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9
글과 문화를 가르쳐 주고, 곤란한 상황에 나를 변호해 줄 수 있는 아우레오는 현시점에 최고의 동행이었다.
또한, 몇 걸음 뒤에서 투덜거리며 따라오고 있는 용병 두 명도 여행 중 귀찮은 잡일을 도맡아 줄 것이다.
“젠장. 에릭, 이게 맞아? 사람은 넷인데 우리 둘만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게 맞냐고.”
“그만 좀 투덜거려, 토마스. 넌 용병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상전 대접받으며 소풍이나 다닐 거라 생각했어?”
등 뒤에서 따라오는 두 사람은 토마스와 에릭이었다.
그들은 원래부터 아우레오를 따라 북부로 갈 예정이었다. 북부까지는 몇 달이 걸리는 먼 길이라고 했으니, 연약한 사제 혼자서 광야를 횡단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물을 탐내는 야만인부터 인육에 굶주린 몬스터까지 군침을 흘리며 따라올 테니까.
“아우레오, 너희 교회는 돈도 많다면서? 그런 것치고는 경호 인력이 영 허접한데? 현지에서 고용했다는 용병이 고작 토마스와 에릭이라니.”
“저는 지금 순례 중이니까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례자가 성기사를 대동하거나 큰돈을 들여서 대규모 용병단을 이끌고 다닌다면 그걸 어찌 순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돈 쓰는 거랑 순례랑 무슨 상관이야?”
“목회자에게 순례란 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의미도 있지만, 가장 낮은 곳부터 임하시는 아도나이의 사랑을 본받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춥고 배고프고 위험에 노출되는 것도 모두 순례의 일부이지요.”
“그냥 헛고생하는 것 같은데.”
“테온, 사람은 결핍을 통해 비로소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답니다.”
“난 풍족하게 지낼 때도 가진 것의 소중함을 잘 아는 인간이라서.”
“하하, 그런가요?”
우리는 실없이 웃으며 발맞춰 걸었다.
압생트 마을이 점점 멀어졌다. 토마스와 에릭은 한 발짝 뒤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배낭 한번 더럽게 무겁네.”
“그나마 이건 편한 줄 알아. 큰 용병단에 막내로 들어가면 이보다 훨씬 많은 짐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거든.”
“대신 나도 고참이 되면 후임한테 떠넘길 수 있잖아. 그날을 생각하면 견딜 만하겠지.”
“큭큭, 넌 용병단 생활을 잘하긴 하겠다. 그런 쪽 사고방식은 벌써 용병이네.”
한물간 용병 에릭과 풋내기 용병 토마스.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입을 놀리며 열심히 뒤따라왔다.
아우레오는 저 두 사람이 꽤 마음에 드는 듯 웃었고, 나는 그런 아우레오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순례 중인 사제는 민가에서 음식과 포도주만 얻어먹을 수 있을 뿐, 일절 헌금을 받지 못해요. 출발할 때 교단에서 받은 소정의 경비로 모든 비용을 충당해야 하죠. 부족한 예산으로 유능한 용병 두 사람을 구해서 참 다행입니다.”
“유능은 지랄. 그럼 산적이나 강도를 만나서 쌈짓돈을 털리면 어떻게 되는 건데? 순례를 포기하는 건가?”
“하하, 그땐 순례가 아니라 목숨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것 또한 신의 뜻이지요. 테온, 아도나이께서는 언제나 믿음으로 이겨 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답니다.”
살벌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지껄여 대는 아우레오였다.
내가 동행해서일까? 이 철없는 자식은 여행 중에 겪을 위험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위험한 세계에서 무법지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저런 허접한 용병 둘만 믿고 있었다니……. 이 새끼 알고 보면 나보다 세상 물정을 더 모르는 거 아니야?’
생각할수록 대책 없는 놈이다. 가끔 아우레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아예 모르는 인간처럼 보였다.
어쩌면 이 자식은 혼자였어도 지금처럼 태평하게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빌어먹을. 약한 동료보다 겁 없는 동료가 더 골치 아픈 법인데.’
동료까지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일행이 생겼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일행이다.
‘일행이라……. 얼마 만이지?’
일각노괴라 불리며 강호독보(江湖獨步)한 세월이 어언 수십 년.
모처럼 다른 이와 발을 맞춰 걸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파에서 온 용사
나는 산적이 싫다
나는 산적이 싫다.
어린 시절, 녹림 산채에 강제로 끌려가 죽을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사부는 도사 아니랄까 봐 심산유곡에 처박혀 있길 좋아했고, 내게 무공을 전수한 장소도 이름 모를 깊은 산골짜기였다.
이 년간 함께 지내던 사부가 홀연히 내 곁을 떠나고, 살길이 막막해진 나는 도시를 찾아 거처를 떠나야 했다.
하산할 때 나는 아홉 살이었는데, 아홉 살짜리 꼬마 애가 혼자 터덜터덜 산에서 내려가고 있으니, 산적들도 황당해하던 기억이 난다.
“얘, 꼬마야. 너 혼자니?”
“……?”
그때 나는 앞을 막아선 지저분한 사내들이 산적인 줄도 몰랐다. 당시 내가 겪어 본 인간은 거지와 도사뿐이었으니까.
“부모님이 근처에 계시니?”
“아니요. 없어요.”
“어디 멀리 가셨어?”
“아니, 없어요. 그냥.”
산적들은 자기들끼리 무어라 쑥덕거리더니, 대뜸 내 멱살을 잡고 끌고 가려 했다.
“왜 이래요?”
“아저씨들이랑 같이 가자. 어차피 너 혼자서는 산에서 내려가지도 못해. 절반도 못 가서 죽을걸. 이 산에는 범이 살거든.”
억지로 잡아끄는 손길이 불쾌했다.
나는 불쾌하면 주먹부터 나가는 성질머리고, 그때는 아직 상대 고르는 요령이 없던 시절이었다.
즉,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더 막 나가는 놈이었다.
퍽!
“악! 내 다리!”
“이 꼬마 놈이 무공을 쓴다!”
냅다 선풍각을 날려 한 명의 다리를 부러뜨렸지만, 아홉 살짜리가 무공을 써 봤자 얼마나 쓰겠는가?
나는 채 한 줌도 되지 않는 내공을 허둥대다 허공에 날려 버리고, 그물에 감겨 제압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거 풀어! 풀라고, 이 개새끼들아! 다 죽여 버린다!”
이미 제압당한 마당에 아무리 욕을 하고 화를 내도 소용이 없었다. 산적들은 나를 내려다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침을 뱉었다.
“이런 지독한 새끼를 봤나.”
“무슨 애새끼가 이렇게 악을 쓰면서 어른한테 덤벼?”
그렇게 끌려간 곳은 녹림의 와호채(臥虎寨).
그곳에서 나는 꼬박 일 년 동안이나 매질과 중노동에 시달렸다. 발에는 족쇄를 찼고, 음식이라고는 하루에 감자 두 알이 전부인 곳이었다.
때때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어린 나이에 산채를 탈출하는 건 쉽지 않았다.
탈출하다 붙잡힐 때마다 산적들은 내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부러뜨렸는데, 나중에는 그마저도 귀찮았는지 그냥 몽둥이질을 했다.
그렇게 예고 없이 시작된 노예 생활은 끝날 때도 예고 없이 끝났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은 구음살막(九陰殺幕)의 공격으로 와호채가 몰살을 당한 것이다.
구음살막의 살수들은 와호채에서 노역하던 아이들을 구음살막으로 끌고 갔다. 일종의 전리품인 셈이다.
그리고 나는 구음살막에 끌려간 뒤 알게 되었다.
살수 새끼들에 비하면 산적들은 선녀라는 것을.
* * *
아우레오와 함께하는 여정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한 가지 피곤한 점이 있었다.
“테온, 제가 식전 기도문을 가르쳐 드릴까요?”
“관심 없다고.”
아우레오는 나를 만난 것을 일종의 종교적 필연으로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이 자식은 틈만 나면 자기네 신에 대해 떠들고, 교리를 가르치려 들었다.
“후후, 지금은 기도가 번거롭게 느껴지겠죠. 테온은 지금 모든 기억을 잃어 야만인과 다를 바 없는 상태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신의 품을 다시 찾게 될 겁니다. 난 알 수 있어요.”
내가 아무리 귀를 후비고 하품을 쩍쩍 해도 아우레오는 웃으며 계속 성경 구절을 읊었다.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설교 인형을 보는 것 같아 때로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너도 정말 지독한 놈이다.”
“하하, 칭찬인가요? 고마워요, 테온.”
“…….”
아우레오는 기본적으로 대화 자체를 즐기는 인간이었다. 그는 쉼 없는 질문으로 나를 알아 가려 했다.
“테온의 창 솜씨는 정말 대단해요. 홉 고블린과 싸울 때 보여 준 그 신기한 공중제비는 누구에게 배웠나요? 사악한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손가락 바람으로 홉 고블린을 죽일 수 있지요?”
“관심 꺼.”
요즘은 틈만 나면 무공에 관해 물었다. 특히 허공에서 재도약하는 운룡대팔식이나 원거리에서 지풍을 쏘아 공격하는 건천일지공이 어지간히 신기했나 보다.
무공에 대한 궁금증은 에릭과 토마스도 마찬가지여서, 두 사람은 아우레오가 나에게 무공에 관한 질문을 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하, 씨팔. 그냥 혼자 다닐 걸 그랬나.’
팔자에도 없는 수다에 지쳐 가고 있을 때, 에릭이 주변을 둘러보며 일행을 멈춰 세웠다.
“사제님, 이곳 자리가 좋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해요, 에릭.”
아우레오의 허락이 떨어지자 에릭과 토마스는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에릭은 능숙하게 천막을 설치하고 화톳불을 피웠다. 토마스도 풋내기답지 않게 익숙한 솜씨로 에릭을 도왔다.
아우레오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말을 걸었다.
“토마스, 당신은 원래 무얼 하던 사람인가요?”
“사냥꾼이었지요. 닉스 마을의 젊은 사내는 십중팔구 사냥꾼입니다. 그거 말고는 딱히 할 게 없는 마을이거든요.”
“어쩐지, 그래서 야영 준비가 능숙했군요. 베테랑 용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어요. 정말 든든하네요.”
“그런가요? 헤헤, 감사합니다.”
아우레오의 칭찬에 토마스가 등신 같은 웃음을 흘렸다.
아우레오는 세 치 혀를 놀려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반골 기질을 타고난 토마스를 때리지도 않고 순한 양으로 만들다니, 저것 또한 도(道)의 경지라 할 만했다.
‘하지만 역시 매타작이 최고지.’
대화를 즐기는 아우레오와 달리 나는 즉각적인 수단을 선호했다. 특히 주먹질은 효과가 빠를 뿐만 아니라, 그 효험이 실로 오래갔다.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에릭과 토마스가 야영 준비를 마쳤다.
나와 아우레오가 앉기 좋게 넓적한 반석도 가져다 놓았고, 화톳불에 걸린 솥에는 육포와 말린 곡식 가루를 넣은 죽이 천천히 끓고 있었다.
“마스야.”
“왜?”
“저녁밥 뭐냐?”
“오늘 저녁은 귀리와 사슴 고기를 넣은 스튜……요.”
시시때때로 말이 짧아지는 토마스지만 주먹을 살짝 보여 주면 다시 공손해졌다.
이 자식은 이방인인 나를 상전으로 모시는 게 아직도 불만인 듯했다.
출발하고 나서 알았는데, 순례자를 대가 없이 지키는 사람을 순례의 수호자라고 부른다.
사제의 순례가 끝날 때까지 수호자는 교회로부터 사제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토마스의 눈빛이나 태도에서는 나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만간 존경심을 주입해 줘야겠군. 가슴 깊숙이 말이야.’
사파식 교육을 해 주고 싶어 주먹이 근질거릴 때, 아우레오가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테온, 정말 저를 따라서 북부까지 갈 생각인가요?”
“글쎄, 안 될 거 있나?”
“북부는 무척이나 배타적인 곳이에요. 당신처럼 이질적인 외모의 이방인은 정착하기 어려울 텐데요.”
“나도 거기서 정착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배타적인 애들은 몇 대 쥐어박으면 돼. 그럼 친절해져.”
아우레오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금 내게는 목적지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일단 무공을 회복해야 중원으로 돌아가든지 말든지 할 텐데, 돌아갈 방법을 찾는답시고 지금부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해도, 지금 돌아가면 죽은 목숨이지.’
정파, 사파, 마교의 삼파전에 끼어들어 흡성대법의 비급을 탈취하는 기행을 벌인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