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22
무기를 든 팔은 사람과 비슷했지만, 땅을 디딘 다리는 분명 개 다리에 개 발바닥이었다.
‘개와 인간의 잡종인가?’
신기하게 생겼지만, 그리 강해 보이진 않았다. 크기도 고블린보다 좀 더 큰 정도고, 마녀처럼 심상찮은 기운을 풍기지도 않았다.
“위치 사수해! 방어에 집중한다!”
“사제님을 중앙으로 모셔!”
붉은 모루 용병단은 능숙하게 놀 떼를 상대했다. 전열의 용병은 방벽을 단단히 굳히고, 후열은 긴 창을 부지런히 쑤셔 댔다.
그들은 일말의 두려움이나 긴장도 보이지 않았다. 농부가 가을날 이삭을 거두듯 기계적으로 놀의 목숨을 거두고 있었다.
깨갱! 깽!
놀 무리는 몇 번 방어벽을 건너뛰려 시도하다 금방 포기했다. 그들의 짧은 팔다리로는 쭉쭉 뻗어 나오는 창날 더미를 뚫을 방법이 없었다.
동족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자, 놈들은 결국 꽁무니를 뺐다.
“이겼다!”
“다들 고생했다. 사체 치우고 전리품 챙겨.”
전투가 일상인 용병답게 이 정도 승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고작 이 정도 규모의 놀 무리가 드워프 용병단을 상대로 덤비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어라, 두란 대장. 이것 좀 봐!”
드워프 용병 하나가 두란을 불렀다. 뭔가 싶어 다가간 두란도 ‘오’ 하며 감탄했다.
“이건 진주잖아!?”
“횡재다!”
놀랍게도 놀 무리 중 하나가 진주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놀 사체에서는 다양한 장신구와 은붙이가 나왔다. 놈들이 입고 있는 무기와 갑옷도 크기가 헐거워서 그렇지 제법 쓸 만한 것들이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이런 하등 몬스터가 이 정도 재물을 가지고 있다니.”
“이 새끼들, 근래에 상단을 습격해서 크게 한탕 해 먹은 모양인데?”
놀 무리가 무장한 용병단을 먼저 습격한 것도 최근의 성과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인 듯했다.
어쨌거나 예상 밖의 소득을 얻은 붉은 모루 용병단이 콧노래를 부르며 놀 사체를 땅에 파묻었다.
사파에서 온 용사
오르샤바
금방 전장 정리를 마친 두란이 내게 다가왔다. 그가 우쭐하며 말했다.
“봤냐? 우리가 이 정도야.”
“클클, 제법인데? 싸울 줄 아네.”
나는 순순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모루 용병단의 전투 방식은 훌륭했다. 뛰어난 근력과 무거운 무쇠 장비 등 자기들이 가진 장점을 십분 발휘하는 싸움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싸우면 불필요한 부상이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지.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넌 보기와 달리 힘이 아주 세니까.”
“미안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야.”
가시를 바짝 세우고 상대가 다가와 찔리길 기다리는 건 내 성미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두란은 팔씨름으로 패배한 덕분에 내 힘에 놀라고 있지만, 무림인인 나는 사실 힘보다 기술에 자신이 있었다.
“싸움보다 사체 치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군.”
“어쩔 수 없어. 가도에 사체를 늘어놓고 그냥 가면 몬스터가 몰려들어 길이 막힐 거야. 한시가 급하다면 모를까, 여유가 있을 때는 사체를 묻어 놓고 가는 게 좋지.”
소위 여행자의 배려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키는 사람은 없지만, 도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란은 꼼꼼하게 전장의 핏자국을 지웠다.
누군가는 미련하다 하겠지만, 지금 드워프 용병을 향한 귀족들의 신뢰는 그 미련한 올곧음이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다 되었습니다, 사제님.”
“고생 많았어요, 두란. 신세를 졌네요.”
“하하, 별말씀을요.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서둘러 출발하지요.”
작은 소동을 끝으로 여정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딱히 위기는 아니었지만, 놀 습격을 함께 넘기며 일행은 더 친해진 느낌이었다.
두란이 호탕하게 웃으며 자기 도끼를 툭툭 두드렸다.
“내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은 재산이 아니라 용기야. 난 스스로 공을 세워 이름을 드높일 거라고.”
그는 젊고 야심만만한 드워프였다.
젊다고 해도 드워프 중에 젊은 것이지,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넘은 나이였지만.
“그럼 오르샤바로 가는 건 의뢰를 받기 위함인가?”
“맞아. 지금 오르샤바의 영주가 대대적으로 용병을 모으고 있거든. 꽤 큰 건이야.”
두란의 말에 따르면, 오르샤바 인근에서 상단이 여러 번 실종되었다고 한다.
흉수는 봄철에 숫자가 불어난 놀 무리로 추정되고, 영주가 토벌을 위해 용병을 모집하는 것이다.
“놀이 부족한 숫자로 우리를 습격한 것도 그래서였군.”
“맞아. 떼 지어 사는 하급 몬스터 주제에 개체 수가 급증했으니, 먹을 것이 부족해져 눈에 뵈는 게 없었겠지. 상단을 몇 번 털며 자신감도 붙었을 테고. 생명의 실패작 같은 놈들.”
두란 역시 몬스터에 대한 혐오감이 상당했다.
“오르샤바의 영주는 인간 귀족답지 않게 출신보다 능력을 따지는 인물이야. 뭐, 본인부터가 서부에서 온 이민자 출신이니 말 다 했지. 전투, 행정, 건축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다더군.”
“너도 그의 밑에서 공을 세우고 한자리 차지할 셈인가?”
“바로 그거야. 난 쥐뿔도 없으면서 으스대는 인간 귀족을 제일 싫어하거든. 하지만 출세를 위해서는 결국 인간 귀족의 눈에 들어야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오르샤바는 최고의 도시지. 통치자가 꽤 매력 있는 인물이니까.”
첫인상과 달리, 두란과의 만남은 즐거웠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곳의 인간들보다 말이 잘 통했다.
‘드워프의 사고방식은 무림인과 비슷하군. 생긴 건 요상해도 괜찮은 놈들이야.’
좀 더 겪어 봐야 알겠지만, 드워프란 종족은 현실적이고 실력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 온갖 명분과 미신에 빠져 사는 이곳의 인간들보다 솔직한 면이 있었다.
* * *
일행은 바쁘게 걸어 오르샤바에 도착했다. 붉은 모루 용병단의 도움으로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 보이던 도시가 점점 가까워지고, 그 웅장한 자태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야, 꽤 큰 도시잖아?”
오르샤바의 외성은 토벽의 높이가 일 장 오 척(약 4.5m)에 달했고, 외성 너머로 보이는 내성은 무려 석벽으로 둘러 놓았다. 이중으로 방어가 가능한 도시인 것이다.
“오르샤바는 중간 지대의 자유도시 중 손꼽히는 곳입니다. 어서 가요, 도시의 교회를 테온에게 보여 주고 싶군요.”
아우레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동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오랜 노숙으로 심신이 지쳐 있었을 터다.
두란은 여기서 작별을 고했다.
“사제님, 저희는 출입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하니, 저쪽 관문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동안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그간 동행해 주어 고마워요, 두란 대장.”
두란는 아우레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나를 돌아보았다. 여정에서 두란과 가장 친해진 사람은 나였다.
“자네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지. 그때는 그 대단하다는 칼 솜씨 한번 보여 달라고.”
“붉은 모루 용병단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한 적을 만나면 보여 줄 기회가 있겠지.”
“하하하! 그래. 또 보자.”
두란은 첫 만남과 똑같이 호탕하게 웃으며 떠나갔다.
붉은 모루 용병단과 헤어진 일행은 서둘러 도시로 접근했다. 관문이 가까워질수록 길게 늘어선 인파에 걸음이 느려졌다.
“제법 북적이네.”
“도시 규모도 엄청나지만, 중간 지대 특성상 유동 인구가 많다네. 지난번에도 이렇게 북적였는데, 오랜만에 와도 여전하군.”
시종 침착하던 에릭도 지금은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자기가 한번 와 봤던 곳이라 그런지, 이것저것 아는 내용을 풀어놓았다.
‘그렇게 엄청난 대도시는 아닌데.’
나는 도시를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에 감탄한 것이지, 도시의 규모가 정말 놀라운 건 아니었다.
여기서는 큰 도시라고 하지만 중원의 북경이나 항주에 비하면 일개 지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도 제법 사람 사는 느낌은 나는군.’
에릭의 말대로, 도시는 성벽 밖에서도 활력이 느껴질 만큼 북적이고 있었다.
다양한 복장과 외모의 무역상은 물론이고, 대규모 용병단과 이주민, 바깥일을 보고 돌아오는 토박이까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오죽하면 성문으로 이어진 긴 줄 옆에 천막까지 설치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관문을 통과하려면 한참 걸리겠네요.”
“흐흐, 그럴 리가요.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에릭과 토마스가 자신 있게 앞장서고, 그 뒤로 아우레오와 내가 뒤따랐다.
“비켜라, 비켜! 사제님 행차시다!”
“이봐, 썩 물러서지 못해!? 이분의 예복이 보이지 않는 거야?”
에릭과 토마스는 정신 나간 놈들처럼 사람들을 밀치며 길을 열었다.
‘이 새끼들이 돌았나? 또 아우레오한테 한 소리 듣겠군.’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아우레오는 얼굴을 조금 붉혔을 뿐, 별다른 반응 없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심지어 옆으로 밀려 난 다른 민초들도 고개를 조아리며 얌전히 물러서는 게 아닌가?
“뭐야, 이거. 이곳 사람들은 성질도 없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왜 저렇게 무력하게 비켜 주는 거야? 자기들이 먼저 와서 줄을 서 있었잖아?”
“그, 그야…….”
순간 아우레오는 무어라 설명할지 몰라 말을 흐렸고, 토마스가 끼어들어 대신 대답했다.
“넌 하다 하다 그런 것도 기억이 안 나냐? 궁금하면 도시에서 귀족 나리나 사제님 행차를 가로막아 봐.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릴걸.”
“뭐?”
이 세계에서 사제 대접이 좋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마구 밀치며 뚫어 버릴 정도라니, 중원에서는 어지간한 고관대작이라도 민심을 우려해서 하지 않을 짓이다.
용병대장 두란이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것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위세였다.
‘게다가 에릭과 토마스까지 아우레오의 위신을 믿고 저렇게 설쳐 대다니, 이곳은 신분에 따른 차별이 중원보다 훨씬 심하군.’
아우레오의 성격이 워낙 소탈하다 보니 그동안 실감하지 못했지만, 도시에서 사제나 귀족의 권위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일행은 긴 줄을 가로질러 관문 앞에 도착했다.
아우레오는 관문을 지키는 병사에게 신분을 밝혔다. 그의 복장과 목걸이를 확인한 경비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뒤따라오는 저 여자들은 뭡니까?”
“중간 지대에서 체포한 마녀와 그 제자들입니다. 오르샤바 교구에 신병을 인도하기 위해 급히 달려왔으니, 이 사실을 주교 예하께 전달해 주세요.”
“헉, 저들이 모두 마녀란 말입니까?”
눈이 휘둥그레진 경비병이 다른 경비병에게 손짓했다.
경비병 중 발이 가장 빠른 이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도시 안쪽으로 달렸다.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교회에서 영접단이 올 때까지 경비대장실에서 모시겠습니다.”
“고마워요.”
아우레오는 기품 있게 고개를 까닥이고 앞서 걸었다.
경비병들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굽신거리며 앞길을 텄다.
‘참 신기한 세상이야.’
중원으로 따지면 어린 도사에게 지방 군관이 굽신거리는 상황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경비대장실에서 상전 행세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문밖에서 우리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중앙에서 온 사제님은 어디에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