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최전선 너머-2
인간이 드로칸 최전선을 정찰해왔듯, 드로칸 역시 인간의 최전선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물론 근접 정찰이 아니라 초장거리에서의 빛이나 전파 등을 감지해 물류 이동을 관찰하는 등의 간접정찰이었다.
공업지대의 위치와 규모를 얼추 파악하고 있는 나케’르 바툴’라는, 그 테러로 상당 기간 동안 군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더구나 양동작전을 위한 기습 공격으로 두 지역의 전력에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혔기에, 아무리 월드 엔진을 패퇴시켰다는 이변이 일어났다고 한들 쉽사리 쳐들어오지는 못할 거라 판단했다.
그 판단이 일단 맞기는 했었다.
공업행성 하나도 아니고 공업지대 전체가 습격 받아 쌓여 있던 식량과 행성의 농장까지 싹 다 쓸려나간 대형사건이다.
원래라면 작전 시행자의 예상대로 오랫동안 제대로 된 병력 운용이 힘들었을 것이며, 총공세를 벌일 시점마저 좀 더 미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금방 해결되었다.
바로 진과 포네트 부족 덕이었다.
진이 날밤을 새가면서 녹음을 하고 물건을 뽑아냈지만 공업행성 여러 개에서 소실된 양을 충당하기에 단기간으로는 무리였다.
군구에서도 자체적으로 물자를 끌어 모았지만 물자가 필요한 곳은 바이츠 군구뿐만이 아니었고 그걸 운송할 선박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진은 이전에 인연이 있던 대륙급 전함으로 물류업을 하는 에파바르 부족, 포네트에 요청을 했다.
은인의 요청이기도 하고 제국에게 자신들의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포네트 부족은 역량을 오로지 최전선 보급에 쏟아 넣었다.
테러를 긴급사태로 지정한 제국의 물자 우선 배분 명령을 따라, 진의 도움으로 인해 그동안 물류 능력을 회복해온 포네트 부족은 부지런히 물자를 실어 나를 수 있었다.
거기에 바깥에서 운송해올 필요도 없이 자체적으로 바로바로 생산이 되는 진의 녹음기도 손을 보태니 잃어버린 물자가 도로 채워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런 뒷사정을 모르는 둘에게는 그저 테러가 실패했거나 생각 외로 그릇된 종족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의 결정은 성급했소. 사악한 물질을 놈들이 만들었는데 그걸 해결할 방도도 당연히 놈들에게 있겠지!”
[……]다른 건 몰라도 결과를 과신하여 병력을 빼도록 권유한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크나큰 실책이었다.
상대가 피해를 복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명백한 전략적 오판으로 오랫동안 이름이 오르내리리라.
“이걸 어떻게 책임질 거요!”
성을 내는 것과는 달리, 마냥 손해만 본 건 아니었다.
나티하’트는 지원을 보내 다른 지휘관에게 생색을 낼 수 있었고, 그 지원군 덕에 생각 외로 많은 함대를 상대하느라 인류의 공세가 그쪽은 다소 늦춰지고 있었다.
지금 그에겐 다 의미 없는 일이었지만.
[그건 우리로서도 예상 밖이라서 따로 할 말은 없군. 하지만 우리도 그간 가만있었던 건 아니니 안심하게.]“그 안심해야 할 대안이 대체 뭔데!?”
[악마의 물질을 쓰는 거다.]“그걸? 또?”
사고로 풀려나기가 무섭게 행성 하나에 존재하는 모든 식생을 집어삼키고 표면을 뒤덮어버릴 정도로 증식해버린 검은 물질에 대한 얘기는 드로칸 고위층 내에서 유명했다.
행성을 터뜨릴 정도로 극단적인 나티하’트 조차도 군사적인 효용을 알지만 꺼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생물학 무기 사용을 주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저번처럼 밀고 들어가서 행성에 투척하기라도 할 생각인가? 그러기 위해서 소비될 함선이 더 아깝겠어.”
[아니지. 많이 남지도 않은 걸 왜 그렇게 쓰나?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뭐?”
나티하’트는 바툴’라의 웃음을 의미하는 촉수 움직임을 보고는 신경을 타고 섬뜩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원래는 자네 말대로 적들에게 침투해 테러를 가할 목적이었지.]바툴’라는 다른 지역 사령관들도 설득하여 같은 테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노머신에 먹힌 행성에서 나노머신을 퍼내는 게 들켜 원로 직위가 파면당하긴 했지만.
하여튼 동시다발적으로 테러를 가하면서 정체된 전선을 뚫어버릴 생각이었는데, 그릇된 종족 쪽에서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르게 쓸 수밖에 없지.’
그래서 테러용으로 나눠준 나노머신들은 그 용도가 변경되었다.
[행성 점령에 투입한 부대가 계속해서 전멸한다면 놈들의 공세종말점은 더 빨리 찾아오게 되겠지.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뺏길 바에는 누구도 가지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
한편, 팀 엔터프라이즈는 뉴 렉싱턴 전선에 와 있었다.
뉴 렉싱턴 전선에서 팀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두 가지.
하나는 월드 엔진을 상대하는 것.
둘은 나노머신에게 먹힌 행성을 찾는 것.
“대략적으로 이쯤에 있는 걸로 추정돼요.”
에나는 오래된 홀로그램 우주 지도의 한곳을 가리켰다.
“꽤 후방에 있는데. 하긴, 연구소니까 후방이겠지만.”
나노머신에게 먹힌 드로칸에게 들은 바로는, 이 지점이 은하 실드 관통 엔진을 만든 군사기술 연구소라고 했다.
엔진 실험팀에 의해 채집된 나노머신 시료는 가장 큰 시설인 저곳에서 연구되었을 공산이 컸다. 큰 사고가 일어났다면 마찬가지로 거기서 터졌을 것이다.
“그럼 은하 실드 관통 엔진 자료도 그대로 버려졌겠네요.”
파비안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도 기술자인지라 드로칸이 만들어낸 은하를 벗어날 수 있는 워프 엔진이 얼마나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군사기술이 아니다.
위성 은하인 마젤란 은하로 향해 생명체의 권역을 넓힐 수 있을, 은하 전체적으로 중요한 물건이다.
때문에 정보부와 황제도 몹시 기대하며 특별히 조사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저희가 그쪽으로 가는 거죠. 혹시나 운 좋게 자료가 남았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거 4백 년 전 지도인데 위치가 정확은 한 거야?”
니베아가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4백 년 동안의 천체 움직임을 가늠해서 수정하긴 했지만 장담은 못하죠.”
어깨를 으쓱이는 에나에게 진이 말했다.
“상부에서 귀띔을 해놨다니까 다른 함대가 발견하면 알려 주겠지. 너무 걱정 마. 그런데 꽤나 치열한 전선이었나 보네. 뭐 멀쩡한 행성이 없어.”
뉴 렉싱턴 전선의 끝단인 블랙 행성을 넘어 꽤 항해했지만 행성 하나 못 만나고 있었다.
항성은 열 개가 넘게 지나쳤으나 거기 있는 건 기껏해야 소행성이나 생명이 살지 못하는 극한 행성뿐.
소행성에 설치된 드로칸의 방어포탑만 몇 개 부수는 것이 팀이 포함된 함대의 전과의 전부였다.
“질질 안 끌고 얼른 쳐부수고 전쟁 끝났으면 좋겠다.”
“그게 말대로 쉽겠어? 우주가 좀 넓은가.”
“그렇긴 한데, 제국도 작정했으니까 어지간하면 잘 끝나겠지?”
네브라와 니베아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와중, 앤젤라가 지루해하던 모두를 일깨울 소식을 들고 왔다.
[함장님! 함대의 광범위 스캐너가 적 함대를 포착했다고 해요!]***
뉴 렉싱턴 전선에서는 기록상으로 인간이 거주 가능한 행성만 무려 37개가 폭파되었다고 한다.
드로칸이 거주 가능한 범위가 인간보다 넓다는 걸 감안하면 폭파된 행성의 수는 그보다도 많다.
모든 항성이 생명체가 살기 적합한 천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무(無)행성 지대는 상당히 넓었다.
과감히 폭파한 놈도 대단하고 점점 넓어지는 무행성 지대를 돌파해 기어이 뭘 점령하려 들었던 인간도 대단했다.
넓은 무행성 지대는 뉴 렉싱턴 전선에서 출격한 함대들이 갈팡질팡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그동안 전선 전체적으로 정찰을 하면서 드로칸 측 영역의 최전방 지도는 어느 정도 그려놓은 상태.
하지만 그 너머는 미지의 지역이다.
그래서 인류는 사방으로 정찰대를 뿌려 어느 한 방향으로 전진할 때 방어하러 나오는 드로칸 함선의 방향을 역산하거나, 미확인 전파 송출지를 찾아 적의 행성을 찾는 등의 방도를 썼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넓은 빈 영역이 만들어진 뉴 렉싱턴 전선에서는 그게 힘들었다.
[함장님! 함대의 광범위 스캐너가 적 함대를 포착했다고 해요. 지금 확인을 위해 정찰대를 급파했는데 같이 따라갈 거냐고 묻는데요?]때문에 적 함대의 등장에 아군 함대는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가봐야지. 혹시 함정일 가능성은?”
[어느 정도는 있겠죠. 그래서 정찰대부터 급파하는 거고요. 그리고 함대 위치를 서로 연동해 놔서 여차하면 바로 워프해 도와주도록 되어 있다니까 괜찮을 거예요.]“좋아. 얼른 의사 타진해줘.”
[넵!]현재 팀 엔터프라이즈가 속한 함대는 바이츠 대공의 직속 함대이자 군구의 주력 함대였다.
함께하는 이유는 월드 엔진 때문이었다.
월드 엔진이 출격한다면 저번에 호되게 당한 엔터프라이즈 호 아니면 주력 함대의 앞에 나타날 게 뻔하므로.
그렇기에 대공은 전략 무기를 파괴할 기회를 잡기 위해 진에게 함대와 대동할 것을 권유했고, 진은 아쉽게도 실패한 거대한 무언가를 파괴하고픈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합류를 선택했다.
“오, 드디어 함대전이야?”
“크으, 또 외계인 박살나는 꼴 보겠네.”
“부디 큰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네요.”
팀원들은 여유가 가득했다.
엔터프라이즈 호는 말 그대로 무적의 성채니까.
“앤젤라, 얼른 출력 올려줘. 정찰대 따라잡아야지.”
[옙!]***
팀 엔터프라이즈는 정찰 함대를 금방 따라잡았다. 함대장과 인사를 나누고 대략적인 상황을 들은 진은 선두를 맡겠다고 말했다.
그의 대단한 업적은 바이츠 군구의 우주군에 제법 퍼졌기에 함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착했어요. 스캔 결과대로네요.]앤젤라가 초장거리 스캐너를 단 정찰함이 보내준 자료와 일치하는 적 함대의 모습을 보고했다.
[함대 구성으로 볼 때, 평범한 정찰 함대에요.]최소 십여 대 정도로 구성되는 인류와는 달리 다섯 대뿐인 조촐한 구성.
그 조그만 함대는 엔터프라이즈 호와 그 뒤편을 따르는 정찰 함대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바로 선수를 돌렸다.
기다렸다는 듯 도망가는 모습이 어째 찝찝했다.
‘어째 유인 같은데.’
그렇지만 고작 정찰함대 하나 유인으로 잡아서 몰살시킨다고 한들 드로칸에게는 딱히 득볼 게 없다.
일일이 파발마를 보내야 하는 고대 전장도 아니고, 기습을 하는 순간 본대에도 즉각 보고가 들어간다는 걸 저들도 모르진 않을 터.
“일단 따라가 보자. 정찰 함대 쪽에는 유인책 같으니까 좀 떨어져서 오라 그래. 주변 잘 살피라 전해 주고.”
[네!]함정을 우려하는 이유는 함정에 피해를 입을까봐서다. 그렇기에 팀 엔터프라이즈는 두렵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 호는 드로칸 정찰 함대에 아슬아슬하게 따라붙었다.
이왕 후미를 잡은 김에 새로 단 제식 함포의 위력도 시험해 보았다. 빛기둥이 드로칸 함대 후미의 한 함선의 방어막을 손쉽게 파괴했다.
[정찰함 실드 파괴에 함포 넷에 3초. 준수하네요.]“화력 괜찮네. 바꾸기 잘했어.”
구축함에 어울리지 않는 순양함 내지 전함 주포에 어나힐레이션 기술을 가미해 추가 개조했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렇게 적 정찰함 하나를 무력화시키는 전과를 내며 유인책에 당해주는 끝에, 팀은 적의 주력 함대로 보이는 불빛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반짝이는 빛무리 뒤에는 거주 행성으로 보이는 어둑한 행성 하나도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진은 물론이고 다른 팀원들도 이상함을 느꼈다.
유인작전이라기에는 나사가 빠져 있다. 도중에 습격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그대로 본진이잖아?
정찰 함대가 자기네 본진이 노출되게 생각없이 도주할 리도 없고? 설마 드로칸 쪽에도 폐급이 있나?
[진 테일러 함장님. 저희는 이쯤에서 빠질 생각입니다만……]정찰 함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연락했다.
[위치가 노출될 수도 있으니 저희는 뒤로 빠져서 스캔 범위의 끝자락에서 스캔을 시도할 생각입니다. 함장님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요.]“먼저 빠지세요. 저흰 가까이 가보죠.”
정찰 함대가 도주거리 확보를 위해 물러나는 것과는 반대로 엔터프라이즈 호는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저것들 쏴버려. 가까이 다가가면 어차피 들킬 텐데.”
엔터프라이즈 호가 갑자기 속력을 올리면서 동시에 뿌려댄 무수한 빛살에 순식간에 드로칸 정찰 함대 중 세 대가 무력화되어 한 대만 간신히 달아났다.
장갑 안쪽에 숨겨서 안 보인다 뿐이지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포 숫자는 여전히 무식할 정도로 많았다.
그렇게 포화를 맞을 각오를 하고 진녹색의 빛무리에 가까이 다가간 진은 표정을 찡그려야 했다.
“뭐야, 기뢰잖아?”
진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제멋대로 생긴 다면체들이 우울한 빛을 질질 흘리며 넓은 영역을 떠다니고 있었다.
‘가끔 기뢰로 기만작전을 한다더니만, 정말 통하긴 하네.’
멀리서는 우주의 별과 다를 바 없고 애매하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함대 불빛과 비슷해, 지금처럼 적을 어느 정도 뒤로 물러서게 만들어 시간을 버는 수법이었다.
‘오히려 잘 된 일이야.’
기뢰로나마 방어를 한단 건 저 행성이 무인행성이 아니란 의미다.
무행성지대의 끝자락에서 어렵사리 발견한 제대로 된 행성이니, 이곳은 장차 뉴 렉싱턴 전선의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정찰 함대에 기뢰라고 전달해 줘.”
그때, 기뢰 지대 뒤편의 행성에서 함선 하나가 급하게 발진하는 것이 포착되었다.
“엇, 저거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