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77
제 77화
30장. 초월 마법 – 1화
지하 4층, 제8 석실.
팀원들이 차례대로 들어오고.
일행의 후방을 지키며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라키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유독 눈에 띄는, 멀리 있는 큰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영주님, 설마 저것이 브리핑 내내 말씀하시던 중보 플레레입니까?”
“맞소. 많은 헌터가 저 플레레를 공략하다가 죽지. 워낙에 많은 트랩이 설치된 곳이라서 희생 없이 공략하기가 힘드오. 우스갯소리로 공략 전에 죽을 사람 하나를 찍어 놔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
그의 말을 따라 내 시선도 자연스럽게 플레레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한눈에 들어왔다.
축구 운동장 크기의 대형 석실 안에서 양손에 거대한 철퇴를 들고 다니는 플레레의 모습이.
언뜻 보기에는 힘만 세고, 지략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파워형 몬스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플레레가 부린 고단수의 술책이었다. 이로 하여금 적의 방심을 유도한 뒤, 영리한 플레이로 그들의 목숨을 앗아 갔던 것이다.
애초에 철퇴 자체도 기만이다.
플레레는 흑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형 몬스터였다. 그래서 더 까다로웠다.
완력은 완력대로, 마법은 마법대로 쓰니! 물방과 마방을 고루 챙기지 않으면 공략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름길로 간단히 플레레 구간을 뛰어넘었다는 말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던전 공략의 묘미다.
꼭 순차적으로, 순리를 따라 공략을 진행할 필요는 없다.
저 녀석을 죽이지 않는다 해서 다음 석실로 전진할 수 없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영주님은 모르시는 게 없다니까!”
헤이즈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앞선 전투에서 몇 번이나 끔찍한 광경과 마주했지만, 전혀 정신적 대미지가 없어 보였다.
전투가 체질인 걸까?
아니면 나와 함께 온 던전이라 한 걸음, 한 걸음이 재밌게 느껴지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던전 공략이 체질에 안 맞는 사람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주님, 각각의 층마다 8개의 석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현재 바로 지하 5층으로 접근이 가능한 것입니까?”
“맞소. 여기가 지하 5층의 제1 석실로 향하는 문이오.”
라키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가리켰다.
각층의 제8 석실에는 마귀가 존재하지 않는다.
석실 중앙에 신성력을 뿜어내는 광석이 박혀 있어, 마귀들이 절대 접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8번 석실은 그래서 대피소 혹은 야영지의 역할을 했다.
“확실히 사람이 온 흔적이 없군. 모르긴 몰라도 지하 5층 공략은 우리가 처음일 것이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여긴 달리 바람이 부는 곳도 아니고, 누군가가 와서 흔적을 청소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한데 야영의 흔적이 전혀 없으니, 아무도 온 적이 없음을 확신할 수 있다.
하물며 먹다 버린 음식이라든가 쓰다 남은 세면도구 같은 생활 흔적도 아예 보이지 않고 말이다.
“헌터의 때가 묻지 않은 던전이라니, 놀랍네요.”
옆에 있던 클로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밝히며 통로 쪽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가 저런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세상만사에 늘 ‘첫 경험’이 중요하듯, 던전에서도 ‘첫 공략’은 어드밴티지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어드밴티지는 역시 아티팩트와 마정석의 드롭률 상승 및 특수 버프 획득이다.
나는 이것을 버프로 취급하지만, 이 세계의 사람들은 던전을 보호하는 신의 가호라고 불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기운이 자신의 몸에 주입되며, 평생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근력 10% 상승과 같은 특전이다.
다만 나 혼자만이 시스템의 형태를 빌려 버프나 아티팩트의 옵션을 확인할 수 있기에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이 주신 기회지. 지하 5층부터는 몬스터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한 자산이 될 거야.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자.”
나는 팀원들을 독려했다.
지하 1층이야 나 혼자 적마귀 드리블을 하며 원맨쇼 해결을 했지만, 지하 5층은 얘기가 다르다.
특히 내성을 가진 녀석들이 나온다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주공(主攻)이 마법이고, 검술에 대해선 깊이가 부족하다. 즉, 마딜 위주의 공격이란 얘기.
한데 지하 5층부터는 적마귀와 일반 마귀 외에도 흑마귀, 자마귀, 백마귀 등이 나온다.
그리고 흑마귀는 물리 내성을, 백마귀는 마법 내성을 갖는다.
즉, 내가 아무리 화력 좋은 5클래스 마법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백마귀에게는 소용없는 짓이다.
그래서 이런 녀석들은 물리 공격이 가능한 레나, 클로이, 라키스가 전담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마군의 피난처 공략을 위해 물딜러와 마딜러의 밸런스를 맞춰서 온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모두의 동반 성장과 개인 특전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 모두 데리고 온 것도 있지만.
우선 팀원 전원에게 스트랭스와 헤이스트 마법을 전개했다.
향상된 근력과 빠른 기동력은 던전에서 필수니까.
“적마귀는 내가 상대할 테니까, 절대 누구도 적마귀는 건드리지 마. 알겠지?”
나는 신신당부를 했다.
마군의 피난처는 얼마나 적마귀를 자유자재로 이용해서, 차도살인지계로 몬스터들을 처치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고인물 짬밥 10년에 빛나는 진가를 보여 줄 때다.
“출발! 지하 5층으로 진입합시다!”
힘찬 외침과 함께 나는 선두에서 앞장서서 통로로 향했다.
우오오오! 크오오오!
저 멀리서 힘껏 포효하는 플레레의 외침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녀석은 모를 것이다.
던전에 들어온 불청객이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지름길로 갔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겠지.
‘플레레가 죽지 않으면, 가파지스에게도 전혀 변화가 생기지 않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가파지스는 지금 자신의 안식처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터.
에서 가파지스 스토리는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뭉친 용사에게서 치명상을 입고 피난처로 왔다는 설정이므로.
그는 자신의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 의도된 긴 수면을 청하면서 자연 치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파지스도 바보는 아니라서, 수문장인 플레레에게 소울 커넥팅을 걸어 두었다.
플레레가 침입자에게 목숨을 잃으면, 어떻게든 자신의 안식을 깨우는 연결 고리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구축한 꼼수 공략법에는 플레레의 죽음이 없다.
즉, 가파지스의 태평한 꿀잠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초월 증폭, 마법사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여기서 만드는 거다.’
나는 가파지스에게서 반드시 얻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떠올리며, 묵묵히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아직 가파지스가 있는 지하 5층 제8 석실까지는 갈 길이 멀다.
그때까지는 절대로 방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레나, 우측을 맡아라! 내가 좌측 전방의 백마귀를 상대할 테니, 영주님이 제거 가능한 흑마귀들을 영주님의 방향으로 유인해!”
“예, 알겠어요!”
“클로이! 코와 입으로 피를 쏟아 내는 백마귀를 처리해라! 유심히 살펴봤는데, 그 시점에 목덜미 뒤를 노리면 일격에 확실히 급사시킬 수 있다.”
“네.”
“미아는 거리를 유지하고! 접근하는 마귀들을 무조건 뒤로만 밀어 내면 되고!”
“네, 아저씨!”
“헤이즈는 신성력을 첨가한 치유술을 전방에 있는 흑마귀부터 순차적으로 쏟으면 된다!”
“오케이, 확실히 접수했어요!”
“좋아. 이 늙은이만 밥값을 하면 되는 건가! 영주님, 이쪽은 제게 맡기십시오! 하아앗!”
라키스의 외침에 자레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라키스의 체계적인 지도 아래, 모든 팀원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멋지게 싸우고 있었다.
최근 특수 성향에 전략적 교전술이 추가되면서, 라키스의 순간적인 판단력이 대폭 상승했다.
사실 그것은 크리비아 영지군의 정복 전쟁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는데, 이제는 A급 무장이라 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자레드가 라키스를 던전 공략에 데려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하 5층의 적마귀 드리블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이 필수인데, 그 과정에서 따로 오더를 내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브 리더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고, 라키스는 그 역할을 110% 수행 중이었다.
“크윽, 역시 까다롭군.”
자레드가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냈다.
고인물 짬밥으로 모든 움직임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마귀의 동선은 매우 변칙적이었다.
자레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에 제법 실력 좋은 헌터들이 오더라도, 적마귀 때문에 절반 이상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지하 1층의 적마귀는 굼벵이처럼 느린 맛이라도 있었는데, 지하 5층의 적마귀는 헤이스트 버프라도 걸린 것처럼 움직임이 진짜 빨랐다.
키헤에엣!
아니나 다를까, 사정권 안에 자레드가 보이면 녀석들은 미련 없이 몸을 날렸고.
퍼엉! 퍼엉! 퍼어엉!
사방에서 자폭하며 죽어갔다.
문제는 신체 내부가 그야말로 강산성의 체액 덩어리로 이뤄져 있다는 것.
그래서 폭발에 당하면 옷이나 피부는 물론이고, 근육과 뼈가 녹는 것은 일도 아닐 정도였다.
“후우. 후우. 후우.”
자레드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물론 땀 흘려 적마귀를 드리블하고, 놈들을 이용해 다른 마귀들을 제거한 보람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군의 피난처에서만 조건을 달성할 수 있는 칭호들을 챙겼기 때문이었다.
[적마귀 100마리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칭호 ‘적마귀 학살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악(惡) 성향의 모든 몬스터에게 입히는 대미지가 25% 추가됩니다.] [지하 5층의 제2 석실에 진입한 첫 번째 존재가 되었습니다!] [칭호 ‘지하 세계의 방문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지면보다 낮은 지하 형태의 던전에서는 지혜 수치 25% 보정을 즉시 받습니다.] [적마귀를 활용한 자폭 유도로 간접 제거한 몬스터의 수가 500마리를 돌파하였습니다!] [칭호 ‘차도살인 전문가’를 획득하였습니다. 지혜 50이 상승합니다.]‘칭호 메시지창이 터지겠구만, 터지겠어.’
자레드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칭호들은 마군의 피난처가 아니면 달성하기 힘든 조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진즉에 올걸. 이렇게 모두 전투에 열성적일 줄은 몰랐네.’
자레드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연신 감탄했다.
핏물과 비명이 난무하는 던전을 싫어할 것이라는 자레드의 예상과 달리, 모두가 열심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성장을 체감하기 시작했는지, 모두 전투에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팀원들의 레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특히 자레드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제거한 백마귀의 수가 50마리를 넘었습니다.] [칭호 ‘백마귀 도살자’를 얻었습니다. 대상이 근력 25를 영구히 얻습니다.]이런 식으로 팀원들 근처에서 계속 떠오르는 칭호 메시지였다. 심안을 장착하고 있기에 보이는 현상이기도 했다.
누구 할 것 없이 계속 이런 칭호 메시지 알림이 뜨고 있었다.
심지어 전투 내내 끊임없이 신성력이 가미된 중급 치유술로 마귀들을 제거하고 있는 헤이즈도 칭호를 얻었다.
그들은 자레드처럼 수치화된 정보를 보지는 못했지만, 온몸으로 여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전투에 몰입하고, 차곡차곡 성과를 쌓아 갈 때마다.
자신의 몸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더 높은 곳을 향한 성장을 꿈꾸는 모두에게 절대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힘의 유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