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23
“여기 있습니다.”
아우레오가 문을 열고 나갔다.
밖에는 아우레오와 비슷한 예복을 입은 청년과 온몸에 은빛 철갑을 두른 사내가 있었다.
“오르샤바 교구에서 온 부제 아미르입니다. 이쪽은 교구의 성기사이신 알두르 경이고요.”
“아미르 부제시군요. 알두르 경도 반갑습니다.”
아우레오는 두 사람과 짧게 인사하고, 일행을 소개했다.
나는 다른 것보다 알두르가 입은 갑옷에 관심이 갔다. 이곳에 오기 전 전신 판금 갑옷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과해도 너무 과했다.
‘무슨 자라 새끼도 아니고…….’
성기사라면 분명 검기를 다룰 텐데, 저런 쇳덩이 갑옷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방어력으로 얻는 이점보다 몸이 둔해져서 얻는 손해가 더 커 보였다.
‘눈빛은 좋군.’
괴상한 무장과 별개로 알두르는 제법 단련을 한 태가 났다. 그는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마녀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관문에 딸린 감옥에 일단 수감했습니다. 제가 안내하지요.”
경비대장의 말에 알두르는 병사를 대동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지금부터 마녀 호송은 알두르 경이 맡을 것입니다. 마차를 따로 준비했으니, 우리는 먼저 교구로 갈까요?”
우리는 아미르 부제의 인솔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쌍두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고급스러운 순백색 외관을 자랑했다.
마차의 네 귀퉁이는 은분(銀粉)을 바른 듯 반짝였고, 쪽창에 달린 차양도 값비싼 원단으로 보였다.
‘교회는 돈이 썩어 나나?’
“헤헤, 에릭, 사제님 뒷배가 좋긴 좋은데?”
“그러게나 말이야, 토마스. 내 평생 이렇게 멋진 마차는 처음 타 보는군.”
두 용병은 어깨가 우쭐해진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문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통행 허가를 받지 못해 서성이고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와 같은 시각에 도착한 붉은 모루 용병단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토마스가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베테랑 용병단도 별 볼 일 없네. 난 용병단에 입단하면 그 자체로 출세라 생각했는데.”
“후후, 실망했어?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용병단에 들어간 뒤부터 진짜 고생 시작이라고. 용병이라고 해 봤자 결국 평민이야.”
에릭이 토마스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 몸을 돌렸다.
토마스는 붉은 모루 용병단에게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다가 뒤늦게 따라왔다.
사파에서 온 용사
오르사바(2)
오르샤바는 대도시답게 곳곳에 교회가 있었는데, 마차가 멈춘 곳은 도시의 모든 교회를 총괄하는 교구 본청이었다.
“대단히 아름다운 건축물이군.”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입에서 솔직한 감탄이 나왔다. 교회 건물은 웅장함과 신성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걸작이었다.
완벽한 좌우 대칭에서 오는 균형미가 안정감을 주고, 새하얀 대리석으로 감싼 외벽에는 햇살이 산산이 부딪히며 빛을 뿌렸다.
정원에 깔린 잔디는 잘 정돈되어 있고, 곳곳에 꽃과 과실 나무, 연못도 있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원형 구조물이 있었는데, 아도나이를 상징하는 성원상(聖圓像)이었다.
“둥근 원은 완전함을, 백색은 순결함을 상징합니다. 좌우 대칭은 흔들리지 않는 질서를 뜻하지요. 모두 유일한 신 아도나이의 상징입니다.”
“너희 신은 아주 깔끔 떠는 신이구나.”
“하하,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하지만 테온, 이제부터는 말을 가려서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우레오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눈동자에 옅은 걱정의 기색이 스쳐 갔다. 내가 교회에서 말실수할까 우려하는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여긴 너보다 더한 벽창호가 득시글할 텐데, 나도 괜히 말 한마디 잘못해서 귀찮은 시비를 만들고 싶지 않다.”
“고마워요, 테온. 교회에 머무는 동안만 조심해 주세요.”
한 번 더 당부한 아우레오가 의관을 정제하고 예배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릭과 토마스도 자기 복장을 한번 점검하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 * *
색유리를 통과한 알록달록한 빛이 교회 내부를 물들이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서 와요, 아우레오 사제.”
“주교 예하! 예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는 중앙 대교구에서 온 사제 아우레오입니다.”
아우레오를 맞이한 사람은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대머리 노사제였다.
노사제의 이름은 미켈레 옐란치노. 오르샤바 교구를 맡은 교구장이자 아도니스교의 주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우레오의 손을 잡으며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아우레오 사제가 순례 중에 마녀를 생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어디 다친 곳은 없나요?”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마녀와 그 제자들까지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오오, 실로 아도나이의 은혜입니다. 신실한 사제가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굳센 손길을 뻗어 주셨군요.”
“네,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지요. 다만…….”
아우레오는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말끝을 흐리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마녀의 속셈을 하나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도무지 사악한 금제를 풀어낼 방법이 없더군요.”
“자책하지 말아요. 오르샤바까지 데리고 온 것만으로도 그대는 큰일을 해낸 것입니다. 이렇게 서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교구장실로 자리를 옮기지요. 다른 일행은 응접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옐란치노 주교의 지시에 따라 부제가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내실로 들어가는 아우레오를 잠시 지켜보다 몸을 돌려 응접실로 향했다.
* * *
오르샤바 교구의 교구장실. 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사제가 마주 앉아 있었다.
“‘푸른 홉 고블린’이요?”
“그렇습니다, 예하. 중간 지대의 압생트 마을에서 발견한 신종입니다.”
“으음.”
아우레오의 설명에 옐란치노 주교가 침음성을 흘렸다. 실내의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만 불안하게 울렸다.
“대륙 곳곳에서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회색 고블린 무리에서나 볼 수 있던 홉 고블린이 푸른 고블린 무리에서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지요. 불길한 마법의 징조가 확실합니다.”
아우레오의 목소리에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옐란치노 주교는 젊은 사제의 열정에 감복해 미소를 머금었다.
“나도 성직자로서 실태조사에 발 벗고 나서야겠군요. 그나저나 그 검은 머리의 청년이 마녀를 육박전으로 제압했다고요?”
테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우레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는 어린아이가 친구를 자랑하듯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테온은 제가 본 최고의 전사입니다. 마녀를 손수 제압했고, 그 전에 푸른 홉 고블린의 공격으로부터 압생트 마을을 지켜 낸 것도 테온이지요. 실력도 출중하고, 정의를 위해서라면 대가 없이 검을 뽑는 사내입니다.”
“그런가요? 이 늙은이의 눈에는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던데요.”
“하하, 테온의 외모가 독특하긴 하지요.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도 희귀한데, 다른 이목구비도 어딘가 이질적이니까요.”
옐란치노 주교가 은근하게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들뜬 아우레오는 그 말의 속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쉰 옐란치노 주교가 속내를 밝혔다.
“아우레오 사제, 나는 그자가 의심스럽다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사실 교회에 들어올 때부터 유심히 지켜봤는데, 그의 눈동자에는 교회를 향한 경외가 없어요.”
“예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실 법도 하지요. 테온은 지금 사악한 마법에 당해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이니까요. 신앙은커녕 야만인과 다를 바 없는 상태입니다.”
“마법에 당해요? 스스로 그렇게 말하던가요?”
옐란치노의 물음에 아우레오는 자신이 테온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특히, 고난의 길에서 용사를 만난다는 신탁을 이야기할 때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으음, 중부 대교구에 그런 신탁이 있었군요.”
옐란치노 주교는 들뜬 아우레오의 모습에서 모종의 불안을 느꼈다.
아우레오는 어린 사제다. 그 영특함이 중부를 넘어 각 지방의 교구에도 알려질 정도였고, 유례없이 빠른 서품을 받아 어린 나이에 사제의 관을 썼다.
‘그만큼 날파리도 많이 꼬이겠지.’
정의감 넘치고 어리숙한 풋내기 사제.
세상 물정 모르는 아우레오는 승냥이 같은 사기꾼에게 최고의 먹잇감일지 모른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아우레오는 이미 테온이란 자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아서 대뜸 험담하거나 강제로 떼어 놓기도 부적절해 보였다.
‘이미 테온이 신탁의 용사라고 믿고 있는 것 같은데…… 맹목적으로 믿지 않도록 냉정을 되찾아 주어야겠군.’
옐란치노 주교는 재미난 제안을 하는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테온의 실력이 그토록 뛰어나다면, 우리 교구의 성기사와 대련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예?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서임까지 받은 성기사와 당장 대결하는 건 무리가 아닐지…….”
“하하, 목숨을 건 결투도 아니고 단지 대련입니다. 그가 진정 용사의 자질이 있다면, 수준 높은 성기사와 검을 맞대는 걸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겠지요.”
옐란치노 주교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아우레오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테온이 다른 것도 아닌 검술 대결을 두려워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제가 한번 제안해 보겠습니다. 테온이 기뻐하면 좋겠네요.”
“분명 기뻐할 것입니다.”
두 사제는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 웃었다.
* * *
나는 에릭, 토마스와 함께 응접실에서 쉬고 있었다.
딱히 할 게 없어 멍하니 실내 장식만 구경하고 있는데, 마녀들을 데리고 갔던 알두르와 다른 성기사들이 찾아왔다.
“그대는 용병이 아니었군요. 순례의 수호자인 줄도 모르고 결례를 범할 뻔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지금 내 행색은 누가 봐도 용병의 모습이니까.”
알두르가 일행을 소개했고, 성기사들은 나를 호의적으로 대했다.
“아우레오에게 듣자 하니, 너희들은 신기한 기술을 쓴다면서? 칼에서 빛이 나온다던데.”
“광휘의 검을 말하는군요. 맞습니다. 모든 성기사는 광휘를 다루지요. 정확히 말하면, 광휘를 다루지 못하는 자는 정식 성기사가 될 수 없습니다.”
“호오, 그럼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가능하단 소리네? 교회의 성기사가 총 몇 명인데?”
“글쎄요? 정확한 숫자는 교무청에서 알고 있겠지만, 대륙 전체로 따지면 천 명은 넘을 겁니다.”
알두르의 말에 내심 감탄했다.
칼날의 바깥에 내공을 두르는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고수가 일천 명이라니, 무림의 명문대파도 저런 규모의 무력 집단을 독자적으로 보유하지는 못했다.
어기충검을 넘어 검기상인의 경지라면 중원무림에서도 고수로 대우받는 실력이다.
하지만…….
‘마녀의 내력은 막강했지만, 그 운용은 삼류에 불과했다. 성기사도 검기의 위력과 별개로 초식은 별 볼 일 없을지 몰라.’
갑옷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중원 무인과는 아예 다른 방식으로 싸운다는 뜻이었다.
나는 마녀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 무림의 상식으로 상대를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알두르의 실력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우레오를 통해 대련을 신청해 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우레오와 옐란치노 주교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나요?”
“딱히. 성기사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하하, 벌써 서로 친해진 것 같은데요?”
아우레오는 나를 교회로 끌어들이려 안달이 난 놈이니, 내가 교회의 인사들과 친분을 쌓는 것이 기쁜 모습이었다.
“여기 테온은 제가 본 세속의 전사 중 가장 정의로운 사내입니다. 제 순례의 수호자일 뿐만 아니라, 마법사 척결에도 큰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대가 없는 몬스터 소탕에도 발 벗고 나서는…….”
아우레오가 장황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성기사들에게 나를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