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귀족 잡아먹는 조사관-1
늘 검은 구름으로 꽉 막혀 있어야 할 아이언핸드의 하늘은 웬일로 밝은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정보부와 UBI의 우주선들이 짙은 구름을 흩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금속 가루로 인해 뿌옇고 산 성분으로 인해 노르스름한 탓에, 마치 천상에서 금색 찬란한 빛이 내리꽂히는 것처럼도 보였다.
다소 지친 분위기의 에나가 그 눈부신 광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에나야. 괜찮아?”
팀원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에나의 곁에 몰려 있었다. 에나는 약간 주춤거리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브라가 에나를 뒤에서부터 껴안으며 말했다.
“그냥 스틸웰 가문 놈들 죽이거나 뜯어고치거나 하지 그랬어. 그냥 실종 처리할 수도 있었는데.”
“제인, 그게 UBI가 할 말이냐.”
“시끄러워 제임스. 그놈들은 그래도 마땅한 놈들이었거든?”
에나는 자신 스스로에게 말하듯 답했다.
“……그런 마음이 없진 않았어요. 하지만 함장님의 명예에 먹칠을 할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살려서 데려오라는 황제의 명도 있었고, 당사자의 동의 없는 신체 개조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다.
에나는 놈들을 사적으로 단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는 건 너무나도 손해라 판단했다.
이미 에나는 팀 엔터프라이즈에서 개인적인 증오를 뛰어넘는 더 중요한 것을 얻었기에.
한편으론 증오에 몸을 맡겨 자신의 삶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또다시 스틸웰 가문에게 휘둘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검거에 한 손 보태고 그놈들의 계획을 방해했으니까 복수를 못한 건 아니죠.”
에나는 가볍게 웃곤 다소곳이 양손을 모으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눈빛을 교환했다. 확실히, 에나가 평소 은연중에 풍기던 날선 기색은 사라져 있었다.
또한 그동안 이름뿐인 비서직에 매달리던 것도 그만두었다.
다른 용병팀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팀원 간의 마찰이 있기는 있었다.
그 대부분이, 에나가 팀원들의 행동을 비서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판단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걸 내려놓겠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워낙 빼앗기기만 해서인지 손에 쥔 무언가를 놓지 않으려던 심리가 스틸웰 일가를 체포하면서 비로소 해소된 것이다.
비서직에는 함장님이 내려준 자리란 의의도 있긴 하지만, 그녀는 굳이 비서직이 아니더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제는 허울뿐인 직위에 집착하는 건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날씨 좋다.’
사람 사는 행성 가운데 순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최악인 행성이었지만, 지금 에나의 눈에는 다른 행성의 하늘보다도 훨씬 맑아 보였다.
***
“으음, 행성 상태가 영 좋지 않은데.”
“여기서 살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군요.”
팀 엔터프라이즈에게 일단의 무리가 접근해 왔다. 옆머리 위로 길쭉하게 솟아오른 귀가 그들이 무슨 종족인지를 말해주었다.
팀원들 중 가장 선임이라 진의 부재 시에 그를 대신하는 에나가 앞으로 나와 인사했다.
“족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팀 엔터프라이즈. 나도 오랜만에 보네.”
초대형 물류 허브를 운영하는 에파바르 부족, 포네트의 부족장인 필리프 에바그레트의 일행이었다.
“선뜻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헛,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은인의 부탁을 어찌 거절하겠나?”
포네트 부족은 지난번 우물 전투에서 많은 함선을 잃었으나, 진의 광물 지원과 일거리 수주로 인해 재건에 제법 성공한 상태였다.
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몇 년은 더 지체되어 업계 비중까지 모조리 빼앗겼을 것을 방지해주었는데 어찌 거부하랴!
더구나 이번 일은 에파바르의 이미지를 개선할 기회이자 포네트 물류 허브를 광고할 기회기도 했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알려줄 수 있나? 무슨 칩을 심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 물음에 에나가 나와서 설명했다.
“아, 그게…… 사람들 정신을 되돌리는 건 성공했지만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서요.”
한 번 쓰고 버리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만든 정신 소거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사라지는 것도 곱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종당한 기간에 따라 전자신경과 뇌에 꽤 손상을 입힌 것이다.
지금 포네트 부족이 아이언핸드에 부지런히 내려주고 있는 물건들은, 졸지에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반신불수가 된 이들에게 필요한 구호물자와 봉사인원들이었다.
식량은 진 테일러가 제공하는 거지만, 나머지 물자는 에페드라 군구의 ‘진 테일러 재단’이라는 봉사 단체에게서 받은 구호물자였다.
듣자하니 진 테일러가 운영하는 게 아니라, 진의 용병활동으로 인해 도움을 받은 기업체와 개인들이 모여 결성한 재단이라던데.
‘대단한 일이군.’
필리프는 인간과 에파바르의 차이점을 크게 실감했다. 면식도 없는 머나먼 지역 사람들을 돕는 이타심이라니.
‘인간이 거대한 사회를 이룩할 만도 해.’
모두가 그러진 않겠지만 그러한 결속력이 인간이 가장 큰 세력을 일구도록 만든 원동력이리라.
‘우리도 이렇게 타인을 돕다 보면 완전한 제국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법적으로는 엄연히 제국민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인간과는 다른 외형 및 선조와 동족의 악명 때문에 편견 가득한 시선은 늘 그들을 괴롭혀 왔다. 그 때문에 부족 내에서 반인간파가 생겨난 것이고.
‘이번 기회에 이미지 전환을 시도해야겠어.’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함으로서 진정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언젠가는 색안경을 벗고 귀 긴 이들을 진정한 동류로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설명은 잘 들었네. 내, 힘껏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헌데 테일러 함장은 어디 있는가?”
“아, 나랏일하러 갔어요.”
“나랏일?”
***
얼마 전.
아이언핸드에서의 반역자 귀족들 검거가 끝난 직후.
우리 팀은 포로로 잡은 네 귀족을 구축함에 싣고 프록시마로 가는 중이었다.
[함장님. 에나가요……]그때 나는 에나가 다른 팀원들에게 속마음을 토로한 것을 전해 들었다. 자신의 기술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구자이자 기술자로서의 책임감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럼 도와줘 볼까.’
나는 아이언핸드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다. 아이템 스폰도 있는데 까짓 거 선행도 해봐야지.
전 우주의 사람들을 돕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눈으로 봤고 손이 닿는 곳은 힘써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해서 현재 수사 중인 행성에 구호 활동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결과 보고를 하면서 정보부 장관에게 허락을 구했다.
그는 귀족파의 거두를 잡았다는 말에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반역 빼고 뭘 말하건 듣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았다.
어째 황제 폐하와 장관 둘 다 실제 성격이 비슷하단 말이야.
[가능하지. 오히려 환영이야.]신체 개조의 중심지인 아이언핸드 행성에서 갑자기 적지 않은 노동인구가 제대로 된 일을 못하게 된 상황이다.
더구나 스틸웰 가문이 통째로 사라져버렸으니 라이센스 문제가 겹쳐 다른 곳에서의 생산도 당분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컸다.
신체 개조에 필요한 각종 부품의 생산이 줄어들면 연관된 각종 업계가 줄줄이 타격을 받게 된다.
얼마든지 기계 대체로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일선 군인이라든가.
[-그러니까 당연히 허락해 줘야지. 뭐부터 지원하려고?]“일단 식량이겠지요. 거기 식량 자급률이 0퍼센트니까요.”
거긴 공업행성이고 환경도 박살난 행성이다. 당연히 먹고 사는 물건은 죄다 수입이다.
“그 다음으로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생각입니다.”
[전자신경 회복 말이지?]“예. 행성 내의 개조 시술자들은 못 믿으니까 다른 곳에서 데려와야겠지만요.”
아이언핸드의 교육기관 소속 시술자들은 스틸웰 백작가의 불법 행위에 협력한 혐의로 현재 UBI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건 공기관에게 맡기게. 그건 당연히 제국이 도맡아야 할 일이지. 조만간 외부 시술자들을 공수하도록 말해 둘 거야. 그리고 말일세……]장관은 현재 중앙군구에서 일어난 사건을 사방에 일파만파 퍼뜨리기 위해 외부 단체를 추가로 구호활동에 들이는 게 어떠겠냐고 했다.
“언론은 안 씁니까?”
[귀족이 언론사를 휘두른단 건 알잖나?]아. 그랬지.
[행성마다 언론사가 한둘이 아니라서 왜곡되기가 쉬운 것도 있고. 그래서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는 언론보다 세간의 소문이 더 효과적이야.]편향된 언론들에 하도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언론보다는 세간(인터넷)의 소문을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보부가 운영하는 비밀 사이트가 그 출처다.
어쩐지 제국의 암적인 면을 살짝 엿본 것 같은데.
하여튼 이번 아이언핸드에서의 ‘칩 조종 사건’은 꽤나 큰일이라 정치적으로 귀족파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건이 될 거란다.
‘혁명’당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닥치고 있을 거라고.
난 정치는 잘 몰라서 그러면 대충 좋은 걸로 알아들었다. 정보부가 알아서 하겠지.
“그러면 구호물자를 운송할 업체로 포네트 부족을 추천합니다. 에파바르라 인간 정치 사정에 중립이니 최대한 덜 살을 붙여서 소문을 퍼날라 줄 겁니다. 그 범위도 넓고요.”
[그거 괜찮겠어. 반인간파 색출 때문에 포네트에 투입한 요원도 아직 좀 남아 있으니까.]잠시 생각을 하던 장관이 덧붙였다.
[아. 그리고 자네는 앞으로 바쁠 테니까, 구호물자 지원에는 ‘진 테일러 재단’을 불러서 맡길까 싶은데.]나는 재단 이름을 듣고 움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을 따오는 건 영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아직 한국인 물이 덜 빠졌나보다. 서양 쪽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아직 사람 이름 딴 지명이나 단체가 어색했다.
그런 재단이 있단 걸 들어는 봤다.
그쪽에서 멋대로 이름을 따가긴 했는데 딱히 내 이미지 실추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본디 봉사와는 거리가 먼 용병이니까.
“왜 하필 그겁니까?”
[비리 없이 봉사만 한다는 걸로 유명하잖나. 별도의 검증과정을 거치느라 인력 할당을 할 필요가 없지. 그리고 자네 영향으로 만들어진 데다 명칭까지 진 테일러니까 자네 이름을 알리기에도 제격이야.]“제 이름은 왜 알립니까?”
[최전선 가야지?]어째, 교수가 ‘대학원 가야지?’하고 말하는 것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폐하께 이미 들었잖나. 자네가 제법 유명세를 갖춰야 최전선에서 능력 없는 워프 인사 취급은 안 받을 거라고. 바르닥 전쟁 때의 자네 전공이 더 이상 묻혀 있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그 외적인 유명세도 있는 게 낫지.]그런가?
전투 관련 공적 외의 것도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필요한 거겠지. 장관의 속내도 내가 유명하면 그만큼 좋다는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자네의 정보수집 능력이 예상보다 대단하더군? 세상에 그런 꽁꽁 숨겨진 정보는 어떻게 찾았나?]나는 멋쩍게 웃었다.
“뭐, 어쩌다 보니까 되더라고요. 하하.”
[에헤헤.]뒷머리를 긁적이는 것 같은 앤젤라의 쑥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자네를 조사관으로 한 번 더 임명하기로 했네.]예?
그러고 보니까 아까 전에, 내가 앞으로 바쁠 거라 했지?
[조만간 계엄령을 내릴 거야. 그때 정보부에서는 귀족파 가문들을 마구잡이로 헤집어 엎을 계획이지.]거기에 나도 끼란다.
이번 기회에 역심을 품은 낌새를 보인 것들을 죄다 솎아내는 동시에, 내게 조사관으로서 부대를 지휘한 전적을 제공하기 위해서란다.
[무력부대 연대 하나를 붙여주겠네. 정보부에서 나름 조사한 정보들도 많긴 한데, 자네 정보 수집 능력으로 추가적으로 정보를 수집해서 더 확실히 얽어매주게나.]“알겠습니다.”
당분간 여기저기 돌아다녀야겠네.
[자네가 맡을 귀족들은, 귀족파 중에서도 평소 카스반코프 공작과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심복들이지.]“어, 그런 중요한 목표를 제가 맡아도 됩니까? 저보다 더 유능하고 믿을 만한 경험 많은 적임자가 있을 텐데요?”
[지금 다 최전선에서 구르고 있거든.]장관은 쓰게 웃었다.
‘으음……’
겉으로는 농담처럼 던지는 상황이지만, 속내에서는 유능한 이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조금씩 죽어나간다는 것에 속을 썩이고 있었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게. 자네는 유능한 인재야. 또 믿을 만한 사람으로 따지면 지구도 보고 왔단 점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지.]아 그랬지.
장관은 그 점을 단단히 강조했다.
“알겠습니다.”
[괜히 해도 되나 싶어 주저하는 사이에 결정적인 단서 같은 걸 날려먹거나 하는 불상사가 날까봐 다시 되새겨 주는 거야.]“예.”
[실수로 월권이나 사고를 쳐도 제대로 된 결과만 가져오면 나머지는 조직에서 책임져주니까 뒷수습은 걱정 말고.]이야, 조직이 책임져 준단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장관은 앞으로 기울였던 몸을 다시 뒤로 뺐다.
[어쨌거나 귀족이 두드려 맞을 이유에 대한 명분만 확보된다면 영주성을 박살내건 인프라를 뒤집어엎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게 우리야.]이게 정보부가 무서운 이유다.
확실한 ‘명분’만 있다면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를 수 있으므로.
귀족들이 기를 쓰고 법을 부르짖으며 명분 싸움질을 하는 이유는 같은 귀족들 말고도 정보부의 눈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때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긴 하지만, 지금은 반역이라는 민감한 사안이 엮인 상태.
이런 시기에 정보부의 권한은 그 어떨 때보다 강해질 수 있다.
“알겠습니다.”
문서에 표기된 카스반코프 공작의 심복은 무려 열둘이나 되었다.
‘그 돼지는 왜 쓸데없이 세력은 커가지곤.’
에이, 오퍼레이션 컷이어 한 번 더 뛰는 셈 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