배경에는 역시 자레드의 유려한 드리블 솜씨가 한몫을 했다.
다섯 번째 석실에 도착한 자레드가 내벽의 여기저기를 훑으며 조사를 하는 동안.
옹기종기 모여 앉은 나머지 일행 중에서 자레드 다음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라키스가 운을 뗐다.
“다들 신기하지 않으냐? 다른 헌터들은 이 석실로 오는 과정에서 심심찮게 목숨을 잃는다는데, 우리는 정말 편하게 걸어 들어왔으니 말이다.”
라키스의 말에 화답한 것은 역시 자레드 바라기, 헤이즈였다.
“정말 대단해요! 영주님이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적마귀들을 요리조리 유인하면서 몬스터끼리 서로 죽이도록 만드셨잖아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레드는 거의 스무 마리가 넘는 적마귀를 달고 다니면서, 다음 석실로 계속 전진해 왔다.
어그로가 풀리지 않도록 꾸준히 대미지를 넣어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때문에 적마귀는 한 번도 다른 팀원에게 정신이 팔린 적이 없었다.
“난이도가 높은 몬스터 드리블이었어요. 눈 호강이랄까.”
좀처럼 평을 하지 않는 클로이도 의견을 더했다.
이론적으로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A급, 아니 S급의 마법사 헌터도 하기 힘든 것이 몬스터 드리블이라고 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스무 마리나 되는 대단위였다.
하지만 자레드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여유롭게 해냈으니, 감탄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나저나 영주님은 뭘 저렇게 찾고 계신 걸까요?”
레나가 계속 내벽의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며, 두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는 자레드를 가리켰다.
마치 숨겨진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게 자레드가 벽을 더듬으며 부지런히 다니기를 5분여.
모든 팀원의 시선이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담기 시작할 바로 그때.
“찾았다!”
자레드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소리쳤다.
그리고.
“고개 돌려요!”
벽에 손을 대고 팀원들에게 경고했다.
그의 말에 모두가 차례대로 벽과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하압!”
자레드가 힘껏 기합을 내지르면서 순간적으로 마력을 방출했다.
퍼엉!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단단한 내벽처럼 보였던 공간에 뻥, 하고 구멍이 뚫렸다.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평범해 보였던 내벽의 새로운 변화였다.
* * *
‘마군의 피난처. 지하 1층 제5 석실에서 지하 4층 제8 석실로 이어지는 샛길. 개발진이 지름길의 개념으로 만들다가 중단해서 흔적만 남은 통로.’
내 기억은 정확했다.
다섯 번째 석실, 그러니까 제5 석실의 내벽을 꼼꼼하게 짚어 본 끝에 빈 공간을 확인했다.
보통 벽 안쪽은 흙이든 자갈이든 꽉 채워져 있어야 하지만, 유독 텅 빈 느낌이 드는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가 바로 내가 기억하는 이 던전의 꼼수인 지름길이었다.
물론 단어의 의미 그대로의 지름길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하 4층 제8 석실까지 완전히 뚫려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제8 석실까지 이어지는 루트의 중간에 길이 끊긴다.
공정률로 따지면 85% 정도?
그렇기에 이 길을 따라 들어가게 되면, 마지막에 15%는 직접 파고 들어가야 했다.
이 길은 개발진이 만들다 만 길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의 계획은 마군의 피난처를 공략하러 온 유저들에게 소소한 공략의 재미를 주려던 것이었다.
모든 석실을 공략하면서 들어가는 정공법이 아니라, 나름대로 비정공법을 만들어 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지하 1층에서 지하 4층으로 단번에 뛰어넘는, 너무 혜택이 큰 하이패스였기에 지름길 구축 도중에 설계를 중단해 버렸다.
다만 뚫어 놓은 길이 아까워서 없애지 않고 공정 그대로 내버려 뒀는데,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혹시 나중에 내가 전생에 즐겼던 의 유저들과 만나는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일전에 베르하드도 한 번 언급했었던 동방 대륙이다.
나도, 이 세계의 사람도 동방 대륙은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혹시라도 동방 대륙의 탈을 쓰고 전생의 세계관과 연결되게 해놓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
일단 복잡해질 뻔했던 생각을 털어 내고, 나는 던전에 오면서 가져온 폭탄 하나를 꺼냈다.
자레드 지뢰를 살짝 개조한 것인데, 밟으면 터지는 기존의 지뢰와 달리 시한폭탄처럼 정해진 시간 후에 터지도록 손을 본 녀석이었다.
“전부 여섯 번째 석실로 향하는 통로에 시선을 집중해요. 이 폭탄이 터지면, 반대편에서 반응한 적마귀나 다른 마귀들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척! 처척! 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통로를 두고, 학익진 대형으로 대열을 갖췄다.
나는 넉넉하게 폭탄 세 개를 통로 안으로 던졌다.
나름 벽을 뚫어야 하는 것이기에 어설픈 화력으로는 모자라다.
퉁! 투퉁! 퉁!
이내 폭탄이 내부의 비탈진 통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지하 4층의 8번 석실 앞으로 향하고.
그로부터 10초 후.
쿠우우웅!
크게 폭음이 들렸다.
생각보다 던전 자체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소규모의 응축된 소형 폭발을 일으키도록 화력을 충분히 조절해 놓은 폭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크웨! 크웨에! 크웨!
짧고 굵었던 진동에 반응한 마귀들이 제6 석실에서 통로를 따라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히히, 재밌다!”
쿠와아아아!
미아가 유려한 동작으로 손을 휘저으며, 통로 방면을 향해 거칠게 바람을 끌어들였다.
그러자 빠르게 접근해 오던 마귀들의 속도가 대폭 느려졌다.
바깥에서 불어 들어온 바람이 좁은 구간에 접어들자, 강풍으로 돌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앗! 하앗!”
레나는 통로에서 5번 석실로 진입하는 경로에 자리를 잡고 방패를 높이 세웠다.
그리고 앞뒤로 움직이기를 반복하며, 장검으로 힘껏 찌르니 마귀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
이자벨은 묵묵히 주술을 마귀들에게 걸어 나갔다.
특히 후방에서 보이는 적마귀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꾸웨? 구웨엑?
그러자 갑자기 눈빛이 돌변한 적마귀가 자체 폭주를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옆에 있던 마귀들을 끌어안으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엉! 퍼어어엉!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다른 동료 마귀들까지 죽이는 팀 킬을 자행했다.
“앞의 잔챙이는 제가 처리하죠.”
이윽고 클로이가 폭발의 구렁텅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진 마귀에게 달려들었다.
“클로이, 내가 지원할게!”
이어서 헤이즈가 붙었다.
팀원들 중에서 가장 몬스터에게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 것은 역시 암살자 계열인 클로이.
그녀가 가장 부상 위험이 높은 만큼, 헤이즈가 바로 치유술 준비에 들어갔다.
디바인 스리의 경지에 오르면, 원거리에서도 치유술을 전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정 거리를 두고도 충분히 아군을 지원할 수 있었다.
“좋아. 정말 좋아.”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유기적인 팀플레이. 그리고 플레이에 걸맞은 수준의 실력 탑재.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
나는 꼼수로 뚫어 놓은 길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빠르게 구멍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여기에는 대기 전력으로 라키스가 있을 테니, 큰 변수가 없는 한 별일은 없을 것이다.
프스슷.
프슷. 프스슷.
비탈진 통로를 따라 흙무더기를 잔뜩 묻히며, 나는 아래로 쭉쭉 내려갔다.
옷은 더러워졌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던전의 전체 규모로 놓고 봤을 때, 70%에 가까운 범위를 뛰어넘는 지름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 것이었기에.
그리고.
“정확해! 아주 정확해!”
통로의 끝에 도착한 나는 눈에 익은, 지하 4층 제8 석실의 내부 전경과 마주칠 수 있었다.
마군의 피난처에서 마의 구간으로 불리는 지하 2층과 3층을 단번에 뛰어넘어, 4층의 끝자락에 닿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