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북한산 총산.
김혁성의 평소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늘 조용하던 총산이 왁자지껄 잔치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십여 마리의 닭이 푸욱 고아지고 있었고 덕팔은 그 옆에서 겉절이를 버무리고 있었다.
“덕팔씨? 오늘도 고생이 많아요.”
큰 신모 고진향이 덕팔 곁에 앉으며 옷소매를 걷고 있었다. 그러자 덕팔이 고진향을 만류하였다.
“신모님, 제가 할게요.”
“호호호, 아버지께서 그쯤하고 들어오시라네요.”
“아.. 그렇습니까?”
덕팔이 만면에 희색이 되었지만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겉절이를 마무리한 후 작은 조각을 찟어 고진향의 입에 넣어주었다.
“어때요?”
“호호, 맛있어요.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아버님의 마음이 변하시기 전에..”
“하하, 그래야겠죠? 언제부턴가 뒤통수가 따끔거리긴 합니다. 하하하”
덕팔이 손을 씻고 김혁성의 처소로 들어갔다.
“크음.. 대충하고 들어오지 뭘 그리 꾸물대느냐?”
“하던 건 마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덕팔이 웃으면서도 김혁성의 손에 들린 오래된 책 한 권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알고 있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네 녀석이 네 아비 일로 나에게 빚을 진 것을?”
“그건 그때 신상 신투장갑을 퉁~ 하신 게…”
“허허, 오늘도 역시 빚을 지지 않았더냐?”
“그건 저 밖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닭백숙을 퉁! 하신 게..”
“고작 닭 백숙으로?”
김혁성은 어거지를 써서라도 덕팔에게 빚을 지우려고 하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 덕팔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바라시는 게 있으십니까?”
덕팔이 직구를 날리자 김혁성이 헛기침을 하였다.
“허음.. 딱히 바라는 것은 없다만.. 허음.”
“그냥 말씀하시죠. 들어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이번 일이 아니라도 언제고 들어드릴 것입니다.”
“허허, 그러더냐?”
김혁성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옆으로 치우더니 앉은뱅이 책상 서랍에서 붉은색 표지의 작은 책자를 꺼냈다.
“오래된 책 같은데 표지가…”
“덕팔아, 낮에도 설명하였지만 고는 이미 수백 년 전에 멸종하였다고 알려져 있었다.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고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글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김혁성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덕팔에게 붉은 표지의 소책자를 내밀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책은 나의 조상이 남긴 것이다.”
덕팔이 표지를 열어 내용을 살폈다. 손에 쥐고 쓰기 편하게 소책자로 만든 것인데 책을 손바닥에 올려둔 채로 글을 썼는지 글씨체가 엉망이었다.
“관찰일지 같은 것입니까?”
덕팔이 고개를 돌려 진열대 앞쪽에 놓여있는 작은 유리병을 보았다. 전에 오진철과 함께 왔을 때는 분명 진열대에서 저 병을 본 적이 없었다.
“네가 마무리를 해줬으면 한다.”
“고에 대해서요?”
김혁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미 죽은 것이 아닙니까?”
덕팔의 물음에 김혁성이 고개를 가로 저였다.
“숫컷 고가 나타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어디든 암컷 고가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보고 암컷 고의 행방을 찾아서 완성하지 못한 이 관찰일지를 완성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흐음…”
암컷 고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암컷 고를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여 그리 하겠노라고 약속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김혁성이 미뤄 두었던 두툼한 책을 내밀었다.
“이 책에서 고 외에도 이제는 기록에서 사라진 기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써있다. 틀림없이 고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참고한다면 분명 암컷 고를 찾을 수 있을 것이야.”
“흐음…”
덕팔이 김혁성이 내민 두 번째 책을 받아 들며 작게 신음성을 내었다. 분명 호기심이 가는 연구 재료였다. 하지만 이 미션을 받아들이는 순간 왠지 모르게 험한 여정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혹시.. 아니겠지만.. 혹시나 제가 중국에 가야 한다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죠?”
“응? 허허, 허허허”
김혁성이 웃기만 했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같은 종입니까?”
덕팔의 물음에 법의관 한도준이 띠꺼운 표정이 되었다. 재부검 당시 박근수의 뇌 속에서 벌레를 발견하고 이 벌레의 정체를 살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그러나 데이터 속에 있는 벌레 중 이 비이커에 담긴 벌레와 같은 종류의 벌레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약이 오른 한도준은 곤충학협회에 자문 의뢰까지 하였으나 이 협회로부터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그런데 저 딴따라 검사놈이 유리병 속에 작은 벌레 사체 하나를 들고 와서 같은 종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저놈은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기도 전에 같은 종의 벌레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확인이 되지 자존심이 상했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뭐가 말입니까?”
“이 벌레 말이다. 정체가 뭐냐고?”
한도준에 고가 담긴 유리병을 흔들며 히스테리를 부렸다.
“아.. 그거요.”
덕팔이 한도준으로부터 유리병을 낚아채며 씨익 웃었다.
“고라고 합니다.”
“뭐?”
“레고~레고~ 할 때고요. 레고레고~”
덕팔이 박자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일으키자 한도준이 똥씹은 얼굴이 되었다.
“기다려!”
“용건이 남았습니까?”
한도준이 말없이 기록철을 덕팔 앞에 던져 놓았다. 덕팔이 기록을 살펴보니 부검기록이었다.
“메일로 주시지 않고?”
“딴따라 주제에 본다고 아냐?”
“오호, 그럼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친절히 설명이라도 해주시려고 하셨던 겁니까?”
“그렇다.”
덕팔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한도준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사인은 과다출혈! 이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덕팔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도준이 다음으로 넘어갔다.
“의대 문턱이라도 가봤으니 뇌의 구조를 알 테니 생략하고, 이 벌레, 그러니까 고는 뇌간에 꽈리를 틀고 있었다.”
“뇌관이라면 소뇌하고 연결되어 인간의 운동능력을 조율하는 그 거 말입니까?”
“그렇다. 그런데 단순히 그냥 연결만 된 것이 아니었다.”
한도준이 노트북 모니터를 덕팔 쪽으로 돌려주며 설명을 이었다.
“이거.. 이거.. 이거.. 보이냐?”
“신경 줄깁니까?”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도준이 마우스를 움직여 영상을 확대했다. 영상이 확대되면 화질이 떨어져야 하는데 이 영상을 그렇지 않았다.
“어?”
덕팔의 눈에 의문이 가득 하자 한도준이 의기양양한 얼굴 되었다.
“영상의 화질을 올리느라고 시간이 걸렸지. 아무튼, 여길 봐라.”
“이건… 고가 그냥 꽈리만 튼 게 아니고..”
“그렇지. 마치 지네의 다리처럼 촉수가 나와 척수와 신경 줄기를 따라 뇌 전체에 연결되어 있다. 워낙 얇아서 초고해상도 CT영상이 아니면 확인할 수가 없었던 거지.”
“그렇군요.”
덕팔이 몸을 앞으로 움직여 모니터 가까이 대고 유심히 살폈다. 그러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모니터를 주시하던 덕팔이 고개를 들어보니 칭찬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뿌듯한 얼굴을 한 한도준이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부검의겠죠.”
“이놈이!”
“암튼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충 이해가 되네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네깐놈이 뭘 이해를 한다고?”
“그러니까, 이 고라는 놈이 뇌간에 자리를 잡고 뇌 전체와 촉수를 연결하여 박근수의 모든 행동을 조종했다는 거 아닙니까?”
“훗.. 증명할 수 있냐?”
“증명요? 그걸 제가 왜 합니까?”
덕팔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자 당황한 것은 한도준이었다.
“검사라는 놈이..”
“한 법의관님! 잘 들으세요. 이 사건은 살인사건입니다. 누가 박근수씨의 생명을 빼앗았느냐가 쟁점이죠. 그런데 죽은 박근수씨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그 안에 누웠다는 비상적인 일 때문에 본질이 흐려졌을 뿐입니다. 즉, 죽은 박근수씨가 어떻게 스스로 움직여 무덤을 팠는지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 증명할 필요가 없죠.”
“그럼 왜 외부인까지 끌여 들여 이 벌레의 정체를 밝히려고 했는데?”
“이 벌레의 정체가 살인자가 있는 곳으로 절 안내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뭐라고?”
“이 고라는 벌레는 말입니다. 멸종이 되었다고 알려진 곤충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벌레를 살려낸 거죠.”
“그래서?”
“그리고 이 벌레를 박근수씨의 몸에 심었습니다.”
“그런데?”
덕팔은 애초에 이 고에 대한 설명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한도준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정보를 공유하기로 마음먹고 김혁성으로부터 들은 고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알아낸 것은 이게 전붑니다.”
덕팔의 마지막 말에 한도준의 입이 다물어졌다. 한동안 생각에 빠져 있던 한도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박근수의 죽음과 암컷 고를 가진 인물 간에는 인과관계가 있겠군.”
덕팔이 고개를 주억이자 한도준이 다시금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암컷 고를 가진 인물을 어떻게 찾지?”
한도준의 물음에 덕팔이 진지하게 물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편견 없이 저를.. 아니, 이 사건을 같이 풀 동료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 5부.
“그러니까 이 벌레 때문에 시체가 몸을 일으켜서 자기 무덤을 팠다고?”
준민이 덕팔이 흔들고 있는 유리병 속의 작은 벌레를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이게 암컷이고 박근수의 몸에 검출된 것이 숫컷이래요.”
“그러니까 숫컷이 뇌를 파먹으면서 인간을 조종한다는 거잖아?”
“파 먹지는 않는 것 같던데…”
“암튼, 이 벌레가 인간의 뇌에 들어가서 인간을 조종하는 건 맞는 거잖아.”
“그건 그렇죠.”
“아… 나 갑자기 숨 쉬는 게 막 무서워지고 그런다.”
“하하, 멸종이 되었대요.”
“멸종? 멸종이 되었으면 박근수는 뭐야?”
“아주 희귀하게 잔존하는 거겠죠.”
“그럼 멸종이 아니잖아. 이것들이 다시 키우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요.”
덕팔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준민이 덕팔의 팔을 잡았다.
“설마 이런 게 자고 있는데 슬금슬금 기어 들어와 귓속으로 들어가고 그러지는 않겠지?”
“어라? 어떻게 알았어요? 고는 코와 귀로 들어간다고 하던데?”
“앵?”
자신도 모르게 고의 사용법을 맞춰버린 준민이 다시금 몸을 바르르 떨자 덕팔이 농은 이쯤되었다 싶었는지 준민에게 하고 싶은 진짜 용건을 꺼냈다.
“기록에 따르면 암컷이든 숫컷이든 고는 몸을 파고 드는 습성이 있어서 사람 몸에서도 피부를 뚫고 들어간다고 해요. 그래서…”
“그럼 몰래 심을 수는 없는거 아냐?”
“맞아요. 만약에 고가 몰래 심을 수 있는 거라면 고를 키웠던 중국의 이종족은 이미 세계를 통일 했을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게다가 고는 무척 느리게 움직이고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에 잘 견디지 못해서 잘 죽는다고 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일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구나?”
“빙고~”
덕팔이 방긋 웃자 그제야 준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처음에 그 말부터 해줬어야지. 괜히 쫄았잖아.”
준민이 웃으며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박근수는 어떻게 고가 심어진 거지? 박근수도 고통을 느꼈을 거 아냐?”
“고는 배신을 방지하기 위한 증표 아니었을까요?”
“배신?”
준민이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그거구나. 배신을 하면 암컷 고를 통해 배신자의 뇌에 심어진 숫컷고를 통해 죽음을 내린다? 맞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런 용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흐음, 높은 확률로 내말이 맞을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정리하면, 박근수는 어딘가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조직에 몸담으면서 숫컷 고를 받아들였고 나중에 배신을 하고 숨었다가 발각이 되어서 죽은거네. 맞지?”
덕팔이 고개를 끄덕이자 준민이 그다음 추리를 하려다가 멈칫거렸다.
“그런데.. 박근수는 이미 죽었었잖아? 설마 숫컷 고가 죽은 시체도 움직이나?”
덕팔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준민이 화들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럼 말 그대로 좀비가 된다는 거?”
“그렇지는 않은가봐요. 고는 피에서 양분을 얻어 살아가는데 사람이 죽으면 피가 굳어지잖아요? 그럼 고도 서서히 죽어간다고 하네요.”
“그럼 피가 굳어지기 전까지 아주 일시적으로 인간의 몸을 움직인다?”
“인간의 몸은 뇌의 전기자극으로 움직이는 거니까 고가 뇌의 전기자극을 조종할 수 있다면 가능하겠죠? 아주 일시적으로..”
“그럼… 사건은 풀린 거잖아?”
준민의 물음에 덕팔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좀비의 미스테리만 풀은거죠. 범인은 아직 못잡았으니까요.”
“범인? 범인을 어떻게 잡아? 모든 사람에게 뇌CT를 찍어볼 수도 없고? 설령 암컷 고를 가진 범인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자가 박근수를 죽였다는 입증을 어떻게 하지?”
준민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검찰 수사관으로서의 당연이었다. 준민이 덕팔의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검사로서 이 일을 해결하려는게 아니구나. 안된다. 너도 알지? 최은혜씨도 그렇고.. 암튼, 너를 주시하는 눈이 많아.”
세상이 변했어도, 경험이 조금 부족했어도 차준민은 차준민이었다. 덕팔이 고개를 주억였다. 덕팔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기에 덕팔로서도 준민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형님의 도움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