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8)
지금 느끼는 이 불쾌한 기운은 바로 거기서 파생된 것이 분명했다.
의선은 발걸음을 돌렸다.
이걸 어찌 확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향을 바꿔 천천히 걷던 의선의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그리고 이내 바람 같은 속도로 빠르게 쭉쭉 나아갔다.
* * *
“새외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화옥의 보고에 벽태산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몇 군데가 움직였느냐.”
“백혈궁이 주축이 되어 만독림과 흑사단이 나섰습니다. 그리고 새외에 자리 잡은 중소 방파들이 모여 파천회라는 세력을 조직해서 참여했습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파천회라······ 예전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놈들이 있었지.”
그때도 새외에서 일을 벌였다.
당시 벽태산은 천마가 되기 전이었는데, 선봉에 서서 그놈들을 박살 냈다.
당시의 천마는 나서지도 않았다. 그저 천마신교의 무사대 중, 다섯이 나서서 파천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놈들을 끝장냈다.
아마 이번 파천회도 그때의 그놈들이 몇몇 끼어들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굳이 새외까지 가서 그들을 뿌리 뽑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파천회를 조직하는 데에 워낙 많은 힘을 쏟아서 다들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그냥 내버려 둬도 알아서 툭툭 쓰러지니 귀찮게 새외까지 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당시 참여했던 방파들 중 칠 할이 무너졌다.
아무튼 이번에도 천마신교가 건재했다면 그때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천마신교가 없다.
화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할까요?”
그녀가 생각하는 건 하오문이나 사해방을 동원해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하면 다소 피해가 발생하긴 하겠지만, 무림맹이나 흑련, 오대세가, 호무련 등이 대응할 시간을 충분히 벌어줄 수 있다.
벽태산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명 놈들이 부린 수작일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백혈궁이 나섰다 이거지? 거기에 파천회까지.”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놈들이었다. 그래도 새외까지 가서 힘을 쓰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그놈들 어디로 움직이는지 잘 파악해서 수시로 보고해라. 적당히 다가오면 산책 삼아 마중이나 나가봐야겠다.”
화옥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이렇게 그들의 운명이 정해졌다.
* * *
백혈궁의 궁주는 낮은 언덕 위에서 무수히 세워진 막사를 내려다봤다.
저들이 이번에 무림을 치기 위해 데려온 자들이었다.
그걸 위해 무려 네 개 세력이 연합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원정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무림은 결코 만만치 않다.
특히 무림맹과 흑련은 드러내놓지 않은 힘이 훨씬 더 대단한 세력이다.
그 두 세력이 제대로 마음먹고 온 힘을 다하면, 이곳에 모인 무사들 정도로는 결코 그 벽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분이 원하시니까.
“이번이······ 두 번째니 앞으로 한 번 남은 셈인가.”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몸이 떨릴 정도로 강한 자를 고작 전령으로 쓰는, 끝을 모를 정도로 강대한 자였다.
그가 백혈궁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대가로 원한 것은 세 번의 명령을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그 명령이 무엇이든 간에 해야 한다. 설사 백혈궁이 망할 만한 일이라 할지라도.
첫 번째 명령은 다행히 별 거 아니었다.
한데 고작 두 번째 명령이 백혈궁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새외 세력을 모아 무림을 치라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백혈궁주가 복잡한 심정을 내심 억누르며 막사들이 쫙 펼쳐진 전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다른 세력의 수장들이 다가왔다.
“호오. 전경이 그럴듯하군. 이런 좋은 광경을 혼자서만 보고 계셨던 거요?”
만독림주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머지 두 사람, 흑사단주와 파천회주는 그저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기만 했다.
“한데 확실한 거요?”
“뭐가 말이오?”
“우리가 무림을 치면 내응을 해준다는 거 말이오.”
“확실하오.”
“그럼 이제 슬슬 누가 내응을 하는 건지 말씀해주실 때가 되지 않았소? 조만간 공격을 시작할 터인데.”
백혈궁주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묵검산장이오.”
나머지 세 사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허어. 묵검산장이라······ 이거 아무래도 이번에야말로 무림에 우리의 영역을 제대로 구축할 수 있을 듯하오.”
백혈궁주는 담담한 눈으로 만독림주를 바라봤다.
저게 얼마나 허황된 생각인지 과연 알 날이 올까?
백혈궁주의 시선이 이번엔 흑사단주와 파천회주 쪽으로 향했다.
저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꼭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도 저 둘이 함께 해줘서 큰 힘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어쨌든 기회 자체는 좋다. 천마신교가 없으니까.
네 사람의 눈빛 깊은 곳에 욕망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끝
의선은 빠르게 달리다가 멈췄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 전까지 선명하게 느껴지던 그 불쾌한 느낌이 싹 사라졌다.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그곳은 골목 몇 개가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아무래도 이 중 어딘가로 도망친 모양이었다.
그 얘기는 그쪽에서도 의선을 인지하고 조치를 취했다는 뜻이다.
의선은 잠시 집중해서 영력의 흔적을 찾았다.
“허어.”
영력의 흔적이 모든 골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인원을 나눠 흩어졌거나, 아니면 일부러 영력을 깔아 혼란을 조장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니면 그 둘 모두일 수도 있고.
딴에는 머리를 쓴 것이겠지만, 의선에게는 별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몇 개 되지도 않는 것, 그저 확인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의선은 이 모든 골목을 동시에 확인할 방법이 있었다.
의선의 몸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의선의 키만 한 빛 덩어리가 몸에서 쑥 빠져나왔다.
그 빛은 조금씩 강해지더니 이내 의선과 똑같은 모양으로 변했다.
분신을 만든 것이다.
의선의 몸이 또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신이 하나 더 튀어나왔다.
교차한 골목은 의선이 온 곳까지 해서 총 넷이었다. 그러니 세 군데만 확인하면 된다.
의선과 분신은 각각 하나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영력의 흔적을 따라 그냥 이동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영력의 흔적이 가장 짙은 곳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영력의 흔적이 끊어진 것이다.
하지만 의선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이 들어갔다. 중간에 영력의 흔적을 일부 지우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좀 더 길을 따라가니 영력의 흔적이 다시 이어졌다.
그렇게 가다보니 대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대로 끝에 피 냄새를 풀풀 풍기는 놈들 몇 놈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걸어가고 있었다.
의선은 그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러는 동안 다른 곳으로 간 분신들로부터 정보가 속속 들어왔다.
둘 중 하나는 아무것도 없었고, 하나는 지금 의선이 보는 것과 비슷한 놈들을 찾아냈다.
그들은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고 했다.
의선은 일단 분신으로 하여금 건물을 감시하게 하고는 얼른 피 냄새 나는 놈들을 쫓아갔다.
‘하나, 둘, 셋······.’
의선은 피 냄새 나는 놈들이 몇이나 되는지 수를 셌다. 모두 여섯 명이었다.
그 여섯 명과 함께 있는 동료들도 있었는데, 다들 고수이긴 하지만 영력을 쓰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영력 쓰는 놈들만 처리해 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의선이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러자 눈치 챈 놈들 역시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봐야 의선을 어찌 따돌리겠는가.
어느새 그들은 낙양을 벗어났다.
의선은 낙양을 벗어나자마자 마치 공간을 뛰어넘는 듯한 속도로 그들을 따라잡았다.
꽈과과과광!
거친 폭음과 함께 영력을 가진 여섯 사내가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채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고 얻어맞았다.
다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자세를 잡고 무기를 꺼내 의선에게 겨눴다.
그들에게서 스산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보아하니 제대로 된 싸움꾼은 아니로구나.”
의선의 말에 여섯 사내가 발끈했다. 제대로 된 싸움꾼이 아니라니. 자신들을 뭐로 보고 그따위 말을 한단 말인가.
“우리 여섯이면 무림맹주도 죽일 수 있소.”
의선이 빙긋 웃었다.
“과연 그럴까? 자네들, 무림맹주를 너무 물로 보는 거 아닌가? 무림맹주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라네.”
의선은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아무튼 나도 맡은 일을 해야 하니 자네들이 이해를 좀 해주게.”
의선은 어느새 여섯 사내의 중심에 서 있었다.
마치 주먹이 여섯 개로 늘어난 듯한 장면이 펼쳐졌다.
의선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팔이 쭉 뻗어나가 여섯 사내의 명치를 가격한 것이다.
뻐버버버버벅!
“크허헉!”
여섯 사내는 자신의 명치가 안으로 움푹 들어가는 걸 몸으로도 느끼고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몸에 있던 영력이 속절없이 흩어졌다.
“커어어어!”
기괴한 신음과 함께 입을 통해 피안개가 뿜어져 나갔다.
그 피안개는 그들이 가진 영력이었다.
여섯 사내는 그렇게 영력을 잃고 바닥에 털썩털썩 쓰러졌다.
의선은 그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간단한데······.”
그런데 왜 벽태산과 싸울 때는 이렇게 안 되는 걸까?
의선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들을 어찌 처리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느새 하오문도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의선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들을 저희가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의선이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주면 참으로 고맙겠네. 그럼 잘 부탁하네. 아, 그리고 이와 비슷한 놈들이 낙양 안에 더 있는데, 혹시 알고 있나?”
“그건 잘 모르겠고, 의선 어르신의 분신이 낙양 어디쯤에 있는지는 파악했습니다.”
의선이 그 말을 듣고 내심 감탄했다. 확실히 하오문의 능력이 대단하긴 대단했다.
“그럼 그쪽도 내가 처리하면 정리를 부탁하겠네.”
하오문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맡겨 주십시오. 차질 없이 처리하겠습니다.”
의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낙양 쪽으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차츰 속도를 높이더니 이내 화살처럼 빠르게 쭉쭉 나아갔다.
* * *
무명에서 이번에 천무련과 싸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의 총 책임자는 혁련광이라는 자였다.
사실 누가 책임자가 될 것이냐에 대해 심가와 악가가 첨예하게 혁련가를 견제했지만, 결국 혁련광이 맡게 되었다.
혁련광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자였으니까.
또한 이런 식의 작전을 펼친 경험도 많았다.
물론 그때는 무명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고 다른 이름을 동원해 작전을 펼쳤지만 말이다.
아마 무림맹이나 흑련에 가서 칠마광란에 대해 물어보면 다들 치를 떨 것이다.
일곱 마인이 난데없이 등장해 천하를 한 차례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으니까.
그 칠마광란을 뒤에서 조장한 사람이 바로 혁련광이었다.
즉, 실제로는 칠마가 아니라 팔마였다는 뜻이다.
혁련광은 마인들을 부추겨 일을 벌인 후, 초반에 크게 힘을 쓰고는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당시 일곱 마인이 어찌나 난장을 피웠는지 무림맹과 흑련의 성장세가 한동안 정체될 지경이었다.
칠마광란은 무명이 천하무림을 견제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당시 무림맹과 흑련이 상대한 것은 일곱 마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일곱 마인이 각각 이끄는 부하들이 있었다.
일곱 마인은 다들 미친놈들이었지만, 부하들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튼 혁련광은 그 일을 무명의 인원은 단 한 명도 쓰지 않고 오직 마인들을 충동질해 이용하는 것만으로 해냈다.
혁련광은 그것 말고도 자잘하지만 다양한 작전을 경험했다.
사실 이제 혁련광은 슬슬 혁련가의 장로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했다.
나이도 오십을 훌쩍 넘었으니 이렇게 직접 작전에 참여할 일도 최근에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작전에 나선 것은 그의 아들 때문이었다.
자신이 이번 작전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혁련가주가 그의 아들을 직속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그건 차기 혁련가주의 자리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찌 마다하겠는가.
혁련광이 해야 할 일은 천무련과의 싸움을 고착화시키는 거였다.
이쪽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무명이 천무련을 대하는 한결같은 자세였다.
혁련광은 그걸 위해 정찰대를 먼저 보냈다.
언젠가부터 낙양에서 올라오는 정보의 양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유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천무련이 낙양의 세작들을 솎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천무련의 능력이 대단했다. 아니, 천무련에 합류한 하오문의 능력이 대단했다.
그렇기에 정찰대를 허투루 구성하지 않았다.
혁련광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실력자들로만 구성했다. 그 중에는 혈령마공을 익힌 자들도 여럿 섞여 있었다.
“슬슬 첫 번째 조가 돌아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상대방의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지만, 대략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런 건 알아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걸 알아보기 위해 간 첫 번째 정찰대는 이미 돌아왔어야 한다.
“문제가 생겼군.”
혁련광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시작 단계에서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