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78
제 78화
30장. 초월 마법 – 2화
“하악. 하악. 하악.”
“후우. 후우. 후우.”
지하 5층 제1 석실에서 제7 석실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지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의복 상태가 깔끔한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흙투성이에 마귀가 죽으면서 남긴 살점과 핏물의 흔적이 가득했다.
내가 클린 마법을 몇 번이나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눌러붙거나 단단히 물들어 버린 마귀의 흔적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크허.”
“정말 강행군이군요.”
“드르렁, 푸우…….”
일부는 신음을 토했고, 라키스는 땀에 흠뻑 젖은 손수건을 짜냈을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 일행 중에서 가장 체력이 떨어지는 미아는 석실 바닥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여기저기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더러운 바닥이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여기서 푹 자고 진입하자. 어차피 뒤따라오는 팀도 없고, 딱히 서두를 필요도 없으니까.”
마지막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마군의 피난처는 악몽의 숲과 달리, 최근에 기피하고 있는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공략의 난이도가 높은 데 비해서 공략의 보상이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인데.
사실 몰라서 하는 얘기다.
다들 중보 플레레를 보스 몬스터로 알고 있으니, 부실한 전리품이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음…….”
나는 지난 이틀 동안의 수확을 되짚어 보았다.
우리는 정말 잠깐 눈 붙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마귀를 소탕해 왔다.
석실 하나의 크기가 축구 경기장 서너 개를 붙여 놓은 듯한 크기라 공략에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많은 마귀를 죽였고, 제법 레벨이 많이 올랐다.
특히 마정석을 쏠쏠히 챙겼다.
워낙에 드롭률이 낮은 아티팩트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마정석은 수시로 나왔던 것이다.
덕분에 나뿐만 아니라, 던전 공략에 참여한 팀원들도 두둑해진 주머니 사정을 기대할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와 자신을 제외한 모든 팀원의 수면을 확인한 라키스가 내게 터덜터덜 걸어와 말했다.
“영주님, 죄송하지만 저 역시 잠을 청하고자 합니다. 피로 누적이 극심하군요.”
“어서 쉬시오. 보초는 내가 설 테니, 경계는 걱정하지 말고.”
나는 라키스를 안심시키고, 그가 잠에 들 수 있도록 했다.
고르자스의 목걸이 덕분에 수면이 필요 없어진 만큼, 시간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그로부터 10분 후.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잠들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단잠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결전을 준비해야겠군.”
전부 잠든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메고 온 가방에서 최상급 마정석을 줄줄이 꺼냈다.
이 마정석은 하나의 가치가 1천 골드에 달한다. 전생의 대한민국의 돈으로 따지자면 10억 원이다.
‘돈에는 장사 없지.’
나는 최종 공략에서 재력을 기반으로 한 꼼수, 이른바 현금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팀원들에게 금화가 갖는 돈의 힘을 확실히 보여 주고 싶었다.
먼저 불릿의 마도구를 꺼냈다.
마정석보다 높은 경도를 가진 희귀 광물, 스텔라드로 만들어진 불릿의 마도구.
이 녀석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마정석을 세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각. 사각. 사각.
부지런히 마정석을 세공하기 시작했다.
10억 원에 달하는 가치의 마정석에 스크래치를 내는 작업이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에서 깨 먹은 최상급 마정석만 해도 수백 개가 넘었으니 둔감해질 수밖에.’
전생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이지만, 기억은 어제의 일처럼 생생했다.
비록 전생은 평범한 영업사원의 삶을 살다가 스러졌을지 몰라도.
현생은 찬란하게, 위대하게 그 끝을 맺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당장에 마법사 성취만 놓고 봐도, 극의라 불리는 9클래스까지는 아직 네 단계나 남았다.
영지도 이제 대영지 하나를 가졌을 뿐, 아직 왕국이나 제국은 꿈도 꿀 수 없는 작은 세력이다.
‘이 세계의 주인공은 반드시 내가 될 거야.’
다시금 다짐했다.
일전에 카이클과 레드 퀸을 만난 기억이 있는 터라 그런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갈망은 더욱 커졌다.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
곧 공략하게 될 가파지스는 반드시 내게 꼭 필요한 디딤대이자 발판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물론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이긴 했지만, 미루어 아침임을 짐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비를 마친 자레드 일행은 모두 제8 석실에 입장했다.
팍! 팍! 팍!
안에 들어오자마자 자레드가 한 것은 외부에서 제8 석실로 향하는 세 개의 통로 앞에 최상급 마정석을 박는 일이었다.
당장에 등 뒤의 옥좌(玉座)에서 자고 있는 가파지스의 모습이 보였지만, 자레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
“자, 누가 직접 체험하겠어? 클로이, 네가 해 볼래?”
“네.”
“좋아. 이 위에 자리를 잡아 봐.”
자레드의 손길을 따라, 클로이는 그가 박아 놓은 세 개의 마정석 위에 자리를 잡았다.
마정석을 중심으로 반경 10m의 범위에 자레드가 선을 그어 두었는데, 그곳이 바로 마정석을 통한 버프가 주어지는 공간이었다.
“어때? 마정석 내부의 마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계속 힐과 헤이스트, 스트랭스 마법을 갱신해 주는 마법진이야.”
“오, 편차 없이 지속적으로 버프가 들어오는 게 느껴집니다.”
클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앞다퉈 다른 팀원들도 위에 자리를 잡았고, 이어서 탄성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와, 대단해요!”
“이게 돼요? 믿기지 않아요!”
리액션으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동료들.
자레드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정석 버프 영역을 재차 꼼꼼히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에 자리를 잡고, 다섯이 세 방향의 적을 맡는다. 가파지스 공략이 시작되면, 석실 밖에서 마귀들이 몰려오기 시작하거든.”
모두 질문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레드가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이 던전의 레퍼토리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좌측 레나, 중앙 클로이, 우측 라키스. 이렇게 셋이 맡는다. 미아는 레나를 보조해 주고, 이자벨은 세 방향의 적을 보고 주술로 완급을 조절해 줘.”
“영주님, 저는요? 제 역할이 빠져 있어요!”
가파지스 공략에 도전할 자레드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신에게 임무가 없는 것을 깨달은 헤이즈가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깍두기 노릇을 시키려는 건가 싶었다!
이번에 공략을 하며 던전의 무서움과 참혹함을 온몸으로 느낀 터라, 헤이즈는 어느 때보다도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노력 없이 이득만 취하는 수동적인 여자는 절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헤이즈, 너는 나와 잠자는 가파지스의 공략을 담당할 거야.”
“설마 그러면 브리핑 때, 영주님이 저와 호흡을 맞췄던 그게?”
“응, 저 녀석을 노릴 핵심이지.”
자레드가 옥좌의 가파지스를 가리켰다.
인간을 쏙 빼닮은 하체에 수북한 검은 털이 가득한 상체.
그리고 황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가파지스의 외형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확실히 몸 여기저기에 깊은 상처가 있었고, 옥좌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이 그를 계속 감싸고 있었다.
아마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러운 회복을 계속 유도하는 기운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내가 글리터 더스트 마법으로 감지 선들을 밝혀 줄 테니, 헤이즈 네 특유의 유연함으로 옥좌까지 와 보는 거다. 알겠지?”
“후! 알겠어요!”
파팟.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레드의 몸이 헤이즈의 앞에서 가파지스의 옥좌 옆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텔레포트 마법이었다.
아쉬운 점은 아직 자레드의 텔레포트 마법은 본인에게만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주변인의 텔레포트도 함께 겸하는 다중 사용을 하려면, 6클래스의 경지에 도달해야 했다.
“헤이즈, 준비 됐어?”
“잠깐만요! 머리까지만 확실하게 묶고요!”
순식간에 헤이즈가 준비를 갖췄다. 복장은 입장할 때부터 몸에 딱 달라붙는 복장을 입고 왔다.
오늘의 시도를 위한 자레드의 안배였다.
휘이이이이.
이윽고 자레드가 2클래스의 글리터 더스트 마법으로 금빛 먼지를 뿌리자, 입구와 옥좌 사이에 위치한 공간에 숨어 있던 수많은 붉은 선이 나타났다.
바로 알람 라인(Alarm Line).
하나만 건드려도 바로 알람 마법을 발동시켜서, 가파지스를 기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침입자 감지 센서였다.
“영주님 곁으로 갈게요!”
그리고.
헤이즈의 대모험이 시작됐다.
* * *
“와!”
“오오.”
“헐…….”
“아악!”
헤이즈가 알람 라인을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지켜보는 동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헤이즈 언니는 무슨 연체동물 같아요! 어떻게 저렇게 비틀어져 있는 라인을 허리를 180도에 가깝게 꺾어서 지나가는 거죠?”
레나가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른 채, 헤이즈의 곡예를 지켜보았다.
유연한 헤이즈의 몸은 일반인은 절대 접거나 꺾을 수 없을 공간을 가볍게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으, 이 망할 X의 가슴!”
헤이즈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것은 아담한 헤이즈의 신체에 비해서, 필요 이상으로 특출 난 볼륨감 때문이었다.
“언니, 속옷 안에 뭐 넣은 거 아니죠?”
레나가 소리쳤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세계의 여자에게도 보정은 존재한다. 당연히 브래지어도 마찬가지고.
“레나, 이거 자연산이거든!”
헤이즈가 일갈하듯 소리쳤다.
그 순간,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윽고 헤이즈가 숨을 길게 푹 내쉬자, 흉강 속의 공기가 줄어들며 비로소 높이가 맞아떨어졌다.
“가요! 가요!”
헤이즈의 대모험은 그렇게 10분을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당초의 걱정과 달리, 그녀는 유연한 움직임으로 촘촘하게 짜인 알람 라인을 무사히 넘어오는 데 성공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가파지스 공략의 시작이었다.
* * *
옛말에 ‘수적천석’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낸다는 뜻이다.
나는 마군의 피난처에 오기 전부터 이 말을 계속 머릿속에 새겨 두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이 사자성어가 가파지스 공략의 핵심이자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헤이즈.”
“네, 영주님.”
“디바인 스리의 중급 치유술, 지속 시간이 얼마나 돼?”
“쉬지 않고 사용할 때요?”
“응.”
“30초? 30초까지는 쉬지 않고 계속 이어 갈 수 있어요.”
“30초라……. 확실히 헤이즈가 많이 성장했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10초도 될까 말까 했는데.”
“영주님이 알려 주신 수련법 덕분이죠!”
헤이즈가 옆구리에 양손까지 짚어 가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동안!
나는 빠른 캐스팅으로 나와 헤이즈의 근처에 뮤트 마법으로 소리를 없애는 공간을 구축했다.
어지간한 소리에도 깊은 잠에 빠진 가파지스가 깨어날 리는 없지만, 워낙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만큼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자, 따라와.”
나는 헤이즈의 손을 붙잡고, 가파지스가 앉아 있는 대형 옥좌를 빙 돌아갔다.
내가 노리는 곳은 가파지스의 심장도, 몸도 아닌 바로 머리다.
암벽 등반을 하듯, 옥좌 뒤의 틈을 이용해 나와 헤이즈는 빠르게 위로 올랐다.
그러자 제법 넓은 판이 보였다.
이 위에는 딱 성인 둘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바로 옆에는 곤한 잠에 빠진 가파지스의 정수리가 드러나 있었다.
“헤이즈.”
“네.”
“지금부터 가파지스의 정수리에 구멍을 뚫는다. 내가 사용할 파이어 월 마법과 네 중급 치유술이 하모니를 이뤄야 할 순간이야. 공격과 치유의 완벽한 조화!”
칼을 빼 들었다.
가파지스도, 세상의 그 어느 헌터도 절대 예상하지 못할 절묘한 공략의 수!
정수리 공략의 서막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