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21
“사제님 얼굴을 봐서 참는 줄 알아.”
두란은 이런 부탁에 진절머리가 나는 듯했다. 그 모습에 에릭은 억울한 듯 말했다.
“공짜로 맡길 생각은 아니었소. 수리비를 지불할 생각이었다고.”
“흥, 돈은 둘째고, 일단 너희는 자격이 없다.”
“자격?”
“그래. 우린 용병이니 싸움은 돈만 주면 한다. 하지만 레드앤빌의 기술을 빌리고 싶으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지. 장인의 솜씨를 동전 몇 닢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나?”
두란의 말은 내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사파에서 온 용사
팔씨름
“구매자가 갖춘 자격에 따라 물건의 값도 달라진다. 그래서 자격 미달인 졸부 귀족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레드앤빌의 무기를 갖지 못하는 거야.”
“그 자격이란 게 뭔데? 무엇으로 증명하지?”
“왜? 너도 수리할 장비가 있나?”
두란이 물었다. 나는 무기도 없고 갑옷도 없으니 당연한 의문이었다.
“아니, 난 새로운 무기가 필요해. 튼튼할수록 좋은데, 기왕이면 드워프가 만든 무기가 좋지 않겠어?”
“기왕이면?”
내 대답에 두란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불쾌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드워프 무기의 품질을 인정하는 말이기도 했다.
“자격이란 무엇 하나로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그걸 대장장이 드워프가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방식이었다.
신실한 사제는 덕망으로 증명할 수 있고, 뛰어난 전사는 용맹으로 증명할 수도 있었다.
반대로 지체 높은 귀족이라도 드워프의 기준에 미달하면 그들의 재주를 빌릴 수 없었다.
“너에게 자격을 인정받으면 무기를 얻을 수 있나?”
“내가 무기를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우리 부족의 대장장이에게 소개장 정도는 써 줄 수 있지.”
“그 정도면 괜찮군. 네가 원하는 증명은 무엇이지?”
“흐흐…….”
두란이 징그럽게 웃었다. 표정을 보니 이 새끼는 소개장을 써 줄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팔씨름이다.”
에릭과 토마스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아우레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드워프와 팔씨름이라니, 거절이나 다름없었다.
“너희 중 누구라도 팔씨름으로 나를 이기면 그 사람의 자격을 인정하지.”
“좋다. 지금 바로 할까?”
“……진짜 해보겠다는 거냐?”
“당연하지. 마다할 이유가 있나?”
두란은 자신만만한 내 태도에서 어떤 불안을 느낀 듯 급히 조건을 덧붙였다.
“단, 도전 기회는 딱 한 번이다. 그리고 네가 패배하면 살아가는 동안 한 번은 드워프를 위해 싸워야 해.”
“뭐야, 왜 갑자기 없던 규칙이 생겨?”
“원래부터 있는 규칙이야!”
미심쩍지만, 이해하지 못할 규칙은 아니었다.
횟수 제한이 없고 져도 잃을 게 없다면, 이길 때까지 무한정 도전하면 그만이니까.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시원해서 좋군.”
드워프 용병들이 짐짝을 가져왔다.
짐짝을 탁상 대신 쓰고, 두 사람이 양쪽에서 손을 맞잡으면 팔씨름 준비는 끝이었다.
“하하. 대장, 상대는 순례의 수호자요. 그러니 불구로 만들지는 마쇼!”
“저 갈대 같은 팔을 좀 봐. 부러뜨리지 않으려면 대장이 힘 조절을 잘해야겠어.”
드워프 용병들은 신이 나서 응원했다. 무료한 여정에 활기를 불어넣는 행사였다.
그들에게 두란의 패배는 아예 일어나지 않을 일이겠지만, 난 머릿속이 조금 복잡했다.
‘내공을 얼마나 써야 하지?’
두란이 아무리 장사여도 결국 피와 살로 이루어진 팔뚝이다. 십 년 내공을 몽땅 쏟아부으면 그의 팔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꺾여 버릴지도 모른다.
‘넘기지 말고 일단 버티기만 하자.’
상대의 근력을 파악한 뒤 적당히 맞춰 줄 생각이었다.
명색이 용병단의 대장이고 부하들이 보는 앞인데, 무참히 박살을 내 버리면 감정만 상할 터였다.
‘상대의 기분까지 고려하다니, 일각노괴 능태오가 죽다 살아나서 공자가 되었구나.’
별것 아닌 배려지만 과거의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심 책략가라도 된 기분이었다.
짐짝을 사이에 두고, 두란과 손을 맞잡았다. 그의 손은 솥뚜껑처럼 크고 단단했다. 손뿐만 아니라 팔뚝의 근육과 피부도 고무처럼 질기고 탄탄했다.
‘붕권(崩拳)을 배우면 성취가 빠르겠군.’
“시작!”
시작과 동시에 두란이 폭발적으로 힘을 썼다. 놀랍게도 내 팔이 거의 바닥에 닿기 직전까지 밀렸다.
“으랏차!”
두란이 당찬 기합과 함께 온몸의 힘을 써서 팔을 짓눌렀다.
최소한의 내공만 쓰면서 힘을 파악하려던 나는 급히 진기를 끌어올렸다.
쑤욱.
내가 팔을 곧게 세우자 두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란이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고, 탁자 대신 놓은 짐짝에서는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굉장한 완력이군. 으스댈 만해.’
전력을 다하는 드워프의 근력은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 내공을 써도 팔을 부러뜨리기는커녕 쉽게 이기지도 못했다. 근지구력도 대단해서 꽤 오랜 시간 이어진 힘겨루기에도 지치지 않았다.
“와, 끝내준다!”
“저 검은 머리 인간! 생긴 것과 달리 힘이 장사네!”
붉은 모루 용병단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응원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이 정도면 되었다 싶어 승부를 내기 위해 내공을 아낌없이 끌어올렸다.
‘설마 십 년 내공을 전부 동원하게 될 줄이야.’
직전에 마녀에게서 내공을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허무하게 패할 뻔했다. 두란에게는 안타깝지만, 승부의 시점이 절묘했다.
내공이 충만하게 차오르고, 두란의 두꺼운 팔뚝을 조금씩 짓눌렀다.
두란은 내가 놀란 것 이상으로 놀라고 있었다. 설마 자신이 인간에게, 그것도 팔씨름으로 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터다.
“이익!”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용을 쓰는 두란. 하지만 이미 승부는 기울어 가고 있었는데…….
우지끈!
두란의 손등이 닿기 직전, 짐짝이 먼저 부서졌다. 무승부였다.
“와아!”
붉은 모루 용병단의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아우레오와 일행도 놀라운 표정이었다.
“비겼네.”
“……비겼군.”
두란이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마지막 순간 그의 체면을 생각해 일부러 상자를 짓눌러 부쉈다. 두란은 그걸 눈치챈 것이다.
“너는 레드앤빌이 만든 무기를 쓸 자격이 있다.”
“무승부인데?”
“승패는 상관없어. 내가 인정했으니까.”
그는 자기 도끼를 꺼내 들었다.
‘저 도끼는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기 불편할 텐데.’
하지만 두란은 자기 도끼를 선물하지 않았다. 그는 도낏자루에 달아 놓은 장식을 떼어 내더니 나에게 건넸다.
“우리 용병단의 대장장이는 전문 대장장이가 아니야. 전사지만 대장 기술도 곁가지로 익힌 것뿐이지. 또한 야전에서 무기를 만들면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자격이 있는 사내에게 싸구려를 내줄 수는 없지. 이 세공품을 가지고 라프카스산맥으로 가라. 붉은 모루 일족의 누구라도 이걸 보면 너를 손님으로 대접할 거야. 무기도 제대로 만들어 줄 거고.”
두란이 준 장식을 천천히 살폈다. 가까이서 보니 세공이 놀랍도록 정교했다. 이 정도면 아무나 복제할 수 없을 테니, 징표로 쓸 만했다.
“좋아. 나중에 꼭 한번 방문하지.”
* * *
팔씨름 대결 이후 붉은 모루 용병단은 우리를 이전과 다르게 대했다.
전에는 아우레오의 권위를 인정해 일행인 우리까지 친절하게 대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동등한 전사를 대하듯 친근했다.
대장 두란이 팔씨름에서 다소 체면을 구겼지만, 만회할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일행이 가도를 따라 걷는데, 양쪽 수풀에서 수상한 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바스락-.
잎사귀를 스치는 소리가 꽤 먼 거리에서 들렸지만, 두란은 지체 없이 손을 들어 행렬을 정지시켰다.
베테랑 용병대장의 지휘에 아우레오도 군말 없이 발을 멈췄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들었지. 한두 마리가 아니야. 짐차를 중심으로 넓게 둘러싸고 있네.”
내 대답에 두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붉은 모루 용병단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방어 대형을 만들었다.
짐차와 궤짝으로 방어벽을 만들고 뚫린 공간은 용병단원들이 강철 방패를 들고 직접 막아섰다.
방어벽 뒤에서 긴 창을 눕혀 적의 접근을 막고 교대로 찔러 빠른 반격을 준비했다.
‘무슨 고슴도치도 아니고…….’
강철의 고슴도치.
붉은 모루 용병단의 방어 대형은 무쇠로 만든 고슴도치를 연상케 했다. 적이 하늘을 나는 새가 아닌 이상 이 정도 방어를 뚫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 대형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읍읍!(뭐야! 무슨 상황이야!)”
“으브븝! 읍! 읍!(우, 우리를 미끼로 쓰는 거야?!)”
짐차에 실린 마녀들이 공포에 떨었다. 그녀들이 탄 짐차도 최전방에 방벽으로 배치된 상태였다.
마녀들의 눈과 입을 막아 놓았지만, 귀는 뚫려 있었다. 당연히 그녀들도 싸움이 다가온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으읍! 읍읍!(차라리 우리도 싸울게!)”
“읍읍읍!(눈 가린 천 좀 치워 줘!)”
“좀 닥쳐, 이것들아. 호들갑 떠니까 진짜 큰일 난 것 같잖아.”
마녀들은 머리통을 한 대씩 때려 주자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마녀들뿐만 아니라 두란도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느껴진 발소리나 기척이 짐승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고작 들짐승 무리한테 이렇게까지 대비를 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두란의 빠른 판단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방어 대형을 갖춘 직후, 접근하는 발소리의 주인공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컹! 컹!
“‘놀’이다! 놀 떼의 습격이다!”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등장한 괴물은 진짜 개같이 생긴 괴물이었다.
비록 이 족 보행을 하고 손에는 몽둥이나 도끼 따위의 조악한 무기도 들었지만, 대가리는 명백한 개 대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