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197
이자벨라의 마법이 이오안의 사지를 하나씩 불태우고 얼려서 깨트렸다. 이오안의 몸은 빠르게 망가졌다.
“이미 제압한 상대를 고문하다니, 저런 끔찍한……!”
“아우레오 사제, 지금 그쪽에 정신을 팔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우리는 금빛 망령을 막아야 해요!”
요한나의 말대로였다. 허공에서 갈팡질팡하던 금빛 용이 이자벨라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요한나가 계시를 받은 모양이군. 보나 마나 나의 정체에 관한 것이겠지. 아도나이가 성직자의 눈을 통해 나를 발견했으니, 지금 도망치는 건 의미가 없다!]금빛 용은 금빛 용대로 절박한 상황이었다. 인간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삼각주로 향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성녀와 성자를 마주해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인간을 죽이고, 지하 깊숙한 곳으로 숨어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아도나이에게 존재를 들켰으니, 거체를 되찾을 기회는 영영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상에 금빛 용의 망령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도나이가 모든 성직자에게 이 사실을 알릴 테니까.
[어쩌면 아스칸다르에게도 알릴지 몰라. 검은 용이 내 존재를 알게 되면, 경계를 극도로 강화하겠지.]그렇게 되면 검은 용의 거체를 강탈한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된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심경이 복잡했지만, 금빛 용은 일단 당장 해야 할 일부터 하기로 했다.
그는 소리 없이 날아가 이자벨라의 뒤로 접근했다. 흡혈귀를 괴롭히는 데 정신이 팔린 그녀의 육신을 빼앗을 셈이었다.
“빛이여!”
그때 아우레오의 영창이 터지고, 수십 줄기의 빛이 허공에서 휘어져 내려와 금빛 용을 감쌌다. 나후타야를 가두었던 테온의 새장처럼, 아우레오가 소환한 빛의 새장이 금빛 용을 포획했다.
[큰일이다! 지, 지하로 도망을……!]성급하게 접근한 금빛 용은 도주를 시도했지만, 이미 늦은 마당이었다. 아우레오의 빛은 둥글게 휘어지며 끝과 끝이 만났고, 금빛 용의 영체를 완벽하게 가두어 버렸다.
“가시 박힌 관에 죄지은 이를 가두어라. 고통은 약이로되, 영을 찔러 죄를 덜어라.”
아우레오의 엄중한 영창과 함께 새장 내부에 가시처럼 빛이 돋아났다. 광휘로 만든 거대한 아이언메이든이었다.
“대단해요, 아우레오 사제. 크로우 각하의 새장에서 영감을 얻었군요!”
“과찬이십니다, 은하.”
아우레오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가 소환한 빛의 감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지상에 악마가 강림해도 이 기술에 걸리면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 저 삿된 망령에게 최후의 일격을…….”
“아니요, 그는 살려 두어야 합니다.”
금빛 망령을 처형하려는 아우레오를 요한나가 말렸다.
아우레오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이유는 저 참극이 끝난 뒤에 말씀드릴게요.”
요한나가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이자벨라와 이오안이 있었다.
한때는 가족이자 사제지간이었으나, 이제는 철천지원수가 되어 버린 두 흡혈귀의 싸움.
그 지독한 악연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파에서 온 용사
반 마리 용
아우레오와 요한나가 요정숲에 첫발을 내딛던 시각, 드높은 천상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인간의 수호자이며, 지상의 질서를 정의하는 절대자가 된 사내.
하나의 차원을 이끄는 인도자이자, 스스로 신격을 얻어 빛나는 성운에 올라선 불멸자.
바로 빛의 신 아도나이였다.
성녀와 성자의 여정을 눈여겨보던 아도나이는 그들 앞에 나타난 금빛 망령을 발견하고 기함했다. 지고한 격을 가진 빛의 신이 혼잣말을 지껄일 만큼 놀라운 발견이었다.
드라타레스. 그것은 금빛 용의 잊힌 이름이자, 아도나이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인간들의 믿음과 달리,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신들도 모르는 게 있고, 잘못된 정보 때문에 오판하기도 한다.
빛의 신 아도나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역시 지상에 금빛 용 드라타레스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고, 그런 탓에 아스칸다르가 최후의 용이 되었다고 오판했다.
아도나이는 잠깐 고민했다. 복잡한 상황이라 섣불리 행동하기 어려웠다.
드라타레스의 상태가 온전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금빛 용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아도나이가 맹약을 어기는 셈이 된다.
용의 권능을 주고 뺏는 문제는 중대사안이다. 여기서 오판했다가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아무리 신격을 얻었어도 인과율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
아도나이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드라타레스의 상태를 면밀히 살폈다. 동시에, 신의 권능을 사용해 시야를 지상 전체로 넓혔다.
엄청난 범위를 초고속으로 탐색한 아도나이. 그는 확연히 약해진 자기 힘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막대한 권능을 소모한 탓에 당분간 지상에 간섭하기 어려워졌지만, 당장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다.
대륙 전체를 수색한 아도나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드라타레스는 완전한 망령 상태다.
육체와 영혼은 존재를 이루는 두 가지 근간이니, 영혼만 남은 금빛 용은 반쪽만 남은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반 마리 취급이라니, 드라타레스가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지만, 아도나이는 피식 웃으며 지껄였다.
상황을 파악했으니 이제 응당한 조치를 할 시간이었다.
아도나이는 아스칸다르의 권능을 회수할 마음을 먹었다. 그뿐 아니라, 이 기회에 아스칸다르와 드라타레스를 동시에 처치해 버릴 계획을 세웠다.
인간의 욕심을 간직한 신. 아도나이의 정신체가 천상을 떠나 지상으로 향했다.
그의 목적지는 삼각주의 동방군 주둔지. 그 중심에 있는 아스칸다르의 천막이었다.
* * *
아스칸다르는 천막 안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화살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이, 이런 개 같은 경우가……!]아스칸다르의 권능이 물거품처럼 사그라들었다. 완벽에 가깝게 복구되었던 거체가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덧 미숙한 아성체의 모습으로 변했다.
밑바닥을 보이지 않던 용마력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무한한 수명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용인의 모습일 때보다는 여전히 강하지만, 온전한 용의 권능에 비하면 고작 절반 정도의 힘만 남았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헉!]아스칸다르가 고통 속에서 이유를 찾고 있을 때, 인세의 시간이 멈추고 한 줄기 빛이 다가왔다.
막대한 신성의 응집, 아도나이의 정신체였다.
[아, 아도나이?! 네놈이냐, 내 권능을 훼손한 범인이?!]아스칸다르는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고대의 맹약은 아도나이와 용들이 합의한 것이다. 두 신격의 합의는 인과율이 되었고, 이것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어길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너라도 고대의 맹약을 어길 순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속셈으로 최후의 용이 가진 권능을 회수하는 것이냐? 인과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의 중부 침공을 막겠다는 거냐?!] [뭐? 인제 와서 무슨 헛소리를……!] [……!]아도나이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지상에서 금빛 용의 망령을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거, 거짓말, 거짓말이야! 금빛 용이라니? 네놈이 인과의 대가를 피하기 위해 거짓을 늘어놓는구나!]아스칸다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금빛 용이 멸종한 게 벌써 수백 년 전인데, 천상에서 내려다보는 아도나이의 시선을 피해 지금까지 숨어 있었다니?
[반쪽짜리 용이라니, 그런 궤변이 어디에 있어!] [그, 그럴 수가……!]아스칸다르는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굳건한 신격을 가진 아도나이가 지상까지 내려와 거짓말이나 지껄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도나이는 용의 권능을 빼앗고도 멀쩡해 보였다. 그가 정말 맹약을 어기고 권능을 회수했다면, 대가를 치르느라 어떤 형태로든 겉으로 티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왜 나한테 이런 속사정을 다 말해 주는 거지? 아도나이의 입장에서는 금빛 용의 존재를 혼자만 알고 있는 게 더 유리하지 않나?’
아도나이가 직접 찾아와 미주알고주알 설명해 주지 않았다면, 아스칸다르는 영문도 모른 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드라타레스의 존재를 알았으니, 그 빌어먹을 반쪽짜리 금빛 용만 찾아서 처치하면 진정한 최후의 용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군. 이 사기꾼 새끼, 분명 무언가 속셈이 있어.’
신격을 가진 아도나이가 지상에서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만, 속마음을 감출 수는 있다.
아도나이는 금빛 용에 관한 정보를 검은 용에게 흘림으로써 얻는 게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얻는 게 없다면 천상의 신이 굳이 수고를 해 가며 지상으로 정신체를 보낼 이유가 없었다.
[뭐?! 자, 잠깐! 차라리 거체를 가져가고 용언마법을 남겨놔!]아스칸다르의 외침은 공허하게 허공을 때렸다. 이미 아도나이는 사라졌고, 인세의 시간이 다시 흘렀다.
우드득, 우득.
아스칸다르의 몸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아성체 크기로 줄었던 몸이 원래의 위용을 되찾고, 거대한 심장은 다시 무한한 용마력을 뿜어냈다.
하지만 아스칸다르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
[이 개자식, 내, 내 용언마법을……!]거체도 소중하고, 무한한 용마력도 좋고, 영원한 수명도 중요하지만, 용의 권능 중 가장 핵심적인 능력은 뭐니 뭐니 해도 용언마법이었다.
모든 방해를 무시하고 마법을 완성하는 용언이야말로 용이 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아도나이는 ‘권능의 절반을 회수하겠다.’라는 같잖은 명분을 들이대며 검은 용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빼앗아 간 것이다.
* * *
‘어라? 방금 살짝…….’
순간적으로 스쳐 간 변화지만, 분명 나를 둘러싼 무의식의 세계가 흔들렸다.
나 자신의 몸에 갇혀 버린 상황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봉인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으음……?”
갑자기 찾아온 변화는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또 다른 나, 아스칸다르의 정신지배에 굴복한 테온도 설명할 수 없는 변화를 느꼈다.
“끄응…….”
또 다른 나는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여러 기억이 머릿속을 마구 스쳐 가고,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기 행동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내가 왜 아스칸다르를 섬기고……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