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72
카카칵!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일 검에 단장의 팔을 자르지 못했다. 주변의 다른 근위 기사들이 끼어들어 검로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놈들은 근위 기사단답게 합격술이 능숙했다. 내 공격을 여럿이 나눠 받으며 위력을 상쇄시키고, 자기들은 공격을 한 점에 모아 위력을 극대화했다.
“칫!”
예상보다 거센 저항에 결국 한발 물러섰다.
근위 기사단은 여유가 생기자 즉시 아우레오를 노렸다. 놈들의 암흑기류는 아우레오가 두른 망토를 뚫지 못하겠지만, 칼날은 얘기가 달랐다.
“아도나이께서 장대에 넝마를 묶어 광야에 꽂으며 이르시되, 이곳이 나의 영토고 지상의 천국이라! 어린 양은 쉬어 가고, 마귀는 발붙이지 못할 성역이니라!”
아도나이의 몸에서 이전과 다른 형태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사방으로 펴지는 빛이 아니라, 뚜렷한 반원 형태를 이루고 아우레오를 감싸는 빛이었다. 언뜻 보면 마법사의 보호막과도 비슷했다.
“끄악!”
근위 기사가 자기 팔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검으로 보호막을 내리쳤는데, 되레 자기 팔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휩싸인 것이다.
“테온, 이제 제 걱정은 하지 말아요!”
“하하, 멋지구나, 아우레오!”
지난번 데스나이트와 싸움에서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아우레오도 나름대로 새로운 기술을 갈고 닦아 놓은 듯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신행미종보를 밟으며 근위 기사단 사이를 가로질러 아우레오에게 다가갔다.
“광휘로 만든 보호막이냐? 끝내주는데?”
“테온, 이자들은 누굽니까?”
“처음에는 파블로 왕의 근위 기사단인 줄 알았는데, 저 거무죽죽한 꼬라지를 보니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
나는 아우레오에게 엄호를 부탁했다. 적의 숫자가 많고 공격을 나누어 받아 내고 있으니, 이대로는 승기를 잡기 어려웠다.
“난 지금부터 방어를 줄이고 공격에 집중할 거다. 그러니 암흑기류를 막는 건 네게 맡기마. 순식간에 끝낼 테니 힘 좀 써 다오.”
그렇게 말하고 내공을 재분배했다. 충기호신을 거의 풀다시피 하고, 두 다리와 검에 내공을 집중했다.
‘숫자가 많아서 성가신 것뿐이지, 이놈들 하나하나는 데스나이트보다 약하다. 반쪽짜리랄까?’
반편이 데스나이트라도 숫자가 무려 열 명이다. 타힐 마을에서 데스나이트와 처음 싸우던 때의 나였다면 여기서 목숨이 위태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지하 유적을 나와서 힘릿에게 받았던 황옥 마정석. 그 안에 담긴 마나가 이미 내 단전 안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사십 년 내공의 위력을 보여 주마.”
진류오행도도 그렇고, 내 무공은 반 갑자 내공을 기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이 대폭 늘어난다.
지금 내 내공은 반 갑자를 넘어 사십 년에 육박하는 상태. 이전에는 사용하지 못했던 강력한 초식을 줄지어 시전했다.
파팟!
내 몸이 제자리에서 사라지듯 움직였다. 짧은 거리에서는 운해비영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극쾌(戟快)의 경신법, 비룡축전(飛龍逐電)이 펼쳐진 것이다.
“저, 점멸?! 이놈이 어떻게 마법을?!”
“마법은 무슨.”
근위 기사단장은 비룡축전이 일으킨 고속 이동을 보고 마법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어느새 단장의 뒤를 잡은 나는 타오르는 운철묵검으로 놈의 허리를 크게 베어 냈다.
사파에서 온 용사
습격 (2)
매서운 참격이 근위 기사단장의 허리를 동강 냈다.
암흑기류로 상처를 순식간에 메꾸는 데스나이트에게는 찌르기보다 베기가 제격이었다.
“단장!”
그 모습을 본 다른 근위 기사들이 급하게 달려들었다. 단장이 추가 공격을 받기 전에 구해서 재생시킬 셈이겠지.
“어딜!”
휘리릭-.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젓자, 달려오던 근위 기사단이 업어치기라도 당한 것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천하제일의 금나수, 금룡십팔해를 원거리에서 펼친 것이다.
“하하, 표화탄공수(飄花彈空手)의 맛이 어떠냐.”
근접 기술을 원거리에서 펼칠 수 있게 해 주는 표화탄공수.
이것 역시 진류오행도나 비룡축전처럼 반 갑자 이상의 내공이 뒷받침되어야 쓸 수 있는 곤륜의 절기였다.
나는 공중에 떴던 근위 기사들이 다시 땅에 처박히는 틈에 비룡축전을 펼쳐 쇄도했다.
순식간에 놈들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검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테온, 조심해요!”
아우레오의 외침을 듣고 즉시 검을 거두며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아니나 다를까, 근위 기사단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암흑기류를 쏘아 냈다.
콰콰콰콰-!
그야말로 검은 폭풍이었다. 근위 기사단은 아우레오를 내버려 두고 나한테만 암흑기류를 집중하고 있었다.
“사제를 처리하는 건 나중이다! 최우선 목표는 저놈이니 암흑기류로 계속 몰아붙여라!”
단장이 바닥을 뒹굴며 외쳤다. 그는 허리가 잘렸는데도 죽지 않았다. 진짜 데스나이트가 된 것인지, 잘린 단면에서 검은 안개가 촉수처럼 뻗어 나와 상처를 봉합하려 했다.
“삿된 것은 지하에만 머무르매, 지상에는 빛이 있기 때문이라!”
아우레오가 익숙한 영창과 함께 빛을 쏘아 냈다. 그러나 무려 열 명의 데스나이트가 쏟아 내는 어둠에 비하면 미약한 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짙은 어둠조차 내 몸으로 파고들지는 못했다.
파사호심(破邪護心)의 공능을 가진 곤륜의 호신기(護身氣), 종학금룡기(縱鶴擒龍氣)가 내 온몸을 감싸고 있었으니까.
“갈!”
사자후를 터뜨리며 종학금룡기를 사방으로 방출했다. 찬란한 금빛이 암흑기류를 힘차게 밀어 냈다.
‘사십 년 내공으로도 종학금룡기는 오래 유지할 수 없군.’
평범한 충기호신보다 훨씬 뛰어난 방어력을 가진 종학금룡기는 그만큼 소모하는 내공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 약간의 균열을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우레오!”
금빛에 홀린 듯 넋 놓고 싸움을 구경하던 아우레오가 급히 다시 빛을 쏘아 냈다.
내가 벌린 틈으로 아우레오의 빛이 스며들어 암흑기류의 접근을 막아 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악하는 근위 기사단을 향해 마지막 비룡축전을 펼쳤다. 손에 든 운철묵검이 내공을 아낌없이 빨아들이며 검기를 토해 냈다.
옥빛 화염처럼 타오르는 태허도룡검기가 표면에 닿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으악!”
“피해라!”
근위 기사단의 팔다리가 검에 닿는 족족 잘려 나갔다. 방어는 아우레오에게 맡긴 채 모든 내력을 검에 밀어 넣었더니, 저들이 합심해서 참격을 받아 내도 소용이 없었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데, 데스나이트다!”
설상가상으로 큰 소란을 듣고 교회에 남아 있던 성직자들이 모조리 튀어나왔다.
“마귀가 교회를 공격한다! 기도를 영창해라!”
“부제들은 성수를 가져와라! 사제들은 신성력을 아낌없이 방출해!”
“성기사단은 광휘의 검을 들어라!”
비록 붕괴 사고로 숫자가 대폭 줄었지만, 여전히 성기사와 사제 들이 내뿜는 신성력은 태양처럼 밝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반전됐다. 원래부터 호각이었는데, 성직자가 열 명도 넘게 나타나자 근위 기사단은 대번에 궁지에 몰렸다.
“빌어먹을, 퇴각! 퇴각하라!”
보다 못한 근위 기사단장이 퇴각을 지시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근위 기사가 단장의 잘린 몸통과 다리를 들고 도망쳤다.
다른 근위 기사들도 기다렸다는 듯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아이고, 저게 다 내공인데……!’
뿔뿔이 흩어지는 근위 기사단을 보며 애가 탔다.
타힐 마을의 데스나이트에게는 흡성대법이 통했었다. 그러니 분명 저놈들에게도 통할 것이다.
나는 알면서도 그들을 추격하지 못했다. 이미 전신 근육과 경혈에서 찢어지는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십 년 내공을 쌓았다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상위 초식을 연달아 펼친 탓이었다.
‘지금은 치유 스크롤도 못 쓰는데.’
아우레오를 비롯해 성직자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당장 스크롤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나는 별수 없이 답허성실을 펼쳐 지상으로 내려왔다. 검에서는 태허도룡검기가, 몸에서는 종학금룡기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빛의 용사!”
“이런 거룩한 모습이……!”
성직자들이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우레오는 한술 더 떠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 큰 사내놈들이 울기는.’
하여간 감수성이 풍부한 놈들이었다.
* * *
근위 기사단의 교회 습격 사건 이후, 성직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비할 데 없이 깍듯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주교공보다 내게 더 공손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불편할 지경이군.”
“테온은 대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날 엄청난 광휘로 암흑기류를 밀어 내던 모습은 실로 찬란한…….”
“됐고. 그놈들 꼬리는 잡았어?”
아우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딱히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놈들이 도망칠 때 내가 즉시 추격하지 못한 시점에서 생포는 글러 먹은 셈이었다. 지금 윈스크 교구는 데스나이트 열 명을 추격해 척살할 만한 여력이 없으니까.
“내가 확실히 봤다니까. 그놈들은 파블로 왕의 근위 기사단이다.”
“하지만 테온, 증거가 없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닌 왕실의 근위 기사단의 정체가 데스나이트라니,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라…….”
답답한 노릇이지만 아우레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쨌거나 놈들의 상판을 확인한 건 나 혼자였으니까.
멀쩡히 살아 있는 근위 기사단이 사실은 암흑기류를 줄줄 흘리는 데스나이트라니, 선뜻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진실을 밝힐 수만 있다면 파블로 왕에게 쏠린 민심을 단숨에 빼앗을 수 있겠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교회로서는 잘된 일이지요. 데스나이트 집단의 공격을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막아 냈고, 오히려 패퇴시켰으니까요. 거리에 다시 교회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의 습격은 윈스크 전역에 알려졌다. 근위 기사단이 워낙 요란하게 일을 벌인 탓이다.
교회 인근 주민 중에는 싸움을 직접 목격한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근위 기사단이 처음부터 전면전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교회의 체면을 세워 준 꼴이 되었다.
“재주는 내가 부리고, 돈은 교회가 쓸어 담겠군.”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거리에 테온을 향한 칭송이 극에 달했는걸요. 십 인의 데스나이트를 빛의 검으로 물리친 영웅이라고요.”
사실 교회보다 더 많은 주목은 받은 게 나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습격을 직접적으로 막아 낸 사람이 바로 나고, 전신에서 빛을 내뿜는 종학금룡기는 이곳 사람들이 신의 은총으로 오해할 만했으니까.
“북부 사람도 아닌 내가 북부에서 영웅이 되어서 무슨 소용이냐?”
오히려 지나친 유명세 탓에 운신에 제약이 생겼다. 도시의 시민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걸핏하면 인사를 하려고 몰려드는 지경이 된 탓이었다.
파블로 왕이 나를 노리고 있는 상황인데, 어딜 가도 이목이 쏠리니 섣불리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이쯤에서 북부를 떠나야 하나?’
주교공의 날개가 꺾였으니, 마법사 사냥에 필요한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북부에 온 목적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새롭게 북부의 절대자로 떠오른 파블로 왕은 내 목숨을 노리고 있고, 심지어 나는 그 자식의 진짜 정체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이대로 북부를 떠나는 게 상책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브찬친과 약속도 있고, 녀석이 왕성에서 마정석을 찾아낼지도 모르니까.’
아직은 북부에서 할 일이 남았다. 그리고 파블로 왕의 정체를 확실히 알아내고, 놈을 죽이든 살리든 결판을 내야 훗날 뒤통수 맞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도시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남몰래 영구동토에 다녀와야겠다.’
보브찬친과 다시 만나는 건 시일이 며칠 남아 있다.
그동안 도시에서 어영부영 노느니, 동토 유적의 폐허에서 마정석이나 찾아다니는 게 그나마 생산적인 일이었다.
결심을 굳힌 나는 서둘러 영구동토로 갈 준비를 했다. 마정석도 찾아보고, 겸사겸사 유적 지하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도 찾아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아우레오가 가지고 온 소식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