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92)
* * *
의선은 분신 세 명과 함께 낙양으로 들어섰다.
각각의 분신이 무명에서 나온 놈들을 한 명씩 어깨에 메고 있었다.
도망친 놈들을 끝까지 추적해 결국 잡은 것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다른 싸움은 어찌 되었을지······.”
밤이 다 지났고, 이제 곧 있으면 해가 뜰 것 같았다.
벌써 동쪽 끝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이는 듯했다.
의선이 나직이 탄식했다.
“허어. 이리도 의미 없이 밤을 보내다니. 시간이 너무나 아깝구나.”
의선이 그 말을 중얼거린 순간, 뒤에 있던 세 명의 분신이, 어깨에 멘 사내들이 떨어지지 않게 두른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끄어억!”
난데없는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의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의선은 천무련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저 멀리 기루가 보였다.
“끄어억!”
어깨에 늘어진 사내들의 입에서 또 한 차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의선의 발걸음이 살짝 느려진다 싶더니 다시 빨라졌다.
이내 천무련에 도착한 의선은 활짝 열린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천무련은 의외로 시끌벅적했다.
정문이 활짝 열려 있던 것도 안팎을 수시로 오가는 자들이 많아서 해둔 조치였다.
의선이 혁련광 일당을 추적하는 동안 천무련은 무명의 무사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싸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할 일이 많았다.
지금은 그 뒤처리로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런,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로구나.”
의선은 혁련광 일당을 데리고 얼른 천무련주부터 찾았다.
사마위홍은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역시 뒤처리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많이 바쁜가?”
의선의 물음에 사마위홍이 그를 바라보고는 반색했다.
“어르신!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몸은 괜찮으신지요.”
“나야 아직 한창때 아닌가. 일단 이놈들부터 받게.”
의선이 어깨에 멘 사내들을 휙휙 던졌다.
사마위홍 앞에 툭툭툭 떨어진 사내들이 잠시 몸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움직이지는 못했다.
“움직임을 제한해뒀네. 이번에 쳐들어온 자들을 이끄는 사람일세.”
의선은 사마위홍이 놀랄 새도 없이 주위를 둘러봤다.
“다친 사람이 많군.”
“예. 아무래도 싸움이 굉장히 흉험했는지라······ 그래도 잘 싸운 편입니다. 피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의선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그럼 이제 내가 힘을 쓸 차례가 되었군.”
의선의 몸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의선과 똑같은 크기의 빛 덩어리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빛 덩어리들은 이내 의선과 똑같은 모습의 분신이 되었다.
사마위홍은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렇게 의선이 총 열 명으로 늘어났다.
열 명의 의선은 사방을 바삐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신의 손길이었다.
의선의 손에 닿은 자는 아무리 큰 부상을 입었어도 툭 털고 일어났다.
사마위홍은 바삐 움직이는 의선의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어도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천무련과 무명의 첫 번째 전투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끝
벽태산은 새외 세력을 정리하고 무한으로 돌아온 다음, 거기서 잡아온 자들을 일단 뇌옥에 가뒀다.
뇌옥에 갇힌 사람은 하오문의 심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마 무명에서 나온 자들이 아니라면 하오문의 심문 과정에서 대부분의 정보를 토해낼 것이다.
벽태산은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저들은 그저 무명에게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무명이 저들에게 일말의 정보라도 남겼을 리 있겠는가. 아마 저들은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벽태산이 무한에 돌아오자마자 만난 사람은 화옥이었다.
화옥은 벽태산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자님, 산책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벽태산이 아까 나설 때, 산책 삼다 다녀오겠다고 해서 한 인사였다.
화옥의 인사에 벽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새외 세력 중에 파천회라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새외 세력을 치러 가기 전에 거기에 대한 정보를 화옥이 보고했다.
그러니 그녀가 파천회에 대해 아는 것이 당연하다. 아마 벽태산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놈들한테 사람 하나 보내라.”
“그들을 들이시려 하십니까.”
“들이긴. 그냥 부리는 거지. 무슨 일을 시키든 말을 잘 들을 테니 그놈들을 이용해서 새외 쪽을 정리해라. 굵직한 놈들은 다 사라졌으니 수월할 거다.”
화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쪽은 사해방이 자리 잡고 있으니 사해방에 일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든가.”
사해방이 이 일을 맡으면 파천회를 이용해 사해방이 새외 쪽을 장악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화옥이 사해방을 언급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사해방이 정보를 장악하고 파천회가 무력을 장악하면 결과적으로 새외도 벽태산의 것이 되는 셈 아니겠는가.
화옥이 머릿속으로 새외에 대한 계획을 쫙 세우고 있을 때, 벽태산이 물었다.
“묵검산장이 배신했다는 얘기는 들었느냐?”
화옥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들었을 리 없지 않은가.
싸움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묵검산장이 배신했다고요? 거기에는 십대고수도 둘이나 있는데······.”
십대고수라는 말에 벽태산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십대고수를 누가 정하는 것인지 아느냐?”
“딱히 누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문과 평판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해집니다.”
벽태산이 화옥을 쳐다봤다. 정말로 그러하냐는 듯이.
“그것이 세간에 알려진 사실이고, 실제로는 무림맹과 흑련에서 만나 적당히 정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십대고수 중에 무림맹이나 흑련 소속 무인이 언제나 한 명씩 끼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실제로 무림맹과 흑련에는 십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자보다 더 강한 고수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래서 그 모양이었군.”
화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십대고수가 너무 약해서 기분이 좀 상했다. 제법 뼈대가 단단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화옥은 벽태산의 말에 과연 그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도 명색이 십대고수이니 관심이 좀 생겼다.
벽태산이 화옥을 가만히 보다가 툭 말했다.
“너도 한 놈 정도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예?”
화옥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벽태산이 저렇게 말했다면 저건 진짜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신이 강해서 십대고수와 대등한 경지에 이른 걸까, 아니면 십대고수가 이름값에 비해 너무 약한 걸까?
“나머지 십대고수들에 대해 정리해라. 이름, 별호, 위치 정도면 되겠구나.”
“예.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화옥은 대답을 하면서 속으로 남은 십대고수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조만간 벽태산이 산책 삼아 쭉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충분히 자격을 갖춘 십대고수로 바뀌지 않을까?
화옥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물러갔다.
* * *
새외 세력의 습격, 그리고 무명과 천무련의 싸움이 동시에 벌어진 일은 천하 무림을 한 차례 뒤집어 버렸다.
일단 새외 세력이 힘을 모아 이렇게 대대적으로 쳐들어온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데 새외 세력의 진격이 어찌나 빨랐는지, 그들이 쳐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다들 빠르게 대응해 무림연합을 조직해서 새외 세력을 막아낸 무림맹이나 흑련을 칭송했다.
그리고 당시 무림연합을 배신하고 등을 찌른 묵검산장이 와해되었다.
묵검산장은 일이 틀어졌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야반도주를 했다.
현재 무림맹이 나서서 그들을 추적하고 있긴 하지만, 성과가 별로 없었다.
마치 그동안 어떻게 도망칠지 빈틈없는 계획이라도 세워둔 듯했다.
어쩌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묵검산장의 잔당들은 무명과 접촉해서 무명의 하부조직이 되었다.
그것 말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었으니까.
물론 무명에서는 그들을 소모품처럼 잘 써먹을 것이다.
묵검산장을 추적하는 건 무림맹뿐만이 아니었다.
흑련과 오대세가도 묵검산장 추적에 손을 보탰다. 그들 역시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으니 복수심이 상당했다.
그리고 당시 나타난 벽태산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다.
무림맹주와 흑련주, 그리고 각 세가의 가주들이 벽태산의 존재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들 역시 벽태산의 능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점에 놀랐고, 경각심을 가졌다.
하지만 당장 벽태산을 견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그냥 내버려 두면서 계속 주시하기로 결정했다.
뭔가를 하더라도, 당장 코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한 다음이어야 한다.
이번에 새외 세력이 움직이는 걸 보며 무명과의 싸움이 그리 녹록치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무명은 자신들의 힘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었다.
불리하면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재빨리 발을 뺀다. 그리고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이나 망설임이 없다.
게다가 다양한 세력을 뒤에서 움직여 판을 짠다. 이번 새외 세력과 묵검산장처럼 말이다.
그런 세력이나 문파가 몇이나 더 있을지 아직 가늠조차 못했다.
그러니 좀 더 무명 쪽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새외 세력의 침공을 큰 피해 없이 막아낸 덕분에 다들 여유가 좀 생겼다.
이제부터 그 여유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각자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다들 제각각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작은 호수 위에 떠 있는 배. 그 위에 심가와 악가, 혁련가의 가주가 또 모였다.
배 한가운데 차려진 조촐한 술상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문득 혁련가주가 고개를 들어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들을 바라봤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봉우리들을 쭉 둘러본 혁련가주는 마음이 좀 가라앉았는지 깊어진 눈빛으로 심가주와 악가주를 바라봤다.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심가주와 악가주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천무련으로 갔던 자들은 각 가문에서도 제법 괜찮은 녀석들이었다.
게다가 그 모두를 이끄는 혁련광은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 이곳에 있는 가주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로 인정받는 사내였다.
한데 보기 좋게 임무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주요 인물들이 전부 죽거나 사로잡혔다고 하니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살아 돌아온 자가 고작 수십 명에 불과했다.
“일단 그곳 거점은 폐쇄하고자 합니다.”
혁련가주의 말에 심가주와 악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이미 추적 과정에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천무련 놈들이 주시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이번에도 그 침묵을 깬 것은 혁련가주였다.
“앞으로 천무련을 어찌 해야 할지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처음 계획대로 밀고 나가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그 말에는 나머지 두 가주도 동의하는 바였다.
애초에 천무련을 이용하려는 건, 그쪽으로 이목을 집중시켜 다른 곳에서 벌이는 일을 감추고자 함이었다.
심가주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계획이 실패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의선입니다.”
“맞습니다. 설마 의선이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의선이 대단한 힘을 가졌을 거라는 예측 정도야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할 거라고 예상치 못한 것이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의선은 정말로 신선에 가까운 자였다. 무명에서는 제법 오래전부터 의선의 힘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선은 무림의 일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일을 예상치 못한 것이다.
“그럼 변수를 제거해야지요.”
말은 쉽다. 변수를 제거하면 다시 원래의 계획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 변수를 어찌 제거한단 말인가.
“살아 돌아온 자들의 보고를 잘 들여다보면······ 의선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저 위에 계시는 어르신이 몇 분 동시에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과연 나서 주시겠습니까?”
“일단 얘기는 꺼내봐야지요.”
이들이 말하는 저 위에 계신 어르신이라는 건, 무명에서 은퇴한 자들이었다.
무명에서 큰 힘을 쌓아 활동하다가 은퇴한 자들은 무명을 둘러싼 봉우리 위로 올라가 생활한다.
그들 중에는 한창 활동할 때의 힘을 훨씬 능가한 사람도 있고, 힘을 잃고 죽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혈령마공을 익힌 자들의 숙명 같은 거였다.
피를 탐하고 색을 탐하고 욕망에 먹히고. 그러다가 결국 적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은퇴하고 봉우리로 올라가는 것이다.
힘을 잃고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웬만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강했다.
물론 힘을 잃은 자가 의선을 상대할 수는 없을 테지만.
아무튼 봉우리 위에서 지내는 어르신들을 모셔 와야 할 상황이었다.
한데 그 어르신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을 움직이려면 친분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각 가문을 잘 들여다보면 그런 자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의선은 그렇다 치고, 하오문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합니다.”
“으음. 하오문이라······.”
하오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거슬렸다.
무명이 하는 일에 가장 큰 방해가 된 조직이 바로 하오문이었다.
그동안은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무명과 얽혔다기보다는 무명와 연계된 다른 자잘한 것들과 문제가 되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듣자하니, 이번에 천무련을 공격할 때도, 굉장한 위협이 되었다고 합니다.”
은밀하게 다가가 암습하고 사라지는 하오문의 공격은 무명의 강력한 무사들조차 당혹스럽게 했다.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