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이씨.. 그래서 노래 안 한다니까!!”
왠지 배성환이 한없이 미워지는 밤이었다.
**
한국대학교 통합의과대학.
“오~~~빠~!”
노은지가 멀리서 달려오며 덕팔을 불러댔다. 한국전쟁 때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도 저렇게 반가워하진 않을 것 같았다.
“오빠, 오빠! 전에 말한 거…”
“시험 잘 봤어?”
“유급은 안 당할 정도로? 호호, 오빠, 오빠! 전에 내가 말한거..”
“방학 때 계절학기 들을 거지?”
“….. 우씨!! 일부러 그러는 거지?”
“하하하..”
입을 댓발은 내밀고 있는 노은지를 향해 시원하게 웃어주곤 덕팔이 성큼성큼 걸어 건물을 빠져나갔다.
“전화해! 오늘은 안되고 주말 저녁이라면 시간이 될 거야. 정확한 건 나 말고 성환이 형에게 물어보고!! 방학 잘 보내라!”
덕팔이 뒤를 돌아 손을 흔들자 노은지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덕팔은 단 한 순간도 학교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덕팔 때문에 앨범 작업이 늦어지고 있었기에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노래 4소절을 부르기 위해 연습, 또 연습해야 했다.
“아..아..아.. 노래를 못 하면 장가를 못 가요. 아~ 미운 사람~”
녹음실 피디가 알려준 목 푸는 노래였다. 덕팔이 운전을 하며 계속 같은 노래를 부르자 은혜가 피식 웃어버렸다. 노래에 담긴 가사의 의미에 대해 덕팔이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 하자 말을 건넸다.
“덕팔씨 이 노래 가사가 무슨 말인지 알고 부르는 거예요?”
“말 그대로 아닐까요? 노래를 못하는 장가를 못 간다.”
“알면서 태평하게 잘 부르네요?”
“하하하.. 피디님이 얼마나 속이 뒤집어졌으면 이런 노래를 알려줬겠어요? 저의 부족함 때문이니 제가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호호..”
은혜가 즐거운 듯 웃었다. 덕팔의 노래는 조금도 늘지 않았다. 노래가 익숙해지면서 박자는 잘 맞추게 되었지만, 여전히 음정은 지 마음대로였다.
“와!! 어떻게 해야 그런 음을 낼 수 있는 거죠?”
은혜가 웃으며 신랄한 평가를 하자 덕팔이 의기소침해졌다.
“하아.. 왜 안 되는 걸까요? 저는 분명히 발성하는 법까지 완벽하게 숙지를 했는데 왜 소리는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성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성대에요? 그럼 말도 못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발성을 하는지 설명해봐요.”
“첫째, 폐, 기관지, 기관으로 된 기낭에 저장된 공기의 기류를 후두로 보낸다. 둘째, 후두에 있는 성문이라는 세극과 이를 형성하고 있는 성대가 공기의 기류를 받아들여 진동함으로써 기류의 규칙적인 변조로서 소리가 형성된다. 셋째, 성도라고 하는 후두를 거쳐, 구강, 비강, 입술로 된 음향관이 공명함으로써 실질적인 소리가 되어서 음성파가 방사된다. 끝!!”
“그렇죠. 그럼 말을 할 때와 노래를 할 때의 차이는 뭘까요?”
“흐음… 아무래도 노래를 할 때는 음의 높낮이 폭이 커지니까 성대의 진동 차이 아닐까요?”
“그렇죠. 그런데 성대가 제대로 진동을 하지 못하거나 진동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면요?”
“그럼 고음 불가가 되겠죠.”
“맞아요. 그런데 덕팔씨는 성대 대신에 진동을 시킬 수 있는 숨겨진 힘이 있죠.”
은혜가 활짝 웃었다.
**
서울 마포구 소재 모 스튜디오.
“오케이, 잘하셨어요. 더 파르씨”
피디가 활짝 웃는 낯으로 부스를 나오는 덕팔을 반겨 주었다.
“이렇게 잘 하실 거면서 제 속을 새까맣게 태우시다니. 하하하”
“죄송합니다. 피디님”
피디가 덕팔의 노래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듣고 또 들었다.
“더 파르씨, 이 노래 멜로디 전부 외우셨죠?”
“…네”
“그럼 잠시 쉬었다가 전곡을 한번 불러볼래요?”
“여자노래라서 제가 부르기 힘든데…”
“남자 키로 녹음된 MR이 있어요. 한번 들어봐요.”
피디가 MR을 재생시켜주었다. 덕팔이 가사와 함께 노래를 흥얼거려보니 확실히 여자 노래일 때보다 노래 부르기가 쉬웠다.
“괜찮죠?”
“네, 뭐…”
“그럼 불러봐요. 녹음된 거 선물로 줄 테니까!”
“그러셔도 돼요?”
“당연히 되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녹음이 한 번에 끝났는데 예습을 잘해온 학생에게 상장을 안 주면 직무유기죠. 하하”
덕팔이 다시 부스에 들어가자 피디가 배성환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김 피디야! 덕팔이가 그 노래 혼자 다 부를 수 있으면 녹음비 따불로 준다. 진짜로!!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파이팅!!]김 피디는 오늘 두 배의 녹음비를 날로 먹을 예정이었다.
**
H엔터테인먼트 사무실.
방학이 되자 덕팔의 연예계 활동이 재개되었다. 덕팔은 계절학기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한사코 복귀를 거부하였지만 걸그룹 음반 출시를 앞둔 배정환의 통사정에 못 이겨 끝내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럼, 오후에만 하는 겁니다?”
“그럼, 당연하지. 오전에는 수업받고 오후에만 하는 거로! 되었지?”
“네.”
덕팔과 배정환이 한 발씩 양보하여 극적 타협을 이뤄내었다.
“자, 그럼 가자.”
“….어딜요?”
“일하러!”
배정환이 덕팔을 끌고 내려가더니 밴에 태웠다.
**
“어딜 가는 거예요?”
덕팔이 입을 쭈욱 내밀며 배정환을 바라보았다.
“예능 하나 찍자.”
“예능요? 달리는 남자? 뭐 이런 거요?”
“아니, 요리 예능! 연예인 출연자들이 모여서 주어진 주제에 맞춰 요리하고 전문가들이 심사하는 프로야. 파일럿 방송 나가고 요즘 완전히 핫한데 한 번도 안 봤어?”
“…… 제가 나온 영화도 아직 못 봤어요.”
“아.. 통합의대생이지”
배정환이 잠시 안쓰러운 눈으로 덕팔을 바라보더니 힘주어 악셀을 밟았다.
덕팔의 밴이 도착한 곳은 일산의 모 스튜디오. 이미 많은 연예인이 도착했는지 주차장에는 검은 밴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자자.. 늦었어. 어서 가야 해”
배정환이 서둘러 덕팔을 끌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더 설명해 주실 건 없어요?”
“요리 시간 1시간, 토크 2시간. 세 시간이면 모든 촬영이 끝날 거야.”
“빨리 끝나서 좋기는 하네요.”
“그렇지? 흐흐흐”
배정환과 덕팔이 A-1이라고 써 있는 스튜디오의 문을 여니 벌써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였다.
“와…”
요리를 할 수 있는 널찍한 테이블이 6개씩이나 설치되어 있었다. 그 앞쪽으로는 심사위원들이 앉을 넓은 반원 테이블도 준비되어 있었다.
“가서 화장하자. 성미가 도착했나 모르겠네?”
배정환이 덕팔을 데리고 [더 파르]라고 써있는 대기실에 들어갔다. 대기실 안에는 이미 이성미와 반가운 얼굴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 소미야?”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은 좀 그렇지 않니? 좀 있으면 같이 늙어갈 텐데..”
“더 파르! 17세 꽃띠인 소미한테 같이 늙어간다니!!”
이성미가 발끈하였음에도 덕팔은 애써 무시하며 김소미 곁으로 갔다.
“오늘 같이 출연하는 건가?”
“네, 선생..아니, 선배님.”
김소미가 재치있게 호칭을 바꿔 부르며 자리를 양보하였다.
“그냥 앉아 있어.”
“선배님께서도 화장하셔야 하잖아요.”
“아…”
김소미가 소파에 가 앉자 덕팔이 거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덕팔의 화장은 간단하였다. 눈썹을 정리하고 머리를 만지자 우중충한 아저씨에서, 연예인 더 파르로 변신이 끝났다.
“화장은… 하지 말자. 피부가 좋아서 굳이 안 해도 되겠어.”
배정환의 말에 이성미도 동의를 하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덕팔아, 오늘은 소미랑 함께 출연하게 될 거야. 요리는 네가 할 거고, 소미는 옆에서 네 보조를 할 거야.”
“네.”
“근데.. 부탁할게 하나 있어.”
“뭔데요?”
“요리 중간 중간에 토크를 할 건데.. 소미를 중심으로 해주면 안 될까?”
“…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려고 소미랑 같이 출연하는 거잖아요.”
“이해해주니 고맙다. 사실.. 너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소미만 띄우면 네가 불편해할까 봐…”
“형님, 그런 거로 어려워하지 마세요. 미리미리 말씀만 좀 해주시면 다 이해할 거니까 하루 전에라도 스케줄 공유 좀 해주세요.”
덕팔의 너스레에 배정환도 부담을 덜었는지 환하게 웃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헤드셋을 목에 건 조연출이 고개를 내밀었다.
“촬영 시작합니다. 스튜디오로 오세요.”
“네, 지금 가요.”
김소미가 떨리는지 두 손을 가슴에 모으더니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
“오늘은 내가 요리왕!!”
사회를 맡은 강효국이 시작을 알리자 커다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오늘은 내가 요리왕! 첫 번째 시간입니다. 떨리네요.”
강효국이 웃으며 주위 패널들을 바라보자 패널들이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주었다.
“오늘 이 자리에 12분의 연예인들을 모셨습니다. 영화, 드라마에서 열연을 펼쳐주신 배우님들, 무대에서 빛이 나는 가수분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웃기려고 하는 개그맨분들까지 모두 각자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는 분들이 이 자리에 모이셨는데요. 그럼, 이런 최고의 분들을 모셔놓고 무얼 하냐? 연기? 노래? 춤? 모두 아닙니다. 오늘은 바로바로 내가 요리왕!! 요리 경연을 펼치게 됩니다!!”
강효국이 출연자들을 한 사람씩 소개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덕팔의 차례가 되었다.
“여러분! 이거 하면 떠오르는 게 뭡니까?”
강효국이 발을 들어 올리더니 자신이 신고 있는 운동화를 가리키자 패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더~~ 파르!”
“예, 맞습니다. CF의 격을 한 단계, 아니 열 단계 올려놓은 명품 배우 더~ 파르!!!”
덕팔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덕팔입니다. 반갑습니다.”
“더 파르씨하면 이 운동화도 생각나지만 1000만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좋으시겠어요? 하하하”
“김민석씨가 좋을 일이죠. 저야, 뭐. 까메오였는데요.”
“까메오요? 주연 아니었나요? 엄청 나오시던데?”
“우정 출연이었습니다.”
“이런 질문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우정 출연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네요. 항간에는 한유리씨를 대신해서 노 게런티로 출연을 하셨다고 하던데 맞는 얘긴가요?”
“네, 맞습니다. 한유리 배우를 위해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한유리씨는 촬영 중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더 파르씨의 의리에 감동했을 것 같네요.”
“한유리씨와 관련해서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덕팔이 자못 진지하게 질문을 하자 강효국이 급히 큐 카드를 살펴보았다. 대본에 없는 출연자의 즉흥 요청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시죠.”
“한유리 배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시청자분들께서 오랫동안 한유리 씨의 연기를, 한유리라는 배우를 기억해주신다면 그녀 역시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저도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한유리 배우를 기억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