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6)
화옥이 고개를 숙였다.
“예.”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책임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화옥은 자신 앞에 놓인 문서 꾸러미를 슬쩍 내려다봤다.
양이 엄청나게 많아서 일단 정리를 해야 더 정확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모용세가였다.
비각주의 사념 속에 모용세가에 관한 내용이 너무 적었다.
명색이 모용세가의 정보를 총괄하던 자였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세작이 정보를 총괄하는 자리에 앉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화옥의 뇌리에 의심 한 가닥이 삐죽 자라났다.
끝
천무련의 개파대전이 한창 이어지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격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일단 비각주를 통해 뽑아낸 정보를 이용해 천무련 내에 있는 세작을 싹 정리했다.
물론 세작이 더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알아낸 것까지는 전부 정리했다.
사실 세작을 그대로 두고 역으로 이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작들이 단순히 정보만 뽑아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무련 가장 아래쪽에서 평판을 갉아먹는 작업을 은밀히 진행 중이었다.
비단 천무련뿐 아니라, 각 세력에 있는 세작들 모두 비슷한 활동을 했다.
은연중에 상부에 대한 불만이 쌓이도록 하는 것이다.
당장은 아무 일도 없겠지만, 그것이 쌓이다보면 내부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더구나 원래 천무련에는 정신을 건드리는 진법을 설치했었다.
지금이야 벽태산이 다 부쉈지만,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세작의 활동과 어우러져 상당한 효과를 냈을 것이다.
이렇게 세작을 정리해 버리면, 아직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 더 깊이 숨겠지만, 그래도 지금 처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았다.
아무튼 비각주가 알고 있던 천무련의 세작은 전부 사로잡았다.
현재 절반은 천무련에서 절반은 하오문이 맡아 심문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벽태산도 굳이 그들을 태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정보는 비각주가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니 비각주 한 명만 태우면 알 만한 것은 다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들을 심문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혹시 모를 단서라도 하나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천무련에서 할 일은 거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이제 각 세력들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였다.
물론 비각주로부터 뽑은 정보는 전부 전달했다. 이미 파악한 세작을 굳이 감출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 정보를 받아, 나머지 세력들도 세작 색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렇게 천무련 비각주 사태가 마무리 되었다.
* * *
개파대전도 슬슬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중간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시비도 있었고, 의기투합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작은 비무대회도 몇 차례에 걸쳐 열렸다.
보통은 후기지수들이 참여했는데, 천무련에서는 그걸 적극 장려했다.
비무를 통해 향상심을 자극하고,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돌아보는 경험을 하는 건 후기지수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앞으로 무명과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후기지수들이 치고 올라와 줘야 한다.
결국은 그들이 주력이 되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천무련 개파대전에서 열린 비무대회들은 충분히 그 역할을 했다.
또한 몇몇 후기지수들이 크게 눈에 띄어 이름을 날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하린도 그 중 하나였다.
연하린은 후기지수들이 참여하는 비무대회 중 하나에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사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연하린의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강하면서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미모는 천무련에 참석한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렇게 유명세를 얻었지만, 그녀는 비무대회에 참여하는 바람에 오히려 갈증만 더 심해졌다.
후기지수들 중에는 더 이상 그녀의 상대가 없었다.
긴장을 줄 상대도 없으니 비무대회에 나가는 의미도 없었다.
괜히 입맛만 버린 셈이었다.
한데 마침 좀 다른 의미의 비무대회 일정이 잡혔다.
진짜 고수를 가려내는 비무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제법 많은 고수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름 난 고수들이 잔뜩 참여하니 비무대회의 격이 확 올라갔다.
그러자 이름을 떨치고 싶은 고수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큰 세력에서 무사대를 이끄는 자들도 있었고, 세력에 몸담지 않은 이름 난 고수들도 있었다.
그렇게 참여한 자들 중 가장 유명한 자는 전광검 유백산이었다.
그는 과거 십대고수였던 사부의 별호를 이어받아 무림에 출두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크고 작은 실전을 겪으며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이번 천무련 개파대전에 전략적으로 참여했다.
비무대회에 참여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아니, 비무대회를 열도록 열심히 여론을 몰고 다닌 것이 바로 유백산이었다.
당연히 연하린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 비무대회는 개파대전의 마지막 일정 중 하나였다.
원래는 개최할 계획이 없다가 갑자기 잡혔는지라 준비가 잘 될지 의문이었지만, 준비는 아주 완벽하게 끝났다.
하오문이 힘을 썼기 때문이다.
아무튼 연하린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비무대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비무대회가 열렸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고, 구경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천무련에는 현재, 농담 조금 섞어서 천하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문파나 세력을 대표라는 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그러니 천하의 눈이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비무대회를 여는 것이니, 참여자들이 얼마나 두근거리겠는가.
몇몇은 긴장해서 제 실력을 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아침 일찍 시작한 비무대회가 쭉 이어졌다.
* * *
“공자님, 여깁니다. 제가 아침부터 이 자리를 지키느라 아주 생고생을 했습니다. 수련을 하기 싫어서 안 한 게 아니라, 공자님을 생각해서 피 끓는 수련 의지를 억지로 끊어낸 것입니다. 암요.”
열변을 토하는 천추신의를 힐끗 쳐다본 벽태산이 피식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명당자리이긴 했다.
벽태산이 앉으니 벽태산과 함께 온 일행이 전부 근처에 앉았다.
시비들이 전부 온 데다 초서란까지 있었는데, 모두가 앉을 수 있었다.
그 많은 자리를 천추신의가 혼자서 지켜낸 것이다.
굳이 묻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눈총과 견제를 받았을지 훤했다.
천추신의는 어떠냐는 듯 가슴을 쫙 폈다.
그러자 옆에서 일침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끄러우니까 이제 그만 해라. 하오문 애들은 뭔 죄냐? 걔들도 비무대회 보고 싶었을 텐데.”
그제야 전말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하오문도들을 시켜 미리 자리를 선점하게 하고, 벽태산 일행이 오니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아니, 걔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니까? 내가 시킨 게 아니라고!”
그렇게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좋은 자리에 무사히 앉아 점심 이후 이어지는 비무대회를 감상할 수 있었다.
연하린은 오전에 두 번 싸웠는데, 두 번 다 압도적으로 승리했다고 한다.
오전에 연하린을 지켜본 사람은 벽태산뿐이었다.
벽태산은 오전에 연하린이 싸울 때만 잠깐씩 와서 보고 돌아갔다.
하늘에 조용히 떠서 구경했고, 존재감을 죽였기 때문에 벽태산이 보고 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벽태산은 자리에 앉아 비무대를 내려다봤다.
어느새 두 사람이 비무대에 올라 서로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비무가 시작되었고, 제법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둘 다 상당한 실력이었다.
확실히 후기지수가 아닌 진짜 제대로 된 고수들의 비무 다웠다.
쭉정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오전에 걸러졌다.
그렇게 비무가 계속 이어졌다.
연하린도 몇 차례 나와서 싸웠지만, 모두 압도적으로 끝냈다.
비무를 쭉 지켜보던 천추신의가 옆에 앉은 일침괴에게 말했다.
“하린이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거지? 형님, 안 그렇소?”
“그러게. 처음 만났을 때는 마냥 기특하기만 했는데······ 이젠 내 손을 훌쩍 떠나 버렸구나. 우리 둘이 덤벼도 못 이기겠다.”
“에이,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 둘이 덤벼도 못 이기게 된 지는 제법 됐고, 거기에 서란이도 붙어야 할 것 같은데?”
초서란도 상당한 고수였다. 벽태산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이름을 떨치던 고수였는데, 벽태산을 만나 훨씬 더 강해졌다.
“서란이 붙으면 될까?”
일침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안 될 것 같긴 하지만······ 뭐, 한 번 해볼 만은 하지 않겠소?”
천추신의가 그렇게 말한 다음 벽태산을 바라봤다.
“공자님, 어떻습니까? 서란이까지 끼어서 셋이면 어느 정도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벽태산이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가만히 쳐다봤다. 한데 그 눈빛이 왠지 서늘한 것 같아서 두 의원은 목을 살짝 움츠렸다.
“수련도 안 하는 것들이.”
두 의원은 입을 다물고 시선을 비무대 쪽으로 얼른 돌렸다.
수련 얘기만 나오면 어쩔 수 없이 작아지는 자신이 안타까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마음을 다잡고 수련에 매진할 생각은 없지만.
비무는 계속 이어졌다. 제법 긴 싸움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그리 오래지 않아 결판이 났다.
비무에 참가한 무인들 중, 모든 비무를 압도적으로 끝낸 자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은 단연 전광검 유백산이었다.
유백산은 전광검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무시무시한 속도를 자랑했다. 게다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뇌기가 번득여서 상당히 화려하고 눈에 띄었다.
“저 놈도 제법인데? 안 그렇소, 형님?”
“그러게. 뭐, 하린이한테 처참하게 밟히긴 하겠지만.”
두 의원의 말을 들은 벽태산이 입을 열었다.
“쉽지 않을 거다.”
“예?”
두 의원은 물론이고 벽태산과 함께 비무를 구경하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비무대 위에 서 있는 유백산을 보고 있었다.
사부가 전대 전광검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대 전광검은 십대고수였다.
말이 십대고수지, 천하 모든 무인들 중 최정점에 이른 열 명의 무인이다. 그러니 얼마나 강하겠는가.
물론 그래봐야 벽태산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지만.
전광검은 십대고수 중에서 홀로 다니는 자들 중 하나였다.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다.
아무튼 벽태산이 보기에 유백산은 사부의 유지를 제대로 이었다.
아직 십대고수 급이라고 하기엔 모자라지만, 여기서 무언가 계기가 주어진다면 십대고수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하린이가 저놈에게 진다는 말씀이십니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있느냐.”
천추신의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지금까지처럼 압도적으로 이기진 못할 테니까.”
천추신의는 입을 다물었다.
‘공자님이랑 얘기해봐야 입만 아프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네.’
천추신의는 다시 비무대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 비무가 이어졌고, 이내 예상했던 대로 연하린과 유백산이 마지막 비무를 앞두게 되었다.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이 유백산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그동안 연하린이 보여준 것보다 유백산이 보여준 것이 더 많기도 했고, 유백산이 은연중에 내뿜는 기세가 비무를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을 조금씩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비무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기라도 하듯 시종일관 연하린이 유백산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결국 연하린이 승리했다.
벽태산은 비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비무가 끝나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했구나.”
연하린은 정말로 강해졌다. 얼마나 치열하게 수련했는지 방금 비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얼추······ 턱밑까지는 따라간 것 같은데······.’
벽태산이 떠올린 사람은 선하령이었다.
선하령은 천마신교 내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들었다.
연하린은 선하령과 여러모로 닮았다. 이제 그 강함까지도 슬슬 닮아가고 있었다.
저대로 계속 수련에 매진하면 조만간 예전 선하령의 경지를 따라잡을 것 같았다.
정말 연하린의 무공에 대한 재능과 열정은 누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연하린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난리가 났다.
오늘 여기 모인 고수가 어떤 자들인가. 그 모두를 꺾고 비무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앞으로 연하린의 이름이 천하 곳곳에서 일컬어지리라.
비무대회를 끝으로 천무련 개파대전이 서서히 마무리 되어갔다.
* * *
사마위홍은 미칠 지경이었다.
개파대전은 분명히 끝났다. 그리고 세작도 전부 잡아냈다.
한데 왜 밤마다 이 고통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사마위홍은 침실에 나타난 벽태산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가자.”
오늘도 신명나게 얻어터질 운명인가보다.
사마위홍은 느릿느릿 일어나 벽태산을 따라 나갔다.
당연히 목적지는 개인 연무장이었다. 아마 적어도 한 시진 이상은 대련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안 맞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끝날 테고.
사마위홍은 조심스럽게 벽태산에게 물었다.
“저기······ 공자님, 혹시 안 바쁘십니까?”
벽태산이 걸음을 멈추고 사마위홍을 돌아봤다.
“바쁘다.”
사마위홍은 그 말에 눈을 빛냈다. 얼른 할 말을 골랐다.
이렇게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바쁘면 그냥 가셔도 된다고, 앞으로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마위홍이 대답할 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먼저 말했다.
“그러니 감사히 여겨라.”
벽태산은 더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다시 휘적휘적 걸어갔다.
사마위홍은 한동안 멍하니 벽태산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그러다가 벽태산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 툭 뱉었다.
“그냥 가셔도 되는데······.”
사마위홍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화들짝 놀라 주위를 휙휙 살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 어쩌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