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24
“그의 정신은 폭포처럼 올곧아 마녀의 현혹에도 흔들림이 없고, 손발은 굳세어 사악한 마법을 갈가리 찢어 버립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열 걸음이나 떨어진 홉 고블린의 눈에 구멍이 뚫렸어요.”
“……?”
“또한, 숲의 마녀는 테온의 손이 닿자마자 거짓된 젊음을 잃고 본래의 늙은 모습으로 돌아왔지요. 이건 제가 기절한 탓에 직접 보진 못했지만, 에릭과 토마스가 증언해 주었습니다.”
“……??”
“그뿐인가요? 그는 공중에서 허공을 밟으며 방향을 바꿀 수 있고, 힘도 굉장히 세요. 드워프와 팔씨름을 해도 이길 만큼요.”
“……???”
소개를 듣던 좌중의 고개가 점점 기울어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다지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아우레오의 소개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루하리만치 긴 소개에도 불구하고, 성기사들은 끝까지 들어 주었다.
‘이 세계는 칭송이 자연스러운 문화라지만, 도저히 낯 뜨거워서 못 견디겠군.’
이곳에서는 면전에서 상대의 업적을 소리 높여 읊어 주는 것이 배려이자 존중이었다.
평소라면 주둥이 닥치라고 한마디 해 주겠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많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슬슬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무렵, 고맙게도 옐란치노 주교가 본론을 꺼냈다.
“순례의 수호자 테온, 당신의 실력을 듣고 감탄했습니다. 정의로운 사내에게 합당한 힘을 주셨으니, 분명 신의 뜻이겠지요.”
나는 별다른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옐란치노 주교를 바라보았다.
“이참에 교회의 성기사들과 대련을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서로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요.”
“오?”
바라던 바였다.
반면, 성기사들은 대체로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순례의 수호자라며 띄워 주지만, 속마음은 야인과 칼을 섞는 게 언짢은가? 꼴에 지체 높은 몸이라는 게지.’
하지만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이방인의 기술이 궁금한 사람도 분명히 있을 터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부터 호의적이었던 알두르가 앞으로 나섰다.
“수호자 테온, 그대의 검을 내가 한번 받아 보고 싶습니다.”
알두르라면 나도 환영이었다.
기왕 성기사와 붙어 볼 거라면 제대로 된 실력자와 싸우는 게 좋았고, 알두르의 기세는 여러 성기사 중에서도 돋보였다.
‘좋군. 재미있겠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바라는 와중에 찾아온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사파에서 온 용사
대련
성기사와 하는 대련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지금은 내가 아우레오와 동행하며 교회와 친분을 쌓고 있지만, 사람 앞일은 알 수 없는 노릇. 언젠가 교회와 척을 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꼭 교회와 싸우지 않더라도, 이참에 성기사가 쓰는 기술이나 내공의 성질을 파악해 두면 어딘가에 요긴하게 쓰일 일이 있을 것이다.
“나도 좋다. 성기사와 대련이라니 영광이로군.”
성기사들의 말투를 흉내 내며 대련을 수락했다.
“하하, 테온, 그대는 실로 용감하군요.”
“누가 용감한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오늘 대련에서 광휘의 검도 볼 수 있나?”
“예? 푸하하핫!”
내 물음에 알두르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테온, 광휘의 검은 방어를 무시하는 힘입니다. 갑옷이나 방패를 건너뛰고 곧장 피육(皮肉)을 베는 천사의 검기(劍伎)지요. 제가 설마 친선 대련에서 그런 기술을 쓸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이 아니라 기대를 했던 건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알두르는 광휘의 검을 보여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초식만 구경하는 걸로 만족해야 할 듯싶었다.
‘그나저나 갑옷이나 방패째로 베어 버리는 게 아니라, 건너뛰고 피육만 벤다고?’
알두르의 설명으로 미루어 볼 때 광휘의 검은 내가 겪어 본 적 없는 기술이 분명했다.
중원의 검기처럼 절삭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과 검기가 결합된 기술인 듯한데, 쉽사리 형태가 그려지지 않았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대련 장소로 이동했다.
교회 뒤뜰에 마련된 연무장. 나와 알두르는 다섯 보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각각 손에는 철검을 한 자루씩 들고 있었다. 날을 세우지 않은 연습용 가검(假劍)이었다.
“진검 대련이 아니니 마음이 놓이십니까?”
“…….”
알두르의 물음에 굳이 대답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비무도 진검으로 펼치는 중원과 달리, 이곳은 가검으로 하는 게 상식인 듯했다.
‘가검을 쓰면서 갑옷은 그대로 입었네.’
친선 대련에 불과하지만 알두르는 갑옷을 전부 갖춰 입은 상태였다. 이곳에서 갑옷은 단순한 무구가 아니라, 신분의 증명이자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아마 갑옷을 활용한 방어 기술을 익혔겠지.’
저렇게 무거운 쇳덩이를 온몸에 휘감고 싸운다면 애초에 방어나 회피는 갑옷에 맡기고 관심을 끄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
연습 대련이라도 갑옷을 벗으면 알두르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터다.
‘어쩐지 싱겁게 끝날 것 같은데.’
알두르가 입은 갑옷은 척 보기에도 대단한 물건 같았다.
드워프 방패처럼 두껍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한 화살이나 창검은 충분히 막아 낼 것 같았고, 무림에서 온 나도 갑옷의 빈틈을 노리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이음새가 정밀했다.
하지만 내공을 익힌 무인 앞에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랴?
내가중수법이나 격공장(隔空掌)을 쓰면 갑옷을 건너뛰고 체내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알두르는 제자리에서 통통 뛰며 몸을 점검했고, 나는 그 모습을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손수건이 땅에 닿는 순간 대결이 시작됩니다. 자, 그럼!”
앳된 얼굴의 부제가 손수건을 높이 던졌다.
공중에서 펼쳐진 손수건은 산들바람에 몇 번 펄럭이더니, 나풀나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파팟!
손수건에 땅에 닿는 것과 동시에 알두르가 자리를 박차고 달려왔다.
“부디 내게 새로운 검술을 보여 주시길!”
알두르는 기합처럼 외치며 검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쇠로 만든 옷을 입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민첩함이었다.
‘오, 생각보다는 괜찮은데?’
횡보를 밟아 알두르의 첫수를 피했다.
알두르는 검이 바닥을 찍기 직전 허리를 크게 비틀며 횡 베기로 초식을 전환했다.
‘중검(重劍)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군.’
허리를 젖혀 이 초를 피했다.
알두르는 그대로 한 바퀴 회전하며 바닥을 쓸듯 낮게 검을 휘둘렀다.
내가 공중으로 훌쩍 뛰어 피하자 그는 다시 종 베기를 시도했다.
가로 베기와 세로 베기의 반복.
알두르는 누가 성기사 아니랄까 봐 사용하는 검술도 모시는 신의 성격을 닮아 있었다. 그의 검술은 단순하지만 강맹한 맛이 있었다.
비록 상승의 묘리나 화려한 변초는 부족했으나, 매 일격에 혼신의 힘을 담아 최단 거리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역시 기대한 만큼의 수준은 아니야.’
아우레오나 에릭, 토마스는 교회의 성기사가 나를 쉽게 제압할 것이라 호언장담했었다.
그 태도에 혹시나 기대를 품었는데, 역시 그 정도 실력은 아니었다.
‘초식의 깊이가 고작 이 정도라면, 내력이 두세 배 차이가 나도 나를 위태롭게 만들지 못한다.’
칼날에 검기를 두른다 한들 상대의 몸에 닿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물론 내공이 깊으면 동작 자체도 빨라지지만, 알두르의 검로는 너무 단순했다. 지금보다 두 배로 빨라진다 한들 내가 피하지 못할 초식은 아니었다.
“테, 테온! 듣던 대로 굉장히 민첩하시군요!”
알두르의 표정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시작할 때의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연달아 실패하는 공격에 조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더 볼 것도 없다.’
슬슬 대결을 끝내려 할 때였다. 내가 한 발 다가서자 알두르는 눈을 반짝이며 검병을 빠르게 바꿔 잡았다.
‘호오, 비장의 한 수를 펼치나?’
검병을 바꿔 잡는 틈에 손목을 때려 제압할 수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틈을 보이며 기술을 펼칠 수 있게 했다.
알두르는 한 발 크게 내디디며 머리 위에서 검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칼날이 아니라 손잡이에 달린 긴 코등이로 상대의 얼굴을 찔러 대는 괴이한 수법이었다.
‘뭐야, 이게.’
어처구니없는 기술에 실망하며 알두르의 공격을 뿌리치려는데, 그의 칼이 교묘하게 얽혀 들며 내 손목 근처까지 내려왔다. 지금까지와 달리 제법 정교한 기술이었다.
“하하, 테온은 크로스 가드의 활용이 어색한가 보군!”
지켜보던 다른 성기사들이 웃으며 말했다. 알두르의 얼굴에도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티잉-!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 달리 알두르의 검은 허무하게 밀려 났다.
금룡십팔해의 묘리에 따라 상대의 공격을 풀고 힘을 되돌려 튕겨 낸 것이다.
‘그래도 이번 기술은 괜찮았다.’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니, 고유하게 발달한 기술은 있었다.
내심 이번 대련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알두르의 목을 향해 곧게 검을 찔러 갔다.
“좋은 구경시켜 주었으니, 나도 한 수 보여 주마!”
이놈은 소질이 있어 보이니, 내가 한 수만 보여 줘도 거기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나는 일부러 살기를 부풀려 알두르의 감각을 분산시켰다.
내력이 담긴 살기는 실체 없는 위협. 안개처럼 갑옷 틈으로 스며드는 살기에 알두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굳이 복잡한 초식을 쓰지 않아도 이런 속임수가 가능하다. 잘 보고 배워.’
의기허초(意氣虛招)의 수.
알두르처럼 단순 무식하게 싸우는 놈이 결정적인 순간에 쓰면 필살의 절초가 될 기술이었다.
하지만 알두르는 내 생각보다 더 안목이 없는 놈이었다.
“이익!”
의기허초에 속아 빠져나갈 방향을 찾지 못한 알두르가 돌연 눈깔을 뒤집었다.
“빛이여!”
후우웅!
알두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전신을 완전히 감싸며 화염처럼 타올랐다.
갑옷을 파고드는 불길함에 알두르가 생명에 위험을 느끼고 광휘의 검을 꺼낸 것이다.
‘굉장한 기운!’
백광이 타오르는 갑옷은 손톱만 한 빈틈도 없었다. 마녀의 보호막이나 어지간한 무림 고수의 충기호신보다 훨씬 강력한 방어 기술이었다.
갑옷을 넘어 검에도 불이 붙은 듯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성기사의 ‘광휘’는 갑옷과 검을 동시에 강화하는 공방일체(攻防一體)의 절학이었다.
‘한데 꼭 전신에서 뿜어낼 필요가 있나? 낭비가 너무 심한데.’
뛰어난 기술이지만, 그걸 운용하는 알두르의 무학이 너무 떨어졌다.
‘아니, 이건 애초에 내공처럼 세밀한 운용이 불가능한 기술인 거야. 틀림없어.’
내공이라면 갑옷의 특정 부위만 강화하거나, 검에만 담아서 사용할 것이다.
반면 ‘광휘’는 대단한 기세를 가졌지만, 사용자가 정밀하게 통제할 만큼 유순한 기운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