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16
마녀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기괴한 웃음이다. 철부지 아이가 벌레를 고문하기 직전의 모습 같았다.
“번개 파장을 견디는 독종이라……, 어디 이것도 버틸 수 있는지 볼까?”
“그만둬, 주, 죽여 버린다……!”
“악몽.”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파거두의 협박은 무용했다.
마녀의 음울한 마나가 내 머리를 감쌌다. 눈을 뜨려 했지만, 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 * *
테온과 마녀의 사투가 시작되던 시각, 마녀의 제자들은 마구간을 포위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세 사람이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고 있었다.
“어쩌지? 사제는 제물로 써야 하니 죽이면 안 되는데, 누가 사제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담요를 살짝 걷어서 얼굴을 확인하자. 사제는 눈과 입을 막은 뒤 생포하고, 용병은 일제히 단검으로 쑤셔서 벌집을 만들어 버리면 돼.”
수제자가 다른 제자들을 지휘했다. 제자 한 명이 그녀의 말에 따라 담요를 살짝 걷었다.
“……!?”
담요 아래에는 지푸라기만 불룩하게 쌓여 있을 뿐, 사제도 용병도 없었다.
“없잖아?”
“우, 우리가 속았어!”
수제자가 당황하고 있을 때 뒤에서 파공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악!”
그녀가 급히 돌아보니 옆 건물 지붕에서 활을 쏘아 대는 사람이 있었다.
“이년들! 야밤에 칼을 들고 찾아오다니, 역시 꿍꿍이가 있었구나!”
토마스였다. 그는 분노를 터뜨리며 마구간을 향해 거침없이 활을 쏘아 댔다.
거리가 가까웠기에 화살은 쏘는 족족 제자들의 몸통에 적중했다.
“이런 젠장, 마법을 써야겠다! 날 보호해!”
마녀의 제자들은 화살에 맞는 와중에도 흩어지지 않았다. 그녀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수제자의 명령에 따랐다.
수제자는 다른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급히 마법을 시전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외줄을 타는 광대의 신비여……!”
주문을 읊고 수인을 맺자 주변의 마나가 재배열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익힌 마법은 적에게 무서운 환각을 보여 주는 착란 마법.
‘스승님께 갖은 아첨을 하고 겨우 배운 마법이야. 용병 따위는 이 마법에 한번 걸리면 평생 공포에 시달릴 거다, 후후!’
수제자는 마법이 발동하면 용병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을 때였다.
“삿된 것은 지하에만 머무르매, 지상에는 빛이 있기 때문이라!”
사제의 웅혼한 외침과 함께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밝은 빛이 마구간을 비췄다.
백색의 예복을 휘날리며 등장한 아우레오가 성경을 펼쳐 들고 영창을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마구간을 통째로 태워 버릴 듯 강렬했다.
“아도나이는 빛으로 영감하사, 교활한 요술은 파도를 만난 모래성이니!”
아우레오의 영창이 이어지며 수제자가 배열한 마나는 허무하게 흩어졌다.
“끼아아악!”
거의 완성된 마법이 강제로 파괴되자 수제자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졌다.
“언니!”
“모두 피해! 사제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
다른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마구간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녀들은 아우레오의 신성력과 토마스의 화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때 에릭이 마구간에 난입했다.
“숨긴 어딜 숨어! 이 저주받을 마녀들!”
퍽!
“악!”
도망치던 여인이 머리에 방패를 얻어맞고 나자빠졌다.
무장한 에릭이 흩어지는 제자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칼과 방패를 휘둘렀다.
“아악!”
“내 다리!”
건장한 체격의 에릭이 날뛰기 시작하자 여인들은 픽픽 쓰러졌다.
마녀라도 신체 능력은 평범한 아낙네고, 아우레오가 신성력을 펑펑 쏟아 내고 있으니 마법도 소용이 없었다.
“우, 우리만으로는 상대가 안 돼! 스승님을 모셔 와야 해!”
제자 중 하나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에릭은 우악스러운 손으로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 땅에 처박았다.
제자들이 거의 제압되고, 아우레오가 지붕 위를 올려다보며 테온을 찾았다.
“토마스! 테온은 어디에 있지요?”
“촌장의 집 쪽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썩 좋지 않은데요?”
토마스는 지붕 위에서 고개를 길게 빼고 테온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녀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테온은 아까부터 싸움을 멈추고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녀가 테온을 제압한 것 같습니다. 마녀는 완드(wand)를 내밀고 있고, 테온은 그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이런, 정신계 마법에 당한 거예요! 에릭, 당신은 여기 남아서 마녀를 모두 포박하세요. 난 테온을 도우러 가야겠습니다. 토마스는 지붕 위에서 양쪽을 활로 엄호해요!”
“예, 사제님!”
“알겠습니다!”
아우레오는 테온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뜀박질이 익숙지 않아 한 번 우당탕 넘어졌지만, 곧장 일어나 다시 달렸다.
‘테온은 기억을 잃은 탓에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그가 정말 신탁의 용사라도, 지금은 마녀를 당해 낼 수 없을 거야!’
그는 백색 예복이 흙 범벅이 되어도 개의치 않았다. 머릿속에는 테온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테온, 당신은 이런 곳에서 죽을 사람이 아닙니다!’
아우레오는 허둥지둥 달렸다.
다행히 마을은 크지 않았고, 금방 테온과 마녀가 싸우고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을 까뒤집고 서 있는 테온과 그 앞에서 어둠의 마력을 내뿜고 있는 마녀가 보였다.
“테온!”
필사적인 외침과 함께 아우레오의 이마에 백광이 번뜩였다.
사파에서 온 용사
덮어 둔 기억
무림 최고의 살수 단체 구음살막.
그들은 매년 부모 없는 아이 백 명을 납치해 살수로 길러 낸다.
훈련소에서는 보름마다 가장 친한 교육생 두 명을 뽑아 싸움을 붙인다. 싸움은 한쪽이 죽어야 끝난다. 보름마다 한 명씩 죽는 셈이다.
훈련은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된다. 모든 훈련이 끝날 때까지 음식은 주지 않는다.
교육생은 살기 위해 동료를 죽이고 그 살점을 먹는다. 살인은 일상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죄책감도 무뎌진다.
그것이 자칭 ‘중원제일살막’에서 인간 백정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 * *
“여기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눈을 떴다.
내 앞에는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나를 겨누고 있었다.
“능태오, 뭐 해! 쉬운 상대라 시간 끄는 거냐?”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꼬마 녀석들 중 몇몇이 부럽다는 말투로 외쳤다.
다른 아이들은 떨리는 눈으로 말없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쉬운 상대?”
문득 손을 보니 나도 쇠꼬챙이를 들고 있다. 그리고 내 손도 소녀와 마찬가지로 어린아이의 손이다.
“흐윽…… 태오 오라버니, 흑, 나, 나 살려 주면 안 돼……?”
내 앞에 선 어린 소녀의 눈망울에 물기가 그렁그렁했다. 공포에 질려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가랑이는 축축하게 젖어 있다.
“아…… 맞아. 싸우는 중이었지.”
머리를 몇 번 흔들고 나서야 여기가 어디인지 깨달았다.
고개를 들자 높은 단상 위에서 연무장을 내려다보는 붉은 복면의 사내가 보였다.
언젠가 저 복면을 벗기고 그 아래의 얼굴 가죽까지 찢어 주겠노라 매일 밤 다짐하게 만드는 놈이다.
다시 고개를 내려 내 앞에 선 소녀를 보았다. 이 작은 계집아이가 오늘 내가 싸울 상대다.
‘하필 연(蓮)이냐.’
나는 이 빌어먹을 ‘동기 대결’에서 매번 이기는 녀석이었고, 그 증거로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구음살막에 끌려오기 전 잠깐이나마 사부에게 무공을 배운 덕분이다.
“어서 싸워라, 이 쓸모없는 것들아. 둘 다 죽고 싶은 게야?”
붉은 복면의 사내가 호통을 쳤다.
‘씨팔, 더럽게 닦달하네.’
눈을 비비고 연이를 보았다. 연이는 이름처럼 예쁘고 순진한 계집아이였다.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 같은 아이. 이 지옥에서 굶어 죽지 않으려 처음 사람 고기를 먹을 때도 마지막까지 토악질하던 아이였다.
“연아.”
“오, 오라버니…….”
“미안해. 이렇게 해서라도 난 이 모진 목숨을 이어 가야 해.”
“오라버니, 사, 살려 줘. 나, 나는 오라버니 말을 잘 듣잖아. 앞으로도 시, 시키는 거 다 할게.”
“…….”
내 침묵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연이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푹 숙인 그녀의 얼굴 아래로 눈물이 톡톡 떨어졌다.
나는 연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정말로. 나도 이러고 싶지는…….”
“죽엇!”
연이의 쇠꼬챙이가 내 얼굴 앞에서 멈췄다.
내 손에 잡힌 연이의 손목은 수숫대처럼 가늘었다. 힘이 부족해 바들바들 떨리는 꼴이 안쓰러웠다.
비록 내 얼굴에 녹슨 쇠꼬챙이를 박아 넣으려는 순간일지라도, 나는 연이가 안쓰러웠다.
“오, 오라버니, 이, 이건…….”
“고마워. 미안한 마음을 덜어 줘서.”
“오라버니! 살려 줘! 아악! 씨발, 하지 마!”
연이의 머리채를 단단히 잡았다.
‘연이가 먼저 찔렀어. 이건 연이가 선택한 거야. 내 탓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거야…….’
연이는 나를 먼저 찌르려 했다. 나는 그것만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붉은 복면의 사내는 재미있는 공연을 보는 것처럼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이, 이거 놔! 이 개새끼야! 놓으라고!”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때 내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면 시간은 몇 년 전으로 돌아가 있고, 사부에게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며 푸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이면 망상은 절망으로 바뀌었고,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지옥 같은 하루가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