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18)
천경완은 말없이 검을 뽑았다.
“그런 말을 할 실력이나 되나 보자.”
천경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뇌룡이 한 줄기 뇌전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꽈르릉!
꽈앙!
천경완이 검을 휘둘러 뇌룡의 뇌기를 흘려냈다.
그리고 진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각월객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구룡문의 나머지 용들도 다양한 숫자로 구성된 상대를 만나 공터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전부 같은 공터에 있었고, 서로를 보지 못했다.
그건 그들과 싸우는 천경완을 비롯한 벽태산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벽태산의 사람들은 이곳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자신을 죽일 듯 달려드는 상대와 싸우면서 다른 사람들의 싸움에 혹시라도 얽히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싸우는 장소는 별채에 마련된 커다란 연무장이었고, 그 연무장을 각각 쪼개 나눠서 쓰는 중이었다.
별채의 연무장은 구룡문의 나머지 용들과 벽태산의 사람들이 싸우는 자리가 되었다.
* * *
무명의 무사들은 사라졌다 나타나는 걸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자신들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 와중에도 꾸준히 이동했다.
사실 중간에는 다들 흩어지다시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되었다.
그들은 그걸 우연으로 여기거나, 자신들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벽태산이 특별한 힘을 이용해 그들을 이쪽으로 유도한 것이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객잔 바깥쪽에 있는 제법 널찍한 공터였다.
물론 그들은 그곳이 거기인지는 알지 못했다.
여전히 사방을 둘러봐도 그저 허허벌판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 허허벌판 위에 한 사람이 오연히 서 있는 광경이 보였다.
“저기 누가 있다.”
무명의 무사들은 자신들의 실력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어떤 고수가 오더라도 자신들이라면 무조건 박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각월객잔에 최근 합류한 대단한 고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고수가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싸운 사람들에게 설명을 들었는데, 열 명이 협공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그 소문의 고수가 저 사람인 것 같은데?”
조장이 눈을 번득이며 그렇게 말했다.
다들 멀찍이 서 있는 사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것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오연히 선 사람은 검귀였다.
검귀는 자신이 홀로 저 예순세 명의 무사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놈들이었다. 게다가 몇몇은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강했다.
저런 놈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고 피가 끓었다.
검귀가 검을 뽑으며 무명의 무사들을 겨눴다.
“뭣들 하느냐, 어서 오지 않고.”
검귀가 삼엄하고 날카로운 기세를 쏘아 보냈다.
그걸 신호로 무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무명의 무사들은 협공에 아주 능숙했다.
순식간에 검귀를 포위하며 검진을 펼쳤다. 스무 명으로 펼치는 검진이었다.
나머지 마흔 명은 두 개의 검진을 따로 구성했다.
그리고 남은 세 명은 상황을 봐서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맡았다.
차륜전이었다.
검귀는 검진이 완성되기 직전 몸을 날렸다. 가만히 서서 검진에 갇혀줄 이유가 없었으니까.
몇 걸음 걷는 것만으로 검진에서 벗어난 검귀는 처음 달려든 놈들 말고 따로 있는 놈들을 덮쳤다.
쩌저저저저정!
검귀의 검은 무시무시했다. 무명의 무사는 온몸에 누적되는 충격에 핏물이 울컥 올라왔다.
그가 피를 토하기 직전 검귀가 몸을 뺐다.
다시 펼쳐진 검진을 빠져나가기 위함이었다.
이번에는 그러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가 있었다.
물론 검귀는 그것 역시 예상했다.
“흐아압!”
강한 기합과 함께 검강을 쭉 뿜어내며 방해꾼의 허벅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방해꾼의 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검귀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검편으로 돌진했다.
쉬쉬쉬쉬쉭!
검귀는 검편을 하나하나 잡아 뒤로 흘려버렸다.
검귀가 흘리는 힘까지 더해진 수십 개의 검편이 검진을 완성하기 직전인 무사들에게 쏜살같이 날아갔다.
쩌저저저정!
그들이 검편을 쳐내는 그 짧은 틈을 타고 검귀가 검진을 벗어났다.
검귀는 검진을 벗어남과 동시에 그림자처럼 바닥에 납작 붙어서 이동했다.
어찌나 신속했는지 검귀가 몸을 낮추는 걸 미처 보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검귀의 목표는 바로 그자들이었다.
촤촤촤촤촥!
피가 퍽퍽 튀었다.
순식간에 일곱이나 되는 무사가 발목을 잃었다.
검귀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유연하게 빈틈을 찾아 파고들었다. 또한 약점이 생기면 정확하고 빠르게 찔렀다.
무려 예순세 명을 상대하고 있지만, 승기는 검귀에게 점점 기울어갔다.
* * *
벽태산은 무아지경에 반쯤 발을 걸친 채 영력을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존재감을 지우는 수련이었는데, 하다 보니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이 되면서 지금은 전혀 다른 경지로 넘어가 버렸다.
그저 존재감만 지우는 게 아니라, 아예 인식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옆에 서 있으면서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몸에 닿아도 닿았는지 모르게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인식을 조절해서 이동하는 방향까지 정해줄 수 있었다.
다른 방향에 꺼림칙함을 남기고 한 군데만 열어두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하나하나가 새롭고 재미있었다.
문제는 영력이었다.
뭐든 한 번 할 때마다 영력이 뭉텅뭉텅 소모되었다.
벽태산은 침입자들을 적절히 수준별로 나눠서 수하들에게 나눠주었다.
아마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실전훈련이 될 것이다.
실제로 벽태산의 사람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적을 상대로 제법 잘 싸우고 있었다.
그동안 수련을 열심히 했으니 그 성과를 본인이 한 번쯤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했다.
“좋은 기회로구나.”
적절한 때에 이렇게 적이 와주니 마침 잘 되지 않았는가.
다들 좀 힘은 들겠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인을 모두 끝낸 벽태산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딘가에 괜찮은 영약이 있을 법도 한데······.”
더 많은 영력이 필요했다.
최소한 예전 천마이던 시절에 쌓았던 정도는 있어야 한다.
벽태산은 무명이 부리던 반강시가 떠올랐다.
그 중에서 자신에게 단번에 쓰러지지 않던 놈들이 떠올랐다. 확실히 보통의 반강시보다 훨씬 많은 영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그놈들보다 더 강한 반강시도 있을 것이다. 아마 그놈들은 훨씬 더 많은 영력을 제공해 줄 테고.
벽태산은 반강시 말고도 영력을 쌓을 수 있을만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혼백을 뽑아 세탁하는 일을 한동안 쉬었다.
들인 시간에 비해 쌓인 영력이 많지 않아서 한동안 등한시한 것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쉬었던 혼백 세탁을 다시 시작해야 할 듯했다.
아무나 막 할 수는 없고, 개 중에서도 효율이 높은 자를 선별해야 한다.
그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의원이 최고고, 그 다음이 의외로 기녀였다.
무인의 경우 살인을 저지르기 전이면 효율이 높지만, 그런 경우가 드물어서 생각보다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
벽태산이 그렇게 영력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싸움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끝
오대세가가 한 번 모임을 개최하려면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다.
일단 장소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고, 그 뒤로 일정도 맞춰야 하며, 누가 참석할지도 미리 적정선을 정해둬야 한다.
하지만 이번 모임은 굉장히 신속하게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일단 장소는 의창으로 결정되었다.
의창에 있는 호무련의 협조를 받기로 한 것이다.
또한 되도록 무림맹이나 흑련, 호무련에서도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소식을 전했다.
참석자는 최소 가문의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로 정했다.
아무튼 그렇게 다들 서두른 덕분에 오늘 회합이 열리게 되었고, 호무련에서 장소를 제공해 주기로 했다.
원래는 오대세가의 회합이 되어야 하지만, 무림맹과 흑련, 호무련에서도 참여하기로 하는 바람에 범위가 크게 확장되어 아예 무림회합이 되었다.
호무련 깊은 곳에 위치한 커다란 전각의 꼭대기 층에, 각 가문과 세력의 대표들이 모여 심각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다들 각 세력이나 가문의 주인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진, 또한 상당한 권한을 가진 자들이었다.
회합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거웠다.
하지만 서로 대립하거나 견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들 나름대로 무명에 대해 제법 오랫동안 정보를 모아 왔다.
오늘 이 자리는 그 정보가 하나로 모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아놓고 보니, 무명이라는 조직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강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결코 각 가문이나 세력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다들 힘을 모아 싸워야지.
아무튼 지금까지 모인 무명의 정보를 모두 확인하고 그것을 취합해 각 가문과 세력으로 보내는 일이 방금 끝났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미래를 논의할 시간이었다.
이곳에 참석한 사람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은 하후세가에서 나온 하후관천이었다.
처음에 하후관천이 나타났을 때, 다들 깜짝 놀랐다.
설마 가주가 직접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좀 긴장했다.
현 오대세가 중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하후세가의 가주가 가진 발언권이 아무래도 좀 더 세지 않겠는가.
하후관천은 자신이 가진 지위를 자연스럽게 이용했다.
“이제 정보교환은 끝났으니 슬슬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소?”
하후관천의 나직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 번의 말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하후관천이 오늘의 회합을 이끌게 되었다.
“오늘 정보를 취합하면서 느꼈는데······ 무명이라는 조직, 결코 쉽게 여겨선 안 될 것 같소. 내가 보기엔 이곳에 있는 그 어떤 가문이나 세력도 혼자서는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혹시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이 있으시오?”
하후관천이 그렇게 묻고는 좌중을 슥 훑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같은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무명의 힘은 그저 드러난 부분만 생각하더라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것만 해도 하나의 가문이나 세력이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조직이 아니었다.
하물며 무명의 힘은 그게 전부일 리가 없었다.
그들의 행사가 지극히 은밀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 숨겨진 부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후관천이 좌중의 반응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럼 내가 향후 무명에 대한 신속하면서도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위해 제안할 것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시겠소?”
“말씀하시지요.”
하후관천의 눈이 번득였다.
“무명만을 전담해서 활동하는 연합을 결성했으면 하오. 각 가문과 세력에서 인재를 엄선해서 합류시키고, 향후 무명과의 싸움에서 가장 앞장서서 나서며, 모든 가문과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소.”
다들 표정과 눈빛이 복잡해졌다. 그만큼 머릿속도 복잡하게 돌아갔다.
사실 무림맹이나 흑련이 그와 비슷한 이유로 만들어진 세력이었다.
거기에 오대세가도 각 가문의 이익을 위해 다섯 가문이 연합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한데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새로운 연합을 만든다는 건데, 그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주도권 싸움 때문에 새로운 분쟁이나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후관천은 지금까지와는 좀 달리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걱정하는 부분이 어떤 건지는 잘 알고 있소. 하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하면 괜찮지 않겠소? 무명과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로 한정하면 큰 무리가 없을 듯한데, 어떻소?”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무명과의 싸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고, 그 싸움이 끝났을 때, 말이 달라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다들 다양한 상황에서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하아, 천마신교가 가서 좀 편해지나 했더니······.”
다들 같은 마음이리라.
하지만 그나마 이번에는 괜찮지 않은가.
어찌되었건 천마신교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들의 마음을 슬쩍 찌르듯 하후관천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잘 만들어서 키우고 나면, 천마신교를 상대할 때도 괜찮은 칼이 되어줄 것 같은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흐음, 천마신교라······.”
모두의 표정에 더욱 깊은 고민이 어렸다.
확실히 그건 좀 마음이 끌린다.
“그리고 새로 만들 연합에다가, 꼭 여기 있는 가문이나 세력의 인물만 합류시킬 필요도 없지 않겠소?”
하후관천은 자신에게 모이는 시선을 느긋하게 즐기며 말을 이었다.
“쓸 만한 칼은 천하 곳곳에 있소. 심지어 돈만 많은 상단이라 해도 의기가 있다면 힘을 보탤 수도 있을 거요. 잘 조절하기만 한다면, 이 상황 자체가 우리의 명분이 되어줄 거요.”
그 말에 다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의 논의는 굉장히 좋은 분위기로 이어졌다.
물론 이 자리에서 그걸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오직 하후관천뿐이었지만, 누구도 이 제안이 엎어질 거라 여기지 않았다.
벌써 이름까지 지어 버렸다,
천무련이라고.
* * *
“아이고, 죽겠다!”
천추신의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바로 옆에 일침괴가 대자로 쓰러지듯 누웠다.
“나야말로 죽을 것 같다.”
천추신의가 인상을 쓰며 일침괴를 발로 쭉 밀었다.
“땀 냄새 나니까 절로 가쇼.”
“야! 너 이, 시발, 뭐 하는 거야? 발 안 치워? 그리고 뭐? 땀 냄새? 넌 냄새 안 나는 줄 알아?”
“아, 냄새 나면 절로 가면 될 거 아뇨. 훠이, 훠이.”
천추신의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일침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천추신의는 일침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소청명이 조용히 앉아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야, 괜찮냐?”
소청명이 천추신의를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