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196
“아도나이의 영광이 들판을 비출 때, 어둠은 물러가고 생명이 고개를 들더라!”
낭랑한 영창과 함께 백색 광채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그 눈부신 빛에 금빛 용이 황급히 지상으로 대피하고, 이자벨라의 비행 마법도 흔들렸다.
‘엄청난 위력의 신성력이다. 인적 드문 곳에 이토록 강력한 사제가…… 앗?!’
지상을 내려다본 이자벨라의 눈이 커졌다. 전장에 난입한 사제는 그녀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 꼬맹이 사제잖아? 저 녀석이 왜 여기에……?”
막강한 신성력으로 순식간에 전장을 장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우레오였다. 그 옆에는 성녀 요한나가 눈을 빛내며 서 있었다.
* * *
신탁에 따라 둥지를 떠난 소년과 소녀.
아우레오와 요한나가 난데없이 이곳에 나타난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방군 진영에 크로우 백작 각하가 있다!
검은 용 아스칸다르가 흑해를 넘어 상륙군 주둔지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의 최측근이 된 테온의 모습도 정찰병의 눈에 들어왔다.
이 소식은 중부군 수뇌부에 즉각 보고됐고, 아우레오는 길길이 날뛰며 당장 동방군 진영으로 달려갈 태세였다.
-아무리 신탁에 따른다지만, 근접 전투 능력이 없는 두 사람만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 수는 없습니다. 우회 전술을 써서 은밀히 침투해야지요.
테오도르는 두 사람을 만류하고, 일단 서남쪽으로 우회해 요정숲으로 갈 것을 권했다.
-서남쪽으로 길을 잡으면 동방군의 이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삼각주를 떠나 요정숲으로 간 다음, 엘프와 다크엘프 들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요정숲의 엘프들은 테온에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테온 구출 작전에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다크엘프들은 그림자 은신술 등 적진에 몰래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인 기술도 갖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으니, 테오도르 경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아우레오가 작전을 수락하고, 요한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중부군 진영을 떠난 두 사람은 서남쪽으로 신속히 이동했고, 요정숲 북서쪽 경계에서 이자벨라의 싸움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마녀와 흡혈귀, 망령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 건가?”
아우레오는 주변을 가득 채운 다양한 마력을 느꼈고, 즉시 신성력을 쏟아 냈다. 하지만 전투태세를 갖추었을 뿐, 아직 상황을 온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우레오의 입장에서 이오안과 금빛 용은 둘 다 처음 보는 존재였다.
‘저 적발의 마녀는 테온이 다섯 천사의 힘으로 정화한 아크리치잖아? 푸른 용의 주박을 깨고 평범한 여인이 된 줄 알았는데, 아크리치 시절의 마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건가?’
그나마 아우레오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이자벨라인데, 그것도 얼굴만 낯이 익을 뿐, 그녀의 정체나 왜 여기서 싸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성녀 은하, 우선 제 뒤로 오십시오. 저들의 정체와 목적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우레오는 미지의 적을 앞두고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테온과 함께하며 어느새 전투의 베테랑이 된 그였다.
아우레오는 요한나를 등 뒤로 숨기고 빛의 보호막을 준비했다. 그리고 미지의 적을 관찰하며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저 애새끼는 뭐야? 생긴 건 풋내기 같은데, 풍기는 신성력은 웬만한 성자(聖者) 뺨치는 수준이네……?’
이오안은 한눈에 아우레오의 잠재력을 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급격히 강해진 아우레오는 가만히 있어도 신성력이 몸 밖으로 줄줄 흐를 정도였다.
그리고, 이오안보다 더 빨리 아우레오를 알아본 존재가 있었으니…….
[이런 빌어먹을, 아우레오와 요한나가 왜 여기에?!]몇 년이나 율리오 대주교의 내면에 숨어 있었던 금빛 용. 그는 당연히 두 사람을 알아봤다.
금빛 용은 연이어 등장하는 불청객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인적 드문 야지에서 맹독 마법을 익힌 흡혈귀를 만난 것만 해도 드문 일인데, 곧이어 백룡마력과 화룡마력을 동시에 쓰는 마녀가 난입하고, 이제는 중부군 진영에 있어야 할 최고위 성직자가 둘이나 등장한 것이다.
사파에서 온 용사
엇갈린 싸움
[위, 위험하다. 이런 상황은 위험해. 육신이 없는 나에게 아우레오의 신성력은 치명적이야!]금빛 용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가 온전한 금빛 용이었다면, 하다못해 인간의 육신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빛의 힘을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는 반쪽짜리 망령에 불과했다. 빛은 순리를 따르는 힘. 이승에 남은 망령이 신성력에 노출되면 즉시 소멸할 수도 있다.
성녀 요한나는 그를 보는 순간 정체를 간파할 것이다. 게다가 함께 온 사제가 하필 성자 아우레오라니, 이건 영체 상태의 용을 죽이기에 최고의 조합이었다.
[어쩌지? 저들과 마주친 이상 도망은 무리야. 성녀의 ‘바람걸음’은 지금의 내가 뿌리칠 수 없는 속도다.]금빛 용은 혼란스러웠지만, 고민은 짧았다. 어차피 그가 살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육신에 들어가야 해! 여유를 부리며 완벽한 기회가 오길 기다릴 때가 아니야!]금빛 용은 도주가 아닌 방어를 택했다.
실체가 있는 몸을 갖추면 아우레오의 빛에 무방비로 노출되진 않을 터. 그는 급히 이자벨라에게 달라붙었다.
“떨어져! 이 찰거머리 같은 용 귀신아!”
금빛 용이 필사적으로 엉겨 붙자 이자벨라도 성질이 머리끝까지 났다. 그녀는 용마력을 아낌없이 내뿜으며 금빛 용의 정신지배에 대항했다.
“은하, 마녀와 망령이 공중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삿된 존재끼리 서로를 해치는 동안, 우리는 지상에서 저 늙은 흡혈귀를 상대하는 게 좋겠습니다.”
“…….”
“……은하?”
아우레오가 대답 없는 요한나를 돌아봤다.
그녀는 꼿꼿하게 서서 눈을 뒤집고 몸을 떨고 있었다. 전신에서는 은은한 광채가 연기처럼 흘렀다.
‘계시! 아도나이께서 은하에게 계시를 주신다!’
아우레오는 요한나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는 지체 없이 성경을 영창했다. 맑은 목소리와 함께 몸에서 광휘가 흘러나왔다.
아우레오가 뿜어낸 광휘는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둥글게 뭉치더니, 알껍데기처럼 두 사람을 감쌌다.
‘광휘의 보호막이면 어지간한 마법은 막아 낼 수 있겠지.’
안전을 확보한 아우레오가 손에 웬 향로를 들고 이오안을 노려봤다. 계시가 끝날 때까지 목숨을 바쳐 성녀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이오안은 그 부담스러운 눈빛을 피하며 요한나를 유심히 살폈다.
‘저 계집이 왜 저러지? 꼬마 사제 놈의 표정을 보니, 저 계집은 지금 싸울 수 없는 상태인 건가?’
이오안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입한 두 성직자 중 소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쳐야 한다!’
내세울 재주라고는 맹독 마법뿐인 이오안. 그에게는 성직자들을 따돌리고 도망칠 방법이 없다.
아도나이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기껏 발견한 흡혈귀를 그냥 보내 주지는 않을 터.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상대가 약해진 틈에 선공을 잡는 게 상책이었다.
“땅을 녹이는 파도!”
이오안이 강력한 주문을 시전했다. 사방에서 녹색 파도가 일어나 아우레오와 요한나를 덮쳤다.
묵직한 녹색 파도는 광휘의 보호막을 짓눌렀고, 조금씩 우그러뜨렸다.
“빛은 향기가 되어 만물을 돌보시매, 어린 양은 그 안에 머물며 스스로 지키리라!”
아우레오의 영창에 손에 든 향로가 반응했다.
쉬이이이익-.
향로가 뿜어낸 연기가 아우레오와 요한나를 감쌌다. 아무런 물리력이 없어 보이는 연기지만, 놀랍게도 이오안의 맹독 파도를 막아 내고 있었다.
‘쉽지 않다. 하필 파도 형태의 마법이라니…….’
아우레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꺼내든 ‘수호 성자의 향로’는 대교구로부터 하사받은 귀한 성물이지만, 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호 성자의 향로는 수계(水系) 마법에 유독 약했는데, 이오안의 맹독 마법은 수계 마법과 어우러진 형태의 주문이 대부분이었다.
“바꿔야 해요…….”
“앗, 성녀 은하! 정신이 드십니까?”
아우레오가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요한나의 떨림이 잦아들고 호흡이 안정됐다. 아도나이와 소통을 마친 것이다.
“아우레오 사제, 우리는 지금 엇갈린 싸움을 하고 있어요. 상대를 바꿔야 해요. 흡혈귀는 내버려 두고, 저 금빛 망령을 공격하세요!”
“예? 하지만 멀리 떨어진 망령에게 광휘를 비추면 그만큼 보호막이 약해질 텐데요……?”
“두려워 마세요, 아우레오 사제. 아도나이의 가르침입니다.”
“……!”
아도나이의 가르침이라는 말에 아우레오의 눈빛이 변했다.
물론, 아도나이가 이런 세세한 전술 지침을 하달하진 않았을 것이다. 훨씬 더 추상적이고, 많은 의미를 내포한 말을 해 주었을 터.
하지만 아우레오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요한나의 해석을 믿었고, 요한나의 자의적인 해석조차 아도나이의 큰 뜻 안에 있다고 믿었다.
“빛은 언제나 곧게 뻗고, 어둠은 휘어져 물러서니라!”
아우레오가 성경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의 시선은 공중의 금빛 망령에게 고정되었다.
[악!]갑자기 비추는 빛에 금빛 용이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불에 타는 고통이 절절히 느껴지는 비명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화들짝 놀란 금빛 용이 이자벨라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굉장한 신성력이군. 저 꼬마 녀석의 실력이 이 정도였나?’
이자벨라도 자기 몸을 비추는 광휘를 느꼈다. 마력이 조금 흐트러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괴롭거나 견디기 힘든 빛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지옥마력을 버린 데다, 아우레오가 마력보다는 망령을 공격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저 꼬맹이 사제가 날 구해 주다니……. 쟨 내 정체를 모를 텐데?’
테온이 저 소년 사제와 각별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숨겨 둔 마녀 동료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째서 사제가 마녀를 돕는지 의아했지만, 지금은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오안-!”
금빛 용의 방해를 벗어난 이자벨라가 쏜살같이 이오안을 향해 날았다. 마치 먹이를 발견하고 급강하하는 솔개 같은 모습이었다.
“피, 피의 요새!”
이오안이 급하게 보호막을 소환했다. 혈족 권능으로 만들어 낸 진득한 혈액 보호막이었다.
“이깟 잔재주!”
고함친 이자벨라가 왼손에서 냉기를 뿜었다.
이오안이 만든 피의 보호막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깨졌다.
“도, 독 가시덤불 소환!”
찰나의 순간에 이오안이 또 하나의 보호막을 소환했다. 보호막이라기보단 장애물에 가까운 가시덤불이었다.
“이딴 건 뚫을 필요도 없다!”
이자벨라의 오른손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녀가 손을 아래로 뻗자, 지상의 이오엔은 불길에 가려 형체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조잡한 가시덤불과 함께 태워 주마!”
“끄악! 아아악!”
이오안의 비명이 찢어지듯 울려 퍼지고, 아우레오와 요한나를 집어삼킬 듯 덤벼들던 맹독 파도는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이자벨라는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왔고, 이오안의 주변을 점멸로 널뛰기하듯 맴돌며 괴롭혔다.
“깔깔깔, 겉가죽만 살짝 태웠을 뿐인데, 엄살이 심하네!”
이자벨라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오안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그녀는 광기에 가득 찬 교소를 터뜨리며 이오안을 고문했다.
“내가 널 쉽게 죽여 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오안, 너의 야망은 여기서 끝이야. 날 마주친 순간부터 네게 남은 건 고통과 굴욕, 죽음뿐이라고!”
이오안은 이자벨라가 소환한 화염 감옥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녀의 공격을 고스란히 얻어맞고 있었다.
이오안의 능력으로 이자벨라를 상대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다 싸움에 끼어든 금빛 용 덕분에 빈틈을 공략할 수 있었을 뿐, 정면 대결로는 그가 이자벨라를 이길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팔! 다음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