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0)
그들 중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천추신의였다.
천추신의는 고개를 번쩍 들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어흐흐흑. 공자님 진짜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울분을 담아 말을 토해낸 천추신의는 벽태산이 자신을 쳐다보자,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벽태산은 일행을 슥 둘러봤다.
다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불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서란만 약간 애매한 표정이었지만, 그녀 역시 자신이 자발적으로 수련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것이기 때문에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다만 좀 질린 눈으로, 아니, 좀 안쓰러운 눈으로 일행을 하나하나 살펴보긴 했다.
이런 지옥 같은 수련을 매일 해야 한다면 과연 자신이 그걸 버텨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마 버텨내기만 한다면 정말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면서 의술까지 공부하는 건 무리야.’
이렇게 지독하게 몸을 굴리고서 어떻게 의술까지 공부하겠는가. 초서란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바라봤다.
‘저 두 분은 이걸 버텨내신 걸까?’
초서란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입을 열었다.
“일단 밥을 먹도록.”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번쩍 들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방금 일단이라고 말했다. 그 얘기는 밥을 먹고 또 무언가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수련일 가능성이 높고.
초서란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밥을 먹으면······ 다 토하지 않을까요?”
벽태산이 고개를 돌려 초서란을 쳐다보고는 씨익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토하지 않게 해줄 테니까.”
초서란은 벽태산의 입가에 드리운 저 미소가 왠지 악마 같았다.
악마가 수련을 시키는 여기는 지옥이고 말이다.
* * *
일행이 전부 뻗었다.
밥을 먹고 수련을 해도 토하지 않을 거라는 벽태산의 말은 진짜였다.
아무도 토하지 않았다.
한데 덜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너무 지옥 같아서 몸이 토하는 걸 거부했다. 들어온 음식을 모조리 분해해 전부 영양분으로 써먹은 것이다.
고작 한 시진짜리 수련이었는데, 그게 끝나자 다들 허기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쓰러져 있는 이들 앞에 죽 그릇이 하나씩 놓였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만들어 둔 죽이었다.
다들 언제 죽 그릇이 놓였는지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저 허겁지겁 죽을 퍼먹을 뿐이었다.
죽의 양이 많지 않았지만 당장의 허기를 살짝 누를 수는 있었다.
그렇게 허기를 누른 뒤, 본격적으로 식사를 준비해 거하게 밥을 먹었다.
벽태산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고.
밥을 다 먹어가자, 다들 불안한 눈으로 벽태산의 눈치를 살폈다.
점점 밥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
벽태산은 그걸 보며 피식 웃고는 말했다.
“오늘 수련은 끝이다.”
그 말에 다들 반색하며 남은 밥을 빠르게 먹어치웠다.
수련이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쉴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밥을 빨리 먹어야 조금이라도 빨리 쉴 수 있지 않겠는가.
“푹 쉬어라. 그렇다고 몸이 굳으면 안 된다. 주기적으로 몸을 풀어서 언제든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또 불안한 눈으로 벽태산의 뒷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 * *
정말 푹 쉬었다.
수련이 끝나고 밥을 다 먹은 뒤 두 시진 정도를 쉬었는데, 벽태산의 지시대로 가끔 몸을 풀어주었다.
어쨌든 그렇게 푹 쉬고 나니 몸이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사실 좀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격렬한, 아니, 고문보다 더한 수련을 했는데 고작 두 시진 쉬었다고 몸이 완벽하게 회복되다니 말이다.
특별한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그저 쉬기만 했는데도 그랬다.
특이한 점은 가끔 벽태산이 찾아와 잠깐 머물다가 갔다는 것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나고 나니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밥 먹을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아까 워낙 많이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다들 끼니를 때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좀 더 쉬는 걸 택했다.
그러다가 허기가 지면 나중에라도 뭔가 좀 챙겨먹으면 되니까.
그리고 벽태산은 자신의 방 침상 위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쉬는 게 아니라 감각을 넓게 퍼트려서 흑철방 주변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오늘 밤 그놈들이 이쪽으로 올 거라는 느낌이 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벽태산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드디어 왔군.”
처맞고 싶어서 안달이 난 놈들이 왔다. 아직 흑철방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잔뜩 몰려와 흑철방 전체를 포위하고 있었다.
벽태산은 침상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바로 아래층에는 시비들이 머물렀다.
언제든 벽태산을 모실 수 있어야 하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아래층에 모였다.
벽태산이 내려오자, 시비들이 방에서 후다닥 나왔다.
“공자님, 필요하신 것이 있으신지요.”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부 모아라.”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우르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벽태산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벽태산의 방에 전각에서 지내는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긴장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 시간에 모았으니 설마 수련을 하자고 모은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천추신의는 정말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자님. 혹시······ 야간수련, 뭐 이런 거 하실 겁니까?”
그 말에 벽태산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흐음, 야간수련이라······ 확실히 밤에 수련을 하면 낮이랑은 다른 맛이 있긴 하지.”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 말에 다들 기겁을 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천추신의에게 화살처럼 꽂혔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일침괴가 천추신의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이를 악물고 한껏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야, 야. 너 미쳤어?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왜 우리까지 끌고 들어가? 너 이거 책임지고 해결해라.”
천추신의가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손가락을 탁 쳐냈다.
“형님, 이러시면 곤란하오.”
“뭐가? 지금 이미 곤란하거든?”
“지금 곤란은 곤란도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사고 한 번 거하게 치는 꼴 보고 싶소?”
일침괴가 흠칫 했다.
“이, 이놈이 어디서 협박이야?”
“그러니까······.”
천추신의는 말을 이으려다가 왠지 분위기가 이상해서 입을 다물고 슬그머니 주위를 살펴봤다.
다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벽태산이 서서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하다 말아? 계속 해보지?”
천추신의가 어색하게 웃었다.
벽태산은 혀를 한 번 쯧, 차고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장난 칠 상황 아니다.”
벽태산의 말에 다시 싸한 긴장감이 장내를 휘감았다.
“지금 기습 직전이다. 적의 수가 제법 많긴 하지만, 뭐 어설픈 놈들이 많으니 어렵지는 않을 거다.”
벽태산의 말에 다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설픈 놈들이라는 말은 믿지 않았다. 저 어설픔의 기준이 벽태산의 시선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벽태산이 일행을 슥 둘러봤다.
무한에서 데려온 사람들에 비해 하오문에서 온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수준이 좀 떨어졌다.
그나마 어제오늘 있었던 강도 높은 수련 덕분에 실전감각이 한껏 올라온 상태였기에 쉽게 죽지는 않을 테지만.
“적이 많으니 다치지 말라는 말은 못 하겠구나.”
그 말에 다들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그리고 긴장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위험한 것 아니겠는가.
“죽지 말고, 크게 다치지 마라.”
긴장감이 더 높아졌다.
“그러면 화가 좀 날 것 같거든.”
그렇게 말하는 벽태산의 눈에서 마치 뇌전이 짜르르 흐르는 것 같았다.
다들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비슷한 충격이 심상을 흔들었다.
벽태산은 담담히 말했다.
“슬슬 오는구나. 가자.”
벽태산이 앞장서자,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전각을 나선 벽태산은 근처에 있는 커다란 연무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끝까지 버텨라.”
그 말에 화옥이 난감한 표정으로 벽태산에게 물었다.
“꼭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요.”
벽태산이 화옥을 쳐다보자, 그녀가 얼른 말을 이었다.
“너무 공간이 넓습니다. 적이 사방에서 올 텐데, 버티기 용이한 구조가 아닙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버텨야 한다.”
“예?”
화옥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반드시 버티겠습니다.”
벽태산이 아무 생각 없이 이리로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이유가 있다.
화옥의 반응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은 여기서 버텨야 하는 것이다.
벽태산은 그런 일행을 둘러보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쳐다봤다.
“들어왔군. 그럼 잘 버텨봐라.”
벽태산은 그 말을 끝으로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벽태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들 멍하니 방금 벽태산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게다가 눈도 깜빡이지 않았는데, 벽태산의 움직임을 놓쳤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저럴 수 있는 걸까요?”
초서란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일침괴를 바라봤다.
혹시 일침괴라면 벽태산의 움직임을 눈곱만큼이라도 파악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일침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된다.”
거기에 덧붙인 말에 다들 표정이 확 굳었다.
“공자님이 화나면······ 어떻게 될까?”
다들 결연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오늘 여기서 버티는 건 자기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다 같이 잘해야 한다.
그리고 유기적으로 싸워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손발이 되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돕고 여유가 있으면 나눠줘야 한다.
멀리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드디어 적이 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흑철방 전체에 기묘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진법?”
천추신의의 중얼거림에 긴장감이 확 높아졌다.
끝
무수한 사내들이 흑철방의 담장을 훌쩍훌쩍 넘었다.
전부 증혈단을 복용해서 잠력을 터트린 자들이었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 해서 고작 백여 명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흑철방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제 당분간 흑철방에서 나가는 것도, 흑철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그들이 전부 막을 것이다.
흑철방의 담장을 넘은 백여 명의 사내들 중에 복장이 좀 다른 사람이 다섯 명 섞여 있었다.
그들은 다른 자들에 비해 굉장히 여유로웠다.
“허, 못 보던 사이에 잡스러운 것들을 잔뜩 만들었군.”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는데,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과 달리 몸은 터질 듯한 근육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웃통을 벗은 상태였는데, 몸만 봐서는 그가 노인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그 노인의 주위에 있는 네 명의 사내는 그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기껏해야 스무 살 정도였는데, 눈빛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뭐라고 말들 좀 해봐라. 벙어리도 아니고.”
하지만 네 사람은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들을 둘러싸듯 백여 명의 사내가 속도를 맞춰 이동 중이었는데, 다들 온몸으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들은 최근 특별한 비법을 첨가한 증혈단을 먹은 자들이었다.
아직 비법을 개발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양을 많이 확보하지 못해서 고작 백여 명에게만 쓸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노인에게 다가갔다.
“벽태산만 확실히 맡아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노인의 눈에 음심이 깃들었다.
“벽태산 근처에 예쁜 아이들이 많다고 하니, 손끝하나 건드리지 말고 잘 보관해라. 나중에 내가 한 명씩 음미할 테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그의 수하들에게 막 지시를 내리려는 찰나, 검은 구슬이 후두둑 떨어졌다.
퍼버버벙!
검은 연기가 주위를 자욱하게 감쌌다.
사내가 그걸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흥. 언제까지 이게 먹힐 거라고 믿었느냐?”
사내의 말에 노인이 피식 웃으며 손을 휙 내저었다.
후우웅!
강렬한 돌풍이 일어나 검은 연기를 위로 싹 날려버렸다.
놀랍게도 증혈단을 먹은 자들 중 폭주할 기미를 보이는 놈이 한 명도 없었다.
“호오. 시간이 얼마 없었을 텐데, 벌써 개량까지 한 건가? 대단한데? 대체 어떤 놈들인지 더 궁금해지는구나.”
앞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벽태산을 발견한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벽태산······!”
벽태산은 사내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의 뒤쪽에 서 있는 다섯 사람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