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20
풍성한 머리칼과 수염도 인상적이었는데, 곱게 땋은 수염이 배꼽까지 늘어져 있고, 끄트머리에 무쇠로 만든 고리를 장식처럼 달고 있었다.
‘취향 한번 독특한 놈이군.’
땅딸보 사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뒤따르는 다른 부하들도 대체로 밝은 표정이었다.
“이 넓은 대륙에서 사람을 만나다니, 이것 참 특별한 인연이로군!”
“그렇군. 반갑소.”
사내는 앞으로 나서며 에릭에게 악수를 청했다. 에릭이 우리 중 연장자이니, 일행의 대장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 이름은 두란 레드앤빌. 편하게 두란 대장이라고 부르면 돼. ‘우정과 낭만이 가득한 붉은 모루 용병단’을 이끌고 있지. 혹시 우리 용병단의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나?”
“미안하지만 처음 들었소. 우린 시골 출신이라서 말이오.”
두란이라는 땅딸보는 시종일관 호탕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끌었고, 에릭은 덤덤하게 말을 받아 주었다.
새롭게 나타난 놈들은 평범한 새끼들이 아니었다. 생긴 것도 이상하고, 말투도 이상했다.
무엇보다 용병단의 이름부터가 괴짜 냄새를 풍겼다.
사파에서 온 용사
드워프
‘우정과 낭만?’
용병이란 돈을 받고 무력을 파는 직업이라고 들었다.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일 하는 놈들이 우정과 낭만이라.
‘이거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군.’
용병대장 두란은 일행과 악수하며 우리 야영지를 살폈다. 나무에 줄줄이 묶인 마녀와 제자들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형씨들은 노예 상인인가? 일행은 네 명인데 수레도 없이 여자 노예를 열 명이나 데리고 다니다니, 약탈로부터 상품을 지켜 낼 자신이 있나 보군.”
“이봐, 말조심해!”
토마스가 발끈하며 나섰고, 에릭이 손짓으로 그를 진정시켰다.
‘에릭이 왜 토마스를 말리지? 아하, 저 두란이란 놈이 성(姓)이 있어서 그렇구나.’
누구나 자기 성씨를 갖는 중원과 달리, 여기서는 아무나 성을 갖지 못했다. 나도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두란이 스스로 밝힌 본명은 두란 레드앤빌.
레드앤빌이라는 성이 있는 걸 보면 귀족 출신이 분명했다. 토마스가 성질대로 들이받을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말리는 에릭도 불쾌한 기색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노예상이라니, 초면에 무슨 무례한 말이오? 이분은 사제님이시오. 예우를 갖추길 바라오.”
“사제?”
아우레오가 앞으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의 예복은 오랜 노숙으로 누렇게 바래 있었지만, 부지런히 손빨래한 덕분에 오물은 묻어 있지 않았다.
옷 속에 숨겨진 목걸이를 꺼내자, 둥근 장식 고리가 노을을 받아 반짝였다.
“이런, 미처 알아보지 못한 나의 불찰입니다. 이토록 수수하게 차려입은 사제님은 너무 오랜만이라서요.”
두란이 투구를 벗으며 예를 표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용병들도 투구를 벗거나 성호를 그렸다. 하나같이 두란처럼 땅딸막한 사내들이었다.
“반갑습니다, 두란 형제님. 붉은 모루 용병단이라고 했나요?”
“하하, 그냥 붉은 모루 용병단이 아니고요. 우정과 낭만이 가득한 붉은 모루 용병단입니다.”
“그, 그래요. 우정과 낭만이 가득한 붉은 모루 용병단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우레오는 두란의 너스레에 당황했다. 두란은 상대의 반응이 익숙한 듯 개의치 않았다.
“그나저나, 저 여인들이 모두 마녀라는 말씀입니까? 열 명도 넘는데요?”
“사실입니다. 마녀가 함정을 파고 우리 일행을 습격했지만, 아도나이의 보살핌으로 저들을 생포할 수 있었답니다.”
“아도나이의 보살핌이 아니라 내 선견지명 덕분이지, 이 자식아.”
내가 손가락으로 아우레오의 머리통을 콕콕 찌르자 두란과 붉은 모루 용병단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본 에릭이 쓰게 웃으며 설명했다.
“여기 테온은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인데, 사악한 마법사의 저주로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라오. 야만인이나 다름이 없으니 다소 불손한 모습을 보여도 이해해 주시오.”
“이방인? 어쩐지 요상한 외모라고 생각했지. 게다가 기억상실이라니? 외모와 말투만큼이나 이력도 특이한 친구로군!”
“요상해? 외모와 말투는 네가 더 요상…….”
“사제님, 고작 네 명이서 열 명이나 되는 마녀를 이끌고 북부까지 갈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위험한데요.”
두란은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우레오에게 말했다.
“그래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답니다. 일단 가까운 오르샤바로 가려고요.”
“이것 정말 인연이군요! 저희와 목적지가 같으니 동행하시지요. 아, 호송의 대가는 따로 받지 않겠습니다.”
“네? 그게 정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저렇게 많은 마녀를 고작 네 사람이 호송하는 건 위험해요.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신의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두란의 말에 아우레오는 감동한 표정이었다. 그는 용병단이 한가하게 봉사나 하는 사람들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만큼 두란의 호의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붉은 모루 용병단은 참으로 신실한 용병단이군요.”
“하하, 그냥 붉은 모루 용병단이 아니라, 우정과 낭만이 가득한 붉은 모루 용병단입니다.”
“네? 아, 네. 우정과 낭만이 가득한…….”
대답하는 아우레오의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 * *
붉은 모루 용병단과 함께하는 여정은 순조로웠다.
땅딸막한 사내들은 하나같이 호방하고 쾌활했으며, 베테랑 용병답게 마녀 감시에도 빈틈이 없었다.
용병단이 보유한 짐차 한 대를 호송용 수레로 쓰자 이동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인력이 서른 명이나 추가된 만큼 야간 경계도 수월했다.
그렇게 삼 일이 흐르고, 그동안 별 탈 없이 안전한 마녀 호송이 계속됐다.
“아인종? 그럼 너희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우린 ‘드워프’야. 딱 보면 몰라? 설마 지난 삼 일 동안 내가 사람인 줄 알고 있었던 거야?”
두란이 배를 잡고 웃어 댔다. 그를 포함한 붉은 모루 용병단 전원은 사람이 아니라 드워프였다.
‘그냥 키 작고 코 큰 놈들인 줄 알았는데…….’
외모가 독특하기는 했지만,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이질적이지는 않았다. 강호에는 저것보다 더 좆같이 생긴 놈들도 많았다.
‘토마스와 에릭이 날 처음 봤을 때 아인종으로 착각한 것도 납득이 되는군.’
아인종은 내 생각처럼 기괴한 외모가 아니었다. 드워프는 사람과 똑같이 생겼는데, 단지 키가 작고 손발이 크고 근육이 다부지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이었다.
“드워프는 예로부터 뛰어난 전사가 많아. 또한 우수한 대장장이이기도 하지. 우리는 전통을 중시하며 시끄러운 잔치와 맥주를 즐기고…….”
두란은 드워프를 모르는 사람을 만난 게 신기했는지, 신이 나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대부분 별 볼 일 없는 내용이었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잠깐, 너희 수명이 이백 년이라고?”
드워프는 인간보다 두세 배나 오래 살았다.
만약 드워프가 무공을 익힌다면 이백 년 동안 내공을 쌓을 테니, 고금에 없었던 절대 고수가 등장할 수도 있을 터다.
‘하여간 신기한 세계야.’
난 심지어 두란이 귀족이라고 착각했었다. 드워프 귀족이라니, 그의 정체를 알고 보니 말도 안 되는 오해였다.
드워프는 번성한 종족이지만 인간만큼 대륙에 널리 퍼져 있지는 않았다.
부족 단위로 모여 사는 만큼, 각 부족을 구분하기 위한 성씨를 가지고 있었다.
“난 붉은 모루 부족이고, 우리 부족은 모두 레드앤빌이라는 성을 쓴다. 마을 전체가 같은 성을 쓰는 셈이니, 엄밀히 따지면 인간의 성씨와 개념이 다르지.”
“복잡하네.”
이 자식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드워프란 걸 알고 보니 궁금한 게 많았다.
“그 방패는 설마 통짜 무쇠야?”
“물론이지.”
두란이 수레에서 방패를 꺼내 들었다. 자기 몸뚱이를 다 가릴 만큼 커다란 방패였다.
드워프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가죽 갑옷에 자루까지 쇠로 만든 창과 도끼, 강철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 병사라면 방패 하나의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무장이었는데, 두란을 비롯한 드워프 용병들은 조금도 버거운 기색이 없었다.
“우리에겐 이것도 경무장이야. 진짜 중무장이면 전신 판금 갑옷에 사슬 망토를 두르고, 쇠사슬이 달린 도끼창을 들어야 하지. 방패에는 무쇠 뿔도 박아야 해.”
“그렇게 온몸에 쇳덩이를 두르면 걷지도 못할 텐데.”
“드워프의 완력은 대륙의 여러 종족 중에도 최고야. 너희 같은 약골과 똑같이 보지 말아 달라고.”
우쭐하는 모습이 재수 없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서른 명의 붉은 모루 용병단은 하나같이 힘이 장사였다.
그들이 상시 입고 있는 무장은 인간이 쓰는 물건에 비해 두 세배는 두꺼웠고, 짐차에 실어 다니는 추가 장비도 모두 통짜 쇳덩이였다.
“그렇게 힘이 센데 어째서 가죽 갑옷을 입었지? 에릭에게 듣자 하니, 방어력은 판금 갑옷이 최고라던데.”
“그야 비싸니까. 돈을 벌어야 갑옷을 살 것 아닌가?”
“…….”
당연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아직 판금 갑옷을 본 적은 없지만, 전신을 철판으로 빈틈없이 감싸면서 관절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갑옷이면 중원의 금군 갑옷보다도 비쌀 것이다.
“그나마 우리 용병단은 무장이 뛰어난 편이야. 드워프 용병은 몸값을 몇 배나 쳐주니까.”
드워프는 용기와 완력을 타고난다. 돈 많은 귀족들은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인간 용병보다 드워프 용병을 고용하려 했다.
또한 인간 용병과 달리 고용주를 배신하는 경우가 없다고 알려져, 맡길 임무가 중요할수록 드워프 용병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같은 드워프 대장장이에게 저렴하게 장비를 구입할 수 있지. 실력 있는 드워프 장인이 만든 무구를 인간이 사려면 어마어마하게 비싼 값을 치러야 하거든.”
드워프는 다양한 손재주를 타고나는데, 붉은 모루 일족은 특히 대장장이를 우대했다.
붉은 모루 용병단에도 대장 기술을 가진 드워프가 셋이나 있었는데, 곁가지로 익힌 기술이라도 인간 장인보다는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그럼 지금 쓰는 장비는 전부 직접 만든 거야?”
“물론이지. 당장은 돈이 없으니, 재료만 사서 직접 만들었어.”
용병이 직접 만든 장비라고는 믿기 어려운 고품질의 물건이었다. 무기는 균형이 잡혀 있고 튼튼해 보였으며, 갑옷의 짜임새도 흠잡을 곳 없었다.
“드워프의 제작 기술은 유명하지요.”
“역시 견문 넓은 사제님은 뭘 좀 아시네요.”
‘견문은 지랄.’
아우레오는 평생 수도원에서 살아온 놈이다. 견문은커녕 세상 구경 자체가 처음인 놈이었다.
‘어쨌거나 저런 무구를 직접, 그것도 야전에서 만들었다면 대단한 재주로군.’
마침 나도 무기가 필요한 참이었다.
지금까지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들고 싸웠지만, 이제 내공에 걸맞은 무기가 필요했다.
‘무기가 버텨 주지 못하면 내공을 최대치로 밀어 넣을 수가 없어.’
물론 나풀거리는 갈대에도 내공은 불어 넣을 수 있지만, 그 위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무림인이 명검이나 보도를 얻기 위해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꼴을 보아하니 내가 부탁한다고 칼 한 자루 뚝딱 만들어 줄 것 같지는 않군.’
두란은 드워프의 대장 기술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두란뿐만 아니라 붉은 모루 용병단 전원이 자기 종족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그때 에릭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혹시…….”
그는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도 자기 방패를 내밀었다.
“마녀와 싸우느라 내 방패가 뒤틀렸는데, 간단히 손을 좀 봐 줄 수 있겠소?”
“뭐?”
연신 사람 좋게 웃던 두란이 일순 찡그렸다. 급변한 태도에 옆에서 보고 있던 아우레오도 당황할 정도였다.
“드워프만 보면 공짜로 장비 고쳐 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그거 아주 실례야. 이번 한 번은 실수라고 생각하지. ”
“아니, 그런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