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뉴 렉싱턴 전선-6
나는 드로칸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다가 한 병기를 접했다.
월드 엔진.
평균 직경 3천km 안팎의 거대 구조물이자 무시무시한 이동요새 병기.
그 엄청난 위용을 본 순간, 나는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꿰뚫고 척수를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깨부수고 싶다!
그것은 선사시대 원시인들이 거대한 사냥감을 두고 불태운 호승심과 같은 종류일 것이라 나는 확신했다.
21세기에서 몬X터 헌터나 다X소울 같은 거대한 괴물 내지 보스를 잡는 게임에 수많은 이들이 달라붙는 감정의 원천!
거대한 적을 향한 도전!
저 압도적인 위용의 ‘깨부숴도 되는’ 존재가 내 머리에 인식되자 마음이 들끓었다.
그 애타는 마음은, 지금껏 고이 보관해온 무언가를 무기로 쓸 생각에까지 닿았다.
바로 지구에 박혀 있던 말뚝이었다.
지구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았던, 지금은 멸종한 종족들과 드로칸의 기술력이 집합된 거대한 말뚝.
그건 아쉽게도 아이템 취급이 아니라 아이템 삭제 명령어가 통하지 않아 일일이 잘라낸 뒤, 절반은 정보부에게 몰래 주고 나머지는 템창 안에 우겨넣는 것으로 처리해야 했었다.
연구목적으로 써먹던 그걸 레일건 탄환으로 써먹기로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일단 연구를 끝마친 부분은 전혀 쓸데가 없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드로칸의 건축재료로 이뤄졌기 때문에 절삭 이외의 가공은 더 이상 불가능하지만 경도가 상당하단 것이며.
셋째로는 말뚝들을 지구에 박아 넣을 때 사용한 모양인지, 인류가 레일건 탄환에 적용하는 가속 원리가 미묘하게 말뚝에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 연구로 밝혀진 데다.
넷째로는 구축함 엔터프라이즈 호의 주무장이 레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레일건.
구축함의 주포로 흔히 쓰이는 무기.
실드가 광학무기보다 고체탄환에 더 많이 깎이는 성질이 있다 보니, 실드를 파괴하고 급소를 노리는 역할인 구축함의 주포는 자연스럽게 고체 탄을 빠르게 쏘는 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
어쨌건 엔터프라이즈 호에는 새로운 주포가 필요했다.
왜냐면 황제 폐하가 내게 구축함을 선물하기로 결정했을 무렵에는 내가 완전한 정보부 소속이 아니라서, 군함을 개인에게 줄 수 없는 법에 따라 군용 무장을 뗐기 때문.
그래서 뉴 렉싱턴 전선으로 향하면서, 한 공업행성을 들러 구축함의 레일건 설계도와 필요한 부품을 구하고 ‘새로운 탄자’에 적합하게 개조하여 함선에 설치했다.
선체의 중앙을 가로질러 제 존재감을 당당히 과시하는 일반 구축함의 초거대 레일건과는 달리, 엔터프라이즈 호의 레일건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위쪽에서 보면 마치 스패너의 입이 살짝 벌어진 것처럼 여전히 기존 레일건 주포를 떼어낸 공간이 남아있다.
그 빈 공간을 채우려 들기보단 안쪽으로 파고들어가는 방식을 썼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공간도 많이 남았고.
“자, 이제 새 레일건의 데뷔전이다. 앤젤라, 장전해 줘.”
앤젤라의 힘찬 답과 함께, 엔터프라이즈 호의 빈 공간에 길쭉한 무언가가 둥실 떠올랐다.
앞부분을 좀 더 두껍게 깎아 작살을 닮은 형태를 가진 말뚝의 일부였다.
그건 일반적인 레일건 탄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소모 전력과 파괴력 등을 계산하여 최적의 절충안을 찾아낸 평균적인 구축함 레일건 탄자 길이는 함급에 따라 50m에서 100m.
반면 이 작살은 무려 500m에 달했다.
연구가 끝나고 필요 없는 부분을 이어 붙여 만든 거라, 겉면은 울퉁불퉁했고 중간에 이어붙인 이음새가 도드라졌다.
월드 엔진을 겨냥하기 위해 작정하고 만든 거라 거대하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
길이 수백 km에 굵기도 수km에 달하는 거대 말뚝들이라 재료도 충분하고(물론 연구가 다 끝난 자투리어야 하지만).
‘이게 충돌하면 과연 어떨지…..!’
기존 구축함 레일건이 거의 전술핵 내지 전략핵에 달하는 파괴력을 낼 수 있음을 감안하면 과연 어떨지 가늠이 힘들었다.
이 거체를 가속시키려면 배 전체의 소모 전력을 일거에 쏟아 넣어도 모자랄 테지만, 엔터프라이즈 호는 사실상 전력이 무한.
그야말로 거대 구조체를 상대로 한, 나만이 쓸 수 있는 초강력 무기와 다름이 없었다.
저 멀리, 월드 엔진이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무시무시하네.’
네 귀퉁이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는 얇은 삼각형 판들.
저게 모두 솟아오르면 아군을 향해 행성계 하나는 족히 가로지를 수 있을 길이와 면적의 녹색 폭풍이 몰아치겠지.
저걸 막는 건 타이탄급 함선이 서로 맞붙어 무식하게 두꺼운 방어막과 장갑으로 버티는 거다.
지금은 타이탄급이 다른 방면으로 전개된 드로칸 함대에 발목이 묶여서 월드 엔진 근방으로 접근하지 못한 상황.
어떻게든 공격을 저지해야 한다.
[스캔 완료, 급소 파악 완료, 조준 완료! 발사 명령 대기 중!]월드 엔진을 담은 화면에 조준점이 표시되었다.
“좋았어. 준비하시고, 쏘세요!”
탁!
나는 일부러 발사 버튼을 따로 마련했다.
버튼 발사의 로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감촉과 함께, 레일건 쪽을 비추고 있던 외부 카메라 화면이 살짝 요동쳤다.
쏜 직후 바로 조준점을 다른 곳으로 변경한 것이다.
무슨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전력을 한껏 주입받고 있었던 작살이 뿅 사라졌다.
그리고-
“와우.”
-강력하기 그지없는 월드 엔진의 방어막이 바로 뚫렸다.
“역시 에나야.”
나는 기립박수를 참을 수가 없었다.
맥쿼리 군구에서의 전투 이후, 나는 에파바르 황태자가 가지고 온 드로칸 함선을 제국군에게 인계하기 전에 앤젤라로 내부를 싹 스캔했다.
일반적인 스캐닝이면 그냥 돌덩어리로만 나오겠지만 앤젤라가 누군가.
드로칸의 데이터 센터를 탈탈 털은 덕에, AI중에서 가장 드로칸의 내부 사정에 밝은 존재다.
어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해석할 수 있단 것.
앤젤라는 에나와 파비안에게 드로칸 함선의 모든 것을 전달했고, 각고의 연구 끝에 안개 낀 것만 같은 드로칸 기술에 대한 영역을 한 발짝 더 넓힐 수 있었다.
저 작살 끝에서는 드로칸 종족의 방어막 생성 원리를 해석해 만든, 드로칸 방어막을 약화시킬 수 있는 장치가 달려 있다.
그렇게 방어막을 손쉽게 박살내고 나아간 작살은 그대로 월드 엔진의 동체를 뚫고 들어갔다.
“와.”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어마어마한 운동에너지가 월드 엔진 표면 깊숙하게 파고들어갔다. 엄청나게 큰 폭발이 일어났단 얘기다.
도시 몇 개에 달하는 면적만한 크레이터가 생겨나나 싶더니만, 곧바로 표면이 산산이 깨져나가며 조각이 검은 우주를 향해 비산했다.
폭발하면 연상되는 붉은 화염은 일어나지 않아 아쉬웠지만, 저 깨져나가는 면적을 보라.
감탄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월드 엔진의 크기를 감안하면 그리 큰 폭발은 아니지만, 그 영향은 치명적이었다.
작살이 박힌 쪽의 날개가 솟아오르는 걸 멈추고 빛을 잃었다.
날개뿐 아니라 그 근처 표면에서 일렁이던 초록 물결이 모조리 사라지고, 그 부근의 방어막까지 해제되었다.
해당 지역의 핵심 동력원이 파괴된 것이다.
3D 스캐닝 화면에는 원뿔형의 깊숙한 상흔이 남았다.
“역시. 앤젤라야. 정확해.”
초장거리 스캐닝으로 드로칸의 중요 동력원 위치를 알아내 조준했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했다.
“그럼 다음 날개다!”
***
파괴의 날개.
함대 하나쯤은 가볍게 먼지로 만들어버릴 수 있고 행성 표면을 빗자루로 쓸어버린 것처럼 깔끔하게 만들 수 있는 악명 높은 드로칸의 병기.
줄기에서 잎이 자라나는 것처럼 크기를 키워가던 날개 부위가 갑자기 차례차례 멈추었다.
그것도 월드 엔진 전체에 비하면 조그마하기 그지없는 폭발에 의해.
10발.
네 개의 날개가 펼쳐짐을 멈추는 데 기여한 공격의 횟수였다.
“말도 안 돼.”
“세상에.”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 경악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럴 수가!”
“이건 아니야!”
이는 드로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턱촉수를 배배꼬고 경련하면서 자신의 인공 안구를 세척하기 바빴다.
월드 엔진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사라졌다.
그런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낸 저 작은 함선은 월드 엔진 표면에서 발하는 녹색 포화를 쉼 없이 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건재했다.
대체 저 그릇된 종족은 뭘 만들어낸 것이란 말이냐!
“후퇴한다.”
“예? 하지만 아직 나티하’트 사령관님의 명령이……”
“닥치고 뒤로 빼! 아까 봤잖아? 저놈이 우리 쪽으로 파고 들어서 또 쏴대면 다 죽은 목숨이란 말이다!”
장교들이 흠칫 놀라며 서둘러 움직였다.
무수한 포대의 공격을 받아가면서도 오히려 접근하여 마주 공격을 해대는 이해불가의 존재.
저게 아까처럼 자신들에게로 돌격한다면……
금속 내장이 덜덜 떨리는 심정으로 그들은 서둘러 꽁무니가 빠지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건 월드 엔진도 마찬가지였다.
“으아아아아!”
“사, 사령관께서 폭주하신다. 어서 흥분저하제를……”
“진정하십시오!”
나티하’트는 자신의 자랑인 월드 엔진이 이리 무력하게 당했다는 것에 분을 참지 못했다.
“주변 아군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뭐? 세상에 은빛 촉수시여. 안 되겠다. 고립될 순 없으니 우리도……”
월드 엔진의 중심부에서 장교들이 허둥거리며 후퇴를 준비했다.
“후퇴는 없다아아! 돌진, 돌진해!”
“어, 어디로 말입니까?”
“저 행성으로! 저길 기필코 파괴해야 한다!”
나티하’트는 기어이 동체 충돌을 지시했다.
아무리 거대한 몸집이라지만 월드 엔진은 통짜 돌덩이가 아니라 엄연히 섬세한 장치들이 병합된 병기다.
하물며 그걸 직경 1만km가 넘는 행성에 들이박으라고? 그랬다가는 행성도 월드 엔진도 그들도 모두 무사하지 못하리라.
“모두 후퇴해!”
“무슨 소리냐! 전진하라 했다!”
장교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교리를 과도하게 해석해 극단적인 명령을 내리곤 하는 나티하’트다. 저거 이단 아니냐는 불만이 장교 사이에서 팽배했다.
지금까지야 제법 전공을 냈으니까 따른 거지, 지금처럼 꼴사나운 모습임에야 전혀 존중할 필요가 없다.
“지, 지금 인간 쪽의 타이탄급 함선이 접근 중입니다!”
“얼른 후퇴해!”
“누구 맘대로!! 이거 놔라! 네 이놈들! 명령을 따라라!”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해해 주십시오.”
장교들이라고 블랙 행성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렇게 전군이 후퇴하게 되면 블랙 행성은 완전히 인간의 것이 되리라.
허나 월드 엔진을 잃어버리는 것보단 낫다.
쿠르릉
“뭐, 뭐야?”
“그, 그놈입니다. 그놈이 안쪽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표면을 긁어대면서 방어시설을 박살내던 놈이 기어이 안쪽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것도 지난 전투에서 미처 수리하지 못한 부분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저놈, 저놈만이라도 죽여야 한다. 내부 병력 출동 시켜!”
“안 됩니다 사령관님. 지금 서둘러 후퇴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체할 순 없어요!”
“내가 사령관이야!”
“잡아!”
“안정실로 모셔라. 지금 호르몬 상태가 불안정하시다!”
결국 나티하’트는 붙잡혀서 안정실에 강제로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
[함장님. 빠져나가야 되겠는데요? 지금 내부 동력원들이 일제히 동작을 시작했어요.]“후퇴하려는 거겠지?”
[아마도 그렇겠죠.]내부로 파고든 엔터프라이즈 호 근처에는 월드 엔진 내부에서 몰려나온 드로칸 병기들이 새까맣게 몰려 있었다.
로봇들이 열병식 하는 것처럼 밀집대형으로 광선을 쏴대고, 웬 거미인지 전갈인지 모를 다족보행 로봇이 들러붙어서 선체를 두드리고, 수정이나 큐브 등 기하학적 구조의 고체들이 쏴대는 공격이 번개폭풍처럼 하얗게 표면을 뒤덮었다.
그 모든 공격을 받아가며, 엔터프라이즈 호는 꾸준히 킬수를 올리고 있었다.
만약 함선에 레벨 시스템이 있었다면 경험치 폭탄에 순식간에 만렙을 찍었으리라.
“아쉽지만 이만 빠져야겠지. 드로칸 영역 한가운데 고립될 순 없으니까. 이제 나가자.”
월드 엔진의 지각 밖으로 빠져나온 진은, 저 멀리 허둥지둥 도망가는 월드 엔진과 드로칸 함대를 볼 수 있었다.
진에게 무력화된 수많은 검은 함선의 시체들을 뒤로 한 채.
블랙 행성을 향해 일직선으로 몰려온 함대 말고도 주변을 감싸듯 포진하고 있던 다른 드로칸 함대들도 덩달아 물러나기 시작했다.
완전한 인류의 승리였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았다.
바로 제법 오랫동안 반반을 나눠먹고 있었던 블랙 행성을 완전히 인류의 품안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서두르자. 중요 시설이 파괴되기 전에 서둘러 지원해야 돼.”
불침함 엔터프라이즈가 검게 썩어버린 행성을 향해 선수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